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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58화 (158/251)

< 불길한 일에는 항상 전조가 있다(1) >

철컥, 타앙-!

격발음이 세상 물러가라 쩌렁쩌렁 울려퍼진다.

철컥, 팅.

다시 한번 장전하자, 탄피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호흡을 굳이 고르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다. 재능 [사격 S]는 그러한 일련의 과정마저도 자연스럽게 하도록 도와주었다.

키에에에엑!!

붉은 하늘을 날아가는 거대한 바위 익룡. 조준점의 한가운데에 들어온 그 익룡이 다음에 무슨 행동을 할지, 어떻게 움직일지, 그 행동 패턴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건, 17년을 헌터로 살아왔던 덕분에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로지 사격의 재능, 그것이 대상의 움직임을 완전히 예측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한때는 박탈감도 들었다. 평생을 노력해야만 가능했던 게 재능 하나로도 간단히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이내 수긍했다. 이제, 이 재능은 내 거다.

탕!!

끼에에······.

단 한 발의 총성. 그것으로 A랭크 익룡의 가슴팍이 꿰뚫리며 추락하였다.

쿠웅! 저 멀찍이서 바위 거인을 쓰러뜨린 테일러 나인이 야구 방망이로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다가왔다.

“오, 뭐냐? 저 익룡 새끼 약점 눈깔 아니었어? 너 맨날 눈만 조졌잖아.”

새삼 A랭크의 괴수를 단 한 발의 사격으로 침묵시켰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예전엔 그랬지.”

대부분의 괴수는 약점이 존재했고, 나는 그것들을 ‘경험’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바위 익룡의 눈알은 가장 연약한 부위였고, 그곳을 집중 공략하면 금방 쓰러뜨릴 수 있다. 물론 비행체라 쉽사리 쓰러뜨리고 어려울뿐더러 나처럼 ‘마탄’이라는 특이한 탄환을 쓰지 않는 이상 총으로도 상대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그냥, 뭐. 새로운 약점을 알아낸 것 같다.”

“오올, 그래? 도감에 등록해. 어나더 리그 정보 채널 있잖아. 우리의 아주 대단하시고 위대하신 CEO께서 거기를 가득가득 채우길 원하시던데?”

예카테리나가 그새 또 뭐 이상한 거 만들었나 보다. 정보 채널이라. 확실히 길드원한테만 공유되는, 그리고 길드원끼리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하나 있으면 편리하긴 하겠네. 얘는 유배당해있다가 사회로 나온 지 몇 달 되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그런 걸 생각하는 거지?

“음, 좋긴 한데. 거기에 채울만한 건 아니야.”

그렇다. 지금 내가 익룡의 가슴팍을 맞춰서 일격에 즉사시킬 수 있던 이유는, 순전히 스킬 [영혼을 꿰뚫는 눈] 덕분이었다. 눈에 [신성력 변환]으로 신성력을 집중시킨 뒤 상대방을 바라보면,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영혼의 약점이 보인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도 통용된다. 심장이나 머리뿐만이 아니라 쇄골, 허리, 오른쪽 젖가슴 등등 빠르게 움직이는 어떠한 ‘포인트’는 곧 약점이 되었고 그것을 맞추면 그자는 단 일격에 제압된다.

물론······ 0.3초도 안 되는 빠른 찰나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약점인지라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맞추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전의 나, 그러니까 [사격 C]의 재능이었다면 가능했을까?

글쎄. 솔직히, 모르겠다. 아마도 불가능했겠지.

어찌 되었든 나는 검과 마법을 모두 수련하였으나, 궁극적으로는 총을 버리지 않고 주무기로 계속해서 사용해나갈 생각이었다. ···17년이나 함께해온 무기였으니, 쉽사리 놓는 건 힘들다.

“어쨌든 대충 정리됐으니까 나가자~ 맥주 졸라 땡긴다.”

“그럴까.”

