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24화 (124/251)

< 무림회향회(武林懷鄕會)(3) >

설중연은 지금 기분이 좋다.

신혜지는 그 사실을 꿰뚫어 보았다. 언제나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어, 다른 사람들은 모를 테지만 그녀는 알 수 있다. 지금 그녀의 입꼬리가 0.001mm정도 미세하게 올라간 것과 목소리 톤이 1㏈정도 올라간 것만 해도 알 수 있다.

그녀가 기분이 좋을 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첫 번째로는 유서담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였고, 두 번째로는 미디어를 통해 유서담의 소식을 확인했을 때였으며, 세 번째로는 유서담이 선물해준 악세서리를 만지작거릴 때였으나 아주 간혹 유서담과 관련 된 일이 없더라도 기분이 좋을 때가 있었다.

바로, 다른 이들이 자신의 위압감에 눌리는 것을 구경할 때였다.

설중연은 전 천마지존이자 현 무림맹주였으나, 지나치게 왜소한 체구와 연하고 순한 인상 때문에 그 카리스마를 쉽사리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위엄있고 무거운 무림맹주를 연기하였고, 공식 석상에서조차 말을 아끼는 편이었기에 신혜지가 대타로 말한 적도 꽤 있었을 정도이다.

그런 설중연이니 국제 헌터 협회에서 찾아온 이들이 자신에게 공손히 구는 것은 꽤 기꺼운 일이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활동하실 때 이 완장을 착용해주십사 하여 직접 찾아왔습니다.”

SS랭크의 강체 능력자이자, 헌터 협회 총괄협회장 라이클 사이어스. 그는 설중연에게 직접 ‘SSS랭크’의 완장을 달아주기 위해 중원 무림에 직접 찾아왔다. 그녀가 헌터로서 활동하고 있다고는 해도, 공식적으로 헌터 협회에 아직 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분홍색의 SSS랭크 완장. 아마도, S가 세 개나 붙은 완장을 달고서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헌터는 지구 최초일 것이다.

그러나 설중연에게는 작은 의문이 들었다.

“내가 꼭 너희들이 정한 계급제에 맞춰야만 하는가?”

그것은 그저 사소한 의문이었다. 알파벳 랭크제도는 초능력자에게 적용되는 게 아니던가? 무림인에게는 또다른 계급제가 있었기에 그런 질문을 했지만.

“혹시, 불편하신 점이 있으십니까? 무림인들에게는 차별된 계급제를 도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협회장은 즉시 설중연의 뜻에 맞춰주었다. 크게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가 썩 나쁘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기쁘게 웃었다. 물론 그녀의 미소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신혜지밖에 없었다.

“고맙구나. 자네가 우리 무림인들을 배려해주니, 나 또한 배려를 해주도록 하겠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럴 수는 없다. 혹여 무림인들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도록 하거라.”

“그럼··· 나중에 꼭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협회장 라이클을 비롯하여 이 자리에는 네 명의 남녀가 더 있었는데, 각각 헌터 협회와 초능력자 협회 등에서 나온 이들이었기에 어지간히 대단한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이 설중연의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과연 무림 맹주의 위엄에 눌리는 것이로구나 싶겠지만······.

‘···전혀 아닌데.’

신혜지는 속으로 웃었다.

물론, 실제로 현경의 경지는 모든 초능력자와 무림인들이 경외할만한 경지이기는 했다. 검을 휘두름에 있어서, 반드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경지. 언뜻 이 ‘최선의 검로’가 별것도 아닌 것처럼 들릴 수 있으나, 검의 귀신이라 불리는 모든 천재와 검객이 일평생에 단 한 번 휘두를까 말까한 것이 바로 이 ‘최선의 검로’이다.

그런 최선의 검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깨달은 자. 사소한 움직임에 있어서도, 반드시 최선의 수를 생각해낼 수 있는 자. 그런 이들이 바로 ‘현경’의 고수라 불린다.

그러나······ 저들이 고개를 숙이고서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이유는 무림 맹주의 그 위압감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정말 우스운 말이지만 단지, 설중연이 오늘따라 더 매력적이라서 그랬다. 오늘 설중연은 아주 희미하긴 하지만 더욱 예쁘게 치장했다. 평소에는 귀찮다며 하지도 않던 화장도 옅게나마 했으며, 한복과 무복을 합쳐서 만든 연분홍색의 에테르 슈트 또한 곱게 차려입었다.

