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20화 (120/251)

< 초능력 없는 초능력 교수(2) >

유서담이 이계로 떠난 이후, 고작 이틀이 흘렀을 무렵이다.

[헌터 테일러 나인, 38번째 SS랭크 승급!]

[러시아인 그녀가 한국 ‘어나더 리그’를 선택한 이유는?]

서른여덟 번째로 SS랭크에 올라선 테일러 나인의 이야기로 온 세상의 기사가 도배되었다. 정작 본인은 귀찮다는 듯 모든 취재를 거절하려고 했지만, 이 기회를 가만히 놔둘 예카테리나가 아니었다.

“반갑습니다. 어나더 리그의 책임 경영자, 예카테리나입니다.”

촤르르르륵!!

찰칵! 찰칵!

기자회견장에서 그녀가 인사를 건네자, 즉시 사방에서 수백 대의 카메라가 셔터를 울렸다. 바로 옆에 앉아있는 테일러는 영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예카테리나의 신신당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긴 했다.

“헌터 테일러, 러시아에서 다시 돌아올 것을 요청했다고 들었는데요. 어째서 한국에 남았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니들이 전부 다~아 사랑스러워서 남았지. 자기야, 사랑해?”

“러시아측에서 공식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테일러 나인 헌터는 러시아의 국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러시아 소속의 SS랭크 능력자로 집계할 것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 나 국적 갈아탔어~”

“어나더 리그 길드만의 아주 특별한 초능력 커리큘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것이 사실입니까?”

“헐 진짜?”

“최근 S랭크 헌터 이모씨가 ‘어차피 SS랭크나 S랭크나 거기서 거기’라는 발언을 했는데 이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

“그게 누군데 씹덕아.”

물론 똑바로 대답했다고는 안 했다.

익숙한 일이었기에, 기자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예카테리나를 향해 돌아가자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고서 테일러의 마이크를 뺏었다.

“이제부터는 저한테 질문해주십시오.”

이후로는 꽤 정상적인 질의응답을 주고받을 수 있었고, 기자들은 굉장히 온화하고 순한 성격을 가진 예카테리나 덕분에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네. 실제로 어나더 리그에서는 특별한 초능력 커리큘럼이 있습니다. 무능력자들이 원한다면 대괴수전용 무공을 가르칠 의향이 있으며, 또한 이미 초능력을 익혔다고 하더라도 테일러 나인을 보다시피 더욱 그 능력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또한 마법에 대해서는 어나더 리그 길드 내에 ‘예카테리나 마법 연구소’를 설립하였습니다. 거기서는 에테르 디스펜서 기술과 마법을 접목하는 실험을 할 예정이기에, 에테르 장인 여러분을 좋은 대우로 모실 생각입니다. 또한 마법을 연구하고자 하는 정명한 학자들을 모집할 계획입니다.”

그녀는 테일러가 SS랭크를 달성한 기념으로, 아예 규모를 크게 부풀린 기자회견을 열어서 합법적으로 ‘광고’를 하였다.

어나더 리그로 와라! 이곳은 많은 인재를 기다리고 있다.

하여, 고작 사흘이 지났을 때 어나더 리그에는 수많은 헌터와 연구원들로 붐비기 시작하였다. 면접 지원서만 수만 장이 온 것은 물론이요, 예카테리나의 개인 연락처를 급히 다섯 개나 추가로 만들어야 했을 정도로 핸드폰이 쉴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 예카테리나의 마법 연구소를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에서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모리안 길드 “마법 교육 정책 실시하겠다”]

[러시아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배울 수 있는 학문으로 만들겠다.]