보스 몬스터를 혼자서 때려잡은 테일러는 던전의 출구로 향했다. A+랭크의 던전이었으나, 싱거울 만큼 쉬웠다. 예전에는 이런 데 한 번 들어오려면 최소 몇억치 장비를 온몸에 두르고 왔어야 했는데. 새삼 옛날 생각이 난다.

그러다 문득.

2주일 전의 일이 떠올랐다.

지구가 아닌, ‘이계’에서 만난 신비로운 묘령의 여인. 그러나 과연 그녀에게 ‘묘령’이라는 수식어를 써도 좋을까. 최소 100년에서, 그보다도 더욱 오랜 세월을 살아왔을 것이라 추정되는 그 여인은······.

나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물론, 그녀가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기에 미래의 내가 어디서 무얼 했으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단편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었을 뿐이다.

‘옛날의 당신 또한, 그런 장난스러운 얼굴로, 그러나 때로는 진지하게······ 저를 바라보았지요.’

말레아 교장은 추억을 회상하듯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나는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었다.

어떤 기분일까.

내가 기억하는 상대방이,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서로 같은 시간을 공유했음에도, 상대방과 같은 추억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녀는 오랫동안 추억을 곱씹었다. 고작 30분뿐이었지만, 그녀는 정말로 오래오래, 그 옛날에 있었던 모든 일을 떠올리며, 행복한 표정으로.

‘당신을 만나서, 행복했습니다. 유서담.’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사라졌다.

마치 말레아라는 여인의 존재가 한순간의 꿈이었던 것처럼.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는 의뢰인도 모른다고 말했다. 죽었을 수도 있고, 혹은 영원히 시간의 굴레에서 떠돌 수도 있다고 했다.

“야. 왜케 똥마려운 개새끼같은 표정이야?”

“······.”

고개를 들자 테일러가 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에 나는 웃었다.

“뭘 쪼개냐. 등신같이.”

“그냥. 이러고 있는 게 좋아서.”

“흐음~? 너 요즘 좀 솔직해진 거 같은데? 하긴, 나한테 잘못한 거 있으니까 그래야지.”

내가 뭘 잘못했는데.

그렇게 말하려다가, 이계로 떠나기 전에 했던 기자회견이 떠올랐다.

테일러와 설중연. 나는 두 여인을 밀어내었고, 그건 그녀들에게 크나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여인 모두 신경 쓰지 않는 듯, 여느 때처럼 나를 대해주었다. ···아니, 신경 쓰지 않는 척을 하는 거겠지.

거기에 나는 꽤 고마움을 느꼈다.

“다음에 술이나 한잔 하자고.”

“그랭? 나 싸구려 안 마시는 거 알지?”

“···맨날 맥주나 깔 땐 언제고?”

“얻어먹을 땐 비싸게 받아야지. 너 요새 잘 벌잖아?”

“그거 다 투자비용으로 싹 빠져나가서 없어. 빈털털이야.”

그리 말하며 던전에서 빠져나온다. 던전의 위치는 강원도. 북한과 거의 맞닿아 있어, 던전의 ‘소유권’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소란이 있었지만 결국 한국의 차지가 되었다. 던전에 소유권이라니. 참 살기 좋은 나라다. 지금도 동남아 쪽은 던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난리일 텐데.

주차해두었던 바이크에 올라타자, 테일러가 뒷자리에 탑승하여 내 허리를 꽉 붙잡았다. 나름대로 꽤 비싼 바이크로서 알파벳과 숫자가 굉장히 많이 들어간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여기에 ‘어나더 자가용’이라는 아주 멋진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테일러도 어찌나 감탄했는지 입만 껌뻑거리며 할말을 잃었을 정도이니까.

-마녀야···.

화분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더니, 품에서 빛나는 정령 하나가 빠져나왔다. ‘본체’는 여전히 내가 만들어준 특수 유리관 속 화분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몸체 일부를 떼어내어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자그마한 소녀처럼 생긴 이 아이를 보자 테일러도 귀엽다는 듯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내가 건들면 귀찮다고 툭툭 쳐내는데 여자들이 건들면 좋다고 손가락에 뺨을 비비는 게 퍽 꼴사납다. 저걸 언제 확 정신교육시켜야 되는데.

