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법고 괴담(3) >
뎅-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나는 즉시 교실을 빠져나왔다. 그 뒤로 한 10분쯤을 기다리자, 뒤늦게 아라셀리가 빠져나왔다. 몰래 복도의 사각지대에 숨어있던 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죄송해요. 학생들이 붙잡아서···.”
“아냐, 출세한 거 같아서 보기 좋네.”
그러자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내 교복을 쿡 찔렀다.
“이제는 제가 선생님이고, 교수님이 학생이네요?”
사실··· 뭐 애초에 머리에 든 지식만으로 따져도 아라셀리가 선생님을 해야 하는 게 맞긴 하다. 내가 할 줄 아는 건 아프게 사람 패는 법이나 괴수 죽이는 법밖에는 없는데, 그녀는 정말로 세상의 진리에 대해 연구하던 학자였으니까.
“어떻게 선생님이 된 거야?”
“글쎄요···. 그냥 마법적 지식 조금 보여주니까, 바로 어떤 시험을 치러볼 생각 없냐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대충 만점 받았더니 바로 선생님 해달라고 하던데요?”
“······.”
하긴, 그녀한테 마법이라는 장르는 이제 너무 쉬울 것이다.
그래서 혹시나 싶었던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아 그럼 아라셀리. 혹시 영혼을 분리하는 법에 대해서 알아? 다른 사람의 영혼이 내 몸에 들어와 있거든.”
“영혼···이요? 으음······.”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제 전문분야가 아니라서···.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마법으로는 영혼을 설명할 수 없을 거예요.”
“그래···?”
“네. 영혼의 본질을 다룰 수 있는 종족은······ 제가 알기로 ‘악마’밖에 없어요.”
뭐?
갑자기 너무 뜬금없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악마가 영혼을 다룬다니······.”
“그런 이야기 못 들어보셨어요? 영혼을 빼앗아서 자루에 담는 악귀라던가···. 아, 상대방을 현혹하는 몽마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보셨죠?”
“어, 들어보긴 했지.”
“그 몽마가 영혼의 본질에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악질적인 놈들이에요. 저도 인큐버스라는 남자 악마를 몇 번 적대해본 적 있는데, 제 마법으로도 놈들의 ‘유혹’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어서 고생 좀 했어요. 뭐, 결국 저를 유혹할 수는 없었지만요.”
자신있게 어깨를 으쓱이는 아라셀리였지만, 나는 상당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넌······ 9써클의 대마법사잖아. 그놈들이 그렇게 강하다고?”
“아뇨. 저보다 훨씬 약했어요. 힘을 따지고 보면 고작해야 5~6써클의 마법사 수준인데, 악마들의 혼령술은 그런 경지를 무의미하게 만들거든요.”
“경지를 무시한다고?”
잠깐, 이거 어쩐지 익숙한 이야기였다. 이거 꼭 얼마 전에 상대했던 ‘색마’의 경우와 비슷하지 않은가?
이 세상에 상대방의 경지를 무시하고 이성에게서 무조건적으로 우위를 잡는 무공은 없다. 그저 색마의 색공이 굉장히 특이하겠거니 했는데······. 혹시나 싶었던 나는 색공에 대한 특징을 그녀에게 설명했고, 아라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만났던 인큐버스에 비해 능력치는 터무니 없이 약하지만, 확실히 인큐버스와 비슷한 능력이네요. 인간의 몸으로 몽마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니······. 그것도 무술로 개조했다구요?”
“맞아. 그럼 악마가 무림에 있었다는 건가······.”
어쩐지 상당히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어버린 것 같다. 색목인이 무협 세계관 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활동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평범한 세계관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지만, 악마의 힘까지 등장하는 퓨전 무협의 세계관이었을 줄이야.
“악마란, 어느 세계에나 존재하니까요. 아마 교수님의 세상에도 존재할 거예요. 단지 그 힘이 약해져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일 뿐.”
