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57화 (157/251)

< 영혼 분리(2) >

햇살이 창창한 나른한 오후.

오늘도 청연 사립 마법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수업에 열중할 것이며, 선생 및 교수들 또한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열연할 것이다. 그러한 와중에, 교장 말레아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쓸쓸하게 창밖을 내다보았다.

똑똑-!

누군가가 노크를 하자, 말레아는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사락, 그녀의 얼굴을 감싼 한 겹의 천조각이 간신히 얼굴을 가려주었다.

“들어오세요.”

덜컥, 문이 열리며 교수 한 명이 들어왔다. 그는 교장 앞에 서는 것이 어쩐지 불안했는지 쩔쩔매는 눈치였다. 누군지는 모른다. 이미 속세에서 손을 뗀 지도 오래였기에. 그저, 그녀는 이 학교를 유지하며 마법을 더욱 발전시키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일에 열중하였을 뿐이다.

“그게······. 유서담 학생이 교장님을 꼭 만나 뵙고 싶다고······.”

평범한 학생의 말이라면 결코 여기까지 전달되지 않았겠지. 그러나, 유서담의 말에는 어째서인지 힘이 있었고 다른 선생이나 학생들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지요. 저는 갈 수 없다고 전해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교수가 돌아간 뒤, 말레아는 씁쓸한 듯 입술을 만졌다.

사아아······. 손가락이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억지로, 억지로, 수명을 늘려온 대가였다. 오로지 단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녀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문득, 옛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말레아라는 철없는 소녀 마법사가 ‘튜토리얼’이라는 곳에 끌려갔을 적의 일이었다.

‘오빠 믿지?’

그때 내가 어떻게 대답했더라. 그 기억을 떠올리자, 말레아는 저도 모르게 풋,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뇨?’

‘···이 꼬맹이가? 하여튼, 이 오빠만 따라오면 된다 이거야.’

‘저 모르는 사람한테 오빠라고 안 부르는데요. 아저씨.’

‘야 이게 진짜 죽을라고.’

대부분은 시답잖은 대화였다. 당시의 자신은, 그와의 시간을 별로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고기 한 점을 서로 먹기 위해 젓가락으로 칼싸움을 하질 않나, 더 평평한 곳에서 잠을 청하기 위해 서로를 밀어내질 않나, 사탕 하나에 목숨을 걸고 말싸움을 하질 않나······.

그러나.

지나고 보니.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아마도, 지금의 유서담은 아직 겪지 않았을 일. ‘튜토리얼’이라는 것에 대해 전혀 모르는 시절의 유서담. 그는, 자신과 추억을 공유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타임 패러독스’ 때문이었다.

욱씬!!

그에게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느냐고. 그때, 행복하지 않았었느냐고. 하지만 그런 말을 전달하려고 할 때마다 자꾸만 가슴이 쑤셔왔다. 마치 이 ‘세상’이 그것을 거부하려는 것처럼.

“······.”

그래서, 혼자 추억을 곱씹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 아니야. 오른쪽으로 가랬어.’

‘왜요? 왼쪽 길이 더 예쁜데요?’

‘오른쪽이 맞거든? 네가 그랬다고!’

‘에엥? 제가 언제요?’

뭐든지 다 알고 있었던 신비로운 남자. 그는 항상 어떤 일지를 들고 다녔지만,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 결코 설명해주지 않았다. 줄곧, 궁금했다. 그는 어째서 모든 걸 다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 왜 하필이면, 그곳에서 가장 덜떨어진 소녀였던 자신을 동료로 택했을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머리가 환해졌다.

그렇구나.

우리는 미래와 과거를 서로 겹치며, 그렇게 만나게 되었던 것이구나.

마지막 날.

나는 그렇게 물었을 것이다.

아마도, 울면서.

‘···아저씨. 우리 다시 만날 수 있겠죠?’

그는 울지 않았다. 웃으며, 그러나 어째서인지 너무나도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응. 만날 수 있어.’

그 말을 믿었다. 그래서 여태, 억지로 살아남았다.

사아아······! 이제는 손목이 아예 사라지고 없다. 발목을 확인해보니, 예상대로 휑하다. 얼굴이 사라진 이후로, 벌써 몇 년째. 그녀는 유서담을 마지막으로 만나기 위해 버티고 또 버텼으나, 이제는 한계였다.

‘······결국, 이렇게 만났는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가게 되는군.’

그와의 추억을 공유하는 순간,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다. 타임 패러독스는 그토록이나 강력했으므로. 하지만, 괜찮다. 말레아라는 ‘존재’를 대가로, 그에게 일지를 넘겨주었으니까.

아마도 미래의······ 그러니까, 과거의 ‘소녀 말레아’는 유서담과 함께 또다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굴레.