바로, 마법을 제한적으로 공개하기로 한 것. 물론 아직까지는 러시아 또한 마법에 대한 기밀을 유지하고 싶었기에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면서, 마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모리안 길드와 러시아 정부에 소속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아직 어나더 리그에서 학자들을 모집하기도 전에, 러시아의 선제 공격! 거기에 특별한 혜택까지 덤으로 주어지니, 사람들이 러시아 쪽으로 가야하나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예카테리나의 고민이 깊어졌다. 그들에게 유명한 학자들을 선점당하면 골치도 상당히 아플 뿐더러, 그보다 중요한 건 모리안 길드에게 사소한 점 하나하나로 패배한다는 사실 자체가 기분이 나빴던 것.

“아, 그거요? YTUBE를 하시지 그래요?”

“네에?”

그에 대한 고민은, 신 무림맹주의 직속비서 신혜지가 의외로 빠르게 해결해주었다.

“YTUBE요?”

“네. 괜찮은 것 같은데?”

예카테리나는 그녀가 전달해준 거무죽죽한 수상쩍은 갑옷을 어루만지며 고민에 잠겼다. 이 갑옷은 도깨비 도원에서 발견한 ‘도깨비 갑주’로서, 죽은 도깨비의 기운이 느껴지며 자꾸만 저주에 걸린다는 이유로 마법사인 예카테리나에게 가져온 것인데, 그녀는 저주고 뭐고 전혀 통하지 않는 듯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다듬고 있었다.

“으엑···. 그거 안 아파요? 나는 자꾸 따끔거리던데.”

“아, 네. 문제 없어요.”

오히려, 만지고 있으면 뭔가,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 같다고 할까. 예카테리나는 아예 갑옷을 가슴에 껴안고서 고민하였다.

‘흐음, 확실히 나쁘지 않는 선택이기는 한데······.’

애초에 유서담이 원했던 길드는 자기 자신의 신변을 보호해주기 위한, 그리고 자신과 함께 움직이기 위한 동료를 모집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아주 극소수의 정예멤버만 있으면 충분했겠지만, 예카테리나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심지어 덩치 큰 모리안 길드와 유서담을 내던진 로스트 데이 길드마저도 꺾어버릴 완벽한 길드를 만들고 싶었던 것! 그에 유서담은 “그러냐······.”라며 별로 관심없어 보였지만 “네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네 꿈을 막을 생각은 없으니까.”라고 예카테리나의 독주를 허락해주기도 했다.

즉, 그녀가 뭘 하든간에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의미.

곧바로 YTUBE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당연하지만 와이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마법을 공표하더라도 모든 지식을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모리안 길드의 마법이 1이라고 치면, 유서담의 마법은 10이다. 그리고, 예카테리나는 와이튜브를 통해 2의 마법을 공개한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모리안 길드에서 자연스레 어나더 리그로 시선을 돌릴 터. 거기에, 어나더 리그에 소속될 경우 10의 마법을 모두 가르쳐준다고 하면? 몰랐을 땐 모르겠지만, 살짝이라도 마법의 달콤함을 맛보게 되면 수학에 빠져사는 학자들은 결코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아예 잘 된 거 같은데요? 와, 잠깐, 대박. 나 완전 천재같애.”

“뭐가요?”

“봐요. 어나더 리그 공식 채널을 개설해서 하선영 씨가 대괴수전 무공을, 예카테리나 씨가 마법을, 테일러 나인 씨가 자연간섭계 초능력을 가르치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래도 되려나요······?”

“물론이죠! 게다가 셋 모두 미인이라 채널 구독자도 어마어마할 걸요? 맙소사, 맙소사! 빨리 시작해요! 저도 맹주님한테 말씀드려서 도와드릴게요!”

······그렇게 해서, 개설된 ‘어나더 리그 공식 YTUBE 채널’은 고작 사흘만에 400만 명을 돌파해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무공을 원하는 자, 마법을 배우고자 하는 학자, SS랭크 초능력자가 개발한 ‘특별한 커리큘럼’을 원하는 자. ···그리고 그냥 그녀들의 얼굴이 좋아서 구독한 자들까지.

