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48화 (148/251)

< 마법고 괴담(2) >

의뢰인은 최대한 마법과 영혼이 공존하는 세계관을 내게 보여주었다.

『마법명가의 망나니가 되었다』

『조상님의 지식으로 마법 최강』

『이세계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계 최강 성좌들의 스승이 되었습니다만 나는 무능력자 소시민이라구요? 세계 최강 성좌 제자들과 함께 하렘을 노린다!』

『내 여동생이 너무 강하다』

『마법고 괴담 이야기』

···여전히 적응 안 되는 세계관이 한가득이다. 그나저나 저것들이 대부분 영혼과 관계가 있다는 건가? 하나는 평범한 망나니물 장르이고, 하나는 바다 건너 타지에서 유행하는 고등학생 이세계 전생에 성좌물을 섞은 장르로 보이는데 말이다.

<간접적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전부 관련은 있습니다. 다만··· 영혼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얻고자 하신다면 『마법고 괴담 이야기』 세계관을 추천드립니다.>

마법, 학교, 괴담이라. 일단 키워드부터가 뭔가 귀신이 많이 나올 것 같다.

<만약, 이쪽 세계로 가실 생각이라면 단단히 마음을 먹으셔야 할 겁니다. 영적인 존재에게는 물리적인 힘이 거의 통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렇다는 건···.”

<서담님의 주특기인 검과 사격, 마법이 거의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에, 잠깐 고민했으나.

“사냥 확률은?”

<···그럭저럭 되는 편이군요. 시간 배율은 대략 21배속. 계획을 세울 시간도 충분합니다.>

“그럼 됐어. 언제는 쉬운 의뢰만 받았다고.”

무엇보다도, 시간 배율이 21배속인 점이 마음에 들었다. 현실에 두고 가는 것이 워낙 많은 탓에, 나는 이제 많은 시간을 비울 수가 없었다.

당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모조리 연락을 돌린 뒤 ‘파견’ 표시로 바꾸고서, 말했다.

“가자.”

『마법고 괴담 이야기』

#판타지 #공포 #괴담

#학원물 #미스테리

<줄거리>

밤이 되면, 괴담이 찾아온다.

그들이 들려주는 수많은 수수께끼와 비밀들.

나는 괴담이 가진 비밀을 파헤쳐, 봉인해야만 한다.

[127레벨의 주인공 ‘아히날’의 세계, 청연 사립 마법 고등학교로 이동합니다.]

[10···9···8···.]

서서히 시야가 흐릿해진다. 이제는 세계의 이동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차원 이동이란, 단순히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과는 다르다. 이건 마치 세상 그 자체를 접어서 나를 그 안으로 비집어 넣는 듯했다.

[2···1···0]

[이동이 완료되었습니다.]

[당신은 ‘청연 사립 마법 고등학교’의 전학생(12학년)이 되었습니다.]

데엥-

종소리.

휘이잉!

바람소리.

분위기의 농도가 옅어졌다. 햇빛이 각막을 찔러 들어왔지만, 초인이 된 나는 눈살을 찌푸리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아아, 신입생의 입학을 모두 환영하는 바이며··· 기존의 재학생들은 한 학년이 올라갔으니 조금 더 신중한 마음가짐으로 학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훈화의 말씀이 들려온다.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 드높은 교단 위에 머리가 반쯤 까진 중년의 사내가 서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연설을 하고 있었다.

“아, 개학식 존나 지루하네.”

“그러게. 교감 새끼, 빨리 좀 끝내주지.”

“더워 뒈지겠네 진짜···.”

주변에서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방에 젊은 학생들이 가득했다. 멀찍이 저 앞쪽에는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있었고, 내가 서 있는 뒤쪽에는 10대 후반의 소년소녀들이 모여있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흰색 계통의 교복을 입은 채이다.

그렇다.

-또한, 올해 청연 사립 마법 학교에 전학을 오게 된 전학생 여러분도 모두 환영하는 바입니다.

나는, 전학생이 되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30대 초반의 창창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가.

*

개학식은 길었다. 정말 길었다. 어느 세계든, 교감 선생님의 훈화 말씀은 시간을 느리게 가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이건 의뢰인이 보증한다.

<제가 언제요?>

아무튼, 개학식이 끝난 뒤 나는 어떤 떡대 큰 남자 선생님에게 불려서 그를 따라오게 되었다. 무단 침입 등의 이유로 쫓겨나는 줄 알고 걱정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주인공 사냥꾼’ 스킬은 나를 이 세계에 완벽히 녹아들도록 해주었다.