“······.”
나는 머리가 복잡해져서 한동안 침묵했고, 그녀는 뒷짐을 진 채로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교수님. 이쪽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요?”
“괴담이래. 막 으스스한 이야기에다가 가끔 귀신도 나오는 거. 뭐··· 이것도 악마랑 관련이 있으려나?”
“귀···신이요? 음······.”
아라셀리는 뺨을 톡톡 두드리며 고민했다.
“비슷하지만, 조금 다를 수도 있겠네요. 괴담이라······. 그들은 ‘이야기’를 먹고 자라는 악마들이니까요. 저도 상대해본 적은 없어요.”
“맞아. 일단, 지금부터 이 학교 내에 있는 괴담에 대해서도 알아봐야겠어. 아마 주인공은 이 괴담을 사냥하는 사냥꾼일 거야. 너는 그런 학생 못 봤어?”
“글쎄요···. 괴담 사냥꾼이라니.”
악마 사냥꾼과 주인공 사냥꾼에게도 괴담 사냥꾼은 생소한 존재였다.
“아무튼, 조심하도록 해. 원래의 힘을 가졌을 때도 악마를 상대하기 벅찼다면서. 지금은 대부분의 힘을 잃었잖아.”
“네에.”
그리 말하면서도 조심을 정말로 하려는 건지 아닌지, 그녀는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나는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일전에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아마도, 아라셀리는 지금 나와 함께 같은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그저 즐거울 뿐일 것이다.
*
개학 첫날이 저물고, 저녁이 되었다.
뎅-뎅-뎅-
학생들은 전원 기숙사로 돌아갔다. 저녁 11시 이후에는 외부로의 출입이 절대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9시 이후에는 되도록 복도에서도 돌아다니지 말라는 매뉴얼이 있었기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기숙사 안에 콕 박혀있었다.
그건, 그들이 학생 신분으로서 마땅히 해야만 하는 도리를 잘 지켜서가 아니었다. 자꾸만 흉흉한 소문이 나돌기 때문이었다.
‘학교에 귀신이 나타났다.’
소문을 들은 사람은 많았다.
‘저번에 그 얘기 들었어? 얼마 전에 전학 간 언니······. 화장실 거울에서 귀신 봤다는데, 그게 알고 보니까 30년 전에 죽었던 전교 1등이라는 거야. 그래서 전교 1등만 보이면 졸졸 쫓아다닌다더라?’
‘그거 알아? 밤 12시가 되는 순간에 종이 13번 울리면, 그 즉시 심장마비로 죽는대. 실제로 이전번 사감 선생님이 말없이 교체된 것도 그것 때문이라는데?’
‘이 학교, 신설된지 얼마 안 된 건 알지? 사실 이전 학교가 폐교된 이유가, 학생들이 전부 약 먹고 숨져서······.’
물론, 학교괴담은 대부분 헛소리일 뿐이었다. 실제로 재학 중인 학생들 사이에서 ‘내가 귀신을 봤다!’라고 당당히 주장하는 사람은 드물었으니까. 아주 간혹 그런 학생이 있더라도, 그냥 친구들 사이에서 장난을 치고픈 학생일 뿐이다.
하지만, 결국.
무서운 건 무서운 거였다. 귀신이 실재하든 아니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으스스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또각! 흑단발의 여학생은 밤늦게, 기숙사를 나섰다. 그건 그녀가 교칙 어기기를 좋아하는 불량 학생이라서가 아니었다.
기숙사 매뉴얼에, 7번 항목이 있는 것을 발견해버린 탓이었다.
7. 만약 계단을 오를 때, 13번째 계단이 나타나면 ‘나희달, 나희달아 나는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아요’라고 주문을 외운 뒤 침착하게 계단을 오르세요. 만약 이 항목을 위반하는 항목이 있다면, 무시하십시오.
