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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27화 (127/251)

< 색마(色魔) 방호윈(3) [일부 수정] >

던전과 게이트 현상에는 그 출력에 따라서 ‘랭크’를 매기지만, ‘균열’ 현상에는 마땅한 랭크 시스템이 없다. 그저 ‘균열, 대균열, 거대균열, 초거대균열’로서 크기와 규모를 가를 뿐.

그 이유는 간단하게도 대균열에서도 SS급의 괴수가 튀어나올 수 있지만, 거대균열에서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5년 전에 발생했던 거대균열은 어마어마한 에너지 파장을 뿜고 있어 국가 하나가 망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고를 하였지만, 막상 내부로 진입하고 보니 몬스터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핵심 코어 하나만 달랑 있었으니까. 그것을 부수고 균열이 닫히기 전에 무사히 탈출하기만 되었기에 사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가장 낮은 등급인 균열 현상은 사실상 내부 진입이 거의 힘들어서, 게이트나 던전 현상과 별다를바가 없어서 크게 이슈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균열은 2~3년에 한 번씩 발생할 때마다 어마어마한 사상자를 내었고, 단 한 번 발생했던 초거대균열은 미국에 큰 상처를 남겼으니 이 ‘균열 현상’은 전 세계가 경계하는 이상현상 중 하나였다.

이번에 발생한 거대균열은 이미 반년 전부터 예고가 되어, 그에 대한 대비책을 확실히 짜두기는 하였다.

우선, 무림인들이 참전 의사를 표했다.

이로써 ‘무림인을 통제하고, 누구라도 이능력을 얻을 수 있는 그 위험한 능력을 회수해야만 한다’는 의견이 쏙 들어가게 되었다. 전 세계 모두가 무림인을 옹호하는 가운데 쓴소리를 할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 있다면, 무림인이 두 개의 파벌로 나뉘어 있다는 점.

중국의 ‘무림회향회’와 ‘신 무림맹’의 대립.

무림회향회의 무공의 소유권 주장으로부터 시작된 어처구니없는 싸움은 ‘무림답게 칼로 해결하자!’고 하여 결국 대균열의 앞에 서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여섯 달이 흐르고 거대균열이 열리게 되었을때.

-정말 놀랍습니다! 중국 무림회향회 소속의 모든 무림인들이 참전 의사를 표하였습니다! 약 500명의 무림인들이 보이십니까? 정말 위풍당당한 기세입니다!

무림회향회의 모든 무림인들이 거대균열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치, 이번 거대균열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듯이.

그리고······.

-회주, ‘방호윈’이 나타났습니다! 4년 전 테러를 일으키고 사라진 테러리스트로서, 일각에서는 그의 참전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무림인 방호윈은 최소 SS랭크의 이능력자로서, 전력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더욱 많았습니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4년 전 자신이 벌인 테러 사건에 대한 이미지를 이번 거대균열에서 씻어내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진심으로 무림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왔다는 사람도 있었고, 무림맹을 먹어치우기 위해 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 모두 옳지 않았다.

무림회향회의 그림자로서 활동하는 사내, ‘암영미소’는 조용히 방호윈을 바라보았다. 꼴에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 나라’랍시며 미국 대통령은 방호윈과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지만, 이상현상 협회 및 국제 헌터 협회에서도 그의 얼굴을 보겠다고 지속적으로 찾아오고 있었다.

“꺼져라.”

그러나 방호윈은 썩 꺼지라며 죄다 돌려보낸다.

왜냐, 어차피 거대균열 내에서 설중연의 힘을 취하기만 한다면 다시 지구에 볼 일이 없었으니까.

“그···, 너무 거칠게 대하지는 않는 게 좋다고 봅니다.”

중국 측에서 파견나온 헌터가 그를 말린다. 애초에 방호윈을 비롯한 무림회향회의 무공과 무림인을 완전히 흡수하는 게 중국의 목표인 만큼, 그의 부탁을 전부 들어주고는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막나가는 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싫다면 네놈도 꺼지거라.”

“······.”

당연하지만, 방호윈이 들어먹을 리는 없었다.

