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길한 일에는 항상 전조가 있다(2) >
검은색의 비석을 열어젖히고, 던전의 내부로 들어선 에이번은 눅눅하게 가라앉은 마력의 흐름을 느꼈다. 여느 던전이 그렇듯, 이곳의 환경은 지구와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수준급의 마법사이자 마녀인 그녀였기에 이곳에 적응하는 데에는 별다른 장비가 필요치 않았다.
“······.”
에이번은 숨을 죽이고 던전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기묘한 장소였다. 시야가 닿는 곳은 죄다 거무죽죽한 바위덩어리의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생명을 거부하는 듯 산맥은 죄다 뾰족해서 발 디딜 공간조차 없어 보였다.
뭔가, 이상하다.
그녀 또한 던전을 숱하게 들어가보았기에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던전이 아니다.
그런 직감이 들었다.
저벅, 돌바닥을 밟는 소리. 휘이이, 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소리만이 가득한 적막한 공간에서 에이번은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도착한 장소.
“제단······.”
문명의 흔적은커녕 생명체조차 찾아볼 수 없는 이 공간에서 퍽 이질적이라고 할만큼 거대하고 화려한 신전이었다. 관리가 되지 않은 듯 낡은 신전이었거늘, 화로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 복도를 거닐어, 가장 내부에 위치한 제단에 들어선 에이번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대한 공동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제단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다. 에이번이 표정을 찌푸리는 그때, 갑작스레 사방의 모든 화로에 순차적으로 불이 붙더니,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건······ 거대한 그림자였다. 돔을 연상케 하는 천장을 한가득 드리우는, 거대한 그림자.
형체가 없었음에도, 그것은 이곳에 분명히 존재했다. 에이번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악마가 맞습니까?”
-······.
상대방은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확실하게 고개를 돌려, 텅 비어있는 그림자의 동공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악마의 생김새는, 거대한 해골.
뾰족한 갈비뼈의 사이로 음울한 화롯불의 아지렁이가 피어오른다.
-마녀구나. 내가 모르는 세계의.
“······?”
마녀면 마녀지, 모르는 세계의 마녀는 또 뭐란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그 문장은 그녀의 머릿속에 정신파로 번역되어 속속 새겨졌다.
-이상하군. 마녀는 현명한 줄 알았는데······. 왜 이런 일을 벌인 거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문장투성이였다. 그래서 에이번은 대답하지 않았고, 이내 악마는 이해했다는 듯 웃었다. 그의 웃음을 알아차릴 수 있던 이유는, 그저 그림자가 길게 찢어졌기 때문이다.
-알겠군. 인간의 피가 섞여, 불완전한 마녀가 되었구나. 마력도, 영혼도, 모든 게 형편없어.
“그렇습니까.”
그에게서는 강력한 ‘힘’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 그녀의 기억 속 악마라는 존재는 사이하고 괴이한 힘을 소유하고 있을 터. 에이번은 의문스레 물었다.
“악마여. 당신의 힘을 받고자하여, 이곳에 찾아왔습니다.”
-허··· 마녀가? 악마의 힘을? 네 세계의 마녀라는 족속들은 대체······.
“예. 그런데 지금 당신에게서는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는군요.”
그러자 악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숨을 내뱉었다. 그러나 이내 그는 웃었다.
-당연하지. 우리의 힘은 근본적으로 다르니까.
“그럼······.”
그 순간, 오싹한 감각에 에이번이 고개를 숙였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며, 손발이 덜덜 떨렸다. 갑작스런 오한에 입술을 달싹이는 것조차 힘겨웠고, 눈에서 눈물이 새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건, 정말 단순하게도 ‘공포’라는 감정이었고.
감정이 결여된 마녀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이기도 했다.
‘이게, 무슨······!’
-결함이 많은 마녀로군. 마녀 주제에 인간의 피가 뒤섞여서, 희미하게나마 감정을 품고 있어.
이내, 그림자가 주욱 늘어지더니 에이번의 발밑에 당도했다. 그것은 흡사 웃는 것처럼 보였다.
-마녀를 이렇게 가지고 노는 건 또 새로운 기분이나······. 네 세계는 더 흥미로울 것 같군.
“···허억!”
