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망한 세계에서 나 홀로(3) >
지하철의 생존자는 총 70명과 113마리였다.
“···113, 마리?”
뭔가 불쾌한 단어에 서담이 눈썹을 꿈틀대자,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이 생존자 그룹의 리더가 다급히 말했다.
“예? 예에···. 식용 인간들입니다.”
와우. 유서담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아포칼립스에서 식인이 흔하다지만, 아예 양식장을 차렸을 줄은 몰랐으니까. 거기에 당연하게도 인간 취급조차 안해주는 꼬락서니라니.
그는 그 점에 대해 딱히 지적을 하지는 않았다. 반응을 보아하니 이곳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인 것으로 보였으니, 귀찮아지기만 할 뿐이다.
“됐고. ‘김하수’에 대해 아는 건 있나?”
현재 70인의 식인종 집단은 모조리 바닥을 뒹굴고 있었는데, 죄다 팔다리가 사방으로 자유분방하게 꺾인 채였다. 병원에 간다면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이겠지만···. 멸망한 세계에서 전문 의사를 기대할 수는 없으므로, 저들은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할 것이다.
“기, 김하수라면···. 이 와중에도 군대놀이 하겠답시며 ‘예런도’에서 설치는 놈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군대놀이?”
“그렇습니다! 예에, 예런도라는 섬 하나를 통째로 요새화해버린 미친놈입니다. 각성 능력이 황금마차였나 뭐였나···. 하여튼 허공에서 물건을 휙휙 꺼내는 놈인데, 아예 무장집단을 만들어 버렸다죠.”
리더는 팔다리가 비틀린 고통 속에서도 식은땀을 흘려가며 이를 악물고서 대답을 해주었다. 그래야만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조금이라도 더 늘어날 테니까.
‘괴물같은 새끼!’
리더 또한 육체강화 계열의 각성자로서, 어마어마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었건만 저 남자에게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가 휘두르는 주먹은 눈으로 쫓을 수도 없었고, 팔다리가 모두 부러지고 나서야 자신이 바닥을 뒹굴고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요새라···.”
유서담은 ‘김하수’라는 인물에 대해 상상해보았다.
황금마차라는 별명을 가진 ‘상점창’의 이능력. 그 능력은 섬 하나를 통째로 요새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무한정 물량이 보급된다고 한다. 아마도 세계의 ‘개연성’을 가져다 쓰는 덕분에 그런 게 가능했겠지.
아마 김하수가 여태 만나왔던 주인공과 별반 다르지 않다면, 그는 상점에서 나오는 무한대의 보급품을 주변에 베풀지는 않을 것이다. 독점체제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유서담 자신이었어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
다만, 죽이기가 상당히 까다로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걱정일 뿐.
‘상점의 능력을 가진 대신, 신체 능력은 평범할 수도 있어. 레벨이 200대인 건 장비로 무장을 해서 그렇겠지. 놈이 만든 요새도 이 세계에서는 결국 레벨에 일부 포함될 테니까.’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시대.
이곳은 괴물로 득시글거렸고, 언제 어디서 죽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즉, 그냥 다짜고짜 가서 총으로 쏴갈겨서 죽여도 ‘개연성’에 어긋나지는 않는단 의미. 로맨스 판타지 때처럼 회귀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로 뛰어다니는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만나서 일대일로 전투를 할 수만 있다면, 그냥 싸워서 죽이는 것도 가능은 하겠군.’
다만, 레벨 차이가 무려 50이나 난다. 패배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만 한다.
‘그건 일단 김하수를 보고 나서 고민해도 늦지 않아.’
사색을 끝마친 유서담은 리더에게 물었다.
“김하수와 만날 방법은?”
“어, 어지간해선 힘들겁니다요. 그, 그 새끼들 저희가 가서 받아달라고 했을 때도 돌아가라고 총 겨누고 협박하는데, 개새끼들···.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협박이라고? 골때리네 이거. 다른 방법은 뭐 없나?”
“그, 글쎄요···?”
유서담이 오른발을 치켜들자, 리더가 황급히 아무 말이나 주워섬겼다.
“그, 그럼 차라리 다른 생존자 그룹에 가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아, 그래! 바로 근처 문화백화점에 꽤 큰 그룹이 있는데··· 거기는 김하수 그룹과 교류를 한다고 들었습니다요!”
“지도.”
“네?”
“거기로 가는 지도, 내놓으라고.”
“아, 네, 넵!”
역시 폭력은 인간의 두뇌를 빠르게 회전시키도록 할 수 있는 최고의 버프였다.
지도를 받아든 유서담은 턱을 짚고서 고민하였다. 거리는 꽤 되었지만, 며칠 행군을 하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백화점이라······.’
지하철 그룹과는 교류하지 않고, 백화점 그룹과는 교류를 한다.
