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21화 (121/251)

< 초능력 없는 초능력 교수(3) >

어나더 리그에서 펼친, 이른바 ‘시식코너’ 마케팅은 꽤 성공적이었다.

선영검법의 경우에는 1초식의 일부만을, 마법의 경우에는 1써클의 일부만을 공개하는 식으로 사람들에게 어나더 리그가 가진 지식을 아주 조금만 맛보게 해주는 전략.

물론 직접 얼굴을 맞대고 수업하는 게 아닌지라 어지간한 사람들은 와이튜브를 통해 배우더라도 그것을 따라하는 게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의지가 있고, 똑똑한 사람이라면 고작 영상을 통해서라지만 그것을 어느 정도 구현해낼 수 있을 터.

하지만······. 과연 그 정도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고작 1초식과 1써클로 만족을 할 수 있을까?

마법과 무공의 완전판을 배우기 위해서는 어나더 리그에 들어와야만 한다. 그리고, 영상으로도 1초식과 1써클을 터득할 정도로 의지와 재능이 있는 자들이라면 결국 어나더 리그를 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게다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초능력자는 사실상 강체 능력자로 가득 채워져 있는 터. 거기에 첼레스테라는 미인이 직접 나와서 교육을 시작하자, 무공과 마법을 공개했을 때보다도 더 폭발적인 센세이션이 발생해버렸다.

“그렇대. 그러니까 분발해야지.”

“네, 흐으윽······!”

현재 나는 첼레스테의 위에 가부좌를 튼 상태로 탑승한 채였다. 그녀는 한쪽 손가락으로 물구나무를 선 채 ‘핸드스탠드 푸쉬업’을 하고 있었고, 그녀의 양발바닥 위에 자그마한 철판(100kg) 한 장을 올려둔 뒤 그 위에 내가 앉아있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C랭크의 초인이라지만 이 불완전한 자세에서 한손가락으로 하는 핸드스탠드 푸쉬업은 상당히 고된 일일 터. 나는 그녀가 C랭크라는 신체적 한계를 넘어서 기(氣), 즉 에테르 에너지 그 자체를 폭발적으로 터뜨리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이런 고행을 하고 있었다.

이는, ‘마력’을 이용한다면 쉽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기력으로도 과연 가능한 일인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래서 첼레스테를 실험적으로 사용해보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도 검술 실험 대상으로 이 노란색 병아리같은 샌드백 친구를 자주 애용하고는 했었는데, 다시 돌아와서 정말로 기쁘다.

“저 죽···어요오···!”

“어허. 한 번 더!”

“지, 진짜 죽···으흑!”

털썩! 첼레스테가 앞으로 고꾸라지자 허공을 유영하는 철판을 낚아챈 뒤 유연한 동작으로 바닥에 착지했다. 그러고선 쪼그려 앉아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과연, 어차피 초인이라 다치지는 않는다. 상당히 지쳤을 뿐.

“흐음, 에테르는 에센스처럼 안 되는 모양이네.”

“네······?”

“아냐아냐. 다음 실험···아니, 훈련으로 넘어가자.”

나는 그녀의 복부에 손을 가져다 댄 뒤, 마력을 끌어올려 이번에 새로 얻은 스킬을 사용하였다.

[신성 변환(F)]

마력을 신성력으로 변환하는 스킬로서, 듣는 순간 모두가 알겠지만 바로 상처나 피로 등을 회복할 수 있는 기운을 방출해낸다. 아직까지는 F랭크라서 1/50의 비율로 전환이 되는 바람에 자주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가지고 있는 모든 마력을 짜내자 어느 정도 첼레스테의 안색이 좋아졌다.

스킬은 재능과는 달리 반복 작업으로 등급을 올릴 수 있다. 백색 마녀의 도서관을 꾸준히 출입하며 랭크를 올려버린 예카테리나 덕분에 알 수 있던 사실. 하긴, 어지간한 초능력도 대부분 ‘스킬’과 비슷한 판정일 텐데 노력을 통해서 랭크를 올리고는 했다.

다만 나는 노력을 통해 스킬 랭크를 올리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그것은 내가 가진 운명론적 재능의 한계 때문이라고 의뢰인이 설명했다. 노력으로는 더 무언가를 하기에는 내 재능이 앞을 콱 막고 있다고. 뭐, 이제 와서 상관은 없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유서담>

[도합 레벨: 152]

*능력치

[근력 150] [체력 165] [민첩 151]

[기력 1] [마력 252]

*재능

[검술 S] [사냥 D+] [사격 C]

[요리 D-] [직감 A] [기민 A]

[통찰 B] [원기 SS+][기타···.]