“음. 치수가 딱 맞는군. 교복을 미리 구입하라고 통보하지 않았던가?”

“오다가 잃어버렸습니다.”

“그런가···? 올해 전학생 중에 너같은 학생이 있단 얘기는 못 들었는데. 뭐, 내가 못 봤겠지.”

살짝 의문을 가질 수는 있으나, 어지간한 ‘운명’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은 내 정체를 깊게 파고들 수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몸이 꽤 좋은데, 학생. 운동 좀 했나 봐?”

“예. 제가 좀 대단합니다.”

조금 한 수준이 아니라, 반평생을 전장에서 구르다 보니 그냥 이렇게 됐다고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이름은?”

“유서담입니다.”

“독특한 이름이군. 하지만 어디서 들어본 이름같기도 하고······.”

“제가 북부에서 왔거든요.”

“북부에는 바다밖에 없는데···?”

“바다 위에서 살았습니다.”

“그, 그럴 수가 있나? 아무튼, 유서담 학생. 자네 12학년이라고 했던가. 운이 좋군. 그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이 떡대 큰 남자 선생님은 무언가 좋은 생각을 하는 듯 표정이 화사해졌다. 솔직히 좀··· 정면으로 보고 있자니 기분이 거시기했다.

“몇 반이라고 했지?”

“모르겠는데요.”

“···자네는 대체 아는 게 뭔가?”

“제 고향은 북부입니다.”

“말을 말지. 아무튼, 어디 보자···.”

떡대 선생은 서류 가방에서 파일을 꺼내서 뒤적이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손가락을 튕겼다.

“오, 그래. 12학년 전학생 유서담. 7반이군. 어서 가보도록.”

“······.”

솔직히, 조금 감탄했다. 예전에는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녹아들 수 있다고?

<제가 좀 대단합니다.>

‘사람은 자만보다는 겸손할 줄 알아야 해.’

<아까 유서담 헌터께서 했던 대사를 그대로 따라 한 것입니다.>

‘······.’

할 말이 없다.

*

학교 자체는 상당히 평범했다. 비비안타 마도 아카데미처럼 공중을 부유하고 있는 그 찬란한 천공섬과 수백 평에 이르는 땅 전부가 개조되어 성처럼 꾸며진 학교까지 바라지는 않았으나, 청연 사립 마법고는 지구에서 보았던 평범한 고등학교보다 살짝 더 좋은 수준이었다.

이마저도 이 세계에서는 상당히 좋은 축에 속한단다. 그야,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이 학교는 상당히 부자들이 다니는 것으로 추정되었고, 심지어 신설이다. 기존의 건물을 싹 밀어버리고 그 뼈대 그대로 새 건물을 지었다나.

건축 양식을 보니 아마도 문화의 수준이 지구와 비슷한 듯싶다. 과학 대신 마법이 발달한 지구라고 봐도 이상할 건 없겠다.

‘그나저나, 주인공은 어디에 있는 거지?’

일전에 멸망한 세계에서는 주인공을 만나기까지만 무려 한 달 가까이 시간을 소모했다. 조급해할 건 없다. 천천히, 이 세계에 녹아들어서 정보를 캐내면 된다.

‘7반.’

학생 50명 정도가 여유롭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교실에 들어서자 학생들이 두런두런 떠들고 있었다. 몇몇이 나를 보고서 “어, 전학생이다!”라며 소리를 치기는 했지만 나는 일부러 표정을 싸늘하게 굳혔다.

굳이 이 세계에서 쓸데없는 인간관계를 만들어서 트러블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그래서 여기서는 최대한 말이 없고, 다가오기 무서운 분위기를 풍길 생각이었다. 사람이 전장에서 10년 이상 구르면 초능력이 없더라도 눈빛만으로도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할 수 있는데, 하물며 초인이 된 내가 눈을 내리깔고 있으면 어지간한 학생들은 다가올 수 없을 것이다.

일명, ‘쿨한 척’하기 작전.

이 방법은 꽤 효과적이어서, 나는 홀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전학 첫날. 나는 왕따가 되었다.

*

정말 운이 좋게도, 교과서는 공짜로 보급해주는 모양이다.

다행이다. 돈도 없고, 친구도 없는데. 하마터면 멀뚱멀뚱 책상에 앉아서 수업 들을 뻔했다. 어차피 마법 수업이라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 굉장히 뻘쭘하지 않았을까 싶다. 책이라도 있으면 책 읽는 척하면서 멍 때릴 수라도 있으니 이제 안심이다.

