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53화 (153/251)

< 괴담 사냥꾼(3) >

학교 축제. 언뜻 듣기에는 청춘의 팔팔한 활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절반 이상의 학생은 축제를 즐기지 않을 것이다. 축제는 결국 인사이더들의 놀이였으니까. 그리고 그 축제 하나를 위해 얼마나 개고생을 해야한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아히날은 생각보다 더 ‘인사이더’였던 모양이다.

무려 메인 댄서로서 장기자랑에 나간다니. 친구 없어 보여서 은근히 동질감을 느꼈는데, 나만 친구가 없었다니······.

하기사 이제와서 중고딩들이랑 친구로 지내는 것도 무리다. 나는 30대 아저씨였으니까. 원래 술 한 잔 까면서 친해지는 건데, 고등학교에서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서담.”

“어. 사진기는?”

“이걸 쓰면 돼.”

강당은 축구 경기장만큼이나 넓었고, 축제 준비로 인해 선생님들과 초중고대학생들이 바글바글했다. 저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마법사라니. 새삼, 지구에도 이런 학교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린트 사진 인화기야. 사진을 찍으면, 그 즉시 사진을 인화할 수 있어.”

“오······.”

지구에서도 대략 반세기 전,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되기 이전에는 꽤 자주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비안타 마도 제국의 기술력은 수정구로 영상 송출까지 가능했는데, 여긴 아직 그 정도의 기술력까지는 없는 모양이다.

“내가 시선을 끌게. 지금은 마침 저녁 시간이고···. 사람이 거의 없을 때니까.”

“······.”

사람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그나마 적은 거였구나.

사진기를 만지작대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히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서는 그대로 무대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의 친구들이 “어, 아히날! 댄스 연습하러 왔어? 마침 우리가 빌렸는데!”라며 말을 걸어온다. 역시, 친구 많잖아.

무어라 친구들끼리 속닥거리던 아히날은 이내 씨익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선 눈빛으로 신호를 보낸다.

“후······.”

진짜 하기 싫기는 한데, 이제 와서 무르기도 애매하다. 나는 아히날을 돕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해야만 했으니까. 언젠가 그녀가 빈틈을 드러냈을 때, 제대로 함정에 빠트려 죽이기 위해서는 최측근의 자리를 유지하는 게 가장 편하다.

천천히 걸음을 강당 창고를 향해 옮긴다. 몇몇 학생들은 일을 하다 말고 아히날과 그녀의 댄스 리허설을 구경하기 위해 모였다.

하긴, 무려 ‘주인공’의 축제다. 하물며 여주인공이라. 아마도 그녀는 귀신과 관련된 어떤 힘을 이용해서 춤도 잘 출 게 뻔하다. 어쩌면 친구가 많아서 댄스팀에 들어간 게 아니라, ‘우연히도 아히날이 춤을 잘 춘다는 사실을 동급생들이 알게 되어 축제에 참여하게 된 에피소드’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마도.

이 축제에서, 그녀는 주목을 받겠지.

항상 음침하고 조용한 아히날이라도 결국은 주인공이니까. 괴담을 사냥하며 얻은 힘을 그런 식으로 사용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문득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래. 아히날은 나쁘지 않다.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게 뭐가 나쁘단 말인가?

그저 아히날과 나는 동류였기에, 서로를 죽이려고 할 뿐이다.

에고이즘은 공존할 수 없으니까.

이윽고, 아히날이 꽤 아름답고 화려한 춤을 뽐냈고 지나가던 선생이나 학생들이 넋을 놓고서 바라보고 있는 그때.

그녀가 일부러 발을 헛디뎌 무대에서 떨어졌다.

쿠당탕!

“꺄아악! 어떡해!”

“빨리 보건선생님 불러와!”

“구, 구급 마차에 신고해!”

창고에서 일하던 학생들조차 모조리 빠져나와 무대로 모여들었다. 축제 직전에는 상당히 예민한지라, 사고 한 번이 굉장히 크기 때문이다.

그 틈을 타서 나는 잽싸게 강당으로 쏙 들어가 문을 닫고 걸어 잠궜다. 아주 잠깐이면 된다. 방해만 받지 않으면 금방 끝날 테다.

‘음······.’

그 시끌벅적하던 강당이었는데, 창고는 어쩐지 으스스하다. 빛이 거의 들지 않아서 그런 듯싶다.

‘슬슬 해볼까.’

