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담 사냥꾼(4) >
왜애애앵!
아히날은 들것에 실린 채, 천천히 이송되고 있었다. 정말 가볍게 발목을 접지르려고 했지만 생각처럼 쉽게 되지는 않았다. 그 결과 발목이 아예 돌아가 버리고 말았지만······. 사실 뭐, 고통은 거의 느끼지 않았기에 별로 상관은 없었다.
‘유서담은······.’
창고를 바라본다. 이제 그 누구도 창고에는 신경을 쓰고있지 않았다.
그녀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계획대로야.’
이런 괴담이 있다.
존재하지 않았던 누군가가, 어느 사이엔가 자연스레 자신들의 곁에서 멀쩡히 생활하고 있다는, 그런 괴담 말이다. ‘어라? 쟤가 누구였더라?’하고 생각해보아도 깨달을 수 없다. 그 존재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그 순간 자신들과 함께 공부를 하고 밥을 먹고 수다를 떨며, 그렇게 살아갈 뿐이었으니까.
‘인식 조작에 현실 조율. 상당히 까다로운 종류의 [괴담]이지만, 나한테는 안 되지.’
아히날은 이미 유서담이라는 존재를 하나의 ‘괴담’으로 치부했다. 그녀는 영력과 비스무리한 힘을 가진 그를 눈여겨보았고, 남몰래 조사를 해보았다. 분명 입학 기록도 있고, 선생님들조차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싶지만······.
‘조작된 현실을 간파할 수 있는 나한테는 안 통하지.’
귀신이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서, 사람 행세를 하는 괴담?
흔하다. 너무 흔하다. 정말로 흔하다 못해 지겹다. 물론, 유서담은 그중에서도 조금 더 특이하고 특출난 귀신이었다. 다름 아닌 ‘괴담을 불러오는 귀신’이었으니까.
그가 학교에 등장한 이후로, 알 수 없는 괴담이 떠돌기 시작하였다. 상식적으로 파악할 수 없어, 도저히 상대하기가 불가능했던 괴담들. 무용실 거울 괴담, 빨간 휴지 파란 휴지 괴담, 초인종 괴담, 13일의 금요일 괴담 등등······.
그것들과 마주했을 때 얼마나 애를 먹었던가.
하지만 이제 괜찮다. 괴담을 불러오는 귀신, 유서담은 결국 또다른 괴담에 의해 잠식되어 존재가 옅어질 것이다. ‘밀실 괴담’과 ‘셀카 괴담’은 현실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아주 강력한 괴담이었기에.
‘그간 도움이 되었지만······ 앞으로 [대괴담]과 맞설 때 방해가 될 수 있으므로 미리 처리해둬야겠어. 그동안 고생 많았어, 유서담 귀신.’
아히날은 그렇게 알게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들것에 실린 채 강당 창고를 바라보았고.
쩌적, 쩌저적···!!
창고 벽이 갈라지며. 당당히 걸어 나오는 유서담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어라?’
어떻게?
*
“아히날. 괜찮은 거 맞지?”
“푹 쉬어. 공연은 어쩔 수 없지만··· 네 건강이 중요하지.”
몇몇 학생들이 양호실로 문안을 와서 인사를 건넨다. 음료수부터 과일까지. 다양한 선물을 준비한 것은 기본. 그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히날에 의해 ‘귀신’으로부터 벗어난 경험이 있었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귀신을 불러온 건 아히날이었는데, 거기에 피해를 입은 이들은 그러한 사실을 모르기에 귀신을 쫓아낸 아히날에게 고마워한다.
하지만, 뭐. 그게 어쨌단 말인가.
‘···지금의 생활을 놓칠 생각은 없어.’
음침하고, 말수도 적고, 뭐 하나 특출난 면이 없던 아히날은 어릴 적부터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인간인 이상 그녀 또한 외로움을 탔고, 누군가가 다가와 주기만을 기다렸지만 존재감 옅은 아히날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괴담을 만난 이후로 그녀의 인생은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괴담을 해결해가며 귀신의 능력을 하나씩 흡수한 결과, 그녀는 팔방미인이 되었다.
