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41화 (141/251)

< 너네 헬 게이트 가봤어? 난 가봤는데(2) >

테일러 나인이 다짜고짜 유하람에게 시비를 먼저 거는 것으로 토론회가 시작되자, 일부는 ‘아 저 미친년 또 시작이네’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차라리 잘하고 있다’라는 느낌으로 바라보았다.

그만큼 ‘헬 게이트 원정’이라는 문제는 쉽사리 토론하고 싶은 내용이 아니었으니까.

7년 전의 사건만 해도 그렇다. 당시 헬 게이트 원정에 길드의 핵심이 되는 헌터들을 보냈다가, 그들을 모조리 잃고서 휘청하더니 아예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길드도 있었으며 친한 가족과 친구가 그곳으로 떠났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로스트 데이는 달랐다.

헬 게이트에서 생환해온 몇 안 되는 헌터들이 바로 로스트 데이의 소속이었고, 심지어 내부에서 헌터 ‘라이튼’이 어마어마한 양의 헬 게이트 물질들고서 생환했던 것이다. 세간에는 헬 게이트 물질에 대한 존재가 비밀로 감춰져 있었지만······. 최근,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로스트 데이는 아예 세상에 ‘헬 게이트 물질’을 연구중이란 사실을 밝혔다.

‘그러니까 저놈이 전문가 행세를 하고있는 거겠지.’

예상대로, 유하람은 여유롭게 웃으며 테일러 나인의 시비를 맞받아쳤다.

“하하, 예. 확실히 저 또한 헬 게이트라는 미지의 장소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최근에 밝혔듯, 저희는 예전부터 헬 게이트에 대해 꾸준히 연구를 진행해왔고 상당히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정도가 인류에게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허이구. 남의 물건 빼앗아서 연구해놓고서는 지들 지식인 마냥 행세하는 거냐? 뭐, 너희는 원래 그랬으니까 나도 이해하려고.”

“이런 자리에서 근거없는 비난은 옳지 않습니다.”

“엥? 내가 언제 근거없는 비난 한 적 있나? 항상 팩트로만 때렸는데.”

그런 이유로, 가장 최근 테일러 나인의 별명은 ‘팩트 빠따’였다. 언뜻 언론에 나서서 정치인이고 헌터고 길드 마스터고 가리지 않고 죄다 후두려 패서 테일러도 상당히 욕을 얻어먹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것들이 죄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팩트 폭력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즉, 여기서 테일러가 한 마디씩 툭툭 내뱉는 것은 결코 유하람에게 좋지 않았다. 안 그래도 유명했던 테일러 나인이 공개적으로 인터넷 활동까지 시작하면서 더욱 그 입김이 강해졌으니까.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이 자리에 나와있는 사람들은 전부 내 편이다.’

이내 유하람은 평정심을 되찾고서 미소를 띄웠다.

“토론회에서 그렇게 싸움을 거시는 건 별로 좋지 않다고 봅니다. 테일러 나인 헌터.”

“그러시겠지.”

테일러 나인도 적정 선이라는 걸 지킬 줄은 알았다. 마음 같아서는 더 쏘아 붙이고 싶었지만, 일단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볼 타이밍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유하람은 허공의 스크린에 자료 화면을 띄웠다. 그곳에는 전문 용어로 이루어진 통계와 기하학적인 그래프가 새겨져 있었는데, 솔직히 테일러는 저게 다 뭔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간 헬 게이트 내부는 이공간으로 불리는 장소로서, 균열과 같은 종류의 이상현상으로 취급되었다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그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하람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헬 게이트는 균열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로, 내부에 ‘코어’가 없다는 것이죠. 만약 헬 게이트가 균열이라면 코어를 파괴하는 것으로 문을 닫을 수 있어야만 할 텐데······. 4년 전에 복귀한 조사대 47인에 따르면 코어를 전혀 발견할 수도, 에너지를 추적할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건 단순히 기계의 문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단언하는 건 옳지 않다. 테일러는 유서담의 경험담을 토대로 그리 말하고 싶었으나, 결국 전문적인 주제로 이어지면 자신이 패배할 것을 알기에 입을 다물었다. 테일러 나인은 반드시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고, 질 것 같은 싸움은 굳이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코어는 반드시 존재합니다. 화면을 보시면 최근, 7년 간 헬 게이트의 에너지 변화 추이가 보이실 겁니다. 1년 단위로, 에너지가 서서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내부의 코어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지요.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균열이든, 던전이든. 에너지의 임계치를 넘게 되면, 그 내부에 존재하는 것들이 현실로 튀어나오게 됩니다.”

그리 말한 뒤, 유하람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리고, 던전 및 균열 내부에서 괴수가 현실로 새어나올 경우······ 처치하기 더욱 곤란하다는 사실은 업계 종사자인 여러분들 모두가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현실로 몬스터가 나온다고 해서 딱히 더 강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다만, 현실에는 민간인이 존재한다. 시민들을 보호하며, 재산적 피해를 거의 입지 않고 전쟁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으며 간혹 투명화나 감지 불능의 능력을 가진 괴수가 도시에 풀려버리는 경우에는 아예 계엄령이 걸려서 도시 하나가 마비되는 일도 있었다.