말도 안 되는 구독자 상승률에 매 시간대마다 YTUBE 최단기간 갱신!이라는 이름으로 기사가 올라오는 건 기본이었으며 단 몇 분만에 수천만의 조회수를 기록해버린 것!

실시간 검색어에 하선영, 예카테리나, 테일러 나인이 순위 싸움을 치열하게 벌인 건 물론이요, 모든 영상에 보조로서 등장한 예사혜도 생각 외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서 검색 순위에 꾸준히 고정되었다.

“···그게, 고작 일주일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고?”

“네.”

서울에 있는 모 대학의 거대한 강의실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전 세계에서 모여든 학자와 학생들에게 마법을 가르치고 있는 예카테리나를 멀찍이서 지켜보며, 유서담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어쩐지 백색 마녀의 도서관의 랭크가 C가 되어있더라니, 예카테리나가 최근 마법에 대한 연구를 열심히 하고있던 모양.

심지어 창밖을 내다보면 온몸에 근육이 가득한 운동 선수들이 하선영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는데, 상당히 마른 축에 속하는 그녀가 선생이라는 점이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을 촬영하기 위해 수십 대의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모두 YTUBE에 올리기 위함이었다.

“이른바, ‘맛보기’라는 거죠. 저거 조금 맛보면 어나더 리그로 안 들어오고는 못배길 걸요?”

예사혜는 그리 설명하며 초능력자들과 투닥거리고 있는 테일러 나인을 실시간 YTUBE로 보여주었다.

-자 봐, 너는 지금 에테르를 개같이 끌어올리고 있다고. 하지만 나처럼 이렇게 응?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좀 끌어올려보란 말이야. 어, 어! 그래! 그거야! 그렇지!

-오오, 됩니다!

영상 속에서는 테일러 나인이 몇몇 재능있는 초능력자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아주 놀랍게도 테일러 나인이 뭔가 이상한 헛소리를 하면 초능력자들이 척척 알아듣고서는 그것을 해냈다. 물론 재능이 있는 자들로 선별을 했다지만, 저 이상한 말을 듣고서 알아듣는단 사실 자체가 꽤 놀라웠다.

초능력자가 아닌 예사혜와 유서담은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초능력자들만의, 뭔가가 있겠지?”

“그, 그렇겠죠?”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테일러 나인의 초능력 커리큘럼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 비록 그녀는 마법과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길’을 개척해내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초능력을 모조리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길마님이 가르치셔야죠.”

“나는 초능력이 없는데?”

“근데 가르치셨잖아요.”

“아니, 그건 테일러가 천재라서···.”

“그럼 천재한테 가르쳐서, 다시 가르치라고 하세요. 지금 이거 저희 길드에서 엄청 중요한 프로젝트가 돼버렸거든요? 길마님이 빠지면 안 되죠.”

“······.”

그렇게 해서, 유서담은 초능력 없는 초능력 교수가 되었다.

*

북유럽에서 현재 가장 뜨고있는 헌터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열 명중 여서일곱은 ‘첼레스테 코스탄티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고작 열일곱의 나이에 헌터로서 데뷔해, 열아홉을 바라보는 현재 무려 C랭크의 강체 능력을 가진 그녀는 아주 독보적인 행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C랭크 헌터 첼레스테, 단독으로 A랭크 던전 돌파!]

[그녀가 사용하는 강체술의 정체는?]

[검의 달인조차 인정한 코스탄티니의 검술!]

그녀의 랭크는 터무니없이 낮은 편이다.

애초에 ‘자연간섭계’ 능력은 초능력의 발현이 랜덤이라, 각성 직후 A랭크가 될 수도 있다지만 ‘육체물리계’에 속하는 강체 능력은 E랭크부터 순차적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

그럼에도 어린 나이에 C랭크가 되었다는 것은 그녀의 재능이 천재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었으나, 첼레스테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 초능력이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첼레스테 코스탄티니, 그녀가 그리는 아름답고도 화려한 검술은 마치 무공을 닮아있었으나 그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의 검은 마치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화려한 불길을 만들어내듯, 혹은 폭풍이 들이닥치는 것처럼, 그리고 파도가 거칠게 몰아치듯 휘둘러진다.