노래하는 귀신을 퇴치하자 노래를 잘 부를 수 있게 되었다. 하루종일 춤만 추는 구두 귀신 괴담을 퇴치하자 춤을 출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귀신의 힘을 흡수하였고, 그녀는 지금 이 학교의 어지간한 교수보다도 강력한 힘을 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대괴담만 처리하면······.’
여태 수집한 괴담의 능력으로, 창창한 미래를 살아가는 날만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방해꾼이 나타났다.
‘유서담. 대체 정체가 뭐지?’
어느 날 존재가 툭 튀어나와, 마법 학교에 자연스레 동화된 정체불명의 귀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괴담을 퍼뜨리고 있으며, 동시에 귀신에게 물리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아주 특이한 남자. 그에게는 굉장히 특별하고,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은 ‘영혼’ 그 자체를 느낄 수 있는 아히날만이 감지할 수 있는 기운이었다.
‘평범한 귀신이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검으로 현실 조율을 가르고 나왔다?’
말이 안 된다. 애초에 이 세계에는 ‘검사’라는 존재 자체가 없기에 검이라는 무기는 사장된 지 오래다. 그런데 검을 휘두르다니······.
아히날의 머리가 점점 더 복잡해졌다.
알면 알수록, 수상한 점뿐이다.
‘아니, 애초에 귀신이 이렇게까지 현실에 동화될 수 있나······?’
여태껏 만나왔던, 사회에 동화된 귀신들은 하나같이 그 특징이 명백했다. 그 누구도 귀신에 대한 자세한 부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 이름을 물어보면 ‘당연히 알지! 어··· 갑자기 기억이 안나네?’라고 대답하거나 어떻게 생겼는지 아느냐고 물어보면 ‘맨날 보는데 모를 리가? 응? 왜 모르겠지? 너무 흔한 인상이라 그런가?’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제아무리 귀신이라도, 현실에 동화되는 강력한 능력을 가진 괴담일지라도 결국 한계는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유서담은, 그렇지 않아.’
그가 괴담인 것은 확실하다. 두 달이나 그와 함께 생활해오며 내린 아히날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강력해도 너무 강력했다. 여태 수많은 괴담을 사냥해온 아히날의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다면.
남은 결론은 단 하나.
‘······유서담. 그 남자가 대괴담이야.’
[엔딩 에피소드 ‘마지막 괴담(1)’이 시작됩니다.]
*
[세계의 에피소드가 엔딩에 다가갑니다.]
[대상 ‘유서담’이 대괴담으로 지정됩니다.]
[에피소드 ‘마지막 괴담(1)’이 대괴담을 지지합니다.]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은 몇 번 있다. 그러나 그때는 악역을 도맡아서 했을 뿐, 에피소드 자체에게 등쌀이 떠밀렸던 적은 없다.
‘내가 대괴담이라고?’
어이가 없어졌으나,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괴담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괴이한 내용의 이야기를 뜻한다. 대대로 전승되는 설화나 소문으로 퍼지는 괴이한 이야기 등등······. 이 세계는 단순히 그러한 ‘괴담’이 힘을 얻고 활개를 칠 뿐인, 그런 아주 특이한 세계일 뿐이다.
그리고, 괴담에 단골로 엮이는 귀신은 또 어떤가. 괴담의 주체는 보통 귀신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굉장히 많다. 그저, 조금 소름끼치는 내용이 대다수였으니까. 귀신은······ 즉 ‘괴담’의 덤이 될 뿐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귀신은 애초부터 존재했으며, 괴담에 의해 힘을 얻게 되지만 그 주체가 귀신이 아닌 괴담이라니. 귀신이 괴담에 씌이는 그 순간부터 괴담의 일부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괴담이 되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애초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입술을 타고 옮겨가는 이야기가 힘을 얻는 이 세계에서······ 가장 ‘이야기의 개연성’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누군가가 나를 괴담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럼, 나는 괴담이 된다.
