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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56화 (156/251)

< 영혼 분리(1) >

마법 학교에서 머문 시간, 육 개월.

나는 그동안 아라셀리와 함께 괴담을 사냥하고 다녔다.

시간은 별로 문제 될 게 없었다. 이 세계는 지구에 비해 시간 배율이 21배속이었으므로, 반년을 머물러봐야 현실에서 열흘 남짓이었으니까.

괴담을 사냥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로는, 아라셀리가 가진 아주 특별한 능력이었다. 그녀는 놀랍게도 영력도 없었고 성불하는 법을 전혀 알지 못했음에도 마법으로 귀신을 성불하였는데, 7써클 이상의 수준을 달성하면서부터 귀신에 대해 연구하다보니 가능했던 일이란다.

나 또한, 이번 주인공을 사냥하면서 얻은 스킬 덕분에 일이 수월했다.

[150레벨의 주인공을 사낭하였습니다.]

[수명이 1500일 지급됩니다.]

[당신의 수명: 5093일 6시간 49분]

[레벨이 4단계 상승합니다.]

[스킬 ‘영혼을 꿰뚫는 눈(C)’을 획득하였습니다.]

<유서담>

[도합 레벨: 161]

*능력치

[근력 157] [체력 173] [민첩 159]

[기력 1] [마력 265]

*재능

[검술 S] [사냥 D+] [사격 S]

[요리 D-] [직감 A] [기민 A]

[통찰 B] [원기 SS+][기타···.]

*스킬

[주인공 사냥꾼 Lv. 4]

[백색검법(S)] [육감(B)]

[인벤토리(S)] [달마풍천신법(SS+)]

[정신 집중(SS)] [신성력 변환(F)]

[아라-선영 식 마나 써클링(SS+)]

[백색 마녀의 도서관(C)]

[영혼을 꿰뚫는 눈(C)]

영혼은 꿰뚫는 눈이란, 이름 그 자체 그대로의 성능이었다.

일전에 나는 열세 번째 계단 귀신을 상대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신성력을 두른 검으로 귀신을 아무리 패고, 또 패도 죽일 수는 없었다. 인간과는 달리 귀신은 출혈도 일어나지 않으며 머리와 심장이 약점인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안’ 덕분에 이제는 귀신의 약점이 보였다. 어디를 신성력으로 찌르면 죽일 수 있는지. 어디를 베어내면 귀신이 고통스러워하는지.

그런 이유로, 사실 괴담 사냥에는 마땅히 일기장이 필요치는 않았다.

아라셀리는 영안도 없고 일기장도 없고 영력도 없으면서 마법 하나로 귀신을 모조리 예쁘게 성불시켰으며, 나는 귀신을 검으로 쥐어패고 다녔으니까.

물론 아라셀리의 턱없이 부족한 마력량과 얼마 안 되는 내 신성력은 언제나 괴담 사냥을 힘겹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라셀리와 나는 꽤 즐겁게 귀신을 사냥했던 것 같다.

오전, 오후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하며 마주치고.

저녁에는 남들 몰래 은밀하게 모여서 괴담을 사냥한다.

힘들지만 서로의 의견을 모아 방법을 궁리하고, 위기를 헤쳐나가는 것.

그건, 전직 ‘사냥꾼’으로서 너무나도 즐겁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교장 말레아는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우리는 그녀의 거처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평소에는 왜 출근을 안하는 지도 자세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말레아’라는 인물에 대해 조사 해보았고, 꽤 좋은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심령 현상에 관하여]

[맑고 깨끗한 영혼이란]

[영혼을 대하는 방법]

말레아는 마법 학교의 교장이자, 이 세계관에서는 극히 드문 ‘영혼 술사’였다. 영혼 술사가 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방금 막 지어낸 말이다. 영혼을 다루는 사람은 만나본 적도 없다.

그런 탓인지, 말레아 교장의 영혼과 관련된 논문은 인기가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이런 책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듯하다. 물론 나에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애초부터 내가 이 세계에 왔던 이유도 ‘영혼 분리’에 대해 알아보기 위함이었으니까.

