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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32화 (132/251)

< 멸망한 세계에서 나 홀로(2) >

아라셀리가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뒤였다. 유서담 또한 이틀이나 기절해 있었으니, 둘이 나란히 이틀을 잠들어있던 셈이 되겠다.

“으음······.”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지만, 아라셀리는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마도비역학의 제4 법칙을 알아내기 위해 밤낮 새워가며 연구했을 때보다도 더욱 힘들었다.

“깼어?”

“···교수님.”

유서담이 쪼그려 앉아서, 접시를 내밀었다. 따스한 스프가 들어있는 접시였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정신이 확 깬 아라셀리는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괜찮아지신 건가요?”

“내가 할 소린데. 몸은 이제 괜찮고? 너··· 이계에서 마력 없으면 숨도 못 쉬는 주제에, 무슨 깡으로 마력을 그렇게 쏟아부은 거야?”

“저는 괜찮아요!”

그릇을 받아든 아라셀리는 그제야 자신이 낯선 옷을 입고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피도 깔끔하게 닦여있었고, 말끔한 속옷도 입은 채였다. 유서담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염의 위험도 있고 해서 좀 닦았는데···. 그리고 또 춥잖아.”

“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살면서 외간남자에게 몸을 내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내 상대방이 유서담이라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서서히 미소를 띠고 말았다.

“으응, 상관없어요.”

“그···래?”

“네! 교수님이잖아요.”

그게 상관없는 거랑 관계가 있나? 유서담이 그런 생각을 할때 아라셀리는 스프를 떠먹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음식을 챙겨먹기도 힘들었던 아라셀리에게 있어서, 이 스프는 진수성찬이나 마찬가지였기에 호호 불면서 굉장히 천천히 아껴먹었다.

그녀가 식사를 하기 시작하는 것까지 확인한 유서담은 천천히 걸어서 난간으로 향했다. 아라셀리는 안전을 위해 높은 건물의 고층에 자리를 잡았었는데, 그것은 꽤 현명한 판단이었는지 이틀간 서담 또한 거처를 옮기지는 않았다.

쏴아아···!!

소나기가 쏟아져 내린다.

유서담은 가만히 난간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멸망한 세계에서 나 홀로 상점창』

#아포칼립스 #생존주의 #각성자

#사이다지향 #상점창

죽어버린 세계였다.

지구와 닮은 회색빛의 고층 건물들은 뼈대밖에 남지 않아 위태롭게 기우뚱거렸다. 바닥에는 찢어진 간판이나 전단지 따위가 소나기에 젖고 있다. 붉은색 스프레이로 적힌 ‘세상에 종말이 찾아왔다!’라는 글자는 이제 거의 다 지워진 상태였지만, 그 안에 담긴 절망은 지워지지 않은 채 생생히 전달되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땐, 멸망해버린 지구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아주 다행스럽게도 이곳은 지구가 아니었다. 그저, 과학기술과 문명이 비슷하게 발달한 또다른 세계라고 하였다.

[당신의 수명: 1978일 6시간 49분]

방호윈을 사냥하느라 굉장히 많은 수명을 소모하고 말았다. 여전히 많다고 볼 수 있었으나··· 지구로 돌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명이다.

[201레벨의 주인공 ‘김하수’의 세계, ‘적막한 도시 카르탄’]

즉, 돌아가기 위해서는 김하수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을 찾아내 사냥해야만 했다.

“교수님.”

멍하니 도시를 보고 있자니, 아라셀리가 다가와 서담의 소매를 붙잡았다.

“다 먹었어?”

“네···. 식량은 어디서 구하셨어요?”

“아공간 비슷한 곳에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편이라서.”

“···아공간을 이계에서도 사용할 수 있으세요?”

“너는 안 돼?”

“저는 옷 한 벌도 제대로 못 들고 오는걸요. 그나마 교수님이 주셨던 이 총알 정도밖에는······.”

아라셀리는 그리 말하며 목에 걸려있는 총알을 어루만졌다. 유서담은 어쩐지 죄책감이 들었다. 그냥 툭 털고 잊어버리라며 대충 던져주고 온 총알을 저렇게나 소중하게 간직할 줄이야.

“더 좋은 거로 바꿔줄까? 비싸고 효과도 좋은 총알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아뇨!”

그녀는 저도 모르게 딱 잘라서 즉답하고 말았다. 뒤이어 유서담이 당황한 것을 보고서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그, ···저는 이게 좋아요. 교수님이 저한테 처음 주신 선물이잖아요.”

“그러냐.”

그 뒤로 유서담이 침묵하자, 아라셀리는 그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녀는 지구와 비슷한 이런 문명이 처음이다. 온통 회색빛 고층 빌딩이 가득한 세계. 쏟아지는 소나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유서담이 손가락으로 저 멀리 어느 건물을 가리켰다.

