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64화 (164/251)

< 천마지존의 귀환(1) >

어째서 천마신교가 다시 활동하고 있는가. 의문은 꼬리를 물고 늘어졌지만, 여기서 누님의 멘탈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나는 조용히 누님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살짝 들어서 나와 눈을 마주쳤다. 얼굴의 대부분을 가리고 있어 눈동자밖에 보이지 않았음에도, 그 눈동자마저도 너무나도 신비롭고 아름다워서 사람의 심장을 철렁이게 만들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어찌 되었든, 천마신교의 대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잖아요.”

천마신교는 비록 마교(魔敎)이나, 악한 가르침은 진작 폐지된 지 오래였다고 한다. 누님의 바로 전대 교주였던 ‘갈혁준’의 역할이 컸다. 그는 세상을 피와 폭력으로 지배하려 들지 않았고, 그저 정해진 틀 안에서 조용히 지내기를 원했다.

장로들은 압도적인 힘을 보유한 갈혁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반발하는 이는 모조리 숙청하여 설중연 누님이 교주가 되었을 땐 정파보다도 더욱 깨끗한 문파였다고 한다.

즉, 그런 천마신교의 부활은 세상에 부정적인 영향만을 끼치진 않을 터. 비록 현재 부활한 천마신교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녀에게 긍정적인 말을 해줘야만 할 때다.

“···그래. 고맙구나.”

내가 무슨 의도로 그렇게 말했는지를 깨달았는지 그녀가 옅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말야, 아무리 그래도 천마신교인데 사칭이 가능할까?”

불만스럽게 나와 누님을 번갈아 쳐다보던 테일러가 빵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각 문파에는 상징적인 무공이 있는 법이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서 더욱 이 상황이 부담스럽다. 무림맹이 바보들도 아니고, 어중이떠중이가 천마신교 사칭하는 것을 구분 못 할 리가 없으니까. 즉, 천마신공을 배운 누군가가 천마신교를 다시 세웠을 수도 있다는 건데······.

“······짐작가는 이가, 한 명이지만 있구나.”

“네?”

누님은 한숨을 폭 내쉬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아주 예전에······. 그러니까, 전대 교주께서 돌아가신 뒤 상심이 컸던 내게 다가와 주었던 아이였다.”

그 아이는 설중연 누님이 쓸쓸하게 거리를 걷던 와중, 뒷골목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거지였던 소녀는 만만해 보이는 누님의 주머니를 노리고서 몰래 접근했으나, 어디 고수의 주머니를 털기 쉬울까. 소녀는 금세 뒷목이 붙잡히고 말았으나.

‘내려놔! 이 못된 여자야!’

도리어 역정을 내는 게 아니던가. 누님은 그 아이에게서 어린 시절의 자신을 투영하였다. 비록 어린 시절의 설중연은 소녀처럼 성격이 거칠지도 않았고 저토록이나 당당하고 용감하지도 않았으나 살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리는 모습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여, 누님은 소녀를 거두었다.

그때를 생각하며 누님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무골이 아주 훌륭하였고 남들에게 지는 걸 싫어하는 그 마음가짐이 마음에 들어, 내가 직접 검을 가르쳤다.”

소녀에게는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 강해지고 싶다는 욕구가 맞물려 그녀의 성취는 어마어마하였고 순식간에 어지간한 성인을 가뿐히 뛰어넘었으나······.

“···자꾸만, 사고를 치더구나.”

소녀는 예쁘장하게 생긴 탓에, 접근하는 남정네들이 지나치게 많았다. 그러나 그건 정말로 간단한 접근이었음에도, 소녀는 그들의 접근을 참지 못하고 모든 남자를 때려눕혔다.