“갑자기 왜 나왔냐?”

-바람 조아···.

“그러냐.”

화분은 소주를 좋아한다. 그리고, 시원스레 불어오는 바람을 좋아한다. 바이크를 타고 질주하면 그 스피드감이 장난 아닌데, 바람이 얼굴을 강타하여 일반인은 눈을 뜨는 게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럼, 돌아가자.”

*

유서담은 이계에서 열흘을 보낸 이후, 복귀하자마자 꽤 바쁘게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다. 예카테리나는 몸이 한 개였고, 수많은 기업과 길드를 모두 만나기에는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유서담은 테일러와 함께 각국을 돌아다니며, 새삼 어나더 리그가 얼마나 커다란 존재가 되었는지 체감했다.

“케이지 인더스트리의 마공학 기술개발부서 팀장 ‘알’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유서담이 고개를 숙이는 입장이었고, 두 번째는 동등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세 번째 만남에서, 이제는 그들이 유서담에게 고개를 숙였다.

케이지 인더스크리는 헌터의 무기를 생산하는 이현상 방위 산업체로서, 세계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명품의 에테르 무기를 제조하는 회사였는데 당연히 이 거물이 ‘에센스(마력)’ 관련 신무기 개발에 참여하지 않을 리는 없었다.

러시아 측에서도 마공학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혈안을 올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같은 마법이라고 비교하기조차 무안할 정도로 어나더 리그의 마법 기술력이 훨씬 더 뛰어났다.

그런 이유로 수많은 세계급 기업이 어나더 리그에게 손을 뻗었고, 예카테리나는 자신의 입맛에 맞춰 그 손을 붙잡기만 하면 되었다.

케이지 인더스트리는 그나마 예카테리나의 도움 없이, 유서담이 길드를 세운 초창기 때부터 투자를 해주었던 산업체였기에 지금까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번에, 예카테리나 사장님께서 개발하고 계시는 ‘3등급 자동-증강 마력 보호막’의 설계도입니다. 도시 내에 괴수가 출몰하더라도 해당 좌표에 배리어를 설치하여 시민과 괴수를 격리, 보호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출력 저장고의 개발이 덜 돼서 B등급 이상의 괴수는 조금 힘들 것 같군요. 이에 대한 조언을······.”

“아, 예. 아, 그렇군요.”

솔직히 무슨 소린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여기에는 백색 마녀의 도서관이 도움을 줄 수도 없었고, 화분은 순수하게 암기한 마법만을 활용할 줄 알았기에 더욱 식은땀이 흘렀다.

세간에는 유서담이 예카테리나와 맞먹는 대마법사(어쨌든 지구에서 가장 수준이 높으니까)라고 알려져 있었기에, 기술자들이 그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와, 진짜 뭔 소리래······.’

예카테리나 역시 유서담을 일종의 마법 스승으로 여기고 있기에 그를 신뢰하고 보낸 것이겠지만, 그런 신뢰가 상당히 부담스러울 따름이다.

옆을 슬쩍 돌아보니, 테일러가 다리를 꼰 채 따분한 얼굴로 하품을 하고 있었다. 표정을 대충 해석해보자면 ‘아 빨리 끝내고 던전이나 가고 싶다······.’가 아닐까. 요새 세계를 돌아다니며, 유서담과 함께 던전 데이트(?)를 줄곧 즐기고 있었으니까.

케이지 인더스트리 기술개발팀의 몇몇 직원들이 그런 테일러를 힐끗 쳐다보았다. 트렌디한 20대의 화려한 패션에 어디에서나 톡 튀는 외모를 가진 그녀는 사뭇 남자들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고민하던 유서담은, 이내 상황에 적절한 해답을 내놓았다.

“어나더 리그 마도개발팀에 제가 따로 문의를 넣겠습니다.”

그것은 그저 변명이었다. ‘나는 할 줄 모르니, 아무튼 부하들한테 떠넘기겠다!’라는 생각으로 한 변명.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이 조금 특이했다.