첫 번째 세계에서 곧바로 모든 일이 해결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는데, 운이 좋다고 해야될까. 나는 딱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영혼을 분리하는 방법]

해당 방법은 약간의 영력(신성력)과 영혼을 다룰 수 있는 능력(영안)이 있어야만 했다. 나는, 그 조건을 모두 충족했다. 즉, 이제 예카테리나의 영혼을 나에게서 분리하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물론 상당히 어렵고 복잡한 방법이 필요했다. 실패할 확률도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내 영혼이 손상될 위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예카테리나의 자유를 보장해주고 싶었으니까.

“와, 교수님. 이런 책도 있네요.”

아라셀리는 콧노래를 부르며 아무도 없는 적막한 도서관을 총총 뛰어다녔다. 말레아라는 여자에 대해서는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신기한 것들이 많이 튀어나왔기에.

[튜토리얼의 거탑에서 살아남기]

······뭔가, 내가 어렸을 때 자주 읽었던 살아남기 시리즈와 제목이 살짝 겹치는 거 같은데.

“튜토리얼의 거탑이 대체 뭐야?”

“제가 조금 알아봤는데, 이 세계에는 어떤 ‘거탑’이 솟아났대요. 어느 순간 그냥 갑자기 나타나서는 ‘도전자’를 모집하는데······ 그 안에 들어가면 이 세계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다른 세계의 사람까지 있다나봐요.”

“그래? 되게 신기하네.”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하나의 공간에 모인다. 썩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교장 말레아는 그곳의 생환자. 튜토리얼의 거탑에서 살아남은 자에게는 어마어마한 능력과 보상이 주어졌다고 하네요. 기록에 따르면 한 명, 한 명이 모두 말도 안 되는 힘을 지니고 있어서 한때 이 세계의 균형이 흔들렸다는데······.”

아라셀리가 표정을 찌푸렸다.

“말레아 교장이 생환자들을 모조리 숙청. 말썽을 피우지 않은 거탑 생환자는 좋게좋게 대화를 통해 따로 살아갈 곳을 만들어서 조용히 지내도록 했대요.”

“······결단력이 대단하시군. 그리고 그걸 시행할만한 힘이 있는 것도 대단하고.”

“그렇죠?”

아무튼, 튜토리얼의 거탑에 대해서는 알아보았다.

그럼 마지막 문제. 어째서 만나본 적도 없는 말레아 교장이 나를 알고 있는가?

<그건······ 아무래도 시간선이 살짝 어긋난 듯싶습니다.>

‘어떻게?’

<유서담 헌터. 당신은 알다시피 ‘시간 배율’을 조정하여 세계를 여행합니다. 아마도 거탑의 시간 배율과 이 세계의 시간 배율에는 큰 차이가 날 것이고, 그것을 지구를 중심으로 조작하여 움직이다 보면······ 과거와 미래가 섞이게 되는 것이죠.>

‘뭐야 그럼. 내가 미래에 튜토리얼의 거탑에 가게 된다고?’

<아마 그럴 것입니다.>

‘······.’

의문점은 많았다. 여전히 납득하기 힘든 설명이었으나, 시간과 차원에 대해 애초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더 이상 무언가를 묻는 것도 불가능.

[튜토리얼 생존 일지]

말레아 교장의 일기장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나는 때를 기다려야만 했다. 이 일기장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시간은 어차피 직선의 구조가 아니라고 했다. 나선형으로 빙글빙글 타고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 위아래로 통하는 터널이 뻥 뚫려 과거 혹은 미래로 엘리베이터처럼 이동하는 게 가능하다고 했으니까.

그만큼 이 세계에서의 시간 여행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지간해서는 어려울 뿐.

“괜찮으세요? 근심이 많아 보이시네요.”

“아냐. 괜찮아.”

나는 아라셀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어려 보이는 그녀였지만, 실상 정신적인 면에서는 나와 비슷할 것이며 또한 내가 겪지 못했던 온갖 기상천외한 일들을 경험해왔으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반년간, 나는 괴담을 사냥하며 아라셀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특히, ‘헬 게이트’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해주었다. 내 머릿속 기억을 마법으로 아라셀리에게 전달해주며 말했을 정도이니까.

그때 아라셀리가 대답해주었던 말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건 아마도 차원의 가장 끄트머리에 위치한······ 찌꺼기가 아닐까요?’