그러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경고했음에도, 소녀는 어린 시절 부랑자들에게 겁탈당할 뻔한 기억 때문에 트라우마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 결국 몇몇 남자 무림인을 거세해버리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안타까운 아이였다. 남자에 대한 끝없는 불신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결국 내쫓을 수밖에 없었지. 그때는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하지만 오히려 천마신교에서 쫓겨난 덕분에, 소녀는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다. 과연 이게 좋은 일일까. 나와 테일러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분위기가 축 늘어지자 누님은 빠르게 말을 끝맺었다.

“어찌 되었든, 만약 천마신교를 다시 세운 게 그 아이라면 믿어도 좋을 것이다.”

“그건······ 다행이네요. 그래도 역시 직접 가서 확인해보실 거죠?”

“···그래. 망자들의 넋을 달래주고, 새로운 교주를 만나보아야지. 내가 이렇게 살아 돌아왔으니, 분명히 반겨줄 것이다.”

그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그렇게 되면 좋겠다.

*

아침 식사를 빠르게 한 뒤, 우리는 마을을 나섰다. 정보집단 ‘암영단’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과연 무협지의 세계관이라 그런지, 산은 험난하고 깎일 대로 깎인 절벽에 간신히 한 명이 지나다닐 만한 길목이 나 있는 경우도 많았으나 우리들에게 그런 지형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기서 제일 수준이 낮은 나조차도 마음만 먹으면 절벽을 수직으로 걸어다닐 수 있으니까.

그런 이유로 우리는 굳이 편한 숲길이 아니더라도 자유로이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음에도, 테일러가 자꾸만 ‘숲길로 가자! 보고 싶은 게 있어!’라며 부탁을 해대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일반인들이 다니는 평범한 길목을 택했다.

그러기를 반나절. 지루한 산행을 반복하던 그때.

“크하하! 이놈들! 어딜 그냥 지나가려고!”

테일러가 ‘보고 싶었던 것’이 드디어 나왔다. 우리들의 앞길을 가로막은 그 사내는 잘 씻지도 않았는지 까무잡잡한 피부에 누런 이빨을 가지고 있었는데, 머리칼은 무슨 수세미마냥 쭈글쭈글했고 잘 맞지도 않는 조끼같은 의류 하나만 달랑 걸치고 있어서 그의 풍만한 뱃살과 수북한 가슴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오오! 나왔다! 녹림채!”

다름 아닌, 무협지에서 항상 꼭 ‘지나가는 악역’ 혹은 ‘초반 주인공 전투력 측정기’라고 불리는 산적집단, 녹림(綠林)이었다.

“크하하, 우리들의 악명을 익히 들어서 잘 알고있군! 그래, 나는 녹림십팔채의 두목, 왕칠득이다. 살아서 가고 싶다면 가진 것을 모두 내놓아라!”

정말 뻔하디뻔한 대사가 나오자 테일러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양손을 그러모으고선 슈퍼스타를 만난 소녀처럼 구는 게, 정말 금덩이 하나라도 쥐여줄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인원수는 대략 100명 정도일까. 생각보다 많은 숫자였다. 굳이 싸우기는 귀찮기도 해서, 그냥 돈주머니 하나 꺼내서 던져주었다.

그러다 불현듯 드는 생각.

‘이거, 순순히 돈 주면 오히려 무시하는 클리셰가 나오지 않던가?’

그리고 그 예상대로, 왕칠득은 우리를 순순히 보내주지 않았다.

“이것들 보게, 가진 돈이 많구만? 남은 주머니까지 모조리 내놓도록!”

“그게 끝인데.”

“이 새끼가 어디 두목한테 반말을!”

“낄낄, 만득아 그만둬라. 애새끼들 겁먹고 지리기라도 하면 옷에 지린내가 나지 않겠느냐? 옷에서 귀티가 나는 걸 보니, 어디 도련님인 것 같은데 저것도 벗겨서 뺏어오도록!”

‘오오, 야야. 대박이야. 진짜 내가 상상하던 그대로야!’

“······.”

