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담 사냥꾼(2) >
늦은 밤. 학생들은 모두 기숙사로 돌아가고, 당직 선생님들만 교내에 남아있는 시간.
흑발의 여선생이 복도를 걸었다. 끼익, 끼익. 매끈하지 않은 복도가 괜히 낡은 소리를 낸다. 요즘 흉흉한 소문이 많이 돌고 있어, 나름 굴러먹던 전투 마법사 출신의 선생님들조차 당직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저 자기 차례가 오면 억지로 설 뿐이다.
물론, 직관적으로 괴이한 일에 엮인 사람은 없다. 그저 기절하고 정신차려 보니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누군가가 사라진 것 같은데 사라진 사람은 없다던가하는 등의 일만 벌어지고 있다.
‘······.’
고요하다. 현재 시각, 자정. 학생들은 모두 기숙사로 돌아갔을 시간임에도 어쩐지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러다, 여선생은 문득 교실로 시선을 돌린다.
‘학생···?’
누군가가 교실에 있다. 여선생은 망설임 없이 교실문을 열었다. 어떤 여학생이, 양팔로 턱을 괴인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문을 열고 들어올 것을 알고 있었단 듯이.
“학생. 거기서 뭐 해? 돌아가야지.”
“못가요. 선생님.”
“못 간다니···. 그게 무슨 소리니? 어서 이리로 나와.”
“안 돼요. 선생님.”
여학생은 그리 말하더니, 앞으로 살짝, 나왔다. 상체를 숙인다는 느낌도 없이, 하체를 들어 올린다는 느낌도 없이, 책상 위에 상체를 ‘올려놓았다’.
“왜냐하면······.”
저는 다리가 없거든요, 선생님.
쿵쿵쿵쿵!
팔꿈치로, 상반신을 지탱하고서, 여학생이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쿵쿵쿵!
“쿵쿵쿵쿵쿵!!”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선생님.
“선생님선생님선생님.”
저는다리가없어요.
“다리가 없어요, 선생님. 아파요. 다리가 없어요.”
저는다리가없어요저는다리가없어요저는다리가없어요쿵쿵쿵쿵쿵쿵!!
여학생은 팔꿈치로 여선생의 다리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저 다리는 이제 내 것이다. 저 아름다운 다리를 가질 수 있다. 이제부터, 두 다리로 걷는다.
그러나 그 순간.
쩌엉!!
“으윽!?”
여선생의 앞에 새하얀 장벽이 나타나더니, 다리없는 귀신을 가로막았다. 뒤로 튕겨나간 귀신은 팔꿈치로 상반신을 지탱하여 여선생을 다시 쳐다보았다.
웨이브진 흑색 머리칼을 흩날리며, 푸른색 눈동자를 가진 그녀의 등에······ 황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톱니바퀴 하나가 둥실 떠올라서 돌아가고 있었다. 천천히 흘러가는 그 톱나바퀴에는 자그마한 수십 개의 빛의 막대가 달려있었고, 그것들은 길어졌다 짧아지는 것을 반복하며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5개의 황금색 거울 파편.
“어······?”
귀신은 모른다. 그것이 ‘악마 사냥꾼’ 시절 대마법사 아라셀리 라인칼의 본모습이라는 사실을. 그저, 공포를 원천으로 먹고사는 귀신 주제에, 그것을 보고서 공포를 느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곤란하네······.’
아라셀리는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이 톱니바퀴는 악마를 감지하면 자연히 나오는 것으로, 그녀의 마력을 일부 소모한다. 악마 사냥꾼 시절에는 하나가 아닌 일곱 개의 톱니바퀴를 24시간 365일 내내 항상 몸에 달고 다녔지만, 마력을 보충할 수도 없으며 적은 양의 마력밖에 없는 현재로서는 사용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벌써 체내의 마력량이 반토막난 것이 느껴졌다.
오래 지체할 수는 없다.
아라셀리가 손을 뻗었자, 황금색의 궤짝이 귀신을 가두었다.
유서담은 귀신을 타격할 수는 있으나 성불하는 법을 알지 못해 귀신을 해치우지 못하고서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라셀리는 악마 사냥꾼이었고, 잡귀는 얼마든지 상대해본 경험이 있다.
고작 다리 잃은 여학생 귀신 정도쯤이야.
“나, 나는, 나는 그저 다리를······!”
“알아. 다리가 없어서, 많이 힘들었겠네.”
“······어?”
황금색으로 찬란한 빛무리가 터져 나오더니, 다리 없는 귀신의 하반신에 다리가 돋아났다. 비록 실제의 신체가 아닌 영체였지만, 그것만으로도 귀신은 더 이상 팔꿈치가 아닌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죽기 직전, 자유로이 뛰어다녔던 그 시절처럼.