“저거, 보여?”

“······아.”

유서담이 가리킨 옥상에, 거대한 ‘괴물’이 있었다.

그건 달리 칭할만한 단어가 없었다. 그저 괴물이라고밖에는.

마치 거대한 지렁이처럼 보이기도 했고, 액체괴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허나 중요한 외관을 하나 묘사하자면, 선명하리만치 또렷한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역겨운 몸체에 사람의 얼굴이라니. 믿을 수 없을만큼 끔찍한 형태였다.

“저게 대체······.”

그 인간형 얼굴을 가진 괴물은, 비율에 맞지 않게도 어마어마한 크기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한치의 움직임도 없이.

이곳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걱정마. 저건 시력이 없어.”

“네, 네? 그걸 어떻게 아세요? 저걸 본적 있으신가요?”

“아니.”

유서담이라고 모든 괴물을 알지는 못한다. 하물며 이계의 괴물이라고 해서 완벽하게 통달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일평생을 괴물과 싸워왔고, 생김새만으로도 그들이 가진 특징을 파악할 수는 있었다.

“아마 저건 어두운 곳에서 살던 놈일 거야. 앞을 보기 위해 눈이 진화되다가 저렇게 된 거겠지. 결과적으로 그런 경우에는 대부분 실패한 진화야. 어두운 곳에서는 청각을 진화시킨 괴물이 생존에 적합하거든. 저건··· 진화에 실패하고서 어둠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개체야.”

“그럼 어떻게 여기를······.”

“진동으로 파악했을 거야.”

“···그게, 가능해요?”

최소 5km는 떨어진 건물의 옥상에 착 달라붙어 있는 저 괴물이, 이쪽의 진동을 파악했다고? 심지어 소나기가 내리는 이 날씨에?

“괴물들은 원래 그래. 아무튼, 오늘 여기를 떠야 해. 어제는 저것보다 더 멀리 있었어. 조금씩이지만 건물을 이동하고 있는 거야.”

저 괴물의 추정 랭크는 최소 S. 즉, S랭크의 괴물이 생존경쟁에서 쫓겨나 도심지로 나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고 있을 정도로 이곳은 위험했다.

뒤돌아 짐을 정리하며 유서담은 생각했다.

‘만약, 지구가 괴물들과의 전쟁에서 졌다면······.’

그렇다면 지구도 이 세계와 똑같은 모습이 되지 않았을까?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

“다른 생존자가 있을 거야.”

예상대로 도시의 거리에는 온통 괴물들로 가득했다. 판초우의를 뒤집어 쓴 채로 조심히 이동하며, 둘은 대화를 나누었다. 어지간해선 소리를 질러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나기가 심했으나 둘 다 초인적인 청각을 갖추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근처를 둘러봤는데, 식량이 몽땅 털려있었어. 전쟁이 끝난 후에도 생존자들이 살아남으려고 한동안 발버둥을 쳤다는 증거겠지. 시간은 상당히 흐른 것 같지만···. 만약 살아있다면 생존자들이 집단을 만들었을 거야.”

“아···!”

집단이라는 말에 아라셀리의 표정이 해맑아졌으나, 유서담은 그렇지 못했다.

멸망한 세계에서의 집단은 질서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법의 규정에서 벗어난 무질서의 왕국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즉, 약탈자일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

힘을 가진 놈들이 지배자가 되며, 식량을 가진 놈들이 곧 법이 된다.

오히려 괴물보다 집단을 이룬 약탈자들이 더욱 위험할 수도 있는 세계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괴물이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서걱! 유서담이 가볍게 검을 휘둘러 달려들던 괴물늑대의 목을 소리조차 없이 잘라내버리자 아라셀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 보니··· 교수님은 마법사가 아니셨던가.’

마법학의 교수였기에 그를 존경하였는데, 알고 보니 마법사가 아니란다. 하지만 그는 복합적이고 다각적인 면에서 ‘교수’라고 부를만 했고, 또 그렇게 부르고 싶었기에 여전히 교수라는 호칭을 버리지는 않았다.

‘교수님은 교수님이니까.’

아라셀리는 그리 생각하며 유서담의 뒤를 바짝 쫓았다.

“지하철의 입구다.”

“지하철? 마법철도와 비슷한 건가요?”

비비안타 제국에서는 그런 호칭으로 불렸던가. 몇 년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 했지만 유서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와는 다르지만 비슷한 언어로 쓰여있는 팻말을 보며 조심스레 지하로 진입하자, 몇몇 괴물떼가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그것들이 채 달려들기도 전에 소음기를 장착한 윈체스터에 의해 머리에 바람구멍이 나버렸다. 이후 천천히 안쪽으로 진입하여 안전을 확인한 뒤 아라셀리에게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현재 그녀의 체내 마력량은 5%가량. 지구보다도 더욱 자연 마력량이 희미한 이곳에서 그녀의 마력을 제대로 채워주기란 까다로운 일이었기에 최대한 전투는 유서담이 담당하기로 하였다.