‘찌꺼기라고?’

‘네. 중심에 소속되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이 세상에 소속되고 싶어 안간힘을 쓰는··· 그런 찌꺼기요.’

‘······.’

그녀의 의견은 그랬다.

이 세상에는 지구, 비비안타를 포함하여 수많은 차원이 존재하고 그 차원들은 모두 하나의 묶음으로 묶여있다는 것이다. 별이 모여 은하가 되는 것처럼, 차원이 모여 ‘차원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차원계에도 결국 한계는 있기 마련. 헬 게이트는······ 차원계에서 쫓겨난 존재가 모이는 장소가 아닐까, 하고 아라셀리는 추측했다.

‘그럼, 어째서 지구에 그런 게······?’

‘그걸 꼭 지구에 있다고 단정지어야 할까요?’

‘뭐?’

‘지구도 결국 수많은 차원의 교집합 중 하나에요. 아마··· 지구가 아닌 다른 어떤 세상에서도 헬 게이트는 똑같이 보일지도 몰라요. 제 추측 상, 지구는 차원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위치 해있으니까 또다른 중심 차원에 가면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

과연 차원학을 연구하던 학자라서 그런지 그녀의 말은 하나하나가 굉장히 예리했다. 여태 생각해본 적도 없는 관점으로 헬 게이트에게 접근하였고, 내 의문을 풀어주었으니까.

‘그래서 아마, 레이나 주라는 여인도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 거대균열 역시 다른 차원이라면 모든 차원의 찌꺼기가 모이는 헬 게이트로 통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아니, 어쩌면 거대균열 그 자체가 헬 게이트로 향하는 입구였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그녀는 어쩐지 씁쓸하게 말했다.

‘하지만······. 찾으러 가는 건 별로 옳지 못한 선택 같아요, 교수님.’

‘어째서?’

‘말씀드렸잖아요. 차원계에서 벗어난, 찌꺼기들이 어떻게든 이 세계에 남아있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장소라고. 아마, 레이나 주라는 분이 아주 강한 힘을 타고나지 않은 이상······ 이미 차원계 바깥으로 날려보내졌을 확률이 높아요.’

차원계의 바깥. 즉, 이 수많은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이야기의 바깥’.

나는 문득 섬뜩해졌다.

하나의 차원에는 이야기가 존재하며, 그것들이 모이고 모여 이야기 꾸러미를 만든다. 나는 세계를 방랑하며 그 수많은 이야기와 마주하였고, 그런 이야기들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였다.

지구의 이야기, 비비안타의 이야기······.

그런데 만약.

이야기의 바깥으로 떨어지게 된다면?

그 어떤 스토리도, 줄거리도, 개연성도, 정말 아무것도 없는 세계라면······.

그곳은 대체 어떤 세계란 말인가?

‘설마, 레이나 주가 이야기의 바깥으로 던져졌을 가능성은······?’

‘죄송해요 교수님. 저도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라셀리는 충분히 도움이 되었음에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부분이 나오지, 대단히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그래도, 아마··· 추측을 조금 해보자면. ······이미, 돌아가셨겠죠. 그분은.’

그녀는 뒷말을 생략했다. 헬 게이트로 들어가 봐야, 의미가 없을 거라는 말을.

나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차원에 대해 누구보다 빠삭한 의뢰인과 아라셀리 둘 모두가 헬 게이트로의 진입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불과 몇 년 전, 헬 게이트에서 레이나 주를 보았다고 말했음에도 이미 시간이 상당히 흘러 이야기의 바깥으로 쫓겨났을지도 모른단 것이다.

혼란스러웠다. 여태까지의 내 목표가 부정당하는 것만 같았다. 마치 천하대에 입학하기 위해 평상을 달려왔는데, ‘그 천하대는 사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드라마에만 존재하지!’라는 말을 들어버린 것처럼.

여기서 나는 절망해야 할까.

주저앉아서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걸까?

“교수님······.”

아라셀리는 나를 토닥여주었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감았다.

아니. 절망하기엔 이르다. 아직은 모든 게 추측일 뿐이니까.

고민을 해야될 것 같다.

아주, 많이.

< 영혼 분리(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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