유서담이 오늘 방문하기로 한 까닭이었다.

고작 그 정도였지만, 설중연이 차려입기까지 하니 어지간한 미인을 숱하게 봐왔을 높으신분들조차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그래서 신혜지도 기분이 좋았다. 설중연의 저 짓궂지만 장난스러운 미소를 자신만이 간직하고 싶었다.

‘평소에도 저렇게 웃으시면 좋을 텐데.’

그녀의 본래 모습은 날카롭고 고고하기보단, 순진하고 청순하고 천진난만한 얼굴에 가까웠다. 성격과 영 따로노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가끔가다 웃을 때면, 그 화사함이 온 세상에 만개하여 그렇게 예쁠 수가 없는데······. 맨날 무거운 표정만 짓고 계시니 원.

“아, 그리고 얼마 뒤에 있을 헌터 토론회에 참석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현존하는 유일의 SSS랭크 헌터께서 참석해주신다면, 토론회의 가치는 더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으음. 그런 자리는 영 불편하다만.”

“그러고 보니 헌터 유서담도 참석한다고······.”

“가겠다.”

그녀의 즉답에 라이클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서담 헌터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림맹주의 반응이 생동적으로 변한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다. 물론, 그 점을 이용해먹을 정도로 간이 붓지는 않았다. 설중연은 굉장히 현명한 여자였고, 그 점을 자꾸 이용해먹으려 들면 역으로 화가 들이닥칠 테니까.

‘둘이 무슨 관계라는 소문이 사실인건가······.’

협회의 인원들은 그런 호기심을 품고서 돌아갔고, 30분이 지난 지금.

설중연은 우울하다.

유서담의 현황을 태블릿을 통해 확인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무표정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0.001mm정도 미세하게 내려가 시무룩해진 입꼬리와 1㏈정도 내려간 목소리 톤 덕분에 신혜지는 알 수 있었다.

“이 남자에게는 어찌 이리도 여인이 많이 꼬일까······.”

“······.”

설중연의 인생은 이제 단단히 유서담에게 묶여버렸다. 이제 그 남자가 아니면 자신이 살아갈 이유가 없는 탓이다. 그런데 그 남자의 주위는 자신 말고도 여인이 많았다.

공항에서 찍힌 몇 개의 사진을 보며 설중연은 한탄하였다.

은색 단발머리를 한 여자가 선글라스를 치켜올리며 유서담의 오른팔에 양손을 두르고 있다. 다른 사진에서는 검희가 그의 목을 장난스레 조르고 있었고(유서담은 목이 졸려서 창백해진 표정이다) 다른 사진에서는 금색 머리칼을 가진 키 큰 소녀가 유서담을 빤히 바라보며 졸졸 따라가고 있었다.

그녀들이 각각 누군지는, 일전에 밤을 새워가며 이야기를 들었던 터에 알고있다. 기구한 사연을 가진 여인들이었기에 무어라 할 말도 없었다.

설중연은 특히 테일러 나인이라는 여인에게 주목했다. 서담과 무려 16년을 함께했으며, 지금도 동거를 하고 있다는 여자. 자신은 멀리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데, 테일러는 자신의 가문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포기함으로써 그와 계속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차라리 무림맹을 놓아버린다면.’

“안 돼요!”

“아무 말도 안 했다.”

“무슨 생각 하시는지 다 보이거든요?”

“네가 독심술이라도 가졌더냐.”

“그럼요. 맹주님 한정 독심술!”

그런 까닭에, 곧이어 설중연의 기분이 좋아졌음을 깨닫는다.

유서담이 방문한 것이다.

설중연은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정중하게, 정말 아무렇지 않은 척, 신혜지를 물려냈다.

“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으니, 잠깐 나가 있거라.”

굳이 그렇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뻔히 다 아는데, 싶었기에 신혜지는 웃음을 꾹 눌러 참고서 나갔다.

*

오랜만에 본 누님은 상당히 까칠해져 있었다.

“왜 이리도 발걸음이 뜸한 것이냐.”

“······.”

바빠서, 라는 말은 결코 남자가 해서는 안 되는 변명이었다. 심지어 그녀가 테이블 위에 떡하니 어나더 리그의 길드원들이 찍힌 사진을 틀어놓고 있을 때는 더더욱.