*스킬

[주인공 사냥꾼 Lv. 4]

[백색검법(S)] [육감(B)]

[인벤토리(S)] [달마풍천신법(SS+)]

[정신 집중(SS)] [신성 변환(F)]

[아라-선영 식 마나 써클링(SS+)]

[백색 마녀의 도서관(C)]

이제는 나도 S랭크의 헌터다. 비록 기력 항목이 1이라서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신체 능력치만 무식하게 강한 F랭크겠지만······. 최근 예카테리나가 헌터 협회에 방문하여 ‘에센스’ 에너지를 사용하는 무림인과 마법사들의 랭크를 더욱 정밀히 측정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말했으니 아마 나도 조만간 S랭크 딱지를 달고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S랭크와 A랭크는 꽤 많은 차이가 있었다.

우선, 공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무슨 차이냐 하면, 사소한 공기의 흐트러짐만으로도 주변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이것은 본디 자연스레 [육감] 스킬로 치환되어야만 했으나, 나는 이미 C랭크의 육감이 있던 덕분에 B랭크로 자연히 승격을 한 모양이다.

그 외에도 신체 그 자체를 더욱 세밀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는데, 같은 10의 능력치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A랭크는 7~8의 힘만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S랭크는 10이라는 능력치를 온전히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거기에 정신 집중 또한 SS랭크가 되었는데, 덕분에 나는 주변에 흐르는 마나의 흐름을 눈에 보이는 것처럼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마음만 먹으면 ‘백색 마녀의 도서관’의 일부만을 내 눈앞에 소환할 수 있었는데, 이것저것 실험해보다가 도서관에서 쪽잠을 자고있는 예카테리나와 눈을 마주쳐서 뻘줌했던 적이 한 번 있다.

예카테리나는 최근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행복에 겨운 비명을 질러가면서까지 자신의 몸을 혹사시켜 가는 와중이라고 한다. 심지어 와이튜브까지 더해서 업무를 스스로 늘리고 있으니······.

여러모로, 나 없는 동안 잠깐 길드 맡고 있으라고 데려왔던 예카테리나가 오히려 나보다 수백 배의 업무량에 둘러싸여 있으니 기분이 이상하다. 그래서, 최근 길드 마스터인 내가 예카테리나에게 역으로 월급을 받는 입장이 되어버렸음에도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제공해준 건 고작해야 길드를 설립할 수 있는 원천이었을 뿐, 그것을 이용하여 어나더 리그를 세워 일으킨 건 결국 예카테리나였으니까.

“이제 좀 괜찮냐?”

“···저 죽어요.”

“오, 근데 너 한국말 이제 좀 한다?”

“공부···.”

아직까진 떠듬거리고, 짤막한 언어밖에 구사하지는 못한다지만 그래도 이제 귀찮게 이태리 어를 쓸 필요가 없어져서 좋다. 그녀는 흐어어어으···거리며 이상한 소리와 함께 엉금엉금 나를 피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썩 여동생처럼 귀여워서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툭, 말을 내뱉었다.

“좋아, 다음은 검술 특별 교습이다.”

그러자, 정말 귀신처럼 반짝이는 눈빛으로 몸을 일으킨다. 어쩐지 뻔하디 뻔한 그 행동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검이 좋냐?”

끄덕끄덕.

“아예 검이랑 결혼하지 그러냐?”

도리도리.

“내 말 알아듣기는 하냐?”

그러자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한국어로 답했다.

“저도 말타기 좋아해요.”

“어, 그래···.”

“농담이에요.”

“네가 그런 것도 할 줄 아는구나.”

“결혼은 검 잘 쓰는 사람이랑 할 거예요.”

“그런 사람이 있던가?”

내가 아는 한 가장 검을 잘 쓰는 사람은 설중연이다. 그녀가 가끔 검을 휘두를 때면, 온 세상에 분홍색 연꽃과 노을지는 설산이 펼쳐지는 듯한 환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신혜지가 말하길, 간혹가다가 어떤 적들은 그녀가 보이는 검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황홀경에 빠져서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첼레스테가 원하는 검술은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방출하여 과격하게 적을 베어내는 검술로서 무림의 부족한 내공을 극한까지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검술과는 맞지 않았지만 현경에 도달한 설중연에게는 아무래도 의미가 없는 수준일 것이다.

“나중에 검 잘 쓰는 분 소개해줄게. ···결혼은 모르겠다만, 네가 좋아할 수도 있겠네.”

“좋아요!”

아무래도 누굴 소개해준다는 건지 예상한 듯, 첼레스테의 눈빛이 반짝였다. 검의 타입이야 어쨌든, 검 한 자루로 SSS랭크라는 인류 최고의 자리에 오른 설중연은 같은 여검사로서 존경할만한 대상이었으니까.

*

“네, 아버지.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늦은 저녁, 강남 시내를 거닐며 첼레스테는 아버지 살바토레 코스탄티니와 통화를 하였다.

사흘만에 구독자 400만 명을 찍고 한 달만에 천만 명을 가볍게 넘겨서 더욱 거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와이튜브의 메인 와이튜버 중 한 명이 된지라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져, 캡모자를 눌러 써서 얼굴을 가려야만 했다.