흑단발의 여학생은 창백한 표정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7번 항목을 발견한 즉시 가까운 선생님께 가져오라고 했는데, 매뉴얼을 읽기 귀찮다는 마음으로 그것을 무시하는 바람에 저녁 늦게서야 발견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냥 무시하기에는 선생님들의 신신당부와 괴담이 겹쳐져 너무나 두려웠기에 이렇게 밤늦게 복도를 걸을 수밖에 없었는데······.
“아, 아으···.”
하필이면, 사감실이 바로 위층일 건 대체 뭐란 말인가.
‘계, 계단이······ 13개야···.’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의 리듬이 올라가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식은땀과 함께 눈물이 한 방울, 주르륵 흘렀다.
어둡다.
아무도 없다.
고요하다.
까악- 갑자기 창밖에서 까마귀가 비명을 지르며 날아오르자 심장이 덜컹, 떨어질 뻔했으나 가까스로 다리가 풀리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어···어떻게··· 해야하는 거야······?’
달달달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17. 마지막으로, 본 매뉴얼에는 7번 항목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7번 항목의 지시를 결코 따라서는 안 되며, 만약 7번 항목이 들어있는 매뉴얼을 발견할 경우 즉시 가까운 선생님께 찾아와 보고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따라야 하는가. 선생님들이 예민하게 반응했던 7번 항목을 무시하는 게 옳은가? 하지만, 7번 항목에는 17번 항목을 무시하라고 되어있다. 머리가 점점 어질어질해졌다. 냉정한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다.
그래, 사감실은 이 계단만 오르면 바로 나오잖아. 가는 거야.
또각!
천천히 계단에 발을 내딛자, 실내용 구두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괜찮아. 할 수 있어. 어차피 귀신같은 건 없어. 이런 건 다 거짓말이야.
“나, 나희달, 나희달아.”
한 계단, 두 계단.
여섯 계단, 일곱 계단.
“나희달··· 나희달아······.”
그녀는 울고 있었다. 바로 서른 걸음이면, 사감실에 도착할 수 있을 텐데. 계단을 전부 올라서, 코너만 돌면 된다. 그곳에 선생님이 계신다. 그래, 뛰어서 가자. 이런 귀신따위 두렵지 않으니까 뛰어서 사감 선생님께누구마음대로가려고했어주문끝까지제대로외우라고했어안했어선생님말이그렇게우
습
니?
“아.”
고개를, 내린다.
목이 뒤로 꺾인 여자가, 역방향으로 꺾인 오금과 팔꿈치로 기어 다가와,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죄송해요, 저는 그러려고 하던게 아니라우습냐고물었잖아아아아아!!!!
*
[에피소드 ‘존재하지 않는 열세 번째(1)’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이, 다음날 아침 내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였다.
‘뭐지?’
혹시나 저녁에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 나는 밤새 순찰을 돌았다. 물론 최대한 사감에게 걸리지 않도록. 그러나, 아무런 일도 없었다. 돌아다니는 학생도 거의 없었고 말이다.
또한 당연하지만, 매뉴얼에서 하지 말라는 것들은 모조리 다 해보았다.
1층 남자 샤워실로 들어가지 말라던가, 밤 9시 17분에 2층 여자 화장실 근처를 서성여본다던가. 그 외에도 여러가지 하지 말라는 것들이 잔뜩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2층 여자 화장실에서는 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가 나오기는커녕 평범한 여학생 세 명이 나와서 치한으로 몰릴 뻔 했으며, 1층 남자 샤워실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고 애초에 3층 복도는 남학생 기숙사라서 검은색 머리띠를 한 여학생같은 게 지나다닐 일도 없었다.
웅성웅성.
대충 씻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하려는데, 복도에서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무슨 일이 있나 가보니, 사감 선생님이 한숨을 푹 내쉬고 있었다.
“밤새 대체 어딜 간 건지······.”