이내, 악마가 물러서자 에이번은 숨을 크게 토해내며 주저앉았다. 공포라는 감정은 사라졌으나, 그녀의 가슴과 머리에 똑똑히 각인되었다.
‘그렇군, 악마의 힘은··· 감정, 아니 영혼 그 자체를 다스리는 힘······.’
또한, 영혼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 있는 악마의 힘은 그 어떤 물리적인 과학력, 마법, 무공으로 방어해낼 수 없다.
그래. 새로운 기술이다. 여태 지구에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힘! 에이번의 눈빛이 서서히 맑아졌다. 그녀는 이내 고개를 들어 악마를 바라보았다.
“그 힘을, 내게 줄 수 있겠습니까?”
-그래. 얼마든지. ···그 대가로, 네 세계에 ‘문’이 열리게 될 터. 그 의미는 잘 알고 있겠지?
모른다. 하지만 그따위 문제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악마의 영혼을 다루는 저 신비로운 힘을 받는 것뿐.
에이번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그림자가 거센 바람과 함께 응축되더니 에이번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커헉!”
-그래, 좋다. 대신······.
이윽고, 에이번의 몸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더니······ 키가 100m에 달하는 거대한 ‘해골’의 형상이 되었다. 다만 그 뼈는 흰색이 전혀 없이 온통 붉었으며, 이마에는 한 쌍의 거대한 뿔이 자라있었다.
해골의 안면은 마치 주름이 진 것처럼 쭈글쭈글했는데, 그것은 지구 역사상 인간이 가장 많이 상상해왔던 ‘악마의 형상’과 굉장히 흡사했다.
-네가 살던 세계를, 잠시 둘러보도록 하지.
*
남아프리카공화국 행정수도, 프리토리아.
대전쟁 이후 급격히 인구가 불어난 이곳은 장장 300만에 달하는 인구가 살고 있었으며, 사방이 던전과 게이트, 괴수로 득시글한 탓에 길거리 어디를 가도 용병과 헌터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애초에 해발고도 1,400m의 고원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괴수가 많을 수밖에 없는 데다가 32년 전 대전쟁 당시 괴수에게 패배하면서, 이곳은 그야말로 괴수의 왕국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였다.
하지만 덕분에 모여든 용병과 헌터는 프리토리아를 더욱 견고하고 안전하게 지켜주었다. 이곳을 터전으로 삼은 사냥꾼들은 괴수의 침입을 결코 허용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시민들은 생각했다.
‘우리의 도시는 안전하다.’
그것은 꽤 타당했고, 세계 누구라도 이곳에 한 번이라도 와보았다면 으레 할법한 생각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긴급 속보입니다! 남아공의 수도 프리토리아에 랭크 SSS, 아니 그 이상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해골 형태의 괴수가 출현······.
-AAA에서 전해드립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나타난, 코드명 ‘악마’가······.
-예, 오르몬 기자입니다. 현재 이곳은 도시 프리토리아이며, 악마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파견을 나와있는······.
난데없이 도시 한복판에 거대한, 붉은 해골 거인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에게 든 의문.
‘저 괴물은 어디에서 나타났는가?’
도시에 대기하고 있던 용병들과 헌터들이 출동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악마의 콧김 한 번에 용병들이 휩쓸렸고, 건물이 무너졌으며, 발걸음에 지반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 괴물은 인간을 공격하려는 의사는 없어 보였다.
그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흥미롭다는 듯 도시를 둘러보았을 뿐.
-이곳은······ 무공이나 마법의 흔적이 전무하군. 흥미롭구나. 흥미로워. 끌끌끌······.
그렇게 대략 30분가량 도시를 활보하던 거대 괴물은 돌연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렸고.
“뭐, 야······?”
뒤늦게 괴물을 저지하기 위해 긴급 파견된 수많은 헌터들만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파괴된 도시를 둘러보았다.
고작 30분이다. 그 30분 사이에, 도시 하나가 반파되고 말았다.
*
하루 뒤. 남아공 프리토리아.
악마가 발생한 이후로 이곳에는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길드들이 모여있었고, 어나더 리그의 입장에서 나 또한 찾아와 있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 사이에서 어떤 이는 울부짖었고, 어떤 이는 사라진 악마를 향해 분노한다.