솔직히, 진심으로 응해줄 생각도 없었기에 불도 끄지 않고서 나는 대충 사진기를 들었다. 렌즈가 나를 바라보도록 한 뒤, 셀카 한 컷. 셀카를 찍어본 적은 없기에 구도는 영··· 이상했다만 그런 건 굳이 신경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창고에 가만히 앉아서 그렇게 몇 분쯤 기다렸을까. 어쩐지 분위기가 서늘해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 유서담은 사진기에서 반응이 오자 잽싸게 ‘인화’ 버튼을 눌렀다.

스이이잉! 사진기의 인화기에서 사진이 뽑혀나온다.

별것도 없을 것이다. 괴담이라고 해봐야, 20번을 뒤적거려야 1번 간신히 나올까 말까 했으니까. 그리고 귀신이 나타나도 아히날이 오기 전까지 얼마든지 버틸 수, 있-

“큭?!”

꽈아아악!! 무언가가 목을 조르는 감각에, 나는 이를 악물고서 발버둥을 쳤다.

‘뭐야, 이거!’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다. 그런데, 기척도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대체······!’

힘겹게, 시선을 내리떨구자, 인화되자마자 바닥에 떨어진 사진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곳에는······. 멍청한 표정으로 셀카를 찍고 있는 나와, 내 목을 감싸고 있는 검은색 머리칼의 어떤 여인이 찍혀있었다.

‘여···자라고?’

설마, 이렇게 바로 귀신이 나온단 말이야? 게다가······ 사진으로만 보이는 귀신은, 대체 어떤 방법으로 공격을 해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손을 더듬어봐도, 목에는 아무런 감촉도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데.

“젠, 장···!”

급한대로 검을 뽑아서 신성력을 두른 뒤, 목 뒤로 훑고 지나가 보았지만 타격감이 없다. 여전히, 고통스럽다.

‘···여기서 나가야 해!’

이를 악물고서 몸을 일으킨다. 어차피 숨통 조금 막혀봐야, S랭크 신체로는 얼마든지 버텨낼 수 있다.

그런데.

‘······어라?’

출구가, 어디에 있더라?

주위를 둘러본다. 창고, 창고, 창고, 창고. 온통 벽밖에 없다.

규칙적으로 놓인 자재와 운동할 때 쓰는 공과 유니폼 몇 개. 그리고 축제 준비를 위해 가져다 둔 마네킹들과 인형들. 그것들은 어느 사이엔가, 전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하나.

‘설마··· 괴담이 하나가 아니었다고?’

이 괴담, 뭔지 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처음 보는 백화점을 발견해서 들어갔는데, 출구가 없어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는 섬뜩한 괴담. 어찌저찌 빠져나오더라도··· 다시 그 자리에 돌아가니 백화점은 온데간데 없었더라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 외에도 출구 없이 갇혀버리는 괴담은 많았지만······.

쿠구구구···!!

“미친···!”

벽이, 서서히 좁혀온다. 100평은 가볍게 넘어갈 정도로 넓었던 공간이 순식간에 90평, 80평, 좁아졌다.

숨은 점점 더 막혀오고, 공간은 좁아지는데, 정작 저 귀신들의 실체를 볼 수가 없으니 대응하는 것도 불가능. 점점 더 유서담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히날, 그 여자의 짓이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당해버렸다.

‘여기서, 이렇게 있을 수는······!’

뭐라도. 뭐라도 해야 하는데.

평소처럼 냉정하게 계획을 세우거나, 하다못해 잔머리라도 굴려서 임기응변해야 하는데······.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두뇌가 돌아가지 않는다.

‘컥, 크윽···!’

결국, 유서담은 무릎을 꿇고 주저앉고 말았다.

*

<···서담 헌······.>

-···녀야···.

<정신 차리십시오, 유서담 헌터!>

-마녀야!

“······!”

의뢰인의 목소리에, 유서담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의 뺨으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호흡이 거칠다.

‘내가, 왜 갑자기···.’

유서담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덧 그는 [백색 마녀의 도서관]에 들어와 있었다. 오로지 유서담만의 심상 세계.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장소.

고개를 들어보니, 팔뚝만큼이나 자라난 은빛 정령의 꽃이 꽃잎에 앉아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단 사실을 깨닫는다.

-멍청이 마녀.

그녀는 그리 말하더니, 날아서 사라진다.

서담이 가만히 뺨을 쓰다듬으며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자니, 의뢰인이 말했다.

<드디어 정신이 드셨군요.>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귀신에게 홀렸습니다.>

‘홀렸다고? 내가?’

정신력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유서담이 그리 생각하자 의뢰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맞습니다. 정신력이 강한 자는 귀신에게 홀리지 않지요.>

맞는 말이다. 유서담은 헬 게이트에서 무려 3년이나 버티다가 생환해온, 강철같은 정신력의 소유자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소유자‘였’다.