‘저 새끼, 아주 작정을 했군.’

이 자리에 유하람만큼 헬 게이트를 자세히 조사한 사람은 없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아마 그자 역시 유하람의 편을 들어줄 것이다.

‘헬 게이트로 또 누굴 밀어넣으려는 거냐.’

토론회는 인터넷 스트리밍 사이트와 공중파 등을 통해 전 세계로 송출되고 있다. 그래서 유하람은 일부러 민간 피해 등을 언급하며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헬 게이트를 빠르게 봉쇄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예 원정대를 차출하여, 다시금 헬 게이트 내부를 탐사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만약 여기서 거절할 경우··· 심각한 이미지의 타격을 입게 될 터.

무언가, 반박을 해야만 하는데 분위기가 그것을 도저히 허락하지 않았다. 유하람의 말이 끝나는 순간 몇몇 길드 마스터들이 호응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청단의 길드 마스터요. 지원하겠소.”

“루지아오의 마스터입니다. 저희 길드도 전적으로 원정에 찬성하는 바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중국 측의 길드였지만, 그뿐만이 아니라 타국의 길드에서도 조용히 동조하였다.

“레인 킬러 길드입니다. 저 또한 정예 헌터를 차출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블루아이언 길드입니다. 혹시 헌터를 뽑는 기준에 대해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벨벳 길드의 마스터입니다. 저희 길드도 헬 게이트로의 원정에 지원을 하겠습니다.”

줄줄이 의견이 쏟아져 나온다. 믿을 수 없게도, 네임드 길드의 마스터들은 물론 S랭크 헌터 중 절반이나 헬 게이트의 원정에 동조를 해버린 것!

물론 참여 의사를 밝힌다고 모든 길드가 원정에 참여할 수는 없으며 철저한 심사를 거쳐서 정예 팀을 꾸린다고는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미친 새끼들. 아주 짜고 친다고 광고를 해라.’

이 자리에 나와있는 헌터 중 고작 5% 가량이 동의를 했을 뿐이지만, 가장 입김이 쎈 5%라는 게 문제였다. 길드를 등에 업지도 못하는 수준의 A랭크 이하의 헌터들은 아예 입을 다물고서 식은땀을 뻘뻘 흘렸으며, 다른 S랭크 헌터들 역시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조용해졌다.

SS랭크의 헌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하람이 가장 먼저 나서서 저러고 있으니, 섣불리 거절의사를 표했다가는 순식간에 여론에게 질타를 받게 된다.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

‘대체 헬 게이트를 또 건드려서 뭘 하려고······. 아니지, 설마?’

테일러는 문득 어떤 생각이 들어, 설중연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감정이 없는 듯 차가운 눈으로 유하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설중연을 바라보는 수많은 중국 관계자들.

‘원한을 아주 단단히 산 모양인데, 저 아줌마······.’

지난번, 색마 방호윈 사태로 중국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었다. ‘무공의 소유권’이라는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여 안 그래도 욕을 바가지로 처먹었는데, 그들이 받아들였던 ‘무림회향회’가 미국 땅에서 발생한 균열에서 크게 사고를 쳐버렸으니까.

그리고 그 원인의 중심에는 바로 무림맹이 있었다.

그러니까, 즉, 중국은 무림맹이 거슬려서 어떻게든 눈앞에서 치워버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해서, 신 무림맹주님의 의견은 어떠한지 궁금하군요.”

모두의 시선이 설중연에게 집중되자, 테일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일종의 가드 불가 공격이었다.

여기서 만약 거절을 한다?

지구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일에 동조를 하지 않는다며 나무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승낙을 한다?

어떻게든 무림인들을 헬 게이트 내부로 꾸역꾸역 집어넣으려 들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당연히 설중연도 같이 집어넣으려고 할 것이고.

제아무리 무림인이라도 헬 게이트에서는 무사할 수 없다. 그렇다고 거절했다가는 무림맹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이미지’에 크나큰 타격을 입게 될 터. 과연 설중연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저자들의 속내를 알만하구나.’

예상대로 설중연 또한 곤란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헬 게이트라는 장소에 대해서는 유서담에게 아주 가끔 이야기를 듣고는 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한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그 듬직한 사내가 항상 말하기를 ‘지옥보다도 더욱 지옥같은 곳’이라고 하였다.

결코 무림인을 단 한 명이라도 그 안으로 들일 수는 없다. 정말로, 만약에 정말로 헬 게이트가 터져나오는 것이라면 또 모를까······. 결코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니, 설령 맞다고 하더라도 저들의 의도에 넘어갈 수는 없었다. 자신을 향한 순수한 ‘악의’가 피부를 찌를 듯 선명하게 느껴졌으므로.

“민감한 문제니, 고민을 해보고 답하도록 하겠다.”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은 대답을 미루는 것.

그러나 유하람이 그렇게 가만히 두지는 않았다.