32년 전에는 흔히 볼 수 있었지만,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광경에 헌터들은 처참한 표정으로 묵념했다.
“유서담 헌터시군요······!”
폼나는 등장 따위는 필요치도 않았다. 그저 잔해 사이를 비척비척 걸어가자, 악마가 마지막으로 사라진 장소에는 노란색 에너지 결계가 쳐져있었고 헌터들이 관리를 하다가 나를 먼저 발견하고서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만도 하다.
악마는 어째서 등장했으며, 어째서 사라졌고, 어째서 헌터들의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았는가.
그 모든 의문을 해결할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었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차원계’라는 초능력을 가진 나만이 이에 대한 해답을 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또 웃기다. 차원이동이 초능력이라니.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유서담 마스터께서 오시니, 정말 든든하군요.”
“아닙니다. 정체불명의 괴수가 나타났는데, 헌터로서 응당 와야만 하지요.”
심지어 남아공의 정부까지 우르르 몰려와 나한테 악수를 청하는데, 참 부담스러워 죽겠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이 사건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었다. 그저 뻔하디 뻔한, 과학적 수사를 해줄 수밖에는. 나는 두어시간 정도 이곳을 돌아다니며 악마에 대해 알아보았고,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낼 수 있을 법한 정보를 나열해주었다.
“코드명 ‘악마’의 발자국이 점점 얕아지고 있습니다. 중량이 한 걸음마다 줄어들었다는 의미죠. 아마도, 고작 운신하는 것조차도 버거웠을 겁니다. 또, 발자국이 서서히 작아지는 것으로 보아······ 크기도 줄어든 모양인데요. 이번에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서, 당분간은 등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내 추측은 과학적 근거를 댄 추측이었고, 나름의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서 미세한 차이까지 전부 관측해냈다. 그러나 의문이 들었다. 악마는 정말로 에너지가 부족한 탓에 30분 동안 이곳을 맴돌다가 사라졌으나······ 정말로 그럴까?
어쩌면,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이곳에 찾아왔던 게 아닐까?
<그럴수도 있습니다.>
‘···뭐가?’
<악마란 본디 ‘감정’을 통해 힘을 얻는 존재. 악마는 이곳에 아주 짧은 시간 현현(顯現)하였지만, 그 순간 수많은 감정을 얻었지요. 혼란, 공포, 절망, 슬픔. 그것들은 악마에게 아주 큰 힘이 됩니다.>
‘흐음······.’
내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고 있으니, 의뢰인이 말을 이었다.
<거기에, 저 악마는 지구와는 조금 동떨어진 악마로 보이는군요.>
‘뭔 소리야?’
<지구에도 악마는 얼마든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 악마에게서는 지구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처음 와보았단 것이죠. 그런 악마가 30분이나 현현할 정도의 힘을 갖췄을 리가 없습니다.>
‘그럼······ 다른 세계의 악마라고?’
<그렇습니다. 더 정확히는, 다른 세계에 소속된 마계의 악마겠지요.>
그냥 마계도 아니고, 다른 세계의 마계란다.
“뭐가 존나 복잡하네···.”
악마를 상대하는 법에 대해서는······ 사실 지구에서만 많이 낯설 뿐 이계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하물며 아라셀리의 세계만 하더라도 악마의 침공을 받은 데다가 내가 이전에 갔던 마법고에도 악마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지 않던가?
지구도 마찬가지다. 악마 침공에 맞서는 이야기란 진부하다 못해 너무 당연한 전개라는 의미. 비록 지구에는 더 이상 주인공이 없지만 말이다.
<아마도, 악마는 지금도 사회 어딘가에 숨어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
<감정이 가장 활발하기로 유명한 인간들의 사회는, 악마들에게는 식량 창고나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대충 이해됐다. 악마가 인간과 계약을 하느니 뭐 어쩌느니는 내가 읽었던 소설의 대부분에서 나왔던 전개니까.
“그럼 뭐, 악마가 특정 인간에게 빙의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소리지?”
<맞습니다.>
“흐음······. 그걸 어떻게 구분하지?”