나는, 영원히 행복할 수 있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말레아는 눈을 감았고, 행복했던 그날을 곱씹으며 잠들었다.

······그러려고 했다.

-아, 잠깐! 잠깐 기다려 학생···크허억!

-아오, 좀 비키라고.

-교수님. 죄다 치워버릴까요?

-어. 천장에다 꽂아버려.

파바박! 뭔가 건물이 뒤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복도가 고요해졌다. 그러더니 교장실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유서담.”

“어. 난데요.”

반말과 존대가 섞인 기이한 말투. 그는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문득 웃음이 새어나왔다. 유서담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표정을 찡그렸으나 당당하게 가까이 다가와 쇼파에 걸터앉···으려다 말고 자신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면사포에 손을 뻗는다.

사라진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막으려면 막을 수 있었으나······. 굳이 그러지 않았고, 유서담은 말레아의 얼굴을 보고서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당신, 뭔, 이거······.”

<···억지로 개연성을 이겨내려 한 대가입니다. 존재 자체가 소멸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대단하군요······.>

“미친, 대단이고 뭐고 어떻게 좀 해봐.”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듯, 유서담이 무어라 중얼거리며 말레아의 뺨을 쓰다듬었다.

‘···아?’

그러자, 놀랍게도.

얼굴의 감각이 돌아왔다.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서 얼굴을 만지려던 말레아는 문득 자신의 손이 다시 자라났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손끝에 ‘얼굴’이 느껴진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얼굴이, 그리고 자신의 존재가.

돌아왔다.

“······일시적인 겁니다. 당신은 너무, 오래 살았어.”

“그···렇군요.”

여전히 신비로운 사내였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일까. 당신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겠지.

“남은 시간은··· 아마 30분도 안 될 겁니다.”

유서담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여전히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살짝, 서글퍼졌으나, 상관없었다.

30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자신의 생(生)이 30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면, 누군가는 불행하다고 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 말레아는 더없는 행복함을 느꼈다.

그도 그럴게.

한여름 밤의 꿈처럼 이루어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달콤한 꿈을 꾸며,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건······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행복한 ‘마지막’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말레아는 웃었다. 이 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단 1분 1초라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그를 마주 보았다.

그녀는 마지막에, 그렇게 웃었다.

*

지구, 정령의 공중정원.

어나더 리그 길드 아지트.

중앙 백색 탑 73층, 예카테리나의 사무실.

···예카테리나의 내면, 백색 마녀의 도서관 B구역에서.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책을 뒤적였다.

마법서, 마법서, 마법서!

이곳만큼 편안하고 행복한 공간은 없다. 자동으로 연주하는 피아노의 리듬에 맞춰 예카테리나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유서담이 자리를 비운 지 열흘째. 체내에 남은 활력은 여유로웠기에 전혀 피로하지 않았다.

“오늘은······ 이걸 읽어볼까.”

마법은 이제 예카테리나에게 기실 ‘모든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여타의 학문이 그렇듯 모든 학문이란 결국 발전의 한계가 있기 마련. 그럴 때마다 수많은 학자들은 절망하여 무릎을 꿇게 되지만, 예카테리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곳에는 궁극까지 발전한 마법의 총아가 잠들어 있기 때문. ······비록 일반인의 두뇌로 이것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여 예카테리나는 ‘인간 전용 마법’을 따로 집필해야만 했다. 마녀의 마법은 부작용으로 정신이 돌아버릴 수도 있다나 뭐라나.

“으음···.”

사념으로 만들어낸 흔들의자에 앉아, 세상 그 누구보다도 편안한 ‘여가’를 즐기는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요 며칠 바쁘게 시간을 보낸 뒤였기에 이 정도의 휴식은 취할 수 있다.

······굳이 공부로 휴식을 취한다는 사실 자체를 유서담은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지만.

그녀는 그 뒤로도 한참이나 다리를 까딱이며 책을 읽었다. 어렸을 때 원체 못 먹고 자란 지라 키가 작아서 다리가 간혹 바닥에 닿지 않을 때도 있었으나, 그건 사념으로 의자를 낮추면 해결 된다.

그래도 최근에는 잘 먹고 지내서(예사혜가 억지로 먹인다) 키가 조금은 큰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피부도 포동포동해졌고.

짧은 시간 내에 열 권이라는 마법서를 주파해낸 뒤, 열한 번째 마법서를 집어드는 순간.

‘······!’

번뜩, 그녀의 가슴에 따스한 무언가가 내리꽂혔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자신의 영혼을 가져가버린 사내가 ‘이 세계’로 다시 돌아왔음을 알리는 감각이었으니까. 순식간에 얼굴이 환해진 예카테리나는 즉시 도서관에서 빠져나가, 눈을 떴다. 현실로 돌아오자 잠깐의 현기증이 일어났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그리고 사무실의 문을 벌컥 열고 뛰어나가려는데, 그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오랜만이네.”

