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마(色魔) 방호윈(5) >
“크으아아아악!!”
방호윈의 괴성이 세상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순식간에 남자의 상징과 함께 왼팔이 절단된 것이다.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으나, 안타깝게도 그에게 남은 팔은 하나인지라 두 상처를 모두 지혈할 수 없었다.
피눈물을 흘리며 방호윈이 황급히 물러서자, 설중연이 기력을 다한 듯 숨을 깊게 몰아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어떻게······! 무슨 사술을 쓴 게냐!”
뒤에서 황급히 달려온 유서담 또한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설중연을 바라보았다.
‘기록에 따르면, 방호윈의 심극색공은 이성을 상대로 절대적인 효력을 가지고 있을 텐데······?’
그러자, 설중연이 잔뜩 지치는 그 와중에도 미소를 지었다. 오로지 그녀만이 그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마음의 빈틈이라.’
사람에게는 반드시 마음의 빈틈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 사람들로 그 사랑을 채워나가더라도, 결국 죽을 때까지 모두 채우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평범한 일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한정된 이야기였다.
설중연, 그녀는 과거 ‘천마신교’를 이끌었다. 수만 대군이 그녀만을 바라보았으며, 수백만의 백성이 오로지 설중연만을 믿고 따랐다. 그녀에게는 사랑이 부족할 일이 없었다.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있었고, 그녀 또한 그 사랑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가식으로 가득 찬 어떤 악인에 의해 그 모든 사랑을 잃었다. 너무나도 비참한 일이었다. 살아갈 이유를 모조리 잃어버린 그녀의 마음은 순식간에 공허해졌고, 그 무엇도 그 빈틈을 채울 수는 없었다.
죽어버린 마음.
죽느니만 못한 삶.
죽음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그렇게 매일을 절망 속에서 억지로 숨을 이어나가는 그때.
그녀의 마음에, 누군가가 가득 들어차버렸다.
이미 잃어버린 삶의 이유마저도 만들어준 사내였다. 그는 설중연의 모든 것이 되었고, 다른 그 누구의 침입조차 허용치 않은 채 그 마음을 가득 채워버린 것이다.
언뜻, 알고는 있었다.
신 무림맹? 천마지존? 무림맹주? 무림인들의 미래? 무림인들을 위한 세상?
그딴 거 다 필요없다.
그녀가 무림맹주를 하는 이유는 유서담을 위해서였으며, 무림인들의 미래를 위해 움직이는 이유는 유서담의 미래를 위해서였고, 무림인들의 꿈을 이루어주는 이유는 그것이 유서담의 꿈을 이루기 위한 한 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래, 분명히 ‘심극색공’은 상대방의 경지와 무관하게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 사기적인 무공이다.
하지만······ 빈틈이 아예 없다면?
마음의 모든 공간이 단 한 사람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그리하여, 그 무엇도 파고들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게 마음에 철벽을 두르고 있다면.
유서담, 유서담, 유서담.
설중연의 머리와 마음은 이미 그 한 사람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 누구도···, 감히 침입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색마조차, 나를 건들 수는 없다.’
그녀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다시금 검을 들었다. 이미 잔뜩 지치고, 상처입은 채였으나, 아직은 조금 더 싸울 수 있다.
“이제, 남자 구실은 못하겠군···. 후후, 참으로 마음 아프게 되었구나.”
“이··· 개같은 년이······!!”
방호윈이, 이를 악물고서, 다시금 내공을 끌어올리려는 그때.
유서담은 지금 이 순간이 기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슨 기회?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이들의 이목이 집중된 지금밖에는 없었다.
‘의뢰인, 네가 좀 도와줘!’
<···안 됩니다. 수명을 엄청나게 깎아먹는 미친 짓입니다! 여태 얻은 수명을 모조리 잃어버릴 수도 있단 말입니다!>
‘됐으니까!’
이윽고, 유서담이 소리를 질렀다.
“모두, 주목하십시오!”
그는 사자후를 배우지 않았지만, 이미 모두가 이쪽을 바라보는 상황에서 이목을 모으기란 참으로 쉬운 일이었다.
이내, 모든 이들이 자신을 바라보자 서담은 인벤토리에서 장비 아이템을 꺼냈다. 그러자 새하얀 빛무리와 함께 허공에서 갑주와 부츠가 생성되어, 자동으로 그의 몸에 장착되었다. 그 어떤 과학기술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아이템 자동장착 시스템]. 그것은 지금 이 순간, 단순히 연출을 위해서 사용되었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 떠지자, 서담은 무기 <빛을 잃은 샛별>을 꺼내들고서 허공에 겨누었다.