“아···아으···아······.”
“비록 너를 살려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만큼은, 마음껏 뛰어다니다가 성불하도록 해요. 제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예요.”
“가, 감사···감사해요···정말로······. 아윽···.”
귀신은 어느덧 울먹이고 있었다. 피에 절었던 상반신은 깨끗해져서, 정말로 평범하게 예쁘장한 여학생처럼 보였다. 그녀는 제자리에서 천천히, 아기처럼, 조심스레 걸어보더니, 이내 복도 창문을 뚫고서 뛰쳐나갔다.
아마도······ 성불되기 직전, 마지막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그녀는 끝없이 달리고 또 달릴 것이다.
이내 태양빛보다도 밝게만 느껴졌던 황금색 톱니바퀴가 사라졌고, 아라셀리는 식은땀을 흘렸다.
‘벌써 마력이 반토막났어······.’
고작 잡귀 하나를 성불시키는 데도 이렇게나 힘들 줄이야. 약해졌다는 사실이 새삼 체감되었다. 그러나 애초에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 심지어 마법마저도 포기할 생각이었기에 그런 것 따위는 별로 중요치 않았다.
‘······오늘 밤은, 교수님이랑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어.’
평소 같았다면 거절했을 유서담이라도, 체내 마력량이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수긍할 것이다. 그런 행복한 생각을 하며 아라셀리는 발걸음을 돌렸다. 착한 일을 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어느덧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
“그거 알아? 폐막사 1층 전신거울을 보고 있으면, 가끔 거울 속의 내가 다른 행동을 한대···!”
“지금은 안 쓰이는 건물의 동상이 자정만 되면 눈을 뜨고 걸어 다닌다는데?”
“폐건물 석상이 펼치고 있는 책 봤어? 매일 밤 한 페이지씩 넘어가는데, 그게 끝까지 넘어가면 학교가 무너진대···!”
“폐건물 화장실 4층의 첫 번째 칸에 가서 볼일을 보고 있으면, 귀신이 나타나서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하고 물어본대. 거기서 빨간 휴지를 받겠다고 대답하면 온몸을 피칠갑으로 만들어버리고, 파란 휴지를 선택하면 목을 졸라서 몸을 파랗게 만들어버린다는데······!”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학교 내에는 꽤 많은 괴담이 퍼지게 되었다.
몇몇 괴담은 이 세계에도 비슷하게 존재는 하였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발생할만한 괴담이 어느 세계든 다 거기서 거기였으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은 괴담이 더욱 많았고, 학생들은 괴담을 이야기하며 겁을 지레 먹었다.
물론, 그 괴담은 실체화될 가능성이 높았기에 대부분 ‘폐건물’ 혹은 ‘폐막사’를 기준으로 잡았다. 굳이 그곳에 접근하지 않는 이상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폐건물로 굳이 향하는 사람은, 아마 괴담 사냥꾼 아히날밖에 없을 것이다.
몇 주 동안 그녀의 몰골은 더욱 초췌해졌다. 첫인상부터 왜 저렇게 인상을 쓰고 다니나 했더니, 혼자서 귀신을 상대하느라 스트레스가 상당히 쌓였던 모양.
괴물과는 다르게, 귀신은 인간이었던 존재가 가장 끔찍하게 죽음을 맞이한 결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감정이 없지 않는 이상은 결국 상대하면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 계획대로 아히날은 스트레스를 점점 더 쌓아나가고 있었다.
[주인공 아히날의 레벨 변동 확인: 150]
“오늘도 고생했어······.”
아히날은 귀신을 봉인해가며, 점점 더 성장해가고 있었다. 내가 죽여야 할 적을 성장시키는 건 단기적으로 봐서 멍청한 짓 같지만, 장기적으로 봐서는 그녀의 컨디션을 최악으로 이끄는 행위였기에 결국은 스노우볼이 되어 굴러올 것이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나 또한 스트레스를 만만치않게 받는다는 것.
귀신이 두렵지 않느냐고, 한 달 전의 내게 묻는다면 나는 당당히 ‘두렵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솔직히, 너무 무섭다.
온몸의 관절을 스스로 비틀어 자살한 사람을 보았다.
머리 없는 시체들이 거꾸로 매달려있는 제단을 발견했다.
머리로 계단을 찧으며 한 계층씩 올라가 옥상에서 마침내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시체를 목격하였다.
오밤중 아무도 없는 길을 걷는데 난데없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 적도 있었으며, 멀쩡하게 걷고 있는데 불이 죄다 꺼지질 않나 고층 건물의 창문에서 난데없이 노크 소리가 들려오질 않나.
그건 내가 여태 알지 못했던 미지의 공포였다.
