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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60화 (160/251)

< 불길한 일에는 항상 전조가 있다(3) >

사실 혼령술이 완벽한 악마의 대처법이 될 수는 없다. 영혼을 다루는 학문은 정말 말 그대로 영혼을 다루기 위한 학문이었으므로, 악마를 궁극적으로 퇴치할 수 있는 방법이 파생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나더 리그에서 공식 입장으로 이런 발표를 했다.

[악마라는 존재에 대항할 방법을 연구 중이며,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어나더 리그의 주가를 올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악마가 나타났다면 반드시 소환한 자가 있을 것이며, 또 누군가에게 빙의했을 가능성이 높기에 그자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지구같은 경우에는 악마의 공격에 더욱 취약하기에.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흘이 지난 밤, 샌프란시스코에서 ‘광기 전이 현상’이라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난데없이 사람들이 미쳐서 서로를 죽이고 또 죽이면서 날뛰었다는 것. 심지어 그중에는 파티에 참여하기 위해 찾아온 S급 헌터 한 명도 포함되어 있어서, 사건 현장은 굉장히 처참하였다.

“심각한데······.”

현장에 도착한 나는 마치 들개에게 물어뜯긴 듯한 시체들을 보고서 미간을 찌푸렸다. 그간 특이한 일을 많이 겪어왔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건 진짜 특이하고 또 끔찍하다. 자신의 손톱이 완전히 뽑힐 때까지 상대방을 할퀴고, 자신의 이빨이 나갈 때까지 상대방을 물어뜯는다. 그러면서 고통은 못느끼는지, 스스로의 몸이 찢겨 나가는 건 신경 쓰지도 않은 듯한 모습이다.

<아무래도······ 상당히 강력한 악마가 사회에 숨어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닷새째. 중국에서 ‘공포 전이 현상’이 발생하였다. 밑도 끝도 없이 사람들이 절망하여, 주저앉아서는 미친듯이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는 것. 광기 전이 현상에 비해서는 평범했지만······ 이 역시도 세간에 ‘악마’라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심을 심어놓기에는 충분했다.

미디어 매체는 악마에 대한 공포를 빠르게 퍼뜨릴 수 있는 훌륭한 매개체였고, 악마는 그것을 아주 훌륭하게 이용하였다.

그 무렵, 드디어 예카테리나가 그럭저럭 괜찮은 연구 성과를 보였다.

바로 ‘명상법’을 개발해낸 것. 그녀는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간다는 사정을 듣고서는 다짜고짜 자신의 와이튜브 채널에 어떤 동영상을 올렸다.

그 제목도 간단하게도 [악마의 힘에게서 감정을 보호하고 다스리는 법]이었고 어마어마한 관심과 동시에 악플 역시 폭발하였다. 악플은 대부분 ‘이 틈을 노려서 동영상 조회수나 뽑아 먹으려고 그러는 것이냐’라던가 ‘아무리 그래도 악마를 이용해서 주목을 끄는 건 굉장히 실망스럽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언론 또한 굉장히 좋지 않게 흘러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아직 악마라는 존재에 대해 뭣 하나 밝혀진 게 없는데 난데없이 악마라는 키워드를 끼워넣고서 동영상을 올렸으니 말이다.

수많은 언론의 질타를 받으며, 사흘이 흘렀고.

미국에서 또다시 ‘광기 전이 현상’이 발생.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특이하게 흘러갔다. 현장에 모여있던 대부분의 사람이 광기에 전염되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A급 헌터가 유일하게 전염이 되지 않았던 것. 그는 자신의 초능력인 염력을 훌륭하게 활용하여 일반인들을 모조리 억제하였고, 큰 피해 없이 사건이 무마되었다.

이윽고 인터뷰에서 그가 내뱉은 충격적인 말.

-어나더 리그의 예카테리나가 올린 동영상이 실제로 도움이 되었다.

물론, 상황이 아주 잘 틀어맞은 것이다. 예카테리나가 올린 명상법은 오로지 ‘광기’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이었고 그것조차 굉장히 유약하여 일반인들에게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이 광기 전이 현상 자체의 수준은 굉장히 낮은 탓인지 A랭크 이상의 헌터가 스스로의 영혼을 보호할 줄 알게 되면 전이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해당 인터뷰가 발표되자마자, 어나더 리그는 추가로 하나의 발표를 더 했다.

-우리는 악마의 숙주가 된 자를 찾고 있으며, 그 방법이 거의 완성되었다.

······당연하지만, 이 또한 거짓말이었다.

“솔직히 말할게요. 지금 당장 저희가 가진 혼령술로는 악마를 만나더라도 곧바로 알아채는 게 불가능할 거예요. 의심가는 사람을 둘러싸고서 특별한 주문을 외우면 가능할 수도 있긴 한데······ 전 세계 70억 인구를 상대로 그럴 수는 없잖아요.”

