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마(色魔) 방호윈(6) >
방호윈의 이마에 핏줄이 솟아올랐다. 유서담. 번번이 방해를 해댄다. 거슬릴 줄은 알았으니, 더 빨리 죽여놓았어야 했는데.
“이깟······!”
그림자를 무시한 채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갑작스레 알 수 없는 기운이 그의 몸을 힘껏 끌어당겼다. 마치 중력처럼.
“또 수상한 사술을 쓰는구나!”
힘껏 발바닥을 굴러, 내공을 발산하여 그림자를 떼어내려고 했으나.
‘···무슨!’
그림자는 강력한 마력으로 얽혀, 쉽사리 찢어지지도 않았다.
그렇다.
무려 육 개월이나, 이 순간만을 위해서 준비한 마법이다. 쉽게 찢어져서야 매너가 아니다. 당연하지만 현경의 고수를 오래 붙잡아둘 수는 없는 노릇. 설중연의 경우에는 마음을 먹으면 10초 만에 찢어버릴 수 있었으나······. 현재의 방호윈은 그렇게 섬세하지 못하며, 심지어 꽤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거기에, 그림자를 찢기 위한 동작을 취하면 어디 유서담이 가만히 있겠는가?
“···그래. 잘 알겠군.”
번뜩! 방호윈이 살벌하게 눈을 뜨자, 사방으로 내공이 휘몰아쳤다.
“네 목을 따버리면, 이 귀찮은 그림자도 끊어지겠지!”
그리 외치며 방호윈이 돌진하였으나, 유서담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잽싸게 기척을 파악한다. 그리 멀리 도망치지 못했다. 다리를 힘껏 들어서 내려찍자, 유서담이 서있었을 그 자리가 반으로 쪼개졌지만 아주 살짝 아쉽게도 빗나가고 말았다.
빠직, 방호윈이 이를 거세게 깨물었다.
이건 어른과 어린아이의 싸움보다도 더욱 체격 차이가 심했다. 주먹을 휘두르면 당연히 맞고서 나가 떨어져야 한단 말이다. 그런데, 저 쥐새끼보다 못한 놈이 자꾸만 자신의 공격에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내가 아무리 한쪽 팔이 없거니와, 네까짓 놈 하나를 못잡겠느냐!”
하는 수 없이 남아있는 내공을 모조리 끌어올린 방호윈은 어마어마한 속력을 내어 유서담을 추격하였다. 휙휙, 주변의 사물이 뒤로 스쳐지나간다. 설마 이렇게까지 빨리 따라올 줄은 몰랐는지 유서담의 눈이 크게 떠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방호윈의 주먹이 그의 복부를 세게 후렸다.
쩌엉······!!
그러나, 아이템 스킬 [광휘의 방벽]이 발동되며 새하얀 빛이 터져나오더니 충격으로부터 유서담을 완전히 보호하였다. 단 1회지만, 공격을 막아낸 덕분에 유서담은 바닥을 구르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분명히 유서담은 상당히 빠른 속도를 갖추고 있었다. 부츠의 스킬 덕분에 공중에서도 최소 한 번 이상 방향을 꺾을 수 있었으며, 순간적인 분사 속도 덕분에 SS랭크의 강체 능력자 못지않는 속도를 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현경의 고수를 상대로는 결국 치타와 푸들의 달리기 경주였다.
빠직!
“크으으윽!!”
방호윈이 유서담의 발을 걷어차자, 뼈가 부러지며 나가떨어졌다. 황급히 검을 휘두르려고 했으나 허공에 빗나가며, 손목이 으깨진다. 이윽고 복부에 강력한 충격이 들이닥치자 순간적으로 유서담의 의식이 꺼지고 말았다.
“커헉···!”
역시, 현경의 고수를 상대로 단 몇 분이라도 버티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미 치명상이 심하다. <새벽의 죽음>이 온몸을 휘감은 덕분에, 간신히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다. 특수 스킬 [죽음의 거부]는 이미 발동되어 수명을 깎아가면서까지 체력을 회복시키고 있었지만······. 부족했다.