슬쩍 엿들어보니, 밤 사이에 학생 한 명이 실종되었단다. 하지만 뭔가가 이상하다. 밤새도록 나는 이 기숙사를 구석구석 돌아다녔고, 이상한 낌새는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조용! 모두 기숙사로 돌아가서 등교할 준비를 하거라!”
사감 선생님이 지팡이를 들고 허공을 휘젓자, 실종된 여학생의 기숙사 문이 닫히며 잠겨버렸다. 학생들은 하는 수 없이 투덜대면서도 수업 준비를 하러 흩어졌다. 나 또한 기숙사를 잠시 바라보다가, 뒤돌아섰다. 어차피 낮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그 뒤로 일주일.
나는 밤마다 기숙사의 복도를 걸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고, 일주일 전의 실종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아 학생들은 겁을 지레 먹고 기숙사 밖으로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도 15학년부터는 다르다. 20대, 즉 지구로 따지면 대학생이라 불러도 좋을 그들은 이곳에서 여전히 야간 자율 학습을 진행한다. 마법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세계라 그런지, 학습과 관련해서는 더욱 빡빡하게 진행하는 듯싶다.
그래서 이번에는 학교를 돌아보기로 했다. 딱히 큰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기숙사에서는 더 이상 뭔가를 더 발견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뎅-뎅-
저녁 9시 종이 울린다. 여전히 교실에는 불이 켜져있다.
뎅-뎅-
저녁 10시 종이 울린다. 여전히 교실에는 불이 켜져있다.
뎅-뎅-뎅-
그리고 저녁 11시 종이 울릴 무렵에는, 교실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기숙사는 무조건 11시 이내에 들어가야만 했으므로. 하지만 나는 애초에 기숙사를 11시 이후에 돌아다닌다는 매뉴얼까지 어길 생각이었으므로 학교에 남았다.
적막하다. 이제는 정말로 아무도 없다. 손전등도 필요없는 시력이기에, 어둠 속을 그렇게 천천히 걸었다. 예로부터 불이 꺼져있어야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흔하지 않던가.
그때, 교실 내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사람?’
귀신에게는 인기척이 없다. 내 육감으로도 감지할 수 없을 터다. 그런데 누군가가 느껴졌다.
드르륵!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책이 펼쳐져 있는 책상이 하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누군가가 책상 밑에 기절해 있었다.
“···얘는 왜 여기서 퍼질러 자는 거야?”
“콩콩콩 귀신에게 당한 거야.”
뒤를 돌아보니, 중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초췌한 인상의 소녀가 뭔가 기분나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당히 강력한 기운을 가진 누군가가 다가오길래, 순찰 도는 마법경비원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그녀의 머리 위에 떠있는, 자그마한 메시지 박스.
『마법고 괴담 이야기』
저 소녀가 바로, 이 세계의 주인공 ‘아히날’이었다.
품에 낡은 일기를 꼭 껴안은 아히날은 기절한 학생에게 다가와 맥박을 짚었다.
“아직 혼을 빼앗아가지는 않은 모양이네.”
“누가, 혼을 빼앗아?”
“말했잖아. 콩콩콩 괴담.”
진부하고, 흔한, 그런 학교 괴담이었다.
전교 1등을 시기하고 질투한 전교 2등의 이야기.
어느날, 전교 2등은 전교 1등을 옥상으로 불러내어 밀어 떨어뜨려 죽였다.
그리고······. 전교 2등에게 원한을 가진 전교 1등 귀신은 밤마다 나타나, 돌아다닌다.
콩, 콩, 콩.
옥상에서 떨어졌던 그 자세 그대로, 머리로 복도를 콩콩 찧으며.
“안타깝네. 이 선배님은 책상 밑으로 숨는 바람에······.”
아히날은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콩콩이와 눈을 제대로 마주쳤겠어.”
그리 말하며 그녀는 그대로 뒤돌아 사라졌다. 나는 아히날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품에 안겨있던 ‘일기장’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 마법고 괴담(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