<평범한 방법으로는 어렵습니다. 악마의 힘은··· 아시다시피 상대방의 수준이 어떻든 스며들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니까요.>
그 말에 나는 침묵했다. 확실히, 색마 방호윈이 사용했던 무공 ‘색공’에는 이성을 현혹하는 악마의 강력한 힘이 내재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고수는 그에 저항할 수조차 없었으니까. 나도 예외는 아닐 거다.
<하지만, 그것에 저항하는 힘을 일전에 보시지 않았습니까.>
“뭐? 아라셀리의 마법?”
<아니요. ‘혼령술’입니다. 감정이란, 본디 영혼의 깊은 곳에 내재되어있는 신비로운 정신파. 영혼을 더욱 깊게 이해하면 악마에게서 대처하고, 또 상대하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오······?”
또한, 영혼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면 악마에게 빙의된 자를 알아낼 수도 있다고 의뢰인이 말하니 내 머릿속이 번뜩인 건 당연한 일이다.
일전에 나는 세 권이나 되는 혼령술 관련 서적을 가져왔고, 지금은 예카테리나가 보관하고 있을 터. 그것들로 악마에게 대항하며, 이계를 왕복하면서 악마 사냥꾼 출신이었던 아라셀리에게 자문을 구하면,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
“흠흐흥~”
예카테리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서고를 정리했다. 백색 마녀의 서고가 아닌, 실존하는 ‘어나더 리그 사장 예카테리나 전용 서고’였다. 길드가 창설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이곳에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극비 기술이나 기밀 서류가 가득했고, 그중에는 그녀가 취미로 읽는 책들도 있었다.
그리고, 최근 그녀가 가장 아끼는 책은 다름 아닌 ‘혼령술’에 대한 책.
[생명의 원천, 영혼을 이해하라]
[영혼의 정의]
[올바르게 영혼을 다루는 법]
고작 세 권뿐인 책이다. 하지만······ 예카테리나는 그 누구보다도 이 책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영혼, 그 자체를 다루는 힘! 어찌 보면 이건 마법과 무공과는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가치관과 개념을 가진 기술이지 않은가? 게다가 한 권당 천 페이지가 가뿐히 넘어가는 이 책들은 정말이지 불친절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혹자는 지루해서 죽을 것 같다고 말하겠지만, 탐구욕이 강한 예카테리나에게는 딱 알맞은 서술 방식이었다.
왜냐, 지루하면 지루할수록 사족이 전혀 들어가지 않고서 정확히 그 핵심만을 파고들 테니까.
한 글자를 읽을 때마다 온몸이 짜릿했다. 새로운 지식이 머릿속으로 들어온다는 이 감각, 정말 참을 수 없다.
“와아, 으음, 음···.”
상당히 똑똑한 영혼 학자의 연구서였기에 영혼을 아예 모르는 예카테리나로서는 이해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으나, 천천히 그 지식을 곱씹으니 서서히 ‘영혼’의 정의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행복함에 몸부림을 치고 싶었다. 당장 지식을 소유한 것만으로도 좋은데, 만약 이 혼령술을 길드 발전에 접목시킨다면?
‘우리 길드는 더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어!’
그런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기는데, 어떤 기시감이 들었다.
그것은 순전히 마녀로서의 감.
예카테리나가 고개를 황급히 돌리자, 뒤늦게 스마트폰의 긴급재난문자가 도착했다. 서둘러 확인해보니.
“······악마가, 나타났다고?”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철자의 나열.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가 뉴스를 틀자, 남아공에 나타난 거대한 붉은 생명체의 활보가 적나라하게 카메라에 담겨있었다.
“저게 대체······.”
예카테리나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화면을 보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유서담에게 맞춰두었던 전용벨이었다. 서둘러 전화를 받자, 그가 대뜸 말한다.
-예카테리나. 내가 준 책 세 권, 보관하고 있지?
“네, 네. 당연하죠. 방금까지 읽고 있었거든요. 근데, 지금 일이 터져서······”
-아냐. 계속 읽어.
“네?”
그녀가 멍하니 답하자, 유서담이 말을 이었다.
-그게 악마 사냥에 도움이 될 것 같거든.
예카테리나는 바닥에 떨어진 책을 보며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 불길한 일에는 항상 전조가 있다(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