옆에서 테일러는 자꾸만 옆구리를 치며 오두방정을 떤다. 그렇게 좋은가. 왕칠득은 거치도(鋸齒刀)를 자신의 어깨에 턱 걸쳤다. 그러고선 은근슬쩍 다가와, 테일러에게 손을 뻗었다.

“흐흐, 목소리 들어보니 여자 같은데, 일단 얼굴 좀 보실까?”

그 뒤의 전개는 뻔하게도, 보는 것까지는 재미있지만 피해가 직접적으로 오는 건 죽어도 질색하는 테일러가 광선으로 녹림들을 죄다 쓸어버렸다.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무협지에서는 너무 흔한 악당으로 표현되어 이런 처사가 과하다고 할 수 있으나, 실제 현실의 무협에서는 처리해놓을 수록 좋은 게 사파의 악당들이다. 여자를 물건으로 보고 남의 물건을 도적질하는 놈들이 살아있어봐야 세상에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

“후, 쓰레기들 청소하는 건 언제나 재미있단 말이지. 이제 다시 가볼까?”

스트레스가 풀린 듯한 테일러를 보며 나와 누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우리의 목적지는 ‘설류시’라는 이름의 도시였다. 눈만 내리면 온 도시가 새하얗게 변해서 지어진 이름이란다. 어둠 속에서 암약하는 암영단이 거처로 삼기에는 지나치게 밝은 도시가 아닐까 싶지만, 그런 건 본인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크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가는 동안 수많은 도적들을 만났으며 사파의 외공이라는 것을 구경할 수 있었고 괴물같은 짐승들을 아주 가끔 만났으며 난데없이 찾아와 대련을 신청하는 고수도 만났다.

무협에는 소설 속에 묘사되던 것보다도 더 다양하고 특이한 사람이 많았다.

절벽 끝에 앉아 하루종일 초원을 감상하다가, ‘흑마귀’라는 이름의 거대 까마귀가 나타나면 활을 쏘는 무림인도 있었으며 자그마한 움막 안에서 지내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우르르 몰려나와 어디에 보관해뒀던 건지도 모를 상판을 꺼내 장사를 시작하는 상인도 있었다.

거대한 폭포의 수면 위에 대충 걸어앉은 무력답수(無力踏水)의 경지로 유유자적 낚시나 하고있는 ‘강태공’이라는 이름의 은둔고수도 만났으며 절벽 위에 지어진 마을에 잠깐 머물러 그들의 친절과 인심에 감복하는 와중, 한밤중에 그들이 돌변하여 습격하여 깜짝 놀란 적도 있었다.

무림은 생각보다도 더 활력이 넘치는 세계였고, 현대와는 또다른 마력이 나를 유혹하였다. 설중연 누님은 나와 테일러가 새로운 것을 보고 깜짝 놀랄 때마다 웃으며 그것들을 설명해주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워 보이는 것 같아서, 나는 살짝이지만 안심했다.

그렇게 2주 동안 우리는 아주 잠깐 여행의 여유를 즐겼고, 설류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설류시는 그 이름만큼 퍽 아름다운 도시였다. 도시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강은 대리석으로 예쁘게 조각되어 현대의 공예를 연상케하였고 대부분의 건축물은 계획적으로 지어진 듯 규칙적인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거리에서 조금 큰 건물이 보인다 싶으면, 대부분이 문파였다. ‘총산파’, ‘마호당’, ‘천류회’ 등등 기존의 무협지다운 이름부터 ‘블루 마인드 섹트’, ‘디스트로이드 소드 길드’, ‘스피드 오브 스피드 스틸 파티’ 등등 웬 판타지스러운 이름까지.

누님은 그것들을 보며 잠시 침묵하더니 “···새로운 문파가 많이 생겼구나.”라며 짧은 감상평을 내뱉을 뿐이었다.

우리는 빠르게 암영단을 찾아갔다. 암영단은 ‘사로의 거리’라는 골목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곳은 ‘철두파’라는 잡배(지구로 따지면 마피아)들이 지배하고 있다고 하였다.