어째서 그러는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문화백화점에 먼저 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생각의 정리를 끝내자, 지하철의 플랫폼을 돌던 아라셀리가 돌아왔다.
“교수님. 잡혀있던 생존자들을 전부 구출했어요.”
주위를 둘러보니 잔뜩 지치고 굶은 티가 역력한 지저분한 인간들이 이쪽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자 약탈자들이 바닥에 뒤집어 누운 상태에서도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고생했어.”
유서담은 아라셀리를 칭찬하였지만,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녀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만 가자. 갈 데가 있다.”
“네? 저분들은요?”
“우리가 데리고 돌아다닐 수는 없어.”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너도 알고 있잖아.”
“······.”
앞으로 유서담과 아라셀리는 갈 길이 멀었다. 괴수를 해치우며 은밀하고 신속하게 이동해야만 하는데, 가는 동안 몇 날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며 식량도 부족하다. 심지어, 그들은 어디 한 장소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목표를 이루고서 떠날 예정이지 않던가.
“식량이 될 뻔한 걸 구해준 것만으로도 네 역할은 끝이야. 이제 저들은 각자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해.”
“네···.”
그리 말한 뒤 유서담은 망설임 없이 일어섰고, 뒤로 아라셀리가 뒤따랐다.
가장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유서담이 사라지자 잡혀있던 생존자들은 슬금슬금 약탈자들에게 다가갔다.
그 뒤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는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뻔할 것이다.
“이 개자식··· 네가 내 아들을 잡아먹어···?”
“끄아아악! 사, 살려! 살려줘어어어!”
“죽어! 죽어! 죽으라고! 이 새끼야!”
“네가 그랬지? 내 팔은 살점이 없어서 더럽게 맛없었다고! 네 뱃살은 기름져서 아주 맛있겠는데 그래!”
“제발, 으아아악! 아, 안 돼에에!!”
멀찍이서 들려오는 끔찍한 비명에 아라셀리는 귀를 틀어막았다.
*
멸망한 세계에서의 이동은 신속한 것보다도 은밀함이 더 중요했다. 괴물들에게 위치가 발각되어, 큰 소음이 나거나 혈흔을 흩뿌리기라도 하면 다른 괴물들이 몰려드는 건 당연했기 때문이다.
가끔은 지축을 쿵쿵 울려대며 A랭크 수준의 괴물들이 돌아다니고는 했는데, 그런 놈들은 최대한 피해 다녀야만 했다. 단칼에 베어 죽이지 못한다면, 결국 괴물떼에게 휘말리고 만다. 마법을 사용한다면 좋겠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기에 아라셀리의 마력은 최대한 아끼기로 했다.
“이걸 써봐.”
유서담은 지하철에서 나오는 김에 권총과 소총 몇 자루를 챙겨 나왔다. 멸망한 세계에서는 구하기도 힘들다는 소음기까지 장착하고서 아라셀리에게 쥐여주어 사격 연습을 시켰다.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총이 어디 쉽게 다룰 수 있는 것이던가.
그래도 그는 꽤 성심성의껏 가르쳤다. 견착부터 시작해서 숨참기나 조준법 등. 전문적인 기술은 필요없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푝!
-크워어어······.
“오···?”
간단한 조준법을 배우고 나자, 그녀는 놀라우리만치 뛰어난 사격솜씨를 자랑하였다. 움직이는 것을 맞추진 못하였지만 정적인 대상을 한정으로는 상당히 정확한 명중력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괴수가 쓰러지는 것을 보며 아라셀리가 ‘저 잘했죠?’라는 표정을 지어서 서담은 칭찬해주었다.
“어떻게 그리 잘 쏴? 처음 만져보는 거 아냐?”
“잘···모르겠어요. 그냥 느낌으로. 막, 느낌. 알죠?”
“모르겠는데···?”
저것도 대마법사의 능력일까 생각하며 서담은 피식 웃었다. 사실 뭐, 총은 방아쇠만 당길 줄 알면 충분히 1인분은 한다. 거기에 잘쏘기까지 하면 금상첨화고.
아라셀리가 전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자 행군은 더욱 수월해졌다.
쏴아아아···!!
이 세계의 장마철은 때늦은 초겨울에 오기라도 하는 것인지, 하루 왠종일 비가 내렸다. 그러한 환경에서 일주일 넘도록 행군을 지속하자 아라셀리도 슬슬 지쳐가는 게 눈에 보였다.
그녀가 말하길, 신체 나이 열아홉이 되던 해부터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로는 꽤 억센 체력과 탄탄한 근육을 얻었다고 했는데, ‘시간의 파편’에 노출되며 자꾸만 어려지는 바람에 체력 또한 증발해버렸다고 했다.
“이전에··· 제 나이를 스물 중반으로 돌려주셨잖아요. 그거 또 안 될까요?”