‘무림인들의 회향이라.’

암영미소는 500인의 무림인들을 돌아보았다. 옛것을 잊지 못하고, 현대를 받아들이지 못한 사회부적응자들. 5년이라는 시간은 가치관을 바꾸기에는 충분했거늘, 강자지존의 미개한 법칙을 끝끝내 놓지 못한 이들이었다.

추억보정이다. 그곳으로 돌아가봐야, 이 자리에 있는 대다수의 무림인들은 절대 강자의 위치에 서지 못한다. 그저 일반인의 비율이 더 높은 현대에서 지내다보니, 저들이 대단한 줄 착각해버린 것이다. 현대에 어설프게 적응해버린 게 오히려 독이 되어버렸다.

만약.

저들이 정말로 무림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방호윈이, 무림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무림에 재앙이 발생하겠군.’

무림에서조차 현경의 고수는 극히 드물다. 하물며, 마공으로 대성을 한다? 그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방호윈은 최대한 정갈하고 깨끗한 기운을 갈취함으로써, 높은 경지로 껑충 뛰어오를 수 있었다. 반대로 말해서, 그에게 피해를 입은 여고수들은 모두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정갈한 여인들이었다는 말이 된다.

무와 협을 아는 정의로운 고수가 얼마나 희생되었던가.

정의를 관철하겠답시며 무림을 들쑤시고 다니는 달마지존을 얼마나 애타게 찾았던가.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고 나서야, 달마지존은 방호윈을 찾아내어 내공을 폐한 뒤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쓰레기들의 투기장에 던져놓았다.

‘너같은 쓰레기들과 함께 평생 치닥거리다가, 그렇게 죽어 없어지거라.’

그것이 달마지존의 정의.

쉽게 죽어서는 안 될, 사상 최악의 쓰레기 범죄자의 내공을 완전히 없애버린 뒤 최악의 범죄자들 사이에 던져놓아 죽게 만든다.

그런데, 달마지존조차 몰랐을 것이다.

방호윈이 꾸역꾸역 지옥의 밑바닥에서 기어올라와, 마침내는 4년 전 테러를 일으키더니, 끝끝내 깊은 산속에 숨어살던 늙은 고수의 피를 빨아먹어 내공을 흡수함으로써 모든 능력을 되찾을 줄은.

그는 이제 너무 강해졌다. 노고수의 내공을 있는 그대로 깔끔하게 흡수하여 현경의 경지에 도달해버렸으니까. 만약 달마지존이 남아있었더라면 그를 다시 쓰러뜨릴 수 있었겠지만······. 지존은 이제 없다.

-한편, 무림맹측에서는 단 100인의 무림인만을 데리고 온 상황입니다! 다만, 무림맹주 ‘설중연’의 기백 하나만으로도 다른 무림인들을 모두 압도하고도 남는 것 같군요!

거대균열의 근처에는 벌써 수많은 탱크와 전차가 대기하고 있었으며, 하늘에는 헬기가 날아다녔고, 균열과 현실의 기후 차이 때문에 강렬한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지만 그 가운데에 오로지 설중연만이 평화로웠다. 주위 환경따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 검을 바닥에 꽂아넣고 무심한 눈으로 거대균열을 바라보는 그녀의 뒷모습은 그 어떤 단단한 방패보다도 든든하였다.

그러나, 암영미소가 기대를 거는 인물은 천마지존이 아니다.

달마지존을 쓰러뜨리고 천마지존까지 구해낸 사내, 유서담.

그는 설중연의 뒤에 서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새하얀 눈동자로 거대균열을 바라보고 있었다.

*

당연하지만 거대균열에 무림인들만 들어가지는 않는다. 미국이 다른 세력의 지원을 받더라도, 사활이 걸린 문제를 모조리 떠넘기지는 않는단 의미.

이 원정에는 무려 800명가량의 초능력자들이 함께했으며, 그중 S랭크가 상당수에 SS랭크의 초능력자도 다섯 명이나 되었다.

이 자리에 모인 헌터와 솔져 헌터만 해도 무려 이천여명.