‘조금만 더. 균열이 닫힐 때까지만이라도 버틸 수 있다면······.’
오른손이 부러진 바람에, 검을 쓸 수가 없었다. 왼손으로 에테르 블레이드를 급히 꺼내어 휘두르려고 했지만, 방호윈의 손끝에 잡히고 말았다.
뗑겅! 에테르 블레이드의 칼날을 부러뜨린 방호윈은 그대로 그것을 유서담의 복부에 쑤셔박았다.
“······큭!!”
울컥, 유서담이 피를 토해내자 방호윈은 지체할 틈 없이 힘껏 내공을 쏟아내어 그림자를 잘라내었다. 그러고선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균열이 거의 닫히기 직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유서담을 완전히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1초라도 아까운 순간. 어차피 유서담은 이곳에 갇힌 채 방치되어 스켈레톤들에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투쾅!! 힘껏 바닥을 박차자, 폭탄이 터진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방호윈의 몸이 날아올랐다. 어느덧 균열의 크기는 작아져, 성인 두세 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직은, 빠져나갈 수 있다!’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달려 나가려는 그때.
균열의 앞에, 누군가가 서있음을 깨달았다.
금색머리칼에 푸른색 눈동자를 가진 여검사였다.
그녀의 이름은 첼레스테 코스탄티니였으나, 안타깝게도 방호윈은 그녀를 알지 못하였다. 다만, 자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이 거슬렸을 뿐.
“비키거라!!”
그가 고함을 지르면 어지간한 하수는 나가떨어지기 마련이었거늘, 그녀는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그것을 버텨내고서는 아예 검을 뽑아 들었다. 안 되겠다 싶어, 내공을 흩뿌려 심극색공을 발동하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상대방은 무림인이 아닌, 초능력자였다. 게다가 미염공의 발동 조건을 알고있는 듯,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래 봐야, 한주먹거리!’
초능력자든 뭐든, 방금의 스캔으로 상대방이 고작해야 일류의 수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대로, 주먹을 내뻗어 휘두르기만 해도 저 건방진 여자는 먼지처럼 소멸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랬어야만, 했다.
쩌엉···!! 첼레스테가 휘두른 검이, 방호윈의 오른팔에 적중하여 약간의 충격파를 만들어내었다.
“무, 슨···!”
설마 이 정도의 힘을 낼 수 있을 줄은 몰랐는지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건, 무공···?’
이미 신체 그 자체가 괴물의 수준으로 상승한 강체 능력자가, 무공까지 사용한다니? 믿을 수 없었으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서둘러 나가야 한다. 지체할 시간이 없단 말이다.
비록 지금은 내공이 바닥을 드러낸 상태로 방심한 탓에 밀려났지만, 조금만 더 신경을 쓴다면 저깟 일류 수준의 검사 정도는 곧바로 떨쳐낼 수 있을 터.
그렇게, 생각했으나.
방호윈이 휘두른 주먹은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도저히 일류 수준의 기를 보유했다고는 믿기지 않는 속도로 움직여, 방호윈의 공격을 피해낸 데에 모자라 심지어 반격까지 시도한 것! 물론 방호윈이 상당히 약해진 탓이라고는 해도······.
이건 어른과 갓난아기가 싸우는 정도의 수준 차이란 말이다.
그런데, 갓난아기가.
품에서 총을 꺼내더니, 그대로 어른을 향해 발사하였다.
그것이 지금 이 순간, 방호윈이 느끼는 심정이었다.
“이 썩을 년이···!!”
콰콰콰쾅···!!!
참다 못한 방호윈이 모든 내공을 끌어다가 주먹을 내지르자, 결국 첼레스테는 버티지 못하고서 뒤로 날아가고 말았다. 그러나 고작 세 번뿐이지만······. 방호윈의 공격을 버텨냈다는 점이 중요했다.
‘아버지의 복수.’라는 입모양을 언뜻 저 여인에게서 본 것 같았지만, 그런 건 이제 더 이상 방호윈의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
균열이, 닫힌다.
