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쓰레기다(3) >
그리하여, 유서담은 오후에 예카테리나가 깨어나자마자 첼레스테를 돕기 위해 옆건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첼레스테는 이 정원에 남아도는 건물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옥상에 자리를 잡고 수업을 진행하고는 했는데 현재 시간대가 점심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가 무려 9만 명에 육박한다는 점이 퍽 신기했다.
예사혜가 말하길 절반 정도는 진심으로 첼레스테에게서 수업을 듣고 강체를 단련하기 위함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그냥 첼레스터 보러 온 시청자들이란다.
“오···.”
에테르 코팅 안전발판을 비롯하여 제대로 인테리어가 된 도장은 널찍했으나, 내부에는 고작 서른 명 가량의 인원들밖에 없었다.
그들은 각각 E랭크에서 A랭크까지 초능력 랭크도 다양했는데, 정식으로 어나더 리그에 이름을 등록하여 방송이 꺼진 뒤에도 계속해서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정식 교육 과정을 거친 뒤, 나중에 어나더 리그 소속의 헌터로서 활동을 할 예정이라고.
‘결국 다 내 부하직원이 될 예정이란 말이지.’
벽에는 멀리서도 글자가 잘 보이는 커다란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채팅창의 실시간 반응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채팅창의 정면에는 첼레스테가 몸에 달라붙는 체육복에 목검 한 자루를 쥐고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발목에 에너지의 흐름을 집중시키고, 휘둘러서 올리세요.”
쐐액-!
이윽고, 첼레스테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가만히 서있던 문하생의 후방으로 거의 순간이동 하듯이 이동하였다.
“그럼 이렇게 돼요.”
···직후, 채팅창이 물음표로 도배되었다.
“쉽죠?”
-????
-??
-엥
-?
-뭐임
-어케했누
-교수님 진도가 너무 빨라요;;;
그렇다.
아주 잠깐 지켜본 결과, 첼레스테는 목소리는 좋았지만 가르치는 데에는 영··· 재주가 없는 듯싶었다. 대충 이유를 갖다 붙여보자면, 그녀가 지나치게 천재인 탓이 아닐까 싶다. 진짜 그녀 입장에서는 그냥 하면 되는 거니까.
그래서, 그냥 하면 된다고 설명했는데 천재가 아닌 범재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다.
진짜 저러는데도 시청자가 많다는 점이 유서담은 퍽 신기했다.
“제가 한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되는데···.”
-아ㅋㅋ 맞음 그냥 따라만 하면됨ㅋㅋ
-그니까 그걸 어케했냐고ㅋㅋㅋ
-ㅋㅋㅋㅋㅋㅋ
-멍청해서 죄송합니다...멍청해서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기초 스텝을 가르치고 있던 모양인데, 이걸 어떻게 말로 설명하기가 힘든 모양이다. 그 외에도 첼레스테는 다양한 강체무공을 선보였다. ‘시식코너 전략’에 알맞게, 방송에 나가는 대부분의 내용은 실제 그녀가 사용하는 비전의 10%도 되지 않겠지만 그 정도만 해도 상당히 효과적이었는지 대체로 채팅창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서담 또한 그녀가 문하생들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보며, 그녀가 상당히 성장했음을 느꼈다.
솔직히, 그는 상당히 놀랐다. 그녀의 수준이 A랭크에 도달했다는 것은 들었지만 저렇게까지 달라졌을 줄이야. 강체 능력자는 아무리 빠르게 성장해도 그 성장 속도에 반드시 한도가 있기 마련이거늘, 그 리미트를 완전히 부숴버린 첼레스테는 정말 미친듯이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고 있었다.
이탈리아 나이로 열아홉, 한국 나이로 스무살에 A랭크인 것도 대단한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의 실제 능력치가 A랭크를 가뿐히 상회한다는 것이었다.
적당히 균형진 근육이 자리잡힌 허벅지에 힘을 줘, 전방을 향해 도약하면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려퍼진다.
쿠궁···!!
검을 휘두르면 부웅! 하고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으며 발을 내려찍으면 대지가 뒤흔들렸다.
저건, 무공과는 다르다.
무공에도 분명 약물이나 비술을 이용하여 신체 그 자체를 강화하는 ‘외공’이라는 것이 존재했지만, 결국 그저 단련은 단련일 뿐이다. 하지만 강체는 몬스터를 강력하게 만들어주는 신비로운 에너지를 주입하여 신체 그 자체를 한 단계 더 위로 진화시킨다.
즉, 강체는 외공의 완벽한 상위호환이라는 이야기.
그런 외공을 구성하는 미지의 에너지로······ ‘내공’까지 완벽하게 구사한다?
초능력과 무공이 합쳐져, 그야말로 압도적인 파워가 솟구치게 되는 것이다.
빠지지직!!
“컥!”
-ㅁㅊㅋㅋㅋㅋ
-와 벽 완전히 파인거 실화냐?
-저거 안죽음???
-ㄴ안죽음 내장형에테르코팅체육복입었음
-죽은거같은데...?