균열의 내부에서는 전자기기가 거의 말을 듣지 않아서 안타깝게도 탱크를 끌고 갈 수는 없었지만 에테르 과학만으로 제작되어, 기기당 수십만에서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통신기기까지는 간신히 사용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C-3, 진입하겠다.

천천히, 천천히, 초능력자들이 거대균열의 내부로 진입하는 광경이 고스란히 수천만 달러의 카메라에 담긴다. 회오리치던 균열을 통과하면, 울창한 숲이 드러난다. 세상 저편까지 펼쳐져있는 것만 같은 푸르디 푸른 숲.

그리고, 땅에서 덜그럭거리며 일어나는 해골.

-스켈레톤이다!

기겁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스켈레톤은 ‘언데드’ 종류의 몬스터 중 하나로서, 그 움직임이 느리고 약한 대신 열병기로 죽이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심지어 팔다리를 잘라내어도 두개골이 덜컥대며 튀어올라 목을 물어뜯는가 하면 팔다리가 따로 기어다니며 숨통을 조여오는 등, 아주 골치가 아픈 몬스터였다.

하물며.

-미, 미친! 이것들 왜 이렇게 빨라!

-믿을 수 없어!

영상 속 스켈레톤이 거의 A랭크에 버금가는 강체 능력자와 비슷한 스피드를 지니고 있는 데다가, 심지어 갑옷까지 갖춰입은 몇몇 스켈레톤은 S랭크 이상의 능력치를 발휘하였다.

-데스···나이트······.

지구에 등장한 적이 거의 없어, 저것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고 지식이 없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데스 나이트’에 대해 아주 잘 안다.

죽음에서 돌아온, 명예로운 기사.

스산한 귀기, 타오르는 푸른색 불꽃, 그리고 푸른색의 날카로운 안광이 번쩍이며 데스 나이트가 검을 휘두르자 전방의 5m 부채꼴 범위가 모조리 잘려나가버렸다. 그것은 판타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기발산’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지구의 초능력자들은 실현할 수 없는 고급 기술이었다.

그때, 무림인들이 나섰다.

-스켈레톤이 일격에 죽었다!

-무슨, 뭐야, 어떻게 한 거지···?

그들은 사람을 죽이는 데에 특화되어 있었고, 비록 스켈레톤을 살면서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었으나 관절과 관절 사이를 잇는 무형의 어떤 ‘에너지’를 자를 줄 알았다. 최소한 초절정 수준 이상은 되어야만 할 수 있는 기술이었으나, 이 자리에 나온 무림인들은 대부분 초절정을 달성한 고수들이었다.

또한, 유서담 역시 마찬가지로 스켈레톤을 상대하기가 상당히 수월했다. 신체의 내부로 흐르고 있는 내공을 보거나 자르는 기술은 당연히 없었다. 애초에 무공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스킬 [신성 변환(F)]이 스켈레톤들에게 아주 제대로 먹혔다.

“이거 좋은데?”

그는 일부러 아이템을 장착하지 않고서, 1등급의 에테르 슈트를 입은 채 1등급의 에테르 블레이드를 휘두르고 있었는데 에테르 위에 신성력을 덧씌우자 스켈레톤들이 아주 제대로 썰려나간 뒤 움직이지를 못하였다. 물론, 신성 변환을 하는 데에 드는 마력이 너무나도 극심한 나머지 자주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싸우는 시늉 정도는 가능했다.

그러나, 유서담이 한두 마리 썰어대면서 좋아하는 와중.

······서걱!!

덜컥, 덜크럭!

설중연이 검을 단 한 번 휘두르자, 전방 30m 범위 내에 있던 ‘모든 것’들이 절반으로 나뉘어버렸다. 그저 잘려나갔을 뿐임에도 스켈레톤들의 움직임이 완전히 정지! 그것이 고작 평범하게 휘두른 일격이라니.

믿을 수 없는 그 광경이 영상에 고스란히 담기자, 서서히 희망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였다.