-하하하! 유서담 그 친구가 설마 내 딸내미의 전속 사범이 될 줄은 몰랐는데.

“지금은 제가 전속 제자예요.”

-그게 그 뜻 아닌가?

“완전 달라요.”

실제로 그녀는 지금 꽤 즐겁게 지내는 편이었다. 북유럽에서 헌터로서 활동할 때 역시 신나기는 했다. 검을 휘두르며 몬스터를 베어낼 때마다 점점 정진하는 자신이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역시, 진짜 검술 수련을 위해서는 유서담의 아래에서 배우는 게 그 어느 때보다도 좋았다.

유서담은 자신을 굉장히 혹사시키는 편이었다. 정말 자신을 샌드백이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한계를 실험해보려는 것만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오히려 행복감이 차오른다.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과 비명을 지르는 근육들, 머리를 짓누르는 무게까지. 그와 합을 겨루는 그 매 순간순간마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나는 더 정진하고 있다. 강해지고 있다.

그러한 사실이 유서담과 함께 있을 때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으니까.

그 어떤 검술 스승으로도 안 된다. 아버지와 겨룰 때에도 부족했고, 그 어떤 무공 고수와 맞붙었을 때조차도 부족했던 그 충만감! 그것을 이 세상에서 오롯이 유서담에게서만 느낄 수 있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아무튼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으니 다행이군!

아버지는 딸과는 달리 성격이 굉장히 활활 타오르는 불같았으며, 또한 그 누구보다도 쿨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화가 났을 때는 정말 누구보다 무섭지만, 어지간한 일은 그저 ‘그럴 수 있지!’라며 넘어가는 편이었으니까.

“아버지는 좀 괜찮으세요?”

-나야 아직 청춘이니까, 괜찮고 말고!

첼레스테는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몇 년 전,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오른팔을 잃고 말았다. 오른손잡이의 검사가 팔을 잃었다는 건 더 이상 검을 쥘 수 없다는 말과도 일맥상통. 사실상 헌터로서 활동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좋았다.

그럼에도 그는 꾸준히 왼손으로도 활동을 지속하고는 했는데, 덕분에 건강이 크게 악화되어 평상시에는 항상 병상에 누워있어야만 할 정도가 되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첼레스테가 강해지는 데에 무서우리만치 집착하게 된 데에는.

검에 미친 사람처럼, 죽도록 휘둘렀다. 테일러 나인의 빛이나 이준석의 공허 절단 등의 ‘자연간섭계’ 초능력이 아닌, 이 세상 대부분의 초능력자가 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육체물리계’의 강체 능력을 더욱 갈고 닦기 위해서는 꾸준한 수련밖에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저 휘두르고, 또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유서담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이 강해진다는 느낌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서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이제는 꽤 여유가 생긴 모양이구나. 나도 영상 보고 있다. 블루투스 스피커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긴 하지만, 네가 농담도 할 줄 안다니······.

“······.”

아버지는 진심으로 감격한 듯싶었다. 하기사, 그럴만 하다. 철이 들 무렵부터 농담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아이로 자랐던 첼레스테에게 최근 여유가 생겨서 무표정이긴 하지만 SNS에 셀카를 찍어서 올리기도 하고, 가끔이지만 마치 누구를 닮은 듯한 농담을 꺼내기도 했으니까.

-이제, 예전의 일은 그만 모두 잊고 네 삶에 전념하도록 하여라.

“네. 그럴게요 아버지.”

그렇게 통화가 끊어졌고, 첼레스테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거리에서 나오는 TV로 시선을 놀렸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오른팔을 베어내었던, 그 정체불명의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바라본다.

‘······.’

살바토레 코스탄티니는 휑한 오른팔을 어루만지면서도,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자는 무림인이었다고. 그자와 맞붙어서 살아남은 자신이 대단한 것이라고. 오른팔은 영광의 상처로서 내주었다고.

이후, 금제를 걸었던 ‘지존’이 찾아와 그자의 목을 베어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첼레스테는 아버지의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도 그럴게, 애초에 지존이 찾아왔다는 기별조차 전혀 없었으며 전투가 벌어진 흔적도 없었고 그자의 시체 또한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그자에 대한 원망을 품지 않길 바라셨을 것이다.

실제로 첼레스테는 그자에 대한 원망을 품고있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그자를 찾아서 오른팔을 베어내는 것만이 일평생의 목표가 되었을 뿐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이긴 자인 만큼 쉽지는 않은 길일 것이다. 단기간 내에 이룰 수 없는 목표였으므로, 더욱 빨리 달려나가기 위해 피를 토해내는 노력을 해오고 있던 것이고.

-중국인들이 무공은 자신들의 것이라며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무림맹의 맹주 설중연이 직접 발언······.

TV에서는 무림맹의 수장이자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검사, 설중연의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첼레스테는 TV속 그녀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 초능력 없는 초능력 교수(3)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