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25화 (125/251)

< 색마(色魔) 방호윈(1) >

한 손으로 태블릿의 뉴스를 틀어서 본다.

-신 무림맹 측에서 중국의 소유권 주장에 대해 공식적으로 답하였습니다!

거기에는 내 잘생긴 얼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실 그다지 잘생겨 보이지는 않는다.

녹화된 영상 속의 나는 중국의 무림회향회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었다. 검희 하선영을 몰래 습격하려 했던 점을 세워서 말이다. 이윽고 돌려까기를 열심히 하던 영상 속의 나는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하지만, 무와 협이 넘치는 이곳 무림맹에서는 그대들에게 ‘무협’을 증명할 기회를 주겠다. 무공의 소유권을 주장하고자 하면, 무림의 방식대로 하라. 곧 발생하는 ‘거대균열’에 서 그 실력을 증명해 보인다면 기꺼이 무공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모든 권리를 포기하겠다.

참으로 평화적이었으며, 무림다웠고, 모두가 환영할만한 방식이었다.

세력의 충돌이 일어나지 않아 괜한 분란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요, ‘거대균열’이라는 국가적 재난을 무림인들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도 있었고, 또한 각자의 무공을 세상에 명명백백히 드러냄으로써 진짜 무공의 주인이 누군지 가려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무림맹 측은 어찌되었든 ‘승낙을 하긴 했는데, 너희 중국 땅은 안 밟겠다. 그리고 무림답게 해결하자.’라고 역으로 제안해온 것.

그런 마당에, 중국이 ‘아 몰랑 그래도 너희가 와’라고 떼를 쓸 수 있을까? 아무리 아득바득 우기기를 좋아하는 중국이라도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이미 녹화되어있던 그 뉴스는 지금쯤 전 세계로 일파만파 전해지고 있을 터. 이걸로 한시름 덜었다.

거대균열이 동네 할인 행사도 아니고 아무 때나 발생하는 이상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워낙 대규모의 사건인 덕분에 거대균열은 발생 전 최소 몇 달 전부터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 나는 그 점을 이용할 예정이었다.

거대균열이 발생하기까지 앞으로 반년.

반년이라는 시간을 벌었다.

그 동안 무림인들에게 하선영을 포함하여 우리 길드원들이 습격당하지 않도록, 류경수에게 부탁해 감시체계를 철저하게 늘렸다. 물론 내가 아니었더라도 무림인의 침입 탓에 이미 국방부는 상당히 예민해진 상태라니 한시름 덜 수 있었다.

‘방호윈.’

여러모로 골치가 아프다.

그를 상대로는 ‘주인공 사냥꾼’으로서 대부분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 상대방이 무슨 스킬을 사용하는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에피소드가 발생하는지도 모른다.

···그러고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모든 ‘주인공’들은 반드시 보정을 받고 있기에, 그 보정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했을 뿐이다. 그런데 주인공이 아니라면 보정도 없을 터. 제아무리 초인이라 불리는 현경의 고수라도, 반드시 죽일 방법은 있다.

‘거기에, 아예 모든 능력을 다 활용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까.’

한참이나 누님을 안심시키고서 통화를 끊은 뒤, 머릿속으로 방호윈과 붙었을 때를 대비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와중 첼레스테가 다가왔다.

“저 왔어요.”

그녀는 여느 때와 같은, 마치 승마복을 닮아 몸에 착 달라붙는 흰색의 에테르 슈트를 입은 채였는데 방금 막 헌터 등급 테스트를 보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어깨에 당당히 붙어있는 알파벳 ‘B’.

첼레스테의 나이가 이제 막 열아홉에서 스물로 넘어가는 시기라는 것을 떠올리면··· 역대 그 어떤 강체 능력자보다도 성장세가 빨랐다. 나는 그녀가 ‘B랭크_승급_기념_무표정_셀카.jpg’를 한 방 찍는 것을 보며 말했다.