예카테리나가 한숨을 내쉬며 그리 말했고, 나 또한 동의했다. 이제 혼령술을 연구하기 시작한 지 고작 2주도 안 됐다. 광기 전이 현상, 급수로 따지면 C랭크에 불과한 그런 미약한 현상을 간신히 틀어막은 것조차 솔직히 기적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그나마 최고의 천재들만 모여있다는 어나더 리그 소속 마법학자들을 죄다 혼령술 연구로 빼돌려서 이 정도지, 예카테리나 혼자였으면 정말 아무것도 못했을 거라고 했다.

“악마라······.”

그녀는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불안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옛날에, 그러니까 제가 모리안 길드에 붙들려 있을 때 그런 책을 몇 번 본 적 있어요. 악마에 관한 책을요.”

“뭐? 그런 건 백색 마녀의 도서관에도 없는데······.”

악마와 마녀 사이에는 어떠한 특별한 접점이 없을 것이다. 어느 한쪽은 영혼을 다루고, 어느 한쪽은 자연 에너지를 다루니까. 심지어 그들은 마주치더라도 서로에게 피해를 입히는 게 거의 불가능. 아예 관련이 없어야 정상일 텐데······.

“······그건, 마녀가 정상적으로 마법을 다룰 줄 알 때의 이야기일 거예요. 아시다시피, 지구의 마녀들은 그 기원조차 희미해졌고 마법은 허접한 수준에 불과하니까요.”

“그래서, 악마의 힘이라도 붙들 지경이 되었다, 이거야?”

“추측일 뿐이예요.”

하지만, 썩 그럴 듯한 추측이기는 했다.

악마를 불러내기 위해서는 아주 특별한 방법과 매개체를 필요로 하거나, 특별한 경로를 타야만 했는데 그러한 지식이 지구에서는 전무하기 때문. 그런 와중, 악마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마녀들은 꽤 의심스러웠다.

“일단, 악마를 밝혀낼 수 있다고 공식 발표를 한 뒤로는 약간 잠잠해졌어. 그렇다는 건 상대방이 이런 허언에도 넘어갈 정도로 겁쟁이라거나, 혹은 들키기 너무 쉬운 위치에 있어서 사소한 점에도 조심해야만 하는 입장이거나······ 그렇겠지.”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여론을 확인해보니, 예카테리나에게 악플을 달았던 사람들이 도리어 캡쳐를 당해서는 역으로 욕을 먹고 있었다. 그들은 개인 SNS나 동영상에 남겼던 악플을 지우기에 급급하였고, 역으로 어나더 리그의 ‘악마 퇴마술’이 검색 순위에 올랐다.

전부, 거짓이지만.

나는 저것을 진실로 만들 생각이다.

“방법은······ 있으신가요?”

난데없이 지구에 너무 강력한 악마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수많은 세계에서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결국 인간들은 혼령술이든 뭐든 대항할 방법을 찾아내었고, 그것은 밑도 끝도 없는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것을 막아야 한다. 악마가 힘을 키워서, 인간과 완전히 대등한 수준이 되어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아직까지는 힘이 부족하여 그저 감정을 교란시키는 정도밖에는 못하는 수준일 때, 미리 없애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 악마의 기원에 대해 한시라도 빨리 알아봐야 하는······.

그때, 스마트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확인해보니 설중연 누님. 서둘러 전화를 받아보니, 그녀가 대뜸 내게 말했다.

-지금 무림맹으로 올 수 있겠느냐. 만나고 싶다는 사람이 있구나.

*

“오랜만이구나.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어.”

그녀는 백금발의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내게 말했다. 온통 새하얀 색으로 새로 디자인된 무복이 설중연 누님의 발걸음에 따라 살랑였다. 나는 미안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말했다.

“요새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사건이 해결되면, 그때 보아도 늦지는 않을 테니까.”

“네. 그런데 오늘 부르신 이유는······?”

“저자가 너를 보고 싶다더군.”

응접실에는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평범한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아저씨였으며, 나름대로 절정의 고수라고 한다. 그는 평이한 얼굴로 내게 포권을 취했다. 저 무림의 예법은 여전히 썩 어색했지만 나도 따라서 포권을 해주었다.

“하오문(下午門) 장백주라고 합니다.”

자기소개를 듣자마자, 표정이 꿈틀거리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제는 모두가 공평한 세대였기 때문이다.

하오문. 무릇 무협지를 즐겨읽는 사람이라면 흔히 들어봤을 법한 그 이름은 개방과 더불어 무림의 정보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황금에 울고 웃으며 황금에 의해 움직이는 그들은 무림에서도 그다지 이미지가 좋지는 않지만······ 상당히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문파라고 알고있다.

한때 흑시(黑市)를 좌지우지하던 암중세력이었으나, 어느 날부터인가 갑작스레 모습을 감춰서 무림에 많은 의문을 남긴 하오문이 이렇듯 현대의 무림맹에 찾아올 줄은 설중연조차 몰랐다고 한다.

“어나더 리그 유서담이라고 합니다. 자리에 앉으시죠.”

장백주는 하오문 출신이라기에는 순둥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착석하는 것을 확인하고서 맞은편에 앉으니, 내 옆으로 누님이 앉았다.

“······?”