“아··· 서담님!”

그는 급히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하던 도중이었는지, 잠깐 화면을 쳐다보다가 이내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녀도 서담이 무엇을 했는지는 안다. 아마 파견 복귀를 알리며, 주변인들에게 문자를 넣었을 것이다.

“들어가자. 해줄 얘기가 있어.”

“그런가요?”

해줄 이야기라니. 돌아오자마자 무슨 일인가 싶기도 했지만, 예카테리나는 사무실의 값비싼 커피를 가져와 앉았다. 유서담은 테이블 위에 책 세 권을 꺼내놓았다.

“예카테리나. 네 영혼, 내가 가지고 있잖아.”

“아, 네···. 그렇죠.”

“···혹시 그 부작용에 대해, 요새 느끼는 거 있어?”

그러자 예카테리나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졌다.

알다마다. 자꾸만 유서담의 감정이 자신에게 전달되며, 동화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은 자꾸만 유서담에게 빠져나간다. 그 빈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으니, 아마 머지않아서 ‘예카테리나’라는 존재는 완전히 유서담의 일부가 되어버릴 터. 과연 그때도 예카테리나의 자아가 남아있을까.

“나는, 네게 완전한 자유를 주고 싶어.”

“······네?”

“이 책. 이계에서 가져온 ‘영혼’과 관련된 논문이야. 대괴담까지 맨손으로 때려잡은 아주 위대한 사람이 집필한 거라서 엄청 귀해.”

지구에는 없는 학문. 그에 예카테리나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반짝이려는 순간, 유서담이 말했다.

“이걸로, 우리 영혼을 다시 분리하자.”

우뚝, 책을 향해 뻗어가던 그녀의 손이 멈췄다. 유서담은 그 반응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는지 미소를 띄웠다.

“네 사생활을 완전히 보장해주고 싶거든. 아, 백색 마녀의 도서관은 걱정하지마. 네 도움 없이 다음 서고를 여는 건 힘들겠지만······ 어쨌든 그 안에서 네가 보고 싶은 책은 얼마든지 내가 사본을 만들어서 꺼내-”

“싫어요.”

“···올 수···어?”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기쁜 마음에, 그러나 그것을 숨기기 위해 얼굴을 감추었다고 생각했으나 예카테리나는 차갑게 정색하고 있었다.

“아니, 왜, 그, 너한테도 손해는 아닌······.”

“저한테 손해가 왜 없어요?”

유서담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영혼을 돌려준다는데, 어째서 그걸 거절한단 말인가?

이유를 물었으나.

“······그냥, 싫어요.”

그러면서 대답해주지를 않았다.

예카테리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서 한손으로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는, 아마 평생 모를 것이다. 자신의 영혼이 가장 소중한 사람과 연결되어 있어, 언제나 그가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는 그 신비로운 감각을 말이다.

그녀는 그것을, 아니 유서담과 연결되어있다는 이 감각을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끊어내고, 싶지 않았다. 백색 마녀의 도서관? 그딴 거 필요없다. 없어도 된다. 그냥, 연결되어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그러나 그러한 부분을 예카테리나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많은 감정이 담긴 눈동자로, 여전히 당황하고 있는 유서담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바보같은 남자였다.

예카테리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서 책을 향해 손을 뻗었다. 차라락, 페이지가 넘어가며 대략적인 내용이 그녀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글자를 훑는 능력쯤이야 마법사로서 기본 소양이다.

“···좋은 내용이 많이 담겨있네요.”

“그···렇긴 하지?”

“네. 영혼에 대해, 아주 자세히 적혀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책을 턱! 소리가 나게 내려놓으며 방금의 말을 반복했다.

“아주, 자세히 적혀있어요.”

“······?”

“자세히 적혀있다구요. 모르시겠어요? 여기에는 굳이 영혼을 굳이 분리하지 않아도, 현재 저희에게 일어나는 ‘동화’ 현상을 저지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방법이 있어요.”

“어···!”

그건, 몰랐다. 여태 영혼을 분리하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했기에. 예카테리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잘 구해오셨어요. 이 책을 통해, 찾아보면 되겠네요. 지금 저희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할 방법과, 또 해결할 방법을.”

결국, 유서담은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그녀의 결정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상대방이 싫다는데 억지로 진행하는 성격도 아니었으므로.

그렇게 세 권의 책은 예카테리나의 품에 갈무리되었고, 유서담은 전혀 몰랐다.

마녀이자 천재 마법사인 그녀에게, 이 단 세 권뿐인 ‘혼령술’ 논문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해서.

< 영혼 분리(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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