홍등가를 연상케하는 뒷골목. 창부들은 붉은 조명에 자신의 몸을 은근하게 내비치고 있었는데, 성별은 남자든 여자든 상관이 없는 듯했다. “거기, 오빠~ 우리랑 같이 놀아요~” 라며 근육질의 남자들이 자꾸 달라붙으려고 해서 상당히 골치가 아팠다.

“으음, 기분 나쁜 곳이야.”

테일러는 표정을 와락 구긴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후드와 면사포로 얼굴을 거의 가리고 있음에도 워낙 작은 체구인 데다가 몸매를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기에 여자가 일행에 섞여있는 것을 알고 다행스럽게도 여자들이 달라붙지는 않았다.

그들을 헤치고서 골목의 더욱 깊숙한 곳으로 조금씩 조금씩 더 들어가다보니, 웬 양아치들이 철봉이나 방망이 등의 허름한 무기를 들고서 껄렁한 자세로 길을 틀어막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을 본 즉시 우리는 깨달을 수 있었다. 고작 이런 곳에서, 불량배 행세나 하고있을만한 놈들이 아니었다.

‘최소 절정고수로 보이는구나.’

누님이 입모양으로 그리 말했다. 면사포에 가려져 있었으나, 해석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어이, 뭐야? 길을 잘못 든 거 같은데, 한 번만 봐줄 테니 썩 꺼져.”

그들 중 한 명이 양아치 행세를 하며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무시하고서 손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암영단의 편지로 인해 새겨진 문신 하나가 있었다. 검은색의 원형 테두리에, V자가 그려진 마크. 그것을 보더니 양아치는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귀빈이시군요.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순식간에 말투가 뒤바뀐 양아치···아니, 암영단의 일원은 우리를 어느 건물로 안내하였다. 막 지하실로 이동해서 어두컴컴한 공간을 대면할 줄 알았건만, 그는 우리를 아주 밝고 떠들썩한 장소로 데려갔다.

“······.”

그리고 도착한 장소는, 거의 백 명이 넘는 무림인들이 마치 콜로세움처럼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형태의 커다란 도장이었다. 그리고 도장의 한가운데에는 어떤 사내가 책상 하나를 펼쳐두고서 가만히 앉아있었다.

주변의 무림인들을 힐끗 쳐다보면서 우리는 사내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여유로운 미소로 우리를 응대하였다.

“반갑습니다. 귀빈을 모시게 되어 영광이군요.”

“예. 전 암영단의 단장, ‘암영미소’의 소개로 찾아왔습니다.”

그 이름이 나오자, 무림인들이 살짝 동요한다. 그러나 술렁이지는 않았다. 체계가 확실한 모양. 그의 이름을 듣고서 사내는 쓰게 웃었다.

“제 이름은 화류진. 물론, 가명입니다.”

“얼굴은 드러내도 되는 겁니까?”

“저는 언제든 얼굴을 바꿀 수 있어서 상관은 없습니다. 원래는 이런 것까지 말씀드리지는 않는데, 신뢰의 증거라고 속이거든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도리어 신뢰가 되네요.”

물론 이러한 ‘신뢰’조차 의도된 것일 수 있어서 나는 그를 완전히 믿지 않았다.

“그나저나, 주변의 저 무림인들은 대체 뭡니까? 당신의 부하?”

“그건 아닙니다. 전 세계 곳곳에 암약해있는, 또다른 정보 집단이라고 보시면 되겠군요. 우리는 정보를 ‘공유’하고 있으니까요. 여기에서 통하는 대화는, 곧 그들의 귀에도 들어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수많은 문파에서 심어놓은 어둠의 무인들이라고 한다. 청성, 종남, 화산 등 이름만 들어도 바로 알 수 있는 거대 문파에서부터 처음 들어보지만 뒷세계에서는 굉장히 힘이 쎈 조직까지. 그에 나는 부담감을 느꼈으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뭐, 그건 그렇고··· 살수집단이자 정보집단의 수장으로서 손님에게 정보를 묻는 적은 처음입니다만······.”