거대균열이 지구 역사상 그렇게 많이 나타난 적은 없지만, 최소한 헌터 평균 사상자 수백명을 내는 건 기본이오 내부 등급 또한 ‘SSS급’ 수준인 경우가 대다수였는데, SSS랭크의 무림인이 함께한다면 임무 성공률이 대폭 높아지지 않겠는가?

그때, 어딘가에서 울리는 굉음.

뚜쿵···!!

바닥에 거대한 크레이터를 남기며, 모습을 드러낸 그 남자는 다름아닌 방호윈.

“마, 맙소사···.”

“저 위력··· 평범한 SS랭크 수준이 아니야.”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거대한 구덩이 속에서 단 한 번의 발돋움만으로, 마치 날아오르듯 솟구쳤다. 그제야 다른 무림인들과 헌터들 역시 깨달을 수 있었다.

‘저건, 최소 SSS랭크의 수준이 틀림없다!’

이 세상에 SSS랭크의 초인은 단 한 명, 설중연밖에 존재하지 않는 줄 알았다.

-믿을 수 없습니다!

-설마, 새로운 SSS랭크의 무림인이 등장한 걸까요?

-이에 대해 집중 보도를···!!

밖에서 카메라를 통해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난리가 나는 것은 당연지사. 이후로도 방호윈은 자신의 실력을 확실히 증명하기 위함인지, 거칠고 패도적인 주먹질을 난사해댔다. 그 누구도 그의 실력이 SSS랭크에 올랐음을 더 이상 부정하지 못하였다.

혼자서 수십 개의 크레이터를 만들어가던 그는 아예 하늘로 솟구쳐 날아올라 자이언트 스켈레톤의 목을 맨손으로 뽑아버렸으며 스켈레톤 와이번을 걷어차 전방에 비행운을 한 줄 그어버렸다.

그러고선, 바닥에 착지하더니, 날카로운 미소를 지으며 설중연을 노려보았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듯한 그 기백에 순간적으로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정작 설중연은 방호윈이 아닌, 유서담을 바라보고 있었다.

침착한 눈으로 방호윈의 움직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캐치하고 있는 그의 눈빛은, 흡사 쥐를 노리는 고양이를 노리는 사냥개의 것과 닮지 않았던가?

‘허, 정말로 현경의 고수를 상대할 생각이더냐······.’

반 년이나 자신과 함께 단련하며, 유서담은 입버릇처럼 방호윈을 쓰러뜨리겠노라 말하고는 했다. 하지만 자신을 상대로도 3분밖에 버티지 못하는 유서담이 정말로 그를 상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새록새록 피어오르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저 눈빛을 보고서야, 그가 신화경의 고수를 쓰러뜨리고 자신을 구해낸 바로 그 사내라는 확실히 깨달았다.

유서담은 정말로 오늘 이 자리에서, 방호윈을 죽이고자 하는 것이다.

‘어때. 좀 알겠어?’

<네. 저 남자가 가진 물건에서 ‘차원학’의 흔적이 아주 미세하게 남아있기는 하나···. 다시 사용하기에는 큰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전설 속 달마대사의 신물. 무려, 다른 세상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그 검은···. 이미 두 번의 차원이동을 거치며 그 효력을 다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다.

‘그럼 이제······.’

유서담은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서담뿐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나와있는 모두가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하늘 전체를 거무죽죽한 기운으로 물들이는, 무언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뼈밖에 남지 않았지만, 직경 50m라는 거체를 가지고 있었다. 세 쌍의 날개는 다이아몬드처럼 번쩍이는 발톱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머리에는 반쯤 부러진 뿔이 다섯 개나 달려있었다.

푸른색의 귀기스러운 안광을 세상에 흩날리더니, 이윽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였다.

······!!!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인간의 청각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고음이었다. 누군가가, 고막이 찢어져서 괴로워한다. 무림인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저것은 극에 달한 ‘사자후’일 것이다.

-···치직, 여기는 지휘사령부 본부. 몬스터 ‘스켈레톤 드래곤’의 출현을 알린다. 추정 등급 SSS+ 랭크. 건투를 빈다.

< 색마(色魔) 방호윈(3) [일부 수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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