첼레스테의 검격 한 번에, A랭크의 문하생이 날아가 벽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별로 힘든 기색 없이, 아니 심지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서 검을 늘어뜨렸다. 검은색 레깅스에 검은색 탱크톱을 입은 그녀의 근육은 상당히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있었는데, 그 꿈틀거리는 근육을 보고 있자니 괜히 유서담도 몸이 근질거렸다.
그러다, 첼레스테가 휙 시선을 돌려 그와 눈을 마주하였다.
얼떨결에 유서담이 손을 흔들자, 그녀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머임
-누구옴?
-안보이는데
-갑자기 첼레눈나 기분 좋아 보이는데?
-ㄹㅇ
카메라의 바로 뒤에 서있던 탓에 채팅창에 의문이 피어올랐다.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유서담은 얼굴을 비출 생각이 없었다.
“오랜만에, 한 판 하실래요?”
···첼레스테가 아주 간만에 마음에 드는 소리를 하기 전까지는. 어쩐지 가만히 있기도 심심했던 참이기에 유서담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예전처럼 아프다고 뒹굴거려도 난 모른다.”
“그때와는 다를 거예요.”
움찔.
그러고 보니, 예전에 그가 첼레스테를 이길 수 있던 이유는 이계의 검술을 완전히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계의 검술을 두 눈으로 읽은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따라할 수 있었던 첼레스테가······ 무공과 조합하여 자신만의 새로운 검술을 창안했다?
과연 예전처럼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을까?
‘···이거 진짜 지는 건 아니겠지?’
어쩐지 불안해졌으나, 남자가 자존심이 있지 여기서 무를 수는 없었다고 생각하며 그는 특수 처리되어 강도가 굉장히 튼튼한 목검을 들고서 도장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와··· 유서담 헌터님이다.”
“얼마 전에 돌아오셨더라니 진짜네···.”
“근데, 그 소문 진짜일까?”
“쉿. 들릴라.”
문하생들이 속닥거린다.
-헐
-ㄹㅇ유서담임?
-와 어쩐일이래
-오ㅋㅋ 무림맹주의 그 남자 오셨네ㅋㅋㅋ
-ㄹㅇㅋㅋ무그남
-ㅅㅂ존나이쁜 여자친구도 있고 부럽다
채팅창으로 아리송한 이야기가 순식간에 도배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첼레스테에게 집중하느라 유서담은 그것들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목검을 서로에게 겨눈다. 유서담은 간단한 양복 차림이었고, 첼레스테는 활동하기에 편한 체육복이었지만 그런 건 사실 별로 의미가 없었다.
-근데, 저 둘이 언제 시작함?
그런 채팅이 올라오는 순간.
투슝, 퉁!!
유서담과 첼레스테, 두 초인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ㅅㅂ머임? 나방금못봤는데
일반인이 아닌 초인의 움직임을 방송으로 송출하기 위해, 초당 1000프레임 이상을 잡는 초고성능의 카메라를 탑재하였으나 그것도 일정 수준 이상의 움직임을 보이게 되면 시청자들이 두 눈으로 쫓을 수가 없다. 다행스럽게도 방송에 ‘0.1배속으로 다시보기’ 기능이 따로 있어서 망정이다.
떠어어엉-!!
초인과 초인의 대결에도 버틸 수 있도록, 목검은 내적으로 에테르 코팅이 되어있다. 즉, 단단하고 비싼 연습용 무기라는 의미. 유서담은 손끝에 울리는 진동을 온몸으로 만끽하였다.
‘와우, 더럽게 세졌네 진짜······.’
그녀는 천재다. 그냥 천재도 아니고, 유서담이 2년 내내 이계를 떠돌며 개연성을 모조리 집어먹는 주인공을 사냥한 대가로 얻은 힘을 바로 뒤로 바짝 쫓아올 정도로 천재였다.
첼레스테의 검에 대한 센스는 애초부터 유서담을 아득히 넘어섰는데, 거기에 무림의 무공과 판타지의 검법까지 합쳐진 초능력 검술을 휘두른다? 그건 진짜 유서담도 쉽사리 넘길 수가 없었다.
퉁!
마치 기차로 몸을 들이박는 듯, 그녀가 거세게 검을 찔러 들어오자 유서담은 황급히 횡으로 몸을 틀어서 공격을 회피해냈다. 그러고선 빈틈으로 반격을 하려는데, 첼레스테는 돌진을 하던 와중 검을 급히 틀어서 바닥에 꽂아버리더니, 그것을 축으로 삼아 몸을 빙그르르 회전시켜 원심력으로 킥을 날려왔다.
‘······!!’
급히 고개를 숙여 피한 뒤 검으로 올려치려고 했으나, 첼레스테가 훨씬 더 빠르게 판단하였다. 발차기가 빗나간 즉시 허공에 발길질을 하여 무게중심을 잡은 뒤 발 뒤꿈치로 유서담의 머리를 내려찍으려 한 것이다.
쿠직!
그 강철같은 발차기가 바닥에 처박힘과 동시에, 유서담이 뒤로 훌쩍 물러났다.
-DHK
-오
-???
-방금 뭐임?
-공중컨 실화냐?