내가 어쩔 줄 몰라하며 쩔쩔매자 설중연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한손으로 테이블을 살살 쓸며 내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내 뺨을 양손으로 조심스레 붙잡아 들어올려 자신과 눈을 마주하였다. 설중연의 키가 작아, 나는 앉아있었음에도 일어선 그녀를 아주 살짝만 올려보아도 되었다.

“장난이다. 네가 얼마나 바삐 지내는지를 아는데 어찌 재촉할까. 그저 이렇게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좋구나.”

그리 말하며 그녀는 장난스레 꺼내놓았던 태블릿 또한 집어넣었다. 어쩐지 가슴이 시려왔다. 울고 싶어졌지만, 나같은 쓰레기는 울 자격도 없으므로 그만두었다.

“표정이 어둡구나. 무슨 고민이라도 있느냐?”

“그런 건 없고···. 그냥저냥, 요새 피곤한 일이 많이 생겨서요.”

“말해보거라.”

그녀의 그 말에, 나는 내가 원래 이곳에 찾아왔던 ‘본래의 목적’을 까맣게 잊고서 체면조차 버린 채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설중연 누님은 썩 대화를 잘 하는 편이었는데, 그것은 말을 잘 한다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경청(傾聽)에 아주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말하면 이해하려고 노력해주었으며, 공감해주었고, 조언이 필요할 때면 조언을 해주었다.

“나무라지 말거라. ‘왜’라고 묻는 것은, 상대방에게 변명을 강요하는 것이니.”

“네 심정을 이해한다. 나 또한 그랬을 테니까.”

“흥미롭구나. 나는 잘 모르지만, 요새는 그런 게 유행하더군.”

그렇게 나는 한참이나 설중연과 개인적인 시간을 보냈고 정말로 한참이나, 아주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테일러의 앞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편한 마음이 들어서 본래의 모습과 성격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그와 비슷하게, 설중연 누님의 앞에서는 마음속에 꽁꽁 감춰두었던 모든 고민을 털어놓게 된다. 정말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나저나, 사실 찾아온 이유가 있거든요.”

“알고있다. ‘무림회향회’ 때문이겠지.”

“···네.”

벌써 알고있다는 사실에 놀랐으나, 무림맹에는 이제 지구 최고의 첩보기관과 비등하거나 혹은 더 뛰어날 수도 있는 정보조직 ‘개방’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서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태블릿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중국 曰 “무공은 중국이 시초다!”]

[“무림맹주는 모든 지식을 반납할 것!”]

얼마 전부터, 중국이 무공의 소유권이 자신들에게 있다며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초능력 특수 지적재산권의 시비를 가리기 위해, 무림맹주인 설중연보고 직접 중국에 출두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데······.

이게 헛소리란 사실은 이 세상 모두가 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무림인들이 다녀온 세계는, 사실 과거의 중국이다!’

시작부터 헛소리다. 이계도 아니고 과거라니. 하지만 이계도 있는 마당에 과거로 통하는 문이 있을 것이라고 아득바득 우긴다. 이게 21세기다. 정말 현실이 영화보다 더 판타지다.

나름대로의 근거는 있었다. 무림인들이 그쪽 세계에서 사용했던 언어가 중국어에 가까웠으며, 한자를 주로 썼고, 또한 건축물이나 문화 및 풍습이 과거의 중국과 흡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무림인들은 다 안다. 무림의 세계는 중국이 아닌, 완전히 다른 이세계였다는 사실을. 그곳은 아시아 대륙 자체가 없었으며, 중국과 관련된 국가와 역사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무림인들이 인터넷을 시작하게 되면서 ‘무림_갔다_온_썰_푼다.txt’ 따위가 범람하는 마당에 중국의 거짓말은 금세 들통나게 되어있다.

“여기서, 중국이 왜 굳이 들통날 뻔한 주장을 하고있냐가 중요한 거죠.”

“나도 그게 의문이다. 하도 귀찮게 굴어서, 요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애초에 설중연은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유일한 SSS랭크로서, 미국 대통령조차 깍듯히 대우를 해준다. 그러나 그러한 대우를 받는다고 해도, 결국 무림맹은 삼천 명가량이 소속된 중소 길드 연합 수준에 불과했다. 국가와 대적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만약 진심으로 중국이 ‘앞으로 무림인들은 이 땅을 밟을 수 없을 것이오!’라고 선포하면 대다수의 무림인들은 터전과 직장을 잃을 것이오, 중국에게 쫄아서 그리하겠노라 따라하는 다른 나라들까지 속출하게 되면 정말로 골치가 아파진다.