지금은······. 유감스럽지만, 아니다.

<최근의 유서담 헌터는, 정신력이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불안정했다고?’

그의 표정에서 당황이 묻어나왔다. 의뢰인은 씁쓸하게 입을 다물었다.

과거의 유서담은 떠올려보자면, 객관적으로 그는 약한 사내였다. 기껏해야 일반인 중에서 조금 강한 정도의 신체 능력치로는 초능력자들 사이에서 벌레만도 못한 존재였으니까. 그런 그가 15년이나 버텨올 수 있었던 이유, 단 하나.

‘정신력.’

그러나, 그 정신력이 최근에는 서서히 무뎌지고 있었다. 의뢰인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이유를 알고 있음에도 고칠 수는 없다. 유서담의 정신력에 공백이 생긴 이유는, 텅 비어있던 그의 가슴으로 소중한 인연들이 하나둘 파고 들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계를 돌아다니며, 정말로 사소한 인연 하나조차 유서담은 결코 허투루 여기지 않았다. 맨 처음, 그가 아라셀리를 처음 만났을 때의 다짐을 아직 의뢰인은 기억하고 있다.

‘이계에서 인연을 맺지 말도록 할 것.’

결과적으로 그것은 아라셀리가 곧바로 찾아옴으로써 깨져버렸다. 그는 스스로의 다짐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사내가 아니었다.

유서담은 수많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왔고, 그들과 좋든 싫든, 많든 적든간에 인연을 맺었다. 그것들은 외로운 유년기를 보낸 유서담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소중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한 번의 이별을 하게 되면, 결코 다시 만날 수 없다.

‘이계를 여행하며 주인공을 사냥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주인공 살인 청부’라는 행위뿐만이 아니라, 감정 없이 그곳의 모든 것을 놓아두고서 돌아올 때마다 유서담의 마음은 점점 더 마모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 그 영향이 점점 또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색마 방호윈.’

그를 죽이고자 하였을 때, 유서담은 지나치게 감정적이었으며 냉정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강대한 적에게서 날아온 도발을 그대로 도발로 맞받아쳐 싸움을 걸었으나, 그 결과 그는 한 번 죽을 뻔했다.

‘주인공 김하수.’

그를 사냥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금만 더 현명하게 생각했더라면, 더 옳은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가령 김하수를 죽이는 법이라던가, 혹은 김하수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이라던가.

그러나 유서담은 또다시 감정적으로 행동했다. 대뜸 세상을 멸망으로 몰아 넣어가는, 이른바 ‘최종 보스’를 달랑 맨몸으로 맞서 싸우려고 한 것이다. 이성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 정도는 유서담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왜 그랬는가?

자신의 마음에 들어온, 소중한 인연을 지키고 싶어서.

색마 방호윈 때는 설중연.

아포칼립스 때는 김하수.

그들은 유서담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고, 지키고자 행동하였으나······. 결국 그건 유서담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행위였을 뿐이다.

그때의 유서담은 전혀 유서담답지 않았다.

어딘가 엉성한 계획에, 그저 분노라는 감정에 휩싸여 움직이다가, 그렇게 죽을 뻔한 엉터리 헌터가······ 과연 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주인공’을 사냥하는 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유서담 헌터. 제가 당신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유서담 헌터는······ 모든 일에 철저하고 계획적이고 냉정한 헌터입니다. 가끔은, 무서울 정도로.>

‘······.’

<그런데 저 사건 당시의 유서담 헌터는 감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인간이 가장 감정적인 순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공포’에 물들었을 때입니다.>

그녀의 말에 서담의 표정이 구겨졌다.

‘내가, 그때 공포에 떨고 있었다고······?’

의뢰인은 말을 이어나갔다.

<처음 당신을 보았을 때만 해도······ 당신은 잃을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네, 죽음조차 씁쓸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죠. 죽음은 곧 당신에게 공포가 아니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랬나.’

<하지만 최근에는 달라졌습니다. 당신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가 하나씩, 하나씩, 가슴에 들어차고 있습니다.>

의뢰인의 말은 나긋했고, 그의 머리와 가슴에 서서히 스며들었다. 테일러 나인이 먼저 떠오르고, 설중연이 떠올랐으며, 그 외에 ‘주인공 사냥꾼’이 되면서 맺어진 수많은 인연이 떠올랐다. 하나하나 모두 소중했으며, 그들을 저버리고서 죽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당신은 가장 소중하다고 여겼던 두 여인을 밀어냈겠지요. 두려워서. 자신의 죽음에 그녀들이 고통스러워할까 봐.>

그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이제 당신은 무서운 게 많습니다. 소중한 이들을 잃는 게, 그리고 소중한 이들이 슬퍼하는 게, 모두 두렵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녀들을 밀어냈습니다. 두려워서, 밀어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래야만 했을까요?>

알 수 없었다. 유서담 스스로가 내린 답이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그녀의 말 역시, 무조건 정답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자꾸만 그녀의 말이 맞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 느낌, 익숙했다.

