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능력 없는 초능력 교수(1) >
1년이라는 시간은 무언가를 바꾸기에도, 이루기에도 짧은 시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더 필사적으로 노력해왔던 것 같다. 1회차, 2회차에서 실패했던 경험을 토대로 삼아, 사하르는 더욱 완벽하고 더욱 아름다운 3회차를 위해 단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1년이 지나 유서담이 다시 돌아왔을 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더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고 그가 가장 바랐던, 꿈을 이루어낸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서.
자신만 미래를 아는 게 아닌, 숙적 또한 미래를 안다는 부담은 사하르에게 꽤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사하르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섰고, 자칫 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는 위험 속으로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두 여인은 똑같은 미래를 알고 있었기에 순수한 자신의 능력만으로 겨뤄야만 했다.
그러나, 사하르 공녀에게는 미래의 정보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그래서 모든 미래를 완전히 비틀어버렸다. 사하르에게는 ‘언제쯤 누가 감기에 걸린다’라거나 ‘언제쯤 누가 아이를 낳는다’ 정도의 사소한 사건만 있으면 충분히 정계를 뒤엎어버릴 만한 힘이 있었다.
여신 카데르가 말했다. 네 명의 사내들에게 주어진 ‘세계의 사랑’은 2회차의 유서담이 모조리 지워버렸다. 그리고 3회차의 비앙카에게 주어지는 ‘세계의 사랑’은 자신이 필사적으로, 어떻게든 막아볼 테니, 있는 힘껏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라고.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그녀를 죽이는 데에 걸린 시간은 고작 4개월. 그녀는 소나기 내리는 흙무더기 속에서 피칠갑이 된 한쪽 팔을 내뻗으며 절규하였다.
제발 살려달라고, 나도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살고 싶으냐?”
“네, 네. 제발요. 사, 살려 주시기만 하면 뭐든, 뭐든지 다 할게요!”
그래서, 사하르 공녀는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순간을 죽음 이후에도 기억하거라. 나 또한 살고 싶었거든.”
성녀를 파묻어버린 이후로는 자신만을 위해, 그리고 8개월 뒤에 돌아올 유서담을 위해 살아가기로 결정하였다.
그 과정에서 황제가 자신에게 반해버린 것은 예상된 일이었으나 그녀는 그것을 이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 남자에게는 질릴대로 질려버렸고, 또한 사랑을 이용하는 행위는 곧 성녀와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짐승같은 황제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대려 했을 때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더라도 반드시 황후가 될 수 있었겠지만, 다른 남자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댈 바에야 차라리 혀를 깨물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황제의 목에 칼을 박아넣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레 벌어진 일에 당황하기도 잠시, 그녀는 아예 즉흥적으로 ‘쿠데타’를 계획하였다. 쉽지는 않았다. 매일밤 자신의 등을 노리고 달려드는 암살자들, 군대를 이끌고 올라오는 귀족들과 마탑의 마법사들, 목숨을 바쳐가며 심장을 찌르려 드는 기사들.
하루도 편히 잠들었던 적이 없다. 수많은 이들의 원망을 꿋꿋히 버텨내고, 이겨내어.
“내가, 제국의 황제다.”
그녀가 마침내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였을 때, 사하르 여황에게 반기를 들 자는 아무도 없었다.
반기를 들만한 이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에?
아니다.
광기에 물든 폭군 황제의 정치에 지친 모든 이들이, 반드시 정의적으로 옳은 일만을 행하는 사하르의 ‘혁명’에 손을 들고 환영하였기 때문이다.
만백성의 축복 속에서 드디어 사하르 여황은 자신이 ‘개인적으로’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였다.
제3 신전, 모두에게 버려져 그 누구의 발길도 들지 않는 그곳을 자신의 보금자리로 삼았다. 모든 이들이 의문을 표하는 와중에도 그녀는 서둘렀다. 늦었다가는 무슨 사달이 날 것처럼, 하루라도 더 빨리 성을 짓기 위해 여황 사하르가 스스로 공사를 거들었다.
그렇게 마침내 제3 신전이 화려한 궁전으로 재탄생했을 때, 그가 돌아왔다.
“사하르··· 공녀님?”
그는 당황하였다. 항상 당황할 일 없이 모든 일을 척척 해내던 그답지 않아서, 사하르 여황은 저도 모르게 유서담과 쏙 빼닮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이야기해주도록 하지.”
그 이후로 한 달.
사하르 여황은 단 1분 1초도 빼놓지 않고 그와 함께하며 제국에서 있던 일들을 들려주었다. 많은 일이 있었다며, 꽤 힘들었지만, 그래도 가장 보람차고 활력 넘치는 1년을 보냈다며, 유서담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였다.
어쩌면 그건······ 그를 안심시키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이렇게도 잘 산다. 제국의 여황이 되어,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이렇게나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냈으니, 걱정하지 말라.
그리하여 완전히 그녀의 이야기가 끝났을 무렵, 유서담은 떠나갔다.