-와근데 저걸 또 막고 피하네;
유서담 또한 강체 능력자와 비슷하게 신체 그 자체를 강화하는 타입이다. 거기에 더해, 마력의 순환으로 더더욱 힘을 쏟아부을 수는 있으나 강체 능력자가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에테르 코팅이 존재하지 않았다.
‘능력치 자체는 이쪽이 우위인 것 같지만······.’
방어력과 순수 초능력 검술에서는 첼레스테가 유서담을 압도하였다.
그건 훔쳐온 S급 재능으로도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진짜배기 신이 내린 재능이었다.
물론 현재 유서담은 가장 주특기라고도 할 수 있는 개인화기와 마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렇다고는 쳐도 첼레스테가 유서담을 어느 정도 몰아붙였다는 점은 충분히 대단했다.
대체적으로, 무공을 사용하지 않는 자들이 합을 나눌 때에는 굉장히 단조롭고 직설적이었다. 허초가 없으며, 빠르거나 묵직하여 굉장히 패도적인 공세가 주로 나타났다.
둘은 순식간에 거리를 20m나 벌렸다가, 다음 순간 1초만에 서로 부딪치고 있었으며 공중으로 튀어올랐다가 서로의 검을 섞어서 확인한 뒤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고, 거기에 다시 퉁 튀어올라 맞부딪치는 등 무공과는 판이하게 다른 대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검무는 설중연처럼 연꽃이 피어오르거나 하선영처럼 새하얀 섬광이 번쩍이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빠르고 타격감이 있어 보는 사람들을 저도 모르게 흥분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와...
-미쳤네 진짜
-채팅창 왜 마름?
채팅의 비중마저도 줄어들었다. 쉽사리 볼 수 없는 초인들의 화려한 대련에 그만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시청자들은 그제야, 첼레스테가 방송 중에는 힘조절을 해가며 문하생들을 가르쳤단 사실을 깨달았다.
흐읍! 유서담을 향해 찔러 넣은 목검이 비스듬이 흘려내려간다. 목검과 목의 거리는 단 1mm. 그는 미세한 컨트롤으로 첼레스테의 검을 완벽히 비껴낸 것이다.
‘오랜만이야.’
그녀는 문득, 2년 전 그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빠르게, 더 빠르게 강해지고 싶었음에도 강체 능력자라는 한계에 부딪쳐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었을 때 느꼈던 그 상실감, 그 공허함.
그리고 그때, 유서담에게서 배웠던 검술의 묘리.
그에게서 검술이란 단순히 강체 능력의 강력한 힘과 파워로 무식하게 붕붕 휘둘러댄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더 효율적으로, 더 빠르게, 더 강하게 휘두르고 또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존재했던 것이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유서담에게 매달렸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의 검술이 아름다워서, 그리고 그의 검술을 배우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그 의미가 서서히 바뀌었다. 스스로가 강해지고, 더욱 숙련도가 높아질 때마다 유서담에게 자신의 검술을 보이고 싶었다.
‘제가 이만큼 성장했어요.’
그리고, 유서담은 성장한 자신을 볼 때마다 항상 그렇게 말해주고는 했다.
‘많이 나아졌네. 어제보다 훨씬 더.’
그녀는 조금씩, 조금씩, 그 맛으로 살아가기 시작하였다. 평생의 목표였던 방호윈이 사망한 이후에도, 단 한시도 쉬지 않고 검에 매달렸던 이유는 오로지 그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조금은 불안했다.
균열 내부로 떨어진 유서담이 혹시나 다시 돌아오지 못할까봐.
다시는, 그와 검을 맞댈 수 없을까봐.
콰아앙-!!
유서담이 크게 휘두른 검격에 바닥에 커다란 상흔이 남았으나, 첼레스테는 이미 날아오르듯 점프하여 그 자리를 벗어나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가 검을 찔러 넣으면, 전방 5m 거리로 검의 쐐기가 발사되며 유서담이 마음 먹고 검풍을 날리면 도장의 1/4이 뒤흔들렸다.
이제 슬슬 대련이라고 보기에는 위험천만한 수준까지 치닫았지만······ 그 누구도 자제하지 않았다.
즐거웠다.
그 누구보다도 함께 대련하고픈 상대와 가장 좋아하는 검술로 대련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대련할 수 없을까봐 가슴 졸였던 그 사람과 다시 대련할 수 있는 이 현실에.
그 상대가 자신의 강함을 알아봐주고 인정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살아있어.’
그녀는 삶을 느꼈다.
-뭐야
-? 방금 첼레스테 웃은거임?
어떤 채팅이 올라왔으나, 금세 묻히고 말았다. 그 미소는 정말 찰나의 순간에, 잠깐 스쳐지나간 미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웃고 있었다.
유서담과의 대련이 너무나도 즐거워서, 가슴이 벅차올라 웃고 말았다.
···쩌엉!!
이윽고, 목검이 나가떨어진다. 힘이 빠져버린 첼레스테가 목검을 그만 놓쳐버리고 만 것이다. 유서담은 식은땀을 닦아내며, 그녀를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많이 나아졌네. 어제보다 훨씬 더.”
< 나는 쓰레기다(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