살아가다가 벽에 부딪혔을 때. 더 이상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그때마다, 항상 레이나 주가 조언을 해주곤 했다.

<차라리 그녀들에게 마음을 맡겼다면, 어쩌면 당신은 더욱 강인한 정신을 가지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

<그 누구라도 좋습니다. 그저··· 기대고, 마음의 짐을 덜어놓고서, 주인공을 사냥하기 위해 차원을 방랑하며 서서히 피폐해져 가는 당신의 정신을 정화해줄 수 있는, 그런 영혼을 가진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더욱 올곧은 정신을 버티고 지켜낼 수 있을 겁니다.>

의뢰인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서담. 당신은 스스로를 쓰레기라고 말했습니다. 이기적으로, 비열하게, 저열하게, 더러운 수를 써서라도 빼앗고 죽이고 강탈하며,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계속해서 그러길 바랍니다. 모든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헬 게이트’라는 목적 따위 잊어버리고서, 그저 매일매일 이기적으로, 오로지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만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당신이 원한다면··· 이 ‘의뢰’도 얼마든지 그만둘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사명감에 살아가지 않아도 좋습니다. 당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여생을 행복하게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의뢰인은 그의 답을 듣지 않고서, 말을 이었다.

<제아무리 당신이라도 분명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힐 겁니다. 그러니까, 의지하세요.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텨낼 수 없으니, 최소한 기대라는 말입니다.>

‘내가 뭘 어떻게······.’

<이곳에서 나가면 당장 아라셀리 양에게 찾아가, 속마음을 털어놓으세요. 당신의 고민, 당신이 끌어안고 있는 사명감. 그 전부를.>

‘······.’

<그녀는 당신 하나만을 바라보고서 수십 개의 차원을 건너 여기까지 쫓아왔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당신에게 그 무엇도 묻지 않았고, 그저 하루 몇 분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의뢰인의 목소리가 점차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아라셀리 양은······ 위대한 운명과 영혼을 가진 여인이기에, 당신이 기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든든하고 올곧은 버팀목이 되어줄 겁니다.>

이윽고, 세상이 반전되더니.

백색 마녀의 도서관에서 빠져나와, 그는 다시금 강당의 창고에 서 있었다.

“······.”

침묵. 더 이상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니, 여전히 사방이 콱 틀어막힌 채 출구도 창문도 없는 밀폐된 공간이 점점 더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이제 남은 공간은 20평 남짓.

유서담은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에게 닥쳐온 불가능한 일들을 모조리 극복해왔다.

중학생 꼬맹이의 같잖은 속임수에 속아 넘어갈 정도로 물렁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팍! 신성력을 담은 검을 휘두른다. 목덜미를 훑는 게 아닌, 사진을 찌른 것이다.

-끼아아아아아악!!!

그러자, 사진 속 귀신이 비명을 고래고래 지르더니 사진이 서서히 찢겨나갔다.

머리가 맑아진 기분이다. 의뢰인은 유서담에게 상담을 해줌으로써, 이미 그의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덕분에 그의 정신력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한 것.

냉정하게 사고한다.

애초에, 귀신이 제아무리 강력하다 한들··· 급하게 찍고 인화한 사진에 빙의되었는데, S랭크의 초인을 목졸라 죽이는 게 가능한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참 나··· 고작 귀신한테 홀릴 뻔하다니.’

헛웃음을 치며, 유서담은 다시 검을 들었다.

처음에는 귀신의 실체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없기는 왜 없는가? 여태 왜 멍청하게도 ‘실체가 없는 귀신’이라는 말도 안 되는 문장에 속아 넘어갔는가?

결국, 물리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체가 필요하거늘.

검에 신성력을 담아, 이번에는 벽을 베어냈다. 우드드드드그그그그아아으아아아악!! 벽이 갈라지는 소리와 귀신의 비명이 겹친다.

이곳은 겹차원. 아마도 현실과 격리된 또다른 세계일 터.

그렇다면, 이 벽 자체가 귀신이다.

쩌저저적!!

유서담을 감싸고 있던 어떤 단단한 벽이, 그렇게 갈라져 무너졌다.

< 괴담 사냥꾼(3)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