판초우의를 벗고서 지하 선로를 따라 이동한다. 아라셀리는 끔찍한 형태로 죽어있는 괴물들의 시체를 보고서 표정을 찡그렸다.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단 한 발에 죽이신 거에요?”

“급소를 맞췄으니까.”

“그걸 전부 꿰뚫고 계세요?”

“어지간해선.”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유서담은 윈체스터로 전방을 경계하며 물었다.

“평소에 이런 괴물들이랑 마주친 적 없어?”

“으음, 고향에는 거의 없었어요. 제가 대적했던 건 악마대군이었는데···. 그놈들은 머리가 인간보다 월등히 좋았고, 그래서 보다 악랄한 방법으로 저희를 괴롭혔거든요.”

그래서 아라셀리는 악마보다 뛰어난 두뇌를 굴렸고, 모든 악마대군을 물리는 것으로 세상의 영웅이 되었다.

“다른 세계를 여행할 때도···. 애초에 괴물은 항상 피해다녔어요. 가끔 만나더라도 마력을 쏟아부어서 때려눕혔구요.”

새삼 하는 말이지만, 아라셀리는 전투 마법사가 아니다. 오히려 뛰어난 학자에 가까웠는데 9써클의 위대한 대마법사였기 때문에 어지간한 전투직보다도 월등히 강한 힘을 낼 수 있었을 뿐이다.

사람을 상대하기 위한 호신술 정도는 익혔지만, 그것으로 괴물을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 항상 상대방을 압도적인 마력으로 찍어누르던 아라셀리에게 마력이 부족해진다면······. 괴물과의 전투 경험이 적은 그녀로서는 상당히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 그런데, 이런 지하로는 왜 가는 거예요?”

“생존자들이 있을 법한 곳을 뒤지는 중이야. 누구를 찾아야 하거든.”

“···그, 누구라는 게. 이쪽 세상의 원천을 모조리 흡수하는 자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말에 서담은 고개를 돌려 그녀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언뜻, 티끌 하나 묻지 않은 듯 순수해보이는 그 푸른색 눈동자에는 짙은 현명함이 담겨있었다.

“맞아.”

유서담이 짧게 답했고, 아라셀리는 더 묻지 않았다.

그렇게 둘은 말없이 괴물을 치워가며 지하철로를 한참이나 걸었고, 저 멀리 잡동사니로 인해 가로막힌 길을 발견하였다. 막다른 길이라며 아라셀리가 말하려는데, 유서담이 양팔을 들어올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대충 항복했다는 시늉만 보여줘.”

“네?”

직후, 멀찍이서 누군가가 외쳤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쓰러진 지하철과 각종 고물로 틀어막힌 그 길에는 아주 자그마한 틈새가 있었는데, 문으로 추정되었다. 아마도 괴물들을 막기 위한 바리케이트였던 모양이다.

“사람이다. 지나가던 방랑자인데, 식량을 구하고 싶어서 왔다.”

물론 식량은 인벤토리에 아직 넉넉했지만, 일부로 거짓말을 했다. ‘길 좀 묻겠소’라고 해봐야 저들이 솔직히 대답해줄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너와 거래할 건 없다! 썩 꺼져···아니, 잠깐. 가까이 와봐. 빨리!”

“뭘 믿고?”

“머리에 바람구멍이 나기 싫다면 그러는 게 좋을 텐데?”

총알을 아무리 갈겨대봐야 쉽사리 뚫릴 정도로 둘의 신체 내구도가 약하지도 않을 뿐더러, 심지어 마음만 먹으면 단발로 쏴갈기는 총알 정도는 튕겨내는 것도 가능했기에 우스운 말이었지만 일단은 시키는 대로 하였다.

유서담과 아라셀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전등이 켜지며 둘의 얼굴을 비췄다. 그제야 아라셀리는 바리케이트 너머에 남자가 여럿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야 저거. 내가 잘못 본 거야? 굉장한 상등품인데? 나 저런 건 처음 봤어.’

‘요즘에도 저런 게 야생에 남아있다니···.’

‘이건 무조건 낚아채야돼. 잘만하면 대장한테 보너스 좀 받겠는데?’

‘빨리 들여보내자고!’

저들은 끼리끼리 조용히 쑥덕거리더니, 이윽고는 아까 그놈이 다시 총을 삐죽 세우고서는 외쳤다.

“들어와!”

끼기기깅, 소리를 내며 쓰러진 지하철의 문이 열린다. 그곳으로 들어가자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총기로 무장한 사내 네 명이 있었다. 그러나, 총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였기에 척 보자마자 유서담은 그들의 무장상태를 파악하였다.