“게다가 공식석상에 무림인들이 나와서 ‘무림은 사실 중국의 역사가 맞다’며 발언을 했습니다. 그럴 이유가 있다는 뜻이겠죠.”

그 무림인들이라 함은, 바로 ‘무림회향회’였다.

“아마도 중국에 붙어먹어서 어떻게든 세력 부풀릴 생각인 것 같은데······.”

즉, 중국은 이미 무림인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최소 수백 명 단위로 말이다. 그런데 굳이 무공의 소유권을 주장할 이유가 있을까? 정말로 중국은 무림맹 자체를 흡수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그 이유가 아니라면, 달리 무언가가 더 있겠느냐?”

“······‘방호윈’이 살아있다는 말은, 들으셨습니까?”

설중연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래. 놀라운 일이더군.”

방호윈은 무림인이 아니더라도, 헌터 업계에 오래 종사했다면 알 수도 있는 이름이었다.

4년 전, 유럽에서 사상 최악의 테러를 일으킨 무림인.

그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S랭크 헌터만 두 자릿수가 넘어갔고, SS랭크의 헌터 살바토레 코스탄티니가 오른팔을 잃었다. 정말이지 끔찍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남자의 특징에 대해 들었습니다. ‘흡정공’이라는··· 여자의 정기를 갈취하는 무공을 익혔다고 했죠.”

“사상 최악의 마공이지.”

영 불쾌한 듯 설중연이 미간을 찡그렸다.

방호윈은 철저하게 경계해야만 하는 사내이다. 이미 지구로 넘어오기 직전에도 그의 수준은 거의 현경에 도달하기 직전이었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그로부터 벌써 4년이 흘렀다. 즉, 방호윈 역시 설중연과 같은 ‘현경’의 경지에 도달했을 수도 있다는 의미.

그렇게 되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그래서, 중국이 그러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소리더냐?”

“방호윈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있는 이유는 모릅니다. 다만, 그는 ‘도깨비들의 도원’에 출입할 수 없으니 쉽사리 누님을 칠 수 없습니다. 출입할 수 있더라도 삼천 명의 무림인들을 감당할 수 없을 테고요.”

“허면?”

“하지만 중국 땅으로 어떻게든 불러들인다면······. 방호윈이 직접 나설 수 있겠죠.”

정말로 유감이지만, 동급의 경지라고 가정하였을 때 이성은 색마를 이길 수 없다. 이성의 잔잔한 마음마저도 흔들어놓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색공이었으니까.

즉, 방호윈은 설중연을 노리고 있다.

그 사실이, 자꾸만 나를 열받게 만들었다.

이곳으로 오는 내내 평정심을 몇 번이나 잃을 뻔 했지만, 간신히 누님의 얼굴을 봐서 진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쉽사리 웃어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소중한 사람이 위험한데, 그에 대항하기에는 내가 너무 약하다는 사실에 자꾸만 화가 났다.

‘구 무협도 아니고, 이런 뻔한 클리셰라니······.’

추측이지만, 방호윈은 이미 죽은 달마지존과 관련된 ‘에피소드’였을지도 모른다. 요즘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구 무협지의 주인공들에게는 색공 관련 에피소드가 필수코스나 다름없었으니까.

반 세기 이전에 나온 구 무협지의 주인공들은 색공에 대항한다며 어지간한 색마조차 복상사시킬 정도로 강대한 정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의 경우에는 색마의 성별이 남자였으며 심지어 이제는 ‘주인공’도 없다.

‘만약, 여기서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별 계획도 없었을 것이다. 달마의 근처의 여인들이 뻔하디 뻔한 위기에 처하고, 주인공답게 정확한 타이밍에 등장하여 구출! 그리고 멋있는 키스신!

그러나 나는 주인공이 아니다. 개연성의 도움을 받지 않는 와중에 위기에 처하면··· 그건 정말로 위기일 뿐 소설처럼 영화처럼 추진력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즉, 애초부터 위기를 만들지 말아야만 한다.

나는 최대한 침착함을 가장하고서, 누님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그러한 이유로, 저한테 좋은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 무림회향회(武林懷鄕會)(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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