귀신은 꼭 눈에 보여서 무서운 게 아니었다.
보이지 않아서,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오늘은, ‘셀카 괴담’을 사냥해야 해.”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꽤 많은 시간을 아히날과 보냈다. 그래도 밤을 새워가며 동고동락해온 사이였지만······ 그녀와 나의 사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친해질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사람끼리 모인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나와 그녀는 만나면 괴담 이야기만 하였다. 나는 내 세계의 괴담 지식을 은근슬쩍 풀어놓았고, 아히날은 나를 ‘꽤 용기있고 지식도 있는 인간’으로 인지하게 되었다. 그녀가 모르는 미지의 사건이 닥쳤을 때, 내 지식이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셀카 괴담?”
“그래···.”
웅성웅성. 늦은 오후, 저녁을 먹는 시간인 탓이기도 했고 곧 아카데미 장르의 꽃이나 다름없는 ‘학교 축제’가 열리기 직전이기도 해서 그런지 상당히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강당 창고에서 카메라로 스스로를 찍고, 사진을 인출해서 보면 누군가가 뒤에 서있다는··· 그런 괴담이야. 솔직히 이런 종류의 괴담은 굉장히 낯서네.”
사진이 들어간 괴담은 거의 없는 세계였으니 그럴만하다. 그러나 지구에서는 뭐······ 사진에 이상한 게 찍히는 정도야 흔하디 흔한 일이었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저 괴담 역시, 내가 퍼뜨린 것이기도 하고.
‘이 괴담에도 실제로 귀신이 붙었으려나······.’
붙었든 아니든, 사진 괴담은 솔직히 괜히 퍼뜨렸나 싶기도 하다. 만약 진짜로 귀신이 붙었다면 결국 실체가 없는 귀신을 사진만 보면서 상대해야 했으니까.
“바로 갈 거야?”
“아니. 지금 강당 창고는 축제 준비로 바빠서 안돼.”
“그럼, 여느 때처럼 오늘 자정에?”
“그것도 곤란해···. 축제팀이 계속 강당을 쓸 것 같거든. 알다시피 우리 학교는 무대가 열리면 외부 사람들도 와서 그런지 상당히 준비에 힘을 쏟는 경향이 있잖아.”
뭐. 그럼 어쩌자고.
“포기하고 다른 괴담이나 알아보자 그럼.”
“그건 안 돼. 귀신이 붙었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상, 나는 반드시 사냥해야해.”
“······.”
마치 무슨 ‘사명’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결국 자기 잘못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녀의 일기장으로 시선이 간다. 저 정체불명의 일기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다.
저건 지금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교장’이 쓴 일기장이 맞다. 수많은 귀신을 봉인해두었고, 그 성불 방법에 대해서도 적어놓은 일기장. 그러나 그녀는 저것을 잘못 건드려 모든 귀신을 풀어놓았고, 다시 봉인을 해가는 중이었다.
예전에도 이런 장르의 만화를 몇 번 본 적은 있다.
여주인공이 뭔가를 잘못 건드려서 세상에 요괴가 퍼져나오고, 그것을 다시 봉인한다는 내용 말이다. 그 장르가 카드가 등장하는 마법소녀이기도 하고, 괴담이기도 하고, 뭐 항아리나 판도라의 상자가 등장하는 장르이기도 했다.
거기서 중요한 점은 단 하나.
결국 여주와 봉인 매개체의 접점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괴물들이 풀려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
만약······ 여기서 내가 아히날을 사냥하는 데에 성공한다면? 운이 좋다면, 모든 귀신이 알아서 봉인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거기까지는 신경쓸 필요가 사실 없기도 하다.
“나, 이번 축제 무대의 메인 댄서야. 내가 무대에서 발을 접지르거나 해서 시선을 끌 테니까, 네가 좀 도와줘.”
“뭐?”
“내가 시선을 끄는 사이에, 네가 셀카를 찍어달라는 얘기야.”
“······.”
여태껏 아히날이 직접적으로 귀신과 관련된 무언가를 부탁한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는 없다지만, 귀신과 직접 컨택하는 것은 나도 질색이다.
“······.”
“······.”
그러나 그녀의 표정을 보니, 마찬가지인 모양. 어쩌면 아히날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가며 나에게 괴담 사냥을 떠넘기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뭐···. 좋아. 한 번만 해보도록 할게.”
내가 긍정적으로 답하자, 그녀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뭐지. 불안하게 왜 저러지?
“좋아. 바로 가보도록 하자.”
그녀는 초췌한 표정으로 억지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고개를 돌렸고, 나는 상당히 찝찝한 기분으로 ‘셀카 괴담’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괴담 사냥꾼(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