왜 이렇게 딱 달라붙어서 앉느냐고 물어보려다가 누님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자 그냥 아무 말 않았다.

“유서담. 당신은 무림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직접 다녀오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내 바로 옆에 앉은 사람한테서.

“그렇습니까.”

장백주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우리의 세계, 그러니까 무림에서······ 하오문은 한 번 멸문했었습니다.”

“예. 어느 순간 갑작스레 사라져서 많은 의문을 남겼다고 했죠. 대체 어느 무림인 그런 짓을···.”

“무림인이 아닙니다.”

내 말을 끊더니, 장백주가 침음을 흘렸다.

“그건, 도저히 인간의 짓이라고 볼 수 없었습니다.”

무림인들이 현대로 쫓겨나기 이전, 대략 7년 전의 일이라고 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

“처음은 마구간을 관리하던 평범한 마부(馬夫)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말을 내어주던 그가, 갑작스레 스스로 온몸의 관절을 꺾으며 미친듯이 폭소하더군요.”

그건, 아무리 무림인이라도 감당할 수 없는 생소한 공포로 다가왔다.

“직후 근처에서 마부를 말리던 무림인 한 명이 당했습니다. 그 역시 스스로의 관절을 꺾으며 폭소하였고, 그를 제지하기 위해 나섰던 다른 무림인들 역시 전이되었습니다.”

기괴한 감정의 ‘전이’ 현상. 마치, 지금 지구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상과 굉장히 흡사했다.

“끝은 없었습니다. 그저 그 자리에 있는 모두의 관절이 꺾여 죽을 때까지, 계속, 계속, 계속해서 모두에게 ‘그것’이 전이되었습니다. 제가 살아남을 수 있던 건 순전히 운이 좋았을 뿐······. 그날따라 멀리까지 나갈 일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장백주가 돌아왔을 땐, 이미 하오문의 대부분이 광기에 휩싸여 있었다고 한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낄낄거리는 웃음소리, 관절 꺾이는 소리······.

“······지금껏, 숨기고 살았습니다. 아무리 무림맹에서 취급이 좋지 않은 하오문이지만, 이딴 식으로 멸문을 당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기에. 하지만, 사회적으로 ‘감정 전이 현상’이 나타나는 걸 듣고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이건, 무림의 어떠한 존재가 벌인 짓입니다.”

“······.”

즉, 결론적으로.

지금 지구에 나타난 악마는, 지구의 악마가 아니라 무림의 악마라는 의미.

거 참, 특이한 무림이다. 장르를 따지고 보면 퓨전 무협이 아닐까. 악마(서큐버스)도 있고, 이계에서 찾아온 색목인이 판치는 세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게 지금 와서 무슨 의미일까 싶다.

그쪽 세계가 퓨전 무협이든 아니든 우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으니까.

<서담. 어쩌면 잘 된 일일수도 있습니다.>

‘왜?’

<지구의 악마가 아닌 다른 세계의 악마가 확실해졌으니······. 이제 그 차원의 문을 아예 닫아버리면, 악마를 퇴치할 필요 없이 원래의 세계로 돌려보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게 가능해?’

<예. 대신······ 지구와 무림이 연결될만한 ‘원인’을 찾아서 제거해야겠지만요.>

‘······.’

생각해보니 그럴듯했다.

지구는 애초부터 ‘무림’이라는 세계의 차원과 굉장히 헐거운 상태였다. 차원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달마지존이 달랑 검 하나 가지고 자유자재로 왕복할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작금에 이르러서는 아예 차원에 구멍이 난 상태라는 건데······.

‘그 구멍에 들어가서 막기만 한다면, 현 사태가 해결된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녀의 긍정에 머리가 시원해졌다.

악마를 사냥할 방법이 없어서 머리가 복잡해진 참이었는데, 차라리 잘 됐다. 다른 차원을 여행하여 무언가를 제거하는 일은 내게 그 무엇보다도 익숙했으니까.

그렇다면 이제 차원문이 어디에 연결되었느냐가 관건이지만, 그건 문제 없다. 애초부터 차원을 그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감지하는 의뢰인이 내게 있었으니까.

“방법을 찾은 것 같습니다.”

“······정말입니까?”

장백주는 깜짝 놀랐고, 누님 또한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짧게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문득 설중연 누님과 눈을 마주쳤고, 어떤 생각이 들었다.

아예 차원에 구멍이 나있는 것이라면······ 조력자를 데려가도 좋지 않을까?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차원을 이동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경지가 낮은 사람은 구멍을 통한 불안정한 차원이동의 여파를 감당할 수 없겠지만, 그런 걱정이 전혀 들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무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누님.”

“왜 그러느냐.”

이건 굉장히 예민한 문제였다. 설중연 누님은 무림에 그다지 좋은 기억이 남아있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나는 알고있다. 그녀가 가끔, 잃어버린 천마신교를 떠올리며 눈물로 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 말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저랑 같이, 무림에 다녀올 생각이··· 혹시 있습니까?”

내 말에, 누님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 불길한 일에는 항상 전조가 있다(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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