‘아히날. 나를 괴담이라 생각하고 있었군.’
아마 예정대로 ‘대괴담’이 될 예정이었을 귀신은 이야기의 힘을 얻지 못한 채 평범하게 구천을 떠돌고 있을 것이다. 뭐, 이제 그 귀신이 힘을 얻을 일은 없어졌으니 신경쓰지 않아도 좋다.
지금부터, 나는 괴담으로서 괴담 사냥꾼을 맞이한다.
지금쯤 아히날은 필사적으로 유서담이라는 괴담을 물리치기 위해, 일기장을 뒤적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귀신은 결국 일기장에서 파생되었고, 정체를 파악하는 순간 일기장의 해답을 이용해 성불시키는 게 가능했으니까.
그러나 나의 이야기는 일기장에 적혀있지 않다. 또한, 내가 만들어낼 괴담 역시 아히날은 전혀 알지 못하는 것들이다.
문득.
웃음이 터져나왔다.
어이가 없어서, 그리고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랬다.
나는 그녀를 죽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 결과, 그럭저럭 아히날을 꾀어내어 적당한 확률로 죽일 수 있는 방법을 계획할 수는 있었다.
실책이다.
귀신에 홀린 탓에, 어설픈 계획을 세우고서 막무가내로 밀어 붙이려 했다. 멍청하게도.
일전에 나는 한 번 감정에 휩쓸려 어설픈 계획을 그대로 이행하였고, 그 결과 소중한 사람들은 물론 나 자신조차도 위기에 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기존에 세워두었던 계획은 완전히 파기했다. 굳이 또다른 계획을 세울 필요는 없었다.
감정적으로 행동한 탓에, 나답지 않게 귀신 따위에 벌벌 떨며 아히날의 함정에 빠진 탓에.
나는 그녀를 죽일 수 있는 완벽한 계획이 아닌, ‘에피소드’ 그 자체를 손에 거머쥐었다. 본래였다면 ‘대괴담 에피소드’는 엔딩으로서 주인공에게 패배했겠지만······.
나에게는 주인공 보정이 통하지 않는다.
휘이이잉······!!
가을의 쌀쌀한 바람이 몰아친다. 낙엽이 휘날리며, 어디선가 귀신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버려진 지 반세기는 더 흐른 폐교의 운동장. 아무도 찾지 않는 곳.
이제 내가 할 일은 그저, 이곳에서 주인공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
학생, 유서담이 실종되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건··· 평소에 유서담이 친구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교수 아라셀리가 교장에게 직접 찾아가 어떠한 언질을 주었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그를 의심하고 있던 아히날에게는 썩 의심스러운 상황으로 다가왔다.
“유서담? 음··· 그런 사람 있던가?”
“아, 아! 기억나. 고등부였던가? 근데 왜? 본 적도 없는데.”
“어. 중등부 후배였구나. 우리 반에 유서담? 그러네···. 갑자기 등교도 안 하고. 뭐, 아픈가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학생 한 명이 뿅하고 나타났다가 뿅하고 사라졌는데, 이렇게 무심할 수가 있단 말인가? 다른 귀신들과는 달리 자취를 감추었어도 기억은 여전히 보존된다는 점에서 유서담은 역시 보통 귀신이 아니었다.
휘이잉···!
쌀쌀한 바람이 불어온다. 붉은 하늘을 타고 구름이 거칠게 질주하는 게 보였다. 날씨의 급격한 변화, 분위기의 침체, 싸늘해지는 기운. 귀신이 나타난다는 징조가······ 이렇듯 거대하게 나타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유서담. 대체 정체가 뭐야.’
아히날은 그날 이후로 일기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이고 정독하였다. 그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검은 머리칼에 흰색 눈동자. 동양풍의 이름을 가졌으며 검을 사용한다···.’
애초에 날붙이를 사용하는 경우는 꽤 잦았으나, 유서담처럼 장검을 사용하는 귀신은 거의 없었다. 그리하여 일기장에서 ‘검’을 사용하는 귀신을 축약해냈으나 열 개가 넘어갔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검을 사용하는 거야···!’