일전에 유서담은 첼레스테의 ‘검술’과 관련된 재능을 알아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그녀가 어느 정도의 잠재력을 숨겨두고 있었는지.

내공을 다루는 무림인들이 무공을 통해 검을 휘두르는 광경은 이제 세상에서 흔하다.

하지만, 신체 자체를 압도적으로 강화하여, 단순 출력으로만 따지면 ‘무공’보다도 그 효율이 뛰어난 강체 능력자가 이계의 검술을 터득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C랭크 헌터 첼레스테, A랭크의 강체 능력자 빌런 제압하다!]

[C랭크 헌터 첼레스테, S랭크 균열에서 큰 공적을 세워······.]

[C랭크 헌터 첼레스테, 일주일 사이 격파한 던전만 19건]

비록 랭크는 낮았지만 과묵하고, 말없이 묵묵히 전장의 최전선에 서서 검을 휘두르는 그녀는 이미 꽤 많은 팬층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녀의 ‘무표정 셀카’는 SNS를 타고 번져서, 아예 유럽쪽에서 밈이 되어 많은 별스타그램 스타들이 따라했을 정도이니까.

하지만.

‘부족해.’

분명 그녀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제 그녀가 그리는 초능력 검술은 무림인들과 판타지 장르의 이계인들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었다.

무협 장르의 무공과 판타지 장르의 이계 검술은 내공과 오러로 신체를 보강하여, 검을 휘두르는 데에 비해 강체는 신체 그 자체를 극한까지 단련하는 데에 취중되어있었으니까. 만약 무공의 달인과 이계 검술의 달인이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검을 결코 따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강한 신체 단련법과, 수천 년 동안 발전해온 다른 세계 검술의 조합!

그러나, 여전히 부족했다.

결국 그녀가 가진 검술은 유서담에게 겉핥기식으로 배웠을 뿐이고,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했다고는 해도 천재들이 수천 년 동안 연구해왔던 검술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할 뿐이니까.

유럽 전역을 전전하며, 그녀의 검술은 이미 탄탄하게 완성이 되어있었다. 비록 초능력 랭크와 강체 컨트롤은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었지만 그럭저럭 성장 한계에 도달했다는 의미.

그러다 최근 유서담의 어나더 리그 길드가 꽤 자주 언급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첼레스테는 결심했다.

‘염치없지만, 다시 한 번 가르침을 청하자.’

이 세상 그 어떤 검술가를 만나더라도, 심지어 무림인을 만나서 가르침을 청하더라도 부족했다. 그가 알려준, 무공과는 또다른 그 신비로운 검술을 다시 배우고 싶었다.

그리하여, 첼레스테는 유서담을 찾아갔고.

“저, 검술을 다시 배우고 싶어서 찾아왔······.”

착!

“합격.”

“···네?”

유서담은 첼레스테의 양손을 붙잡고서 싱글벙글 웃으며 자신의 뒤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어나더 리그를 찾아온 ‘강체’ 능력자들이 따로 분류된 채로 모여있었는데, 아무래도 ‘자연간섭계’인 테일러 나인은 ‘육체물리계’인 강체 능력자들 가르칠 수 없던 탓.

“쟤들은 너랑은 다르게 내 말을 이해를 못하거든? 이제부터 너는 나한테 배워서, 저 친구들을 가르칠 거야. 할 수 있지?”

“······네에에?”

그리하여, 유서담에게 검술을 배우기 위해 찾아왔던 첼레스테는 자신보다 랭크도 높고 나이도 많은 선배 초능력자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 초능력 없는 초능력 교수(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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