“방호윈이 당신들을 속였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준다는 그의 말을 믿었습니까? 어림없는 소리! 저자는 그저 힘을 취하기 위해, 당신들을 끌어들였을 뿐입니다!”
그 누구도 그의 말따위, 믿지 않을 것이다.
당연하다.
고작 S랭크의 유서담과, 현경의 고수 방호윈의 말 중에서 누가 더 신빙성이 있겠는가?
그러나, 유서담은 평범한 S랭크의 헌터가 아니었다.
‘미안하다. 네가 어지간해서는 밝히지 말라고 했는데.’
<······괜찮습니다. 그것이, 유서담 헌터님을 위해서라면.>
그는 허공을 향해 칼질을 하였고, ···이윽고, 허공이 황금빛을 내며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다른 세상’이 나타났다.
그곳은 거대균열과는 달리 노을이 지고있는 세상이었다. 모든 건물이 무너져 있는, 이름 모를 세상. 제일 가까운 랜덤한 차원을 소환한 것이기에, 어딘지는 의뢰인조차 모른다. 그러나 또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만들어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이, 이럴···수가···!”
“허공에 균열을 만들어냈어···?”
그는 무림회향회를 향해 외쳤다.
“내가, 당신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줄 수 있습니다!”
“이···!”
방호윈이 유서담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설중연이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내어 그의 앞을 막아섰다. 한쪽 팔이 잘린 방호윈이었으며, ‘심극미염술’이 통하지 않았지만 그가 여인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건 여전했다. 설중연이 점차 밀리는 것을 보며, 유서담은 피눈물을 집어삼키고서 외쳤다.
“이제 알겠습니까! 누굴 믿어야 하는지!여인을 탐하기 위해, 거짓으로 무와 협의 도리를 속이는 자에게 따르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지금 싸움을 멈추기만 한다면, 당신들은 얼마든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때, 마침 스켈레톤 드래곤이 붕 날아들어 대지를 할퀴었다. 내전보다도 스켈레톤 드래곤에 의한 사상자가 더 많을 지경이었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정말로 큰일이 날 수 있었다.
비록 SSS랭크의 무림인들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게 되었지만······. 그들은 원래부터 베테랑이었으며, 또한 싸움에 이골이 난 무림인들이었다.
“그러니, 어서 거대균열을 닫고 돌아갑시다!”
그 말이 끝난 직후, 애초부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에 억지로 방호윈을 따르고 있던 몇몇 무림인들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기회다!’
일부러 방호윈을 방해하고 있던 암영미소는 이때다 싶어서 소리를 쳤다.
“어차피 저놈은 이제 고자가 돼서, 흡정공으로 경지를 올리는 것도 불가능하오! 어차피 놈의 말이 사실이었다고 한들, 방호윈의 꿈은 물건너갔소!”
“음! 그래, 본인은 사실 저런 역겨운 자식 밑에서 움직이던 게 애초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소.”
“거짓말로 무림인을 속이다니···!”
모든 무림인이 곧바로 유서담의 말에 현혹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주 일부의 무림인들이 선동하기 시작하자 여론은 빠르게 움직였다.
“스켈레톤 드래곤을 쓰러뜨리고, 다시 한번 돌아갈 기회를 쟁취해내자!”
이내 헌터들과 무림맹원들, 그리고 무림회향회가 일시적으로 싸움을 멈췄다. 서로가 협력을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공동의 적 스켈레톤 드래곤을 상대하기 시작한 것.
그들의 수준은 굉장히 높았고, SS랭크의 초인이 열 명이나 포함되었기에 스켈레톤 드래곤은 빠르게 진압되기 시작하였다.
이제 남은 건, 방호윈이었다.
그는 한쪽 팔만으로도 설중연을 가뿐히 압도하였다. 미염술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으며, 양물이 사라졌으므로 더 이상 흡정공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여태 쌓아온 무공과 ‘심극색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가벼운 손동작만으로도 설중연의 움직임을 끊을 수 있었으며, 이성을 잠깐이나마 마비시키는 그 신묘한 사술이 어디로 사라지지는 않았기 때문. 심지어 이미 설중연은 잔뜩 상처를 입은 채이지 않았던가.
‘젠장! 대체 저건 뭐 하는 무공이야?’
<···도저히 무공이라고 볼 수 없는 기술입니다.>
의뢰인이 무어라 말을 하려 했으나, 그것을 들을 새는 없었다.
투웅···!! 방호윈의 일격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설중연이 지형을 부수며 뒤로 날아가 버렸기 때문.
윈체스터를 꺼내서 조준할 틈도 없다. 부츠에 딸린 스킬을 사용하여, 발바닥으로 바람을 분사하여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검을 휘두르자 방호윈이 가뿐히 막아내더니 서담의 복부를 후려쳤다.