“하하, 대답을 보류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이곳은 토론회니까요. 그저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됩니다.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당신의 의견을 궁금해하지 않겠습니까? 무려 지구상 최고의 초인이라는, SSS랭크를 보유하고 계신 분이니까요.”

억지로, 대답을 강요한다.

설중연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지는 장면이 수십 대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실시간으로 설중연을 곤란하게 만드는 유하람의 여론 또한 굉장히 나빠지고 있었으나, 그따위 네티즌들의 의견 따위는 상관없었다.

그저 설중연이 내놓은 ‘공식적인 대답’이 가장 큰 문제가 될 테니까.

‘나 또한 저자를 물고 늘어져야 하는가?’

유하람보고 당신은 왜 헬 게이트에 가지 않느냐며, 역으로 질문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군.’

헌터질보다 정치질에 더 능숙한 저 사내가 그 정도 간단한 반격에 대비를 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아마도 본인은 은근슬쩍 원정대에 참여할 거라는 포지션을 취할 터. 거기에 휩쓸리면, 결국 무림맹 전체가 원정대에 참여하는 꼴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1초, 2초, 3초.

천근 같은 시간이 흐른다. 과거 천마지존으로 지내왔을 시절, 설중연은 정치질에 휩쓸릴 일이 없었다. 그저 말 한 마디 하면, 그것이 곧 법이 되었으니까. 그렇기에 ‘이미지’를 신경써야만 하는 이런 정치질에는 취약했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칼을 빼어들면 당장 유하람의 목을 벨 수는 있겠지만······ 결국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었고, 유서담을 위해서라도 그럴 수는 없었다.

‘···아무리 이미지를 신경쓴다 한들, 서담이 가지 말라고 하였던 장소로 나의 피와 살과도 같은 무림맹원들을 보낼 순 없다.’

유하람과 중국 측의 의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부정적인 스탠스를 취해 이미지를 다소 깎아먹더라도 안전을 추구하는 게 낫다. 어차피 이 정도로는 이미지에 큰 타격이 없다. ···그 이후로, 이번 일을 꼬투리 잡아서 쉴 새 없이 몰아칠 후속타가 더욱 두려울 뿐이지.

“나는······.”

하는 수 없이, 설중연이 입을 열어 의견을 표하려는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떠지며,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그런 행동은 크게 주목을 받지 않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

“저, 저···!”

“저분은······!”

순식간에 카메라가 토론회장의 입구로 집중되었다. 차르르르, 찰칵! 셔터 울리는 소리와 함께 빛이 번쩍이며, 그 가운데서 누군가가 정장 차림으로 미소를 띄운 채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익숙하다 못해, 단 한시라도 잊어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유서담!”

누군가가 설중연을 대신해서 그의 이름을 외쳤고, 그는 그에 답이라도 하려는 듯 손을 들었다. 그러고선 마이크를 건네받으며 말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아, 근데 여기 혹시 지각생은 안 받아줍니까?”

그러나 그 누구도 고개를 젓지 않았다. 평상시였다면 늦은 사람에 대해 입장 제한을 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유서담이 아니던가? 벌써 2달도 더 전에 균열 속으로 실종되었던 화제의 그 헌터가 지금 토론회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특종이다!’

이건 결코 놓칠 수 없는 사안이었다. 사회자가 말했다.

“아닙니다. 들어오시지요. 빈 좌석은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봐야 제가 앉을 곳은 여기밖에 없겠지만요.”

그러면서 유서담은 F랭크 헌터의 좌석에 가서 착석한 뒤, 말했다.

“예. 그래서 지금 무슨 얘기 중이라고 했던가요? 아, 참. 오는 내내 실시간 방송으로 봤습니다. ‘헬 게이트’에 대해서 토론 중이시던데······ 맞지요?”

“그렇습니다. 여기, 전문가를 초빙하여 헬 게이트의 원정에 대해 토론 중이었습니다.”

유서담의 표정이 익살스럽게 구겨졌다.

“전문가? 누구요?”

사회자는 유하람을 가리켰으나 서담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 그렇죠. 저도 중학생 때 ‘예쁜 조약돌 수집 동호회’에 들어서 나름 전문가 소리 들었습니다. 요즘은 자격증이 없어도 본인이 원하기만 한다면 누구든 전문가를 할 수 있으니까요.”

명백히 비아냥대는 어조. 유하람이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답했다.

“예, 맞습니다. 저는 자격증이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헬 게이트 물질을 통해 내부에 대해 조사······.”

“헬 게이트 물질? 그거 제가 가져온 거 아닙니까?”

침묵. 설마 여기서 실종된 줄로만 알았던 유서담이 등장할 줄은 몰랐기에 유하람의 포커 페이스가 살짝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래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헬 게이트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였고, 그곳의 위험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유서담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당신, 헬 게이트 가봤습니까?”

그렇게 물은 뒤.

“저는 가봤는데요.”

이렇게 덧붙인다.

그것으로 사실상 ‘전문가’가 누구냐에 대한 논란은 종결되었다.

< 너네 헬 게이트 가봤어? 난 가봤는데(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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