뎅-

종소리가 울린다. 밖에서 봤을 땐 종이 안 보였는데, 어디서 울리는 거지?

이윽고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더니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서 교칙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여러분은 앞으로 고등과정을 끝낼 때까지 3년 동안 기숙 생활을 하시게 될 거예요. 지금 나눠주는 유인물은 기숙사 매뉴얼이고, 반드시 지키도록 하세요. 또한, 매일 밤 반드시 일기를 작성해야만 하는 건 다들 아시죠? 빼먹지 말도록 해요. 이사장님 지시 사항이니까요.”

그러면서 일기장도 나눠준다.

일기는 무슨 일기? 살면서 적어본 일기라고는 일일 전투 경과 보고 일지밖에 없는데. 일기도 비슷하게 적으면 되려나?

그 외에도 담임 선생님은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지만, 대부분이 대충대충이었다. 어차피 다들 아는 내용이었으니까. 이야기를 끝마친 담임은 그렇게 돌아서 나가려다가, 고개를 다시 돌려서 덧붙였다.

“아, 그리고 매뉴얼에 7번 항목은 없으니까 참고하도록.”

7번? 혹시나 싶은 마음에 기숙사 매뉴얼을 살펴보니 정말 7번이 없었다. 뭐야, 왜 7번만 없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 다른 항목을 천천히 읽어보니, 뭔가 수장쩍은 내용이 가득했다.

대부분은 몇 시 이후로는 돌아다닐 수 없다, 혹은 화장실은 어디에 있다는 등을 설명해주고 있었으나 아주 간혹 이상한 내용이 있었다.

1. 기숙사는 23시 이후로의 출입을 엄금합니다. 부득이하게 23시 이후에 기숙사로 들어와야만 하는 경우, 반드시 마법 빗자루를 사용하여 외곽 첨탑으로 들어가도록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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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자 화장실은 2층, 4층, 6층에 있습니다. 밤 9시 17분부터 41분 사이에 2층 여자 화장실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가 걸어나오면 결코 눈을 마주치지 말고 자연스레 지나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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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층 남자 샤워실은 출입 금지입니다. 남자 기숙사 1층에는 샤워실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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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3층 복도를 걷다가 검은색 머리띠를 한 여학생이 말을 걸어올 경우, 대답하지 마십시오. 부득이하게 대답했다면 ‘네 꽃은 내가 따지 않았다’고 말한 뒤 조용히 자리를 피하세요. 아마도 그것은 당신을 쫓아오지 않을 겁니다.

‘이게 뭔······.’

이건, 괴담이다. 그리고 나는 지구에서 이런 종류의 괴담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다.

‘나폴리탄 괴담이라고?’

천천히 매뉴얼을 끝까지 읽어본다. 여전히 7번 항목을 찾을 수는 없었으나, 제일 아래에 7번 항목과 관련된 내용이 존재했다.

17. 마지막으로, 본 매뉴얼에는 7번 항목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7번 항목의 지시를 결코 따라서는 안 되며, 만약 7번 항목이 들어있는 매뉴얼을 발견할 경우 즉시 가까운 선생님께 찾아와 보고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끝이었다.

‘흐음······.’

주변에서는 다른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이거 매뉴얼이 왜 이래?”

“글쎄. 고등학교부터는 뭐가 좀 다르다고 듣긴 했는데······.”

“나 졸업한 선배 얘기 들어봤는데, 가끔 좀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는 했대. 근데 뭐 지킬 것만 잘 지키면 문제는 없다는데.”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담임은 그러든 말든 그대로 나가버렸다. 이 매뉴얼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우뚝-

갑작스레, 정적이 찾아온다.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멍하니 교탁을 향했다. 그건, 1교시 담당 선생님이 험악하게 생겨서도, 난데없이 침묵 마법을 사용해서도, 미스테리하고 신비로운 사건이 발생해서도 아니었다.

단순히, 너무나도 갑작스레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로 아름다운 무언가가 등장해버렸기 때문이었다.

흑발에, 새파란 눈동자를 가진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인. 그녀는 교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선생님들이 흔히 입는 딱딱한 마법사 로브에 정장이었다.

“반가워요. 올해부터 마법이론학 수업을 맡게 된 아라셀리 라인칼이에요.”

그러면서, 내쪽을 힐끗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잘 부탁드려요.”

< 마법고 괴담(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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