‘구경은··· 5.56mm을 쓰는 건가. 총은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초반의 지구와 비슷한 수준이고.’

이윽고는 마력을 살짝 흩뿌려, 기운을 확인한다. 네 명의 사내 중 한 명은 D랭크 수준의 ‘에테르’를 보유하고 있었다. 즉, 지구와 똑같은 방식의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

‘저게 그 각성자인지 뭔지하는 놈이겠고.’

D랭크의 각성자가 네 명 중에서는 가장 리더격이었는지, 총구를 들이밀며 유서담에게 다가왔다. 아니, 정확히는 아라셀리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채였다.

“식량 거래라. 우리가 뭘로 거래를 하는진 알고 왔겠지?”

“글쎄.”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

그러면서 그는 총구로 아라셀리를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혈색이 좋고 기름이 좔좔 흐르는 게, 아주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여자도 화폐로 쓰이기에는 아주 훌륭하지. 어리고, 예쁠수록 가치가 높다. 이 정도면······ 멸망 전의 슈퍼스타를 데려와도 얘한테는 안 되겠는데? 크크, 축하한다. 이걸로 거래를 한다면 네놈은 적어도 굶어죽을 일은 없겠군. 그 ‘식량’이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말에 유서담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표정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증거였으나, 그 위험징조를 알지 못하는 그놈들은 아라셀리를 향해 슬그머니 몰려들었다.

“교수님···.”

아라셀리가 그를 불렀다. 겁을 지레 먹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유서담은 그녀의 표정을 힐끗 쳐다보았는데, 싸늘하게 물든 그 얼굴에서는 벌써부터 살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유서담조차 가슴이 서늘해질 정도로.

즉, 그 눈빛은 ‘이 새끼들 조져도 돼요?’라고 묻는 눈빛이었다. 유서담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걸 허락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그러나 그가 딱히 수락의 신호를 내리기도 전에, 저들이 알아서 나서주었다.

“워워, 꼬마야. 겁먹지는 말라고. 대장에게 데려가기 전에 우리가 잠깐 품질 검사를-”

그는 그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푸슉!!

그대로 혀가 뽑혔기 때문에.

“억, 엑···?”

자신의 혀가 뽑혔단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놈은 피를 꺽꺽 흘려대며 뒤로 나자빠졌다. 그러고선 뒤늦게, 평생 칼 한 번 쥐어본 적도 없었을 것처럼 생긴 그 소녀가 자신의 혓바닥을 쥐고서 싸늘하게 웃고있단 사실을 깨닫는다.

“뭐, 뭐야 이 새끼···!”

다급히 다른 놈들이 총을 겨누어 발사하려고 했으나, 탈칵거리며 탄환이 나가질 않았다. 황급히 자신들의 총을 살펴보니, 탄알집이 전부 제거된 채였다.

‘어라? 어···디에···?’

고개를 돌려보니, 아무런 무장조차 하지 않아서 만만하게만 보였던 유서담이 세 개의 탄알집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건 역시 내가 살던 세계랑 똑같네.”

언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틈은 없었다.

우두두둑, 불쾌한 마찰음과 함께 발목이 죄다 돌아가버렸기 때문.

목을 쿡 찍어서 소리조차 지를 수 없게 만든 유서담은 네 명의 사지를 전부 분질러놓았다.

“크, 우우욱!!”

“아프냐?”

네 명의 사내놈들은 윤기가 좔좔 흐르고, 기름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서담은 전쟁터에서 저런 얼굴을 가진 놈들을 꽤 자주 마주쳐왔다. 먹을 게 부족한 세상에서 기름진 얼굴이 의미하는 건 단 하나밖에 없었다.

‘식인종.’

사실 식인종이라고 해서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만 않는다면 딱히 건들 이유는 없었다. 멸망한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무엇이든 못하랴. 하지만 아라셀리를 건들려고 한 것이 문제였다.

‘조용히 김하수에 대한 정보만 얻어서 가려고 했더니만···.’

역시, 멸망한 세계에서 그런 게 쉽게 될 리가 없었다.

유서담은 바닥에 쓰러져서 꿈틀대는 그들의 뺨을 툭툭 치며 말했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네 발로 기어서, 네 대장에게 나를 안내한다. 그러면 혹시 알아? 내가 살려줄지도 모르지.”

끄덕끄덕! 필사적으로 고개를 위아래로 흔든 D랭크의 각성자는 이를 악물고서 생각했다.

‘대장은 우리와 달리 진짜 초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거기에 가는 순간, 너희들은 전부 죽은 목숨이다!’

그렇게 30분이 지났고.

지하철 생존자 그룹의 대장 역시 곧 유서담의 앞에서 네 발로 기어다니게 되었다.

< 멸망한 세계에서 나 홀로(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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