쩌엉···!!
평범한 슈트라고 생각하여 가볍게 주먹을 휘둘렀거늘, 유서담의 복부는 히어로 등급의 아이템 광휘의 갑주로 보호되고 있었다. 충격을 힘껏 버텨내면서 검을 한 번 더 휘두르자, 방호윈이 실핏줄을 세우면서 발을 굴렀다.
펑! 흙이 솟구쳐 거대한 장벽을 만들며 유서담의 몸이 튕겨나갔다. 그 틈을 노리지 않고서 설중연이 힘껏 검을 휘두르자, 검풍이 날아가 전방의 모든 것들을 죄다 깎아내렸다.
“버러지 같은 것들이···.”
여전히,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중요부위와 한쪽 팔이 절단된 고통이 상당할 터인데, 분노가 그 고통마저도 잠식해버린 것인지 폭발적으로 오른주먹을 휘두르는 것이다. 하지만 가면갈수록, 방호윈의 움직임도 점차 둔해졌다. 상당량의 피를 흘린 데다가, 심극색공의 원천이 되는 양물을 아예 잃어버린 탓.
하지만 방호윈이 쓰러지기 전에, 결국 설중연이 먼저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심극색공을 다루는 자와 합을 나누게 되면 그 자체로도 이미 정신력과 내공이 서서히 빨리기 때문에 여태까지 버틴 것도 기적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본부! 스켈레톤 드래곤을 쓰러뜨렸다! 반복한다! 스켈레톤 드래곤을 쓰러뜨렸다.
-거대균열의 ‘코어 에너지’기 소멸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균열이 닫히기 시작하였다. 원정대는 서둘러 복귀하도록!
너무 늦지 않게 원정대가 스켈레톤 드래곤을 쓰러뜨리는 데에 성공하였다. 이제부터는, 진짜로 유서담이 원했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
“뭣···!”
거대균열의 입구는 그 크기도 어마어마하게 나있는 탓에, 닫히는 속도 또한 대균열보다 훨씬 더 빨랐다.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발생했던 ‘초거대균열’의 경우에는 내부의 헌터들이 탈출을 하기도 전에 닫혀버렸을 정도이니까.
헌터와 무림인들이 서둘러 균열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자, 방호윈 또한 초조해진 기색이었다. 더 이상 흡정공은 쓸 수 없다. 여기서 설중연을 붙잡는다고 해도 내공을 흡수하지 못해 신화경의 경지에 올라설 수 없다는 의미.
즉, 품에 소지하고 있는 ‘달마의 검’을 사용하여 무림으로 탈출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의미였다.
차라리 탈출해야만 한다. 흡정공이 아니더라도, 내공을 흡수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하다못해 4년 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정갈한 내공을 가진 고수의 피를 빨아들일 수만 있다면······.
‘···없어?’
뒤늦게, 설중연이 사라졌음을 파악한 방호윈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누군가가 그녀를 데리고서 탈출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벌써 그녀를 부축하고서 저 멀리까지 달아난 자는, 아주 익숙한 사내였다.
다름 아닌, 4년 동안이나 자신의 그림자로서 활동해오던 암영미소가 아니던가?
“······암영미소!!!”
그의 고함이 세상 저편까지 닿을 정도로 쩌렁쩌렁 울렸으나, 고작 그 정도로는 암영미소의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이내 다른 무림맹원과 합류한 암영미소가 아예 숲 저편으로 사라지려 하자, 방호윈은 발바닥에 내공을 집중하였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따라잡은 뒤, 모조리 찢어죽이기 위하여.
그 순간, 허공에 마법진이 생성되더니 그의 온몸을 쇠사슬로 칭칭 휘감았다.
“또, 개같은 수작을 부리는구나!”
양팔이 있다면 수월했겠으나, 한쪽 팔만으로는 전신을 휘감은 이 기묘한 사슬을 한 번에 풀어낼 수 없었다.
쩌적, 쩌저적···!!
그러나, 결국 아무리 지치고 팔이 없더라도 현경의 고수가 어디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순식간에 사슬을 풀어낸 뒤, 유서담을 바라보자 그는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바닥에 손을 대고 있었다.
무슨 짓을? 그런 생각을 한 순간 드는 위화감에 그는 바닥을 쳐다보았다.
유서담의 그림자와, 자신의 그림자가 서로 얽혀있었다.
그는 방호윈의 텅 비어있는 아랫도리를 바라보며 비웃듯 말했다.
“아가씨, 시간 좀 내보시지 그래요?”
< 색마(色魔) 방호윈(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