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담 사냥꾼(5) >
스산한 바람이 불어와, 아히날의 뺨을 스쳤다.
폐교의 버려진 운동장. 안 쓰인 지 상당히 오래되어, 바닥이 갈라져 있었고 흡사 정글처럼 초록색 식물들이 우거졌다. 해가 떠있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어둡다. 먹구름이 온 세상을 뒤덮을 기세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히히히···.
아···아···아아···.
흐윽···흑흐흑···흐흑···.
여기저기서 귀신의 울음소리, 비명소리, 괴성이 들려온다. 사방에 귀신이 가득하다. 아히날은 덜덜 떨리는 손을 진정시켰다.
어둠 속에서 창백하다 못해 푸르딩딩한 귀신이 목을 길게 빼서 흰색 눈동자로 쳐다보고 있다.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거대한 귀신의 얼굴이 거꾸로 이곳을 바라본다. 그 외에도 수십명의 귀신들이 아히날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으나,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고개를 들어 올린다.
고오오오······!! 불길한 기운이 하늘로 용솟음치고 있었다. 세상이 서서히 붉어졌고, 마치 ‘또다른 세상’이 저 하늘 너머에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또다른 세상은 아마도, 지옥. 수많은 악귀가 살아 숨 쉬는 곳.
“아······.”
쩌적, 쩌저적···!
하늘이 쩌적, 갈라지며 지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히날은 턱을 덜덜 떨었다. 그곳에서, 수십, 수백, 수천, 수만 개의 붉은 손이 뻗어 나왔기 때문이다. 마치 현계로 빠져나오고 싶다는 것처럼.
‘저런 것들이 나왔다가는······!’
창백해진 아히날이 이를 억지로 꾹 다물자, 그 붉은 틈새 사이로 유서담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피처럼 붉은 망토에 무복을 걸친 그는 자신의 옷자락을 바람에 따라 자유로이 휘날리도록 두었다.
움찔, 유서담의 흰색 눈동자가 무감정하게 아히날을 주시한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머리가 새하얘져서 기절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겁먹을 필요 없어. 이길 수 있어!’
척! 손을 하늘로 뻗자, 운동장에 원의 형태로 불이 붙었다. 미리 준비해두었던 붉은 양초에 불이 붙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십자가를 그리다가 다시 대각선으로 돌아, 8등분으로 나뉘었다.
그에 유서담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자, 아히날이 입을 열었다.
“당신의 정체를 알아냈다, 유서담.”
“······.”
그러자, 유서담 역시 살짝 긴장한 듯 표정을 굳혔다.
“새하얀 검. 검은색 머리칼에 흰색 눈동자. 이상하리만치 마법에 대한 지식이 높은 것으로 보아 과거 학자였다고 추측. 항상 말이 없지만, 여교수를 홀릴 정도로 여자에 관심이 많으며······.”
그 부분에서 유서담의 이마에 실핏줄이 돋아났으나 너무 멀어서 아히날은 알 수 없었다.
“······해서, 네 정체는 ‘아락호의 떠도는 망령’이다!”
화악!
불길이 치솟으며, 허공에서 기이한 문양을 만들어냈다. 아마도 그건 마력이 아닌, ‘영력(신성력)’이라 불리는 신비로운 힘. 신을 통해, 혹은 영혼을 통해서 힘을 얻을 수 있어 어떤 세계에서든 굉장히 희귀한 취급을 받는다.
두두두두두!!! 대지가 흔들리며, 불길이 더욱 더 거칠게 유서담을 향해 손을 뻗어 나갔다. 흡사 붉은 지옥을 향해 붉은 불꽃이 용오름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유서담이 여전히 움직이고 있지 않자, 봉인의 일부인 ‘망령의 속박’이 제대로 걸려들었다고 생각하여 아히날은 주문을 외웠다.
“아락호여, 아락호여. 당신의 망령을 데려가소서.”
파직! 붉은 스파크가 튀어 유서담의 머리를 가격하였다. 그러나 그는 별로 타격을 입지 않은 듯하여, 아히날은 계속해서 주문을 외웠다.
“아락호여, 아락호여. 당신의 망령을 데려가소서!”
파지직! 파직!
그녀가 주문을 외울 때마다, 붉은 스파크와 붉은 불꽃이 그를 집어삼킬 것처럼 공격하였으나 유서담은 여전히 하늘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아히날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락호여, 아락호여······!”
“···이제 그만 하지?”
“읏!”