“아아···! 감사합니다!”

팀장 알은 무슨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감사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겠는가? 유서담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는 기어이 양손으로 양손을 청하며 감사 의사를 표했고, 결국 나중에 예카테리나를 통해서 이유를 들어보니.

-저희 마도개발팀의 지식을 빌리고 싶은 사람이 굉장히 많거든요.

극소수의, 그러니까 예카테리나의 선택을 받은 학자들로 구성된 팀 ‘마도개발팀’. 사회의 모든 지위와 명예를 포기하고 어니더 리그의 ‘마탑’으로 들어온 그들은 어마어마한 성장세로 마도과학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실질적인 마법사로서의 능력은 ‘마력’의 부재 때문에 부실하기 그지없었으니, 지식은 벌써 어지간한 마법 대학 교수를 할 수 있을 정도라고.

‘와, 그 정도면 나는 쨉도 안 되겠네······.’

예카테리나는 이어서 말했다.

-하긴. 고작 그 정도에 서담님이 직접 머리를 굴리는 것도 이상하겠죠. 마도개발팀에 지원을 하겠다고 해주신 것만으로도 엄청난 은혜예요.

“아니, 뭐, 사실 그런 게 아니라······.”

-서담님은 더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시잖아요.

“어, 어어···. 그렇긴 한데.”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할 줄 몰라서 떠넘긴 건데.

-아무튼, 마력 배터리라···. 그건 개발해두면 두고두고 쓰이긴 하겠네요. 현명한 판단 하셨어요. 개발에 착수할 테니, 염려치 마세요.

“······그래.”

뚝. 통화가 끊긴 뒤, 서담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간만에 일하니까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야.”

“그러냐.”

모두가 돌아간 뒤, 테일러 나인은 커피를 빨대로 쪽쪽 빨며 핸드폰 게임을 하며 고개를 슬쩍 돌렸다.

“힘드냐?”

“아니, 뭐, 힘든 건 아닌데······.”

“근데 왜 그렇게 길드에 집착하는 거냐? 로스트 데이 이겨 먹으려고?”

“음······ 그런 것도 조금 있긴 있었지.”

하지만 애당초의 목적은 결국 하나였고, 이제 그에 대한 고민을 그녀에게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야기를 꺼내려는 순간.

웅웅, 위이잉!

핸드폰 진동이 울려퍼졌다. 긴급재난문자였다. 그러나, 서담과 테일러 나인의 핸드폰을 제외한 주변의 그 누구의 핸드폰도 울리지 않았다.

[긴급재난문자: 남아프리카 공화국, 프리토리아에 추정등급 SS랭크 정체불명의 괴수 출현! 여태까지와는 다른 독특한···(후략)]

현재 그들의 위치는 런던이다. 남아공에서 발생한 재난 문자가 여기까지 올 이유는 없다. 그러나 굳이 이렇게 S랭크 이상의 헌터에게만 따로 문자가 왔다면, 그 이유는 하나였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어쩌면 세계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의미.

[긴급재난문자: ···하여, 해당 생명체의 코드명을 ‘악마’라 명명하겠다.]

“뭐? 악마라고···?”

재난문자와 함께 전송된 사진 속에는, 정말로 괴수도 아니고 다른 무엇도 아닌, 선명하리만치 악마의 형상이 또렷하게 드러나 있었다.

*

아프리카 대륙 남서부, 칼라하리 사막.

면적 90만 제곱킬로미터로서, 세계에서 가장 큰 사막이라 하면 반드시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거대한 사막.

32년 전 게이트에서 괴수가 튀어나온 이후로, 사실상 인구 밀도가 적었던 사막은 대부분 괴수의 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막, 남·북극, 산맥 등 괴수에게 점거된 땅은 대부분이 복구되지 못했으며, 작금에 이르러서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헌터들만이 득시글할 뿐이었으니 러시아 모리안 길드의 에이번이 사막을 횡단하고 있는 모습은 퍽 어색하다고 볼 수 있었다.

“하아···하···.”