소나기와 함께 홀연히 나타났을 때처럼 그렇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사하르는 차마 그를 붙잡을 수 없었다. 그는 항상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래서 자신의 배필이 되라고 청하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더 큰 꿈과 포부를 가진 그를 가로막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쓸쓸하군.”
“그런가요?”
“그래. 굉장히 쓸쓸해. 이 제국에, 오롯이 나밖에 없는 것 같아.”
제국에서 단 한 명 오로지 황제에게만 허락된, 제국의 모든 것을 내려볼 수 있는 은색의 용평상에 앉아서 사하르 여황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지금도 제국에는 수백만의 국민들이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도저히 그들을 돌아볼 염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사하르의 곁에서, 아라셀리는 지나가듯이 말했다.
“그럼 떠나세요. 찾고 싶으면 찾으러 가면 되잖아요.”
“하지만, 그 남자는 내가 모르는 곳으로······.”
“저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죠.”
“···뭐?”
그녀의 말에, 퍼뜩 여태까지 들었던 어떤 의문이 떠올랐다. 유서담은 틀림없이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그렇다면, 아라셀리 라인칼은? 1회차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검은 여마도사’는 대체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솔직히, 지금도 교수님이 어디에 계신지는 저도 자세히는 알지 못해요. 교수님의 고향은··· 제가 감지할 수도, 닿을 수도 없을 만큼 굉장히 먼 곳에 있거든요.”
“그럼······.”
“하지만 평생을 노력했고, 저는 이렇게 교수님의 흔적을 따라다닐 수 있게 되었어요.”
아라셀리는 웃음을 터뜨리며 뒤돌아섰고.
“당신이라고 해서, 안 될 건 없잖아요?”
그런 말을 남기고서,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결국 혼자 남게 된 사하르 여황은 멍하니 아라셀리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이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에, 자신이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았다.
이윽고, 그녀는 홀린 듯이 누군가의 이름을 대뜸 불렀다.
“카데르. 거기에 있습니까?”
-······여신을 그렇게 싸가지 없게 부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나?
“내 말에 대답하시오. 인간이 차원을 넘나드는 게 가능합니까?”
-참 나···.
카데르 여신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하지만 굉장히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살살 올렸다. 그 ‘사하르’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결말을 본 것에도 모자라, 완전히 새로운 길을 걸어나가려 하고있다. 그것은 세월을 내어볼 수 있는 자신조차 전혀 예측할 수 없던 일.
-글쎄. 시간도 스스로 되돌리는 마당에, 불가능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당신이 되돌렸습니다.”
-후후, 과연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건 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인간은 생각보다 무궁무진한 존재다. 나는 세상을 창조한 인간도 보았고, 시공간을 뛰어다니면서 신의 목을 뎅겅뎅겅 썰어대는 인간도 보았고, 너의 그 기사님처럼 다른 세계의 운명을 바꿔버리는 인간도 보았다.
“······.”
-그리고··· 수천 번을 노력해도 바꿀 수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바꿔버린 인간도 보았지.
그에, 사하르가 무언가를 이해한 듯 표정이 서서히 환하게 펴지자 여신 카데르는 말을 마무리지었다.
-그런 마당에, 고작 차원 여행쯤이야 불가능할 것도 없지 않겠느냐?
이내 사하르 여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딘가로 달려나갔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여신 카데르는 서서히 자신의 존재가 옅어지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뒤돌아섰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여신 카데르조차 모른다. 위험할 수도 있고, 실패하여 절망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결코 겁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세월과 계절의 여신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정해진 미래였으므로, 알 수 없는 미래가 펼쳐진다는 것은 굉장히 두근거리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직접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다니······. 앞으로는 꽤 즐겁겠구나.
여신 카데르는 설레이는 가슴을 꼭 끌어안은 채 눈을 감았고, 그대로 이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
[목표를 달성하여 원래의 세계로 귀환합니다.]
눈을 뜨자, 이제는 꽤 익숙해진 오피스텔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
어쩐지, 이번 의뢰는 상당한 여운이 남아서, 나도 하마터면 돌아오지 못할 뻔했다. 하루만 더 남아있자는 생각을 계속 하며, 무려 한 달이나 남아있었으니까. 의뢰인이 <서담,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영영 이곳에 동화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경고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몇 달은 더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후우···. 이래서 괴물 사냥이 편한데.”
괴물은 감정을 지니지 않고 있었고, 누군가와 감정적인 교류를 할 필요도 없으니까.
<그나저나, 서담도 이번 여행을 통해 많은 교훈을 얻으셨겠지요.>
“···그건, 그렇지.”
성녀 비앙카의 파멸을 보며, 인간이 가진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다시금 상기하게 되었다. 물론, 나에게는 ‘매력’과 관련된 스킬이나 재능이 없어 강제적인 사랑을 이끌어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진실된 감정이기에, 오히려 더 해쳐서는 안 된다.
나는 가장 먼저 테일러 나인을 떠올렸고, 그 다음으로 설중연과 예카테리나