서둘러 오른손을 뻗어보았지만.
···빠지지직!!
그대로 오른팔을 삼키며, 거대균열의 문이 완전히 소멸되고 말았다.
털썩!
방금까지의 전투가 거짓인 것처럼, 고요가 세상을 잠식하였다.
졸지에 양팔을 잃어버린 방호윈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한참이나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다시 생각해도, 또 다시 생각해보아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양팔은 어디에 갔으며, 아랫도리는 왜 허전한 것이며, 나는 왜 이곳에 갇혀있는가?
그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이윽고는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렸다.
“유···서담······!!”
분노가 온몸을 잠식하였다. 도저히, 도저히 그놈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잃어버린 신체를 되찾을 수는 없다. 이제, 무림은커녕 지구로 돌아가는 길조차 막막해졌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단 하나지만 남아있었다.
‘유서담······!’
방호윈은 즉시 몸을 돌렸다. 목표는 유서담이 쓰러진 장소. 이곳까지 달려올 때보다 수십 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도달하기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쓰러진 채, 몸을 지혈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바쁜 줄, 알았더니. 시간이 남나 봐?”
[10···9···8···]
상황이 이렇게 되었음에도, 유서담의 입에서 농담이 새어나오자 방호윈의 콧가가 씰룩였다.
“다시는, 그딴 말을 지껄일 수 없도록 해주지···!!”
“무서워라···. 나한테, 무슨 몹쓸 짓이라도, 하려고···? 이제는···, 거시기도 없으면서?”
[8···7···6]
피를 쏟아내면서도 유서담은 입을 다물지 않았다.
방호윈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럽게 해주지···. 나에게, 용서를 바라지 마라······.”
“용서?”
[5···4···3···]
그것참 재미있는 단어라는 듯, 유서담은 씨익 웃으며 방호윈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리고선.
“이거”
희미하게 미소를 띄우며, 말한다.
“이제 너한테 없는거.”
“······뭣!”
[2···1···0]
그제야, 뭔가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눈치 챈 방호윈은 황급히 유서담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아차!’
그에게 팔은 남아있지 않았고.
···휘이잉!!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유서담의 몸이 빛무리와 함께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뒤였다.
“아···아···아아······.”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방호윈은 피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를 질렀다.
“······유서다아아아아암!!!”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이동이 완료되었습니다.]
무뚝뚝한 기계음이 귓가를 적신다.
<서담. 피가 부족합니다. 위독한 상태입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로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
의뢰인이 자꾸만 소리를 질러댄다. 머리가 아프다. 인벤토리에서, 포션 꺼내 마시면 될 것 같은데. 아, 그래도 부족한 피가 충당되지는 않으려나? 모르겠다.
세상이 어두워진다. 모든 게 흐릿하다. 여긴, 지구인가?
<이계에 성공적으로 도착했습니다. 이대로 살아서 돌아가기만 하면, 목표는 완수됩니다!>
아, 그랬지.
생각보다 힘든 싸움이었다. 나는 내가 무조건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다.
당연히, 무조건적으로 이길 수 있는 싸움이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여태, 주인공 사냥을 손쉽게 해왔다고 또다시 자만심이 정신을 잠식해버린 모양이다. 일전에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했는데. 사냥꾼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신중함인데.
나의 소중한 사람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자, 과하게 무리를 해버리고 말았다.
내 실책이다.
내가 멍청했다.
그래서 이렇게 된 거다.
조금만 현명했었더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를 텐데.
<지금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닌······>
의뢰인의 목소리가 점차 멀어져갔다.
왜지? 어디로 가려고. 너도 몰라?
나도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졸리다. 이대로 잠들면 편할 텐데.
그래, 차라리 잠들자.
<···서담···고생많···셨습니···이제 푹 쉬···>
점차 목소리가 잦아들었고.
‘······교수니이임!’
검은색 머리칼을 휘날리며, 총알 목걸이를 착용한 새하얀 나신의 소녀가 뛰어오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그대로 세상이 암전되었다.
< 색마(色魔) 방호윈(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