그녀로서는 속이 타오르는 일이었으나, 애초에 귀신이라는 게 짧게는 몇 개월부터 길게는 수천 년 단위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하물며 유서담은 ‘대괴담’이 아니던가?
‘정체를 숨기고, 내게 접근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
이제부터는 꽤 타당한 추론이 들어간다.
‘먼저, 내가 괴담을 사냥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여태까지는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왜 나를 공격할 수 없던 거지?’
자신을 공격할만큼 힘을 회복하지 못해서? 아니면 인간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가할 수 없어서? 혹은, 어떠한 제약이 있어서?
‘사연이 있을 거야. 사연이.’
일기장에는 하나의 귀신에도 꽤 자세한 내용이 적혀있었고, 아히날은 눈에 핏대를 세워가며 그것들을 꼼꼼이, 아예 씹어 먹을 것처럼 달달볶았다.
또다시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맘때즈음 슬슬 아카데미에서 괴이한 일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대부분이 아히날을 중심으로 벌어졌다. 정체도, 원인도 파악하지 못한 괴담들.
한밤중, 고개를 돌려 벽을 바라보니 끔찍한 표정을 한 사람 얼굴 수십 개가 달라붙어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벽 속의 지옥 괴담이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데 자꾸 모르는 언어로 목소리가 들려와, 짜증을 내다가 나중에 사전을 찾아보니 고전 언어로 ‘위를 봐’라는 뜻이란 사실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감자 괴담이었다. 목소리에 홀려 위를 쳐다보면, 귀신과 마주친다는 괴담.
그 외에도, 아히날이 봉인하지 못했던 수많은 괴담이 다시금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대괴담이 부활했기 때문이야······.’
그러나, 대괴담이 부활한 이후 등장하는 괴담에 의해 피해를 크게 입은 사람은 없었다. 실종된 사람도, 사상자도 없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한 것 처럼, 오로지 아히날만을 노리고 찾아왔다.
매일밤 잠드는 것조차 두려웠다. 괴담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적이 없었기에, 이렇게나 두렵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대괴담을 해치워야만 한다.
하지만, 어떻게?
‘조금 더, 철저히 준비해야 하는······.’
그때, 아히날은 무언가가 느껴져서 고개를 돌렸다. 그것은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정말로 별 다른 의미도 없고, 뜻도 없는, 그런 행동.
그런데.
창밖으로.
유서담이, 흉흉한 미소를 지은 채 이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악!”
순간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진 아히날은 다시 그곳을 쳐다보았다. 눈 깜짝할 새, 유서담의 형상은 사라지고 없었다. 결코 환각이나 착각이 아니다. 그것은 정말로 또렷하게 유서담이었다. 그러나, 그런데······.
‘여긴, 17층인데···!’
대체, 어떻게?
*
하도 안 찾아오길래 몰래 염탐 좀 하러 왔다가,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근데 사람 얼굴 보고 저렇게까지 소스라치게 놀라니까 기분 좀 거시기하네.
나는 벽에 두 발로 달라붙은 채 뺨을 긁적였다. 고층 건물을 딛고 서는 것 쯤이야 보법까지 익힌 S랭크 초인으로서 너무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괴담이 엮인 이후로 사람들이 내 존재감을 잘 감지하지도 못하고, 쳐다보더라도 흐릿하게, 마치 '귀신'의 형상을 보는 것처럼 깜짝깜짝 놀라며 비명을 지르곤 했다.
이것도 괴담의 영향인 듯싶다.
다시 창문으로 살펴볼까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애초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내게 달라붙은 괴담이 학교에 영향을 끼치는 모양이었으니까.
그래도, 뭐. 일은 잘 풀리는 것 같으니까.
아직까지도 덜덜 떨고있는 아히날의 기척을 슬쩍 느낀 뒤, 나는 피식 웃으며 자리를 떴다.
< 괴담 사냥꾼(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