사실, 나도 어떻게 했는지 모른다. 내가 손을 대자 의뢰인이 알아서 나이를 돌려놓았을 뿐. 그래서 의뢰인에게 또 부탁하려고 했으나.
<불가능합니다.>
‘뭐? 왜?’
<그 당시에는 원래의 나이, 즉 영혼과 신체를 모두 포함한 ‘육신의 나이’가 스물 초중반이었기에 시간의 파편을 치워내서 되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럼 지금은 아니란 소리야?’
갑자기 나이가 어려지지 않고서여 그럴 일은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의뢰인이 긍정을 하였다.
<예. 지금은 그 육신의 나이가 열일곱에서 열여덟 정도로 보이는군요. 즉, 저게 원래의 모습입니다.>
‘그럴 리가···. 아라셀리는 나와 거의 동갑이거나 더 나이가 많을 수도 있을 텐데?’
그녀가 9써클을 달성하는 건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최소 10년이 지난 이후라고 알고있다. 그러니까 차원 이동을 시작한 지금은 육신의 나이가 30살이 넘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소리.
그런데, 열일곱에서 열여덟이라니? 그건 아카데미 재학 시절의 나이였다.
<네···. 저도 그 점이 의문이었는데, 이제 확실히 알겠습니다. 유서담, 당신은 차원을 여행하는 대가로 ‘개연성’을 바칩니다. 그게 없다면 수명을 바치죠.>
‘그렇지.’
<그녀 또한 마찬가지로, 대가를 바칩니다. 다만 수명이 아닌, ‘나이’를 바치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뭐라고?’
내가 당황하자, 의뢰인이 덧붙였다.
<다행인 점은······. 수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즉, 차원 여행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나이를 바친다면 영생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죠. 긍정적인 효과도 있으나···. 당장은 나이가 어린 탓에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기가 어렵다는 단점도 있군요.>
9써클의 마법을 제대로 발동하기 힘든 건 물론이요, 열아홉 이후부터 수행하기 시작한 대인호신술 역시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고 체력 또한 평범한 소녀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
“왜 그러세요?”
아라셀리는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았다.
시간의 파편은 단순히 나이를 뒤죽박죽 섞는 데에 그친다. 그 탓에, 아라셀리는 여태 자신이 무엇을 대가로 여행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아라셀리를······ 지구로 데려갈 수는 없어? 더 이상 여행을 그만두도록 하고 싶어.’
<지금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당신이 수명을 100만 일 이상 모은다면 또 모를까. 그녀가 지금 지구로 향했다가는, 아예 존재 자체가 소멸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라셀리의 차원 여행은 ‘뗏목’이라고 한다. 잔잔한 호숫가를 떠다니며, 반대편의 뭍으로 이동할 수 있는 수준의 차원 여행.
그러나 의뢰인의 차원여행은 ‘초고속 제트기’였다. 지형지물에 구애받지 않고서 재빠르게 어디든, 그것이 설령 지구 반대편이라고 할지라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기술력.
“아라셀리.”
“네?”
“너··· 나를 쫓아다니면서, 얼마나 차원을 여행한 거야?”
“그을쎄요···. 열 번은 넘은 거 같은데.”
대충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보니, 아무래도 한 번의 차원 이동에 1년의 나이를 사용하는 모양.
나는 천천히 심호흡하고서, 그녀에게 말했다.
“너, 원래의 나이로 못 돌아가.”
“네?”
“차원을 여행할 때마다 1년의 나이를 사용하고 있어.”
아라셀리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의뢰인의 말을 그대로 전달하였다.
지금 너는 나이를 사용하며 여행을 하고있는 것이라고.
원래의 나이로 돌아갈 수 없다고.
그러나 그녀는 그런 설명을 듣고도 담담한 표정으로.
“그럼······.”
오히려 활짝 웃으며, 그런 말을 한다.
“조금 더 오랫동안 교수님이랑 여행할 수 있겠네요. 어쩌면, 영원히.”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진 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얘가 지금 무슨 소릴 한 거지? 아라셀리는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녀가 충격을 받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모르겠다. 나는 죄책감이 들어서 자꾸만 가슴 한켠이 무거워지는데.
“이런 것도··· 나쁘지 않아요. 낯선 세계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방금처럼 끔찍한 일도 겪겠지만 저번의 세계에서처럼 행복하고 기쁜 일도 있잖아요. 이런 행군은··· 으음, 너무 지치고 힘들지만 그래도 좋아요. 교수님이 함께잖아요.”
“······.”
여전히 소나기가 억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말 없이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빗물에 젖어 축축했지만, 아라셀리의 머리는 따스하고 포근했다.
“그래···. 그래도, 나중에 꼭 너를 지구로 데려가줄게.”
“네!”
많이 지치고 힘들었을 아라셀리였지만,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멸망한 세계에서 나 홀로(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