“축하해. 이대로라면 3년 안에 A랭크를 달수도 있겠어.”

그러자 첼레스테가 고개를 젓는다.

“더 빠르게 달 거예요.”

“얼마나 더 빠르게? 지금 네 나이로도 충분히 무리하고 있어.”

초능력은 재능 99%와 노력 1%로 이루어진 영역이다. 에테르 흡수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성장률과 성장의 한계가 높다는 의미. 첼레스테는 에테르 흡수율이 초능력자 사이에서도 상위 0.01%를 차지할 정도로 우수했는데 에테르를 주입받는 고통과 후유증을 매번 버텨내면서, 한계까지 초능력을 단련하였다.

하지만 결국, 그 성장 속도에는 한계가 있는 법. 그녀가 제아무리 남들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달리고는 있다지만······ 결국 최대한으로 노력하는 지금보다 더 빠르게 달릴수는 없다는 말이다. 무공처럼 ‘깨달음’을 얻는다면 또 모를까, 내공이 아닌 기력으로는 무공을 사용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저번에··· 테일러 선배님한테는 SS랭크 달성 기념으로 선물 주셨다고 들었어요.”

“어? 어어···. 그랬지.”

SS랭크 달성 당시에 왜 옆에 없었느냐며 테일러가 따지고 드는 바람에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고, 그녀의 요구에 따라서 거의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

“저도 선물···주실 수 있나요?”

“당연하지. B랭크 헌터가 얼마나 대단한 건데. 뭘 원하는데?”

그러자 첼레스테가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심법과 보법을 배우고 싶어요.”

*

“불가능해.”

하선영이 한숨을 폭 내쉬며 말했다.

“보법은 말이지, 어? 발끝으로, ···거 뭐냐. 야, 쉬운 말.”

“섬세한 컨트롤이 필요해요. ‘에센스’로는 그게 가능하지만, ‘에테르’로는 힘들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죠.”

예사혜가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내공은 기본적으로 기맥(氣脈)과 혈맥(血脈)을 타고 움직여, 전신으로 고루 분포하여 섬세한 움직임이 가능했다. 하지만 초능력자의 기력은 온전히 혈맥 하나만으로 작용한다. 에테르 에너지로는 기맥의 길을 뚫고 움직일 수 없다는 말이다.

“···혈맥 하나만으로는, 불가능한가요?”

“그건 한 손으로 원을 그리면서 네모를 그리는 것보다도 어려운 난이도예요. 이해가 되시나요?”

한 손으로는 하나의 도형밖에 그릴 수 없다. 그러므로 다른 손을 사용하여 다른 도형을 그려야 한다. 하지만 양손으로 다른 도형을 그리는 것조차도 어려워, 애초에 기맥과 혈맥을 동시에 다루는 심법조차 일반인들은 익히는 데에 심각한 오류를 빚거늘 기맥 없이 혈맥만으로 심법을 익히겠다?

말도 안 되는 짓이다.

첼레스테가 시무룩 해하자, 예사혜가 서둘러 덧붙였다.

“그게, 무조건 못하는 건 또 아니에요. 스승님만 해도 혈맥 하나만으로 기를 흘려보내는 건 일도 아니시니까요.”

“야 인마, 그런 쓸데없는 걸 왜 말해?”

하선영은 뒤늦게 나무랐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어쨌든, 노력만 하면 가능하다는 이야기네요.”

“······어휴. 그래, 가능은 해 가능은! 근데··· 애초에 ‘에테르 주입’ 자체가 고통스럽다는 건 나도 들어서 알고 있걸랑? 네가 익히는 심법은 그 고통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또 이겨내야 된다는 거야.”