파지지지직!! 유서담이 손을 거두자, 양초에 붙은 불꽃이 모두 꺼지며 거칠게 바람이 휘몰아쳤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아히날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유서담을 올려보았다. 그는 정말 악귀처럼, 사악하게 웃었다.
서서히, 서서히, 유서담이 내려온다.
“아, 아으···!”
도망치기 위해 엉덩이로 기어가다가, 뒤돌아서 일어나려고 했는데, 덥썩! 무언가가 발목을 붙잡는다.
“아···!”
땅을 내려보니, 새하얀 얼굴이 튀어나와 그녀의 발목을 물고있었다.
“꺄아아아악!!”
주먹에 영력을 담아 그것을 힘껏 내려치자 귀신의 얼굴이 반으로 쪼개지며 사라졌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팔다리가 역으로 꺾인 귀신이 거꾸로 뒤집어진 자세로 이곳을 향해 미친 듯이 다가오고 있었으며, 머리로 땅을 콩콩 찧으며 여학생 귀신이 그녀를 살벌하게 노려보고 있었고, 허리 아래부터 아무것도 없는 귀신이 ‘다리를 내놔···!’하고 외치며 팔꿈치로 기어서 뛰어온다.
“아, 아아아아······!”
그래도, 귀신이다. 이길 수 있다. 영력으로, 여태 했던 것처럼, 어떻게든 일기장에 적혀있는 방법으로, 대처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아히날의 앞에 유서담이 착지하였다.
“아락호의 망령이라고? 내가?”
그는 입꼬리를 올린 표정 그대로, 그녀를 약올리듯 말한다.
“틀렸다.”
아.
그 순간, 아히날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젠 끝이다.
귀신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한 이상,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
[150레벨의 주인공의 사냥에 성공하였습니다!]
떠오르는 메시지를 읽으며, 나는 바닥을 내려보았다. 아히날의 시체는 없다. 그녀는 죽음을 맞이한 뒤, 몸과 함께 그대로 저승으로 끌려갔을 것이다. ···만약 저승이라는 곳이 실제로 있다면 말이지.
하긴, 귀신도 있는데 없을 건 없나.
[개연성이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에피소드의 힘이 사라져, 당신의 몸에 깃든 ‘대괴담’이 흩어집니다.]
대괴담이라. 참으로 웃기는 방법으로 이겼다.
솔직히 말해서, 대괴담의 능력은 별거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별거 아닌 놈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대괴담이 깃들었을 때,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대괴담이 깃들었으나, 당신의 수준이 너무 낮아 스킬의 효과가 대폭 반감됩니다!]
[스킬 ‘바람 좀 세게 불어보기’를 획득하였습니다!]
[스킬 ‘조금 스산하고 으스스한 분위기 좀 내보기’를 획득하였습니다.]
[스킬 ‘이래도 안 무서워? 귀신 소리 흉내내기’를 획득하였습니다.]
[스킬 ‘무서운 환각 만들기’를 획득하였습니다.]
[스킬 ‘귀신처럼 날아다녀 보기’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렇다. 아히날의 앞에서 온갖 폼을 잡으며 쎈척을 좀 하긴 했으나, 그거 다 구라였다. 하늘에 열린 지옥도? 당연히 환각이지. 내가 무슨 수로 그런 걸 열어?
하지만 대괴담이 되어, 대괴담의 무시무시한 능력을 ‘흉내’내는 수준에도 불구하고 아히날은 겁을 지레 먹었다. 솔직히, 대괴담의 능력이 너무 형편없어서 이딴 쓰레기로 이길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녀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착각에 빠져 허우적대다, 자멸해버렸다.
만약 도중에 그녀가 눈치를 챘다면? 혹시라도 사실은 귀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면? 중간에 ‘당신의 정체를 알아냈다’라고 했을 때 얼마나 심장이 철렁였는가.
아히날이 마음을 제대로 바로잡고 순수한 힘대힘으로 갔으면, 아마 꽤 고전했을 수도 있다. 물론 대괴담의 힘에 이끌려 귀신들이 모여준 덕분에 어지간해서는 지지 않았겠지만······. 뭐든 편한 게 좋지 않겠는가?
“후우.”
하늘을 올려보자, 푸르른 배경을 뒤로한 채 태양빛이 거칠게 각막을 노려왔다. 눈이 부시지는 않으나, 세상이 밝다. 대괴담이 사라지자 먹구름이 모두 걷힌 것이다. 아마, 먹구름을 불러오는 능력 자체도 대괴담의 패시브일지도 모르겠다.