화류진은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전 단장께서는 잘 지내고 계십니까?”

그 질문에 나는 얼마 전, 암영미소와 그의 부하들을 떠올렸다.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는 말에 쉽사리 태도를 뒤바꾸어 배신을 하려고 했던 놈들. 신뢰가 전혀 없는 부하 사이에서, 그는 썩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예. 뭐, 잘 지내고 있더랍니다.”

“다행이군요.”

하지만 굳이 그러한 사실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었지만, 만약 이 남자가 여전히 암영미소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이자와 함께 지구로 왔다면 좋았을 텐데. 물론, 저 남자는 지구인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었겠지만.

“후우···. 좋습니다. 아무튼 전 단장님의 인연이라면, 손이 닿는 데까지 단 한 번 도와드리겠습니다.”

“상당히 짜네요.”

“살수집단이라는 게, 의리를 지킬 땐 지키더라도······ 반드시 순이익을 따져야만 하니까요.”

상관없다. 무림에 오래 머무를 것도 아니었으니까.

“원하는 건, 역시 정보겠지요?”

“예.”

“그럴 것 같았습니다. 당신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저 따위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내재하고 계시거든요. 힘이 필요하지는 않으시겠지요.”

“맞습니다. 우선, 어떤 ‘신물(神物)’에 대해 알아보고 싶습니다.”

“신물이라고 하면······?”

“···‘차원 이동’과 관련된 신물입니다. 무림의 ‘악마’가 지구로 새어들어왔습니다. 아마도, 지구와 무림을 연결시킬만한 힘을 가진 신물이겠지요.”

지구의 언어로는 코어라 부르지만, 무림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않을 터. 그래서 나는 그 물건을 ‘신물’이라고 통틀어서 잡았다.

“······과연, 그렇군요. 악마라···.”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관련된 신물이, 단 하나지만 있습니다.”

“······예?”

솔직히 말해서, ‘차원 이동’이니 ‘악마’니 하는 단어를 꺼낸 뒤 그와 연관된 신물을 찾아달라고 했을 때는 곧바로 정보가 돌아오리란 기대를 하지 않았다. 너무 뜬구름잡는 이야기였을 뿐이니까. 하지만, 화류진은 곧장 답을 내놓았다.

“추정이지만, 당신들은 역시 ‘지구인’이 맞는 모양이군요. 일반인들은 전혀 모르고 있겠지만······. 이미 알만한 무림인들 사이에서는 어떤 소문이 퍼져있습니다. ‘곤륜파가 악귀에 물들었다, 그들은 다른 세상의 힘을 부린다’라는 소문이죠.”

“···아마도, 맞는 소문이겠네요.”

“네. 실제로 그들은······ 꽤 흉악한 사술을 부리고 있습니다. 마치, 100년 전의 ‘마교’가 사용했던 것과 비슷하나 그 형태가 더 끔찍하고 잔인한··· 그런 사술이지요.”

과거의 마교인들은 체내에 있는 내공을 억지로 거칠게 굴려서, 순간적으로 힘을 두세배 가까이 불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지기 쉬우며 성향이 난폭해지는 터에 정파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기술.

“곤륜파의 무인들은 모두 평범하게 무공을 익히고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온화한 성품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구요. 하지만······ 전투의 순간이 되면 그 모든 것이 뒤집힙니다.”

마치 성격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잔인하게 돌변한다는 것이다. ···지구에서 발생했던, ‘감정’을 제어하는 그 악마와 동일한 악마라는 것은 어린아이라도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 모든 게······ 곤륜파에 신비의 신물, ‘마정구’가 나타난 이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마정구라는 단어에 누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벌써 수십년도 더 전의 이야기로구나.”