이를 악물고, 그저 견디기만 해도 고통스러웠던 에테르 주입이다. 그런 고통을 스스로의 호흡으로 또다시 만들어내고, 이겨내야 한다?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찔해졌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

‘더 빠르게 강해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애초에 심법을 익혀봐야 첼레스테는 이미 체내에 에테르가 쌓여있기에, 에센스와 반발하여 내공을 쌓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하지만 ‘소화 속도’는 더욱 가속시킬 수 있었다.

한 번 에테르 주사를 맞으면 최소 한 달에서 길면 두세 달은 주사를 맞으면 안 되는데, 에테르가 완전히 체내와 동화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다.

심법을 익힌다면, 그에 성공한다면.

딜레이 없이 주사를 맞는 게 가능할 수도 있다.

“···해볼게요.”

“에라이, 난 모르겠다. 설마 B랭크 헌터가 쇼크사로 뒈지기야 하겠어? 한 번 해봐.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하선영이 엄중히 경고했지만 첼레스테는 마다하지 않았다.

‘···최소한, 거대균열이 나오기 전까지는 더욱 강해져야 해.’

알고있다. 고작 자신의 힘으로는, 그 남자를 이길 수 없다.

아버지의 오른팔을 절단하고서 도망친 정체불명의 테러리스트, 방호윈.

수많은 S랭크 헌터와 SS랭크 헌터였던 아버지가 덤벼들어도 죽일 수 없던 자이다. 그러나, 그를 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여태까지 노력해왔던 이유가 무엇이던가.

‘이깟 고통쯤, 이겨낼 수 있어.’

그날 밤, 하선영에게 심법을 전수받으며 첼레스테는 울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끔찍하게도 아파서 울다가, 그렇게 기절하고 말았다.

쓰러지는 와중에도 심법을 끝까지 놓지 않고서 구절을 외는 그녀를 한참이나 안쓰럽게 바라보던 하선영은 어두운 표정을 짓고서는 돌아섰다.

“어떻게 하시려구요?”

“···심법을 고쳐야겠어.”

“네?”

하선영의 대답에 나는 잠깐 할말을 잃었다.

심법과 검법이라는 게 그렇게 고치고 싶다고 뚝딱뚝딱 고쳐지는가? 결코 아니다. 수십, 수백, 수천 년에 걸쳐서 수많은 천재들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발전하고 한 구절씩 수정하고 보완하여 마침내 완성된 것이 현재의 무공이다. 결코 쉽게 바꿀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납득하였다.

그녀는 무림에 존재하는 수많은 무공들의 장점만을 쏙쏙 캐치하여, 자신만의 새로운 무공을 창조한······ 어찌보면 달마지존을 능가하는 천재였다. 무공의 실력에 있어서는 설중연보다도 떨어지지만 그녀의 무공 개발 능력은 말 그대로 압도적이라는 의미.

“하지만 나 혼자서는 불가능해. 네가 도와줘.”

“그게 무슨···.”

“기맥과 혈맥을 순환해야만 하는 심법에서 기맥을 뺀다는건······ 수학으로 비교하자면, ‘기호’를 빼고 아예 새로운 공식을 만드는 거랑 비슷해.”

‘1+1=2’라는 공식에서, ‘+’를 빼면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저 어중간한 숫자와 기호의 나열이 될 뿐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호를 모조리 빼버리고서도 공식을 성립시켜야만 하는 게 현재 하선영의 목표였다.

미친짓이다. 그걸 알면서도, 하선영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내 어릴 때 보는 거 같아서 그래. 어차피 난 남는게 시간이잖아. 네가 가진 그 마법이 있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

실제로 나는 마법의 공식을 초능력에 접목하여, 새로운 ‘형(形)’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고 지금도 수많은 초능력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수학적으로 세밀하게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

무공은 초능력보단 마법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꼭 불가능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한번 해보죠.”

*

어두컴컴한 호텔룸의 내부, 두 남녀가 나체로 거칠게 얽히고 있었다.