“교수님!”
멀찍이서 아라셀리가 날아서 이곳을 향해 다가왔다. 내 앞에 착지한 그녀는 파리해진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어마어마한 악마의 기운이 나서······.”
“알아.”
“엄청 사악했어요···.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일 거예요···.”
“······.”
그거 난데.
“그런데, 그 악마는 어디로···?”
“퇴치했어. 아히날도 같이.”
“아···.”
그제야 아라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이 감싸고 도는 ‘개연성’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탓일 것이다.
나는 허리를 숙여 아히날이 남기고 사라진 일기장을 주웠다.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서 펼치자, 안에는 귀신에 대한 내용이 한가득 빽빽하게 담겨 있었다.
“그건······.”
“이제부터 이건 우리가 쓸 거야.”
“네?”
이 세상에 남아있는 귀신은 많다. 아마, 내가 일기장을 쓴다고 해서 귀신의 능력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하고 싶었다. 귀신을 봉인하고 싶은 의지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런 의무감도 나는 지금 전혀 느끼고 있지 않았다.
그저.
“아라셀리. 나랑 같이, 귀신을 봉인하자.”
그녀와 함께,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아마도 나는 그녀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고, 그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아라셀리라는 여인이 줄곧 나를 쫓아다니면서 바랐던 아주 자그마한 소망. 그것 마저도 이루어주지 못할 정도로 나는 나약하지 않다.
이제는, 나도 조금 기대볼 생각이다. 내가 여태 해왔던 고민을 하나하나 털어놓고, 상담을 받으며, 그렇게 해답을 찾을 것이다.
“가볼까.”
“네!”
아라셀리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고개를 돌린 그 순간.
“어?”
어느 사이엔가, 이곳에 누군가가 다가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지······?’
꽤 가까운 거리였다. 그러나 기척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누구십니까?”
온통 검은색 일색의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양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있었는데, 얼굴을 면사포로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웃고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이군요, 유서담. 대괴담의 기운이 느껴져 찾아와봤더니, 역시나 당신이 해치운 건가요.”
“······?”
아는 사람인가? 모르겠다.
“아, 그렇군요. 당신은 제 목소리를 듣는 게 처음일 수도 있으니······. 접니다, 말레아.”
말레아? 설마, 이 학교의 교장이란 말이야?
‘목소리가 젊어 보이는데······.’
아라셀리가 뭔가 불안한 듯 나를 쳐다보았다. ‘여차하면 죽일까요?’라는 표정이라서 고개를 저었다.
“예. 만나서 반갑습니다, 교장 선생님. 이곳의 사건은 정리했으니까······.”
“그게 아닙니다.”
말레아 교장은 내 말을 끊더니, 어쩐지 당황한 투로 말했다.
“말레아. 저라구요. 서담님.”
“그러니까, 이 학교의 교장이지 않습니까? 저도 압니다.”
“···설마, 저를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뭐를?”
“튜토리얼에서 당신이 저를 도와주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때의 일을 아직 잊지 않았는······ 잠깐. 당신 설마.”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 내게 다가왔다. 마치 유령처럼 흔들림 하나 없는 완벽한 걸음이었다. 설중연 누님의 하늘하늘한 보폭과는 다른, 신비로운 느낌이 있었다.
내게 가까이 걸어온 말레아는 내 눈동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황망하다는 듯 웃었다.
“이제야 간신히 만났는데······. 당신은 아직 저를 모르는군요.”
“······.”
여기서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미안합니다. 제가 좀 복잡하게 살고 있어서.”
“···그렇군요. 괜찮습니다.”
이내 말레아는 활짝 웃었다. 얼굴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으나, 면사포 너머로 붉은 입술이 호를 그리는 건 보였으니까. 그녀는 자신의 품을 뒤적이더니 어떤 일기장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이 귀신 일기장도 말레아가 작성했다고 했던가······.’
“받으세요.”
“네?”
그녀가 건네준 일기장은 꽤 낡았지만, 귀신 일기장과는 달리 읽기 편한 정도였다. 그것을 펼쳐보려고 했지만 말레아가 극구 만류하였다.
“지금 말고, 나중에 쓸 일이 있을 겁니다.”
그러면서 내가 어리둥절하자,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내 표정을 보는 것조차도 즐겁다는 듯 말레아는 한참이나 나를 그렇게 쳐다보았고.
이내, 귀신처럼 사라졌다.
“······뭐야?”
나는 여전히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 괴담 사냥꾼(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