한때, 그녀는 지구 최초이자 최고의 마법사가 될 예정이었다. 길드 내에 적지 않은 숫자의 마녀를 보유하고 있으며, 자신은 그러한 마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존재였고, 심지어 ‘예언가’마저도 데리고 있지 않았던가.

마법사가 만들어낸 부적은 전 세계에 극비리로 비싼값에 거래되면서 모리안 길드의 힘은 점점 더 강해졌고, 러시아 정부를 향한 입김은 더욱 거칠어졌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게 끝이었다.

세계는 더 이상 모리안 길드를 어나더 리그의 라이벌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어나더 리그뿐이랴, 그곳에서 수업받은 몇몇 마법사가 차라리 모리안의 에이번보다 낫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치욕스러운 일이었으나, 사실이었다.

그래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나더 리그에게 타격을 주려고 했다. 여전히 모리안 길드는 러시아라는 대국과 수많은 거대 길드를 등에 업고 있었으니까.

정치적, 법적인 방법을 압도적인 금전으로 총동원하여 권모술수(權謀術數)를 펼쳤으며, 온갖 협잡질에 더럽고 치졸한 언론 날조를 통한 중상모략(中傷謀略)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흑색선전(黑色宣傳)을 펼쳤으나.

소용이 없었다.

예언가, 예카테리나.

그녀는 괴물이었다.

에이번은 인정해야만 했다. 자신은 지략으로도, 마법으로도, 그 어떤 무엇으로도 예카테리나를 이길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데. 여태, 마녀로서 세상에 숨어 사느라, 얼마나 괴로웠는데. 마침내, 세상에 나왔는데.

그 모든 가치를, 빼앗긴다고?

뿌득, 에이번의 매마른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내리쬐는 뙤약볕보다도 언제 어디서 습격해올지 모르는 괴수 ‘모래 지옥’의 존재가 더욱 고달프고, 부족한 수분보다도 근처의 모든 수분을 강탈해가는 ‘레인 스캐빈저’의 존재가 더욱 괴로웠으나.

참고, 또 참았다.

그렇게 마침내.

“······찾았다.”

에이번은 어느 ‘기형던전’의 앞에 선 채로, 깊은 숨을 내뱉었다.

주홍빛으로 가득한 사막 위에 이질감이 들 정도로 꼿꼿하게 서 있는 저 검은색의 거대한 비석은 던전의 입구이나, 평범한 방법으로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아주 특별한 마법을 익힌 자가 오지 않는 이상은.

그러나 에이번은 확신했다. 자신이라면, 이 던전을 열 수 있다. 단지 여태 그러지 않았을 뿐이다. 감정을 잃은 그녀였지만, ‘해서는 안 되는 일’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기에.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당장, 자신에게 저 힘이 필요한데.

에이번이 검은색 비석에 손을 가져다 대자, 스산한 검은색의 기운이 뿜어나왔다.

그녀는 마녀다. 마녀로 태어나, 마녀로 살아왔다. 또한 마녀는 역사 속에서 항상 존재해왔으며, 단지 세상이 알지 못했을 뿐 마녀는 어느 세상에서든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마녀와 마찬가지로 어느 세계에나 반드시 존재하는 것들이 있었으니.

‘악마.’

구전으로든, 전승으로든.

그 어떤 세계라도, 반드시 악마의 존재는 역사에 남아있다. 왜 그런 걸까? 수많은 세상을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상상해낼 수 있는 악(惡)의 화신이 악마밖에 없어서 그런 걸까?

아니, 아니다.

모든 세계에 인간이 존재하듯.

악마 또한 인간이 존재한다면, 그곳에 반드시 있다.

에이번은 그러한 사실을 잘 알았고, 마녀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 그 존재를 찾아내려 하였다.

덜컹, 쿠우웅······!!

이윽고 검은색의 비석이 마치 문처럼 기울어지자, 내부로 통하는 공간이 연결되었다. 에이번은 그곳으로 발을 내딛었다.

악마를 향하여.

< 불길한 일에는 항상 전조가 있다(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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