여인은 동공이 풀린 채, 침을 질질 흘려가며 남자를 탐하고 있었는데 정작 남자는 여인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은 채 허공의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 색마라는 이름으로 무림에 그 악명을 떨쳤던 사내, 방호윈.

색공(色功)의 달인이자, 숱한 여고수를 홀려서 정기를 착취하여 자신의 내공을 불려왔던 그였기에 최음공(催陰功)으로 평범한 여인 하나의 이성을 마비시켜 자신의 먹잇감으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이제는 그 무공의 수준이 지나치게 높아진 바람에 어지간한 여인으로는 내공을 채우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스크린 속에서 빛나는 저 여인이 그토록이나 탐나는 것이다.

설중연. 현경의 고수로서 천하에서 가장 강한 여인이자,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여인. 외모의 아름다움까지 곧 음기(陰氣)로 치환할 수 있으니, 만약 설중연을 흡수할 수만 있다면······.

“앗, 으으윽······!”

갑작스레 여인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모든 생기가 빠져나가 미라가 되며 방호윈의 상체로 털썩 쓰러졌다. 현경의 경지에 도달한 방호윈의 흡정공에 이제 무공을 막 익히기 시작한 여인이 단 한 번이라도 버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부족했다.

더 강한 여인일수록, 더 아름다운 여인일수록 오랫동안 두고두고 정기를 갈취할 수 있으며, 또한 더욱 감미로운 정기의 맛을 즐길 수 있다.

급한 대로 범죄자나 마피아의 여인들을 납치해와 허접한 무공을 익히게 한 정도로는 충분한 맛을 음미할 수가 없다. 그저 혀에 물을 적시는 느낌으로 연명해온 세월만 벌써 4년째다.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거 치우고, 새것 가져와.”

방호윈이 그리 말하자, 구석에서 그림자처럼 숨어있던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그림자보다도 더욱 짙은 검은 머리칼에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고개를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 존재감조차 느끼지 못했을 정도였다.

“존명.”

TV에 등장하여 중국을 대변했던 사내이기도 한 무림인, ‘암영미소’는 비쩍 마른 여인의 시체를 치우며 사람을 새것이라 칭하는 방호윈을 슬쩍 바라보았다.

“일전에 주문했던 제물은?”

그 제물이라 함은, ‘검희’를 뜻하는 것이리라.

“···죄송합니다. 더 빠르게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쯧. 느려터졌군. 똑바로 하라.”

그에 암영미소는 고개를 숙였다. 방호윈의 수중에 달마지존의 ‘유품’이 남아있지 않았더라면 결코 그를 따를 자가 없었을 터인데. 그런 생각을 하며 암영미소는 조용히 그림자로 사라졌고, 방호윈은 이내 스크린 속의 설중연에게 쏙 빠져들었다.

‘곧이다, 곧.’

방호윈은 온몸에 감도는 힘을 느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직은 4년 전에 입은 큰 상처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직접 움직이는 것이 힘들다. 하지만, 저 여자를 성공적으로 중국에 데려올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때,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며 방호윈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신 무림맹 측에서 중국의 요구에 답하였습니다!

그곳에는 설중연이 아닌, 웬 검은 머리칼에 흰색 눈동자를 가진 사나이가 있었는데 그는 마이크를 잡고서 말하였다.

-당신들의 의견은 타당하다. 그러나 추잡하게 무공의 소유권을 위해 뒤에서 기습이나 해대는 자들이 과연 무림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우리는 의문을 표한다. 정정당당하게 칼을 나누는 것이 무와 협이 아니던가?

그러면서 자료 화면으로 세 명의 무림인이 송출된다. 한국의 검희 하선영을 습격한 사건으로 얼굴이 널리 알려진 그들은 사실 중국의 ‘무림회향회’ 소속이었으며 비겁하게 수작질이나 해대는 이들이라며 비난을 하였다.

방호윈은 이를 뿌득, 갈았다.