“예. 그때는 마정구의 영향이 극히 적었으나, 조금씩 변화가 있었다고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급격히 곤륜파의 성향이 변한 것은, 지구 출신 무림인들이 모두 지구로 돌아간 이후에 나타났습니다.”

파괴적이고, 폭력적이며, 그 누구보다도 잔인한 격투술을 지향하게 된 곤륜파는 압도적인 무력을 보유하게 되었고, 현재는 무림맹마저도 거의 먹혀버린 상태.

즉, 곤륜파가 천마신교를 툭툭 건들면서 자꾸만 전쟁을 일으켰을 때에도 이미 그들은 ‘마정구’에 잠식이 되어있던 상태라는 의미였다.

‘이거 원, 가면 갈수록 진짜 퓨전 무협이네.’

무협지에 악마가 등장하는 경우가 흔하던가? 잘은 모르겠다만, 어쨌든 상당히 이질적인 건 확실하다. 아마 주인공 ‘이동준’을 내가 죽이지 않았더라면, 악마와 관련된 일이 그에게 뻗어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색마 방호윈부터 시작하여, 악마에게 잠식된 무림이 하나 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그게 아마도 『아빠가 알고 보니 달마지존』의 메인 스토리가 아니였을까.

물론, 그 주인공은 내 손으로 직접 죽였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내가 이 일을 해결해야만 했다. 이것은 언제부터인가 내가 갖게 된 의무감.

“···그나저나, 곤륜파라니. 이거 진짜 막막한데.”

아무래도 악마가 가진 힘의 원천과 차원문을 담당하는 핵심 코어가 거의 동일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즉, 애초부터 이 악마는 차원을 넘나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그러다 우연찮게도 악마는 무림과 한 번 연결되었던 지구에 불시착하였고, 악마의 존재를 알고있는 어떤 지구인에게 빙의하여 지구에 완전히 강림할 수 있게 되었다는······ 뭐 그런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악마에게 ‘차원 이동’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분야입니다. ‘마계’에서 쳐들어오는 악마군대의 클리셰를 떠올리시면 쉽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하긴.’

소설 속 악마들은 차원문을 무슨 자기네 집 안방마냥 쉽게도 휙휙 열어젖힌다. 그 대가는 대부분 ‘힘의 손실’이었고, 그것을 인간들과 계약하거나 인간에게서 힘을 흡수하는 것으로 메꾸는 게 기본적인 클리셰였다.

아마도, 이 경우에는 곤륜파에 똬리를 틀고서 힘을 보충하고 있던 모양. 그게 벌써 수십 년이니······ 솔직히 말해서, 악마를 직접 사냥하는 건 글렀다고 보면 된다. 아라셀리라도 있으면 모를까, 그 아이는 이곳에 올 수조차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마정구를 부수어서 악마가 무림에, 그리고 지구에 현현(顯現)할 수 없도록 막는 것.

하지만, 어떻게?

그때.

갑작스레 설중연 누님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서더니, 후드와 면사포를 벗어 던졌다.

노을빛을 닮은 백금발의 머리카락이 후드득 떨어지며, 그 빛나는 외모가 이 답답한 공간에서도 찬란하게 빛을 발했다. 화류진이 상체를 들썩이더니, 저도 모르게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당신은, 설마, 천마신교의 전 교주, 설중연······?”

주변에서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무림인들의 동요가 심해졌다. 정보의 ‘거래’를 하는 와중, 잡담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단어를 내뱉었다.

“천마, 지존이······.”

“돌아왔다고······?”

나는 기겁하여 그들을 살펴보았다. 무림의 모든 집단의 ‘눈과 귀’가 이곳에 모여있는 만큼, 누님의 등장은 앞으로 하루 안에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될 터. 설중연 누님은 느긋하고 나른한 어조로, 그러나 패기있고 당찬 지존의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천마지존이 돌아왔음을 알리거라.”

< 천마지존의 귀환(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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