실패한 것에도 모자라 붙잡혀서 정보를 모조리 불어버리기까지 하다니. 애초에 결속이 단단한 조직은 아니었기에 기대도 안 했지만··· 설마 저렇게까지 입이 가벼울 줄은 몰랐다.

-하지만, 무와 협이 넘치는 이곳 무림맹에서는 그대들에게 한번 기회를 주겠다! 무공의 소유권을 주장하고자 하면, 무림의 방식대로 하라. 곧 발생하는 ‘거대균열’에 서 그 실력을 증명해 보인다면, 기꺼이 무공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모든 권리를 포기하겠다.

비겁하게 선제 공격을 당한 와중에도, 심지어 무공의 소유권 주장이라는 부조리한 짓을 당하고 있는 와중에도, 무림맹은 지극히 현대적이고 정정당당하면서도 전 세계 모두가 환호할만한 주장을 펼쳤다.

세계의 모든 여론이 무림맹으로 돌아갔다. 중국은 이제 비난의 화살을 피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애당초 그들이 주장했던 ‘무공 소유권 주장’ 또한 물거품이 되어, 그대로 공중으로 증발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즉, 이대로 중국이 아무리 우기더라도 더 이상 설중연이 이 땅을 밟을 필요가 없다. 여기서 쓸데없는 제약을 걸기 시작한다면··· 오히려 중국이 다른 나라에 의해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다른 무엇도 아닌, ‘거대균열’이 걸린 문제였으니까.

-그러니까.

화면 속 사내는 마치 방호윈과 눈을 똑바로 마주친 듯 또렷히 이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색마 방호윈은 더 이상 숨어서 협작질을 하지 말고,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라!

이어서, 또다른 뉴스가 줄줄이 올라왔다. 무림맹이 공식으로 긍정적인 대답을 충분히 한 데다가, ‘거대균열’이 발생하기로 예정되어있던 미국마저도 이 둘 사이에 낄 명분이 생긴 것이다.

-초능력 지적재산권이라면 반드시 청문회를 열어야 함이 옳다. 하지만, 무공의 경우에는 예외를 두어야 마땅하다. 본 당국은 힘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구 무림의 법도는 인정하지 않으나, 그 대상이 몬스터에게 향하는 현대적인 신 무림의 법도는 인정하는 바. 중국은 신 무림의 법도에 따라서 주장에 걸맞는 증거를 보여라.

으드득, 쨍그랑!

방호윈이 손을 움켜쥐자, 리모컨이 터져나가며 자그마한 충격파가 발생해 방 안에 있던 모든 유리가 깨져버렸다.

‘저 얼굴, 기억한다.’

비록 그 장소에 있지는 않았으나, 무림인들을 규합하여 달마지존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

‘유서담!’

그는 무언가를 알고있다. 설중연이 중국에 오면 위험하다는 사실 또한 파악하고 꾀를 부린 모양.

그러나, 상대를 잘못 골랐다.

당시 달마지존은 혼자였으며, 지나치게 약화 된 채였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수많은 부하가 있었으며 또한 중국을 등에 업고 있었으니,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그 수작에 내가 넘어갈성 싶으냐?’

유서담은 설중연을 자신에게서 최대한 떼어놓으려고 꾀를 부린 모양이지만······.

소용 없다. 방호윈에게는 그저 설중연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위치에 나타난다는 그 사실 하나만이 중요했으니까.

그는 품에 숨겨두었던 반쯤 금이 간 검을 꺼내들었다. 달마지존이 꽁꽁 숨겨두었던 유품. 차원과 차원을 갈라, 무림과 지구를 통하게 해주었던 그 신비로운 검이 바로 그의 손아귀에 있었다.

지금은 비록 경지가 낮아 사용할 수 없지만 상관없다. 거대균열에서 설중연을 붙잡아, 그 내공을 빨아들이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내가, 직접 간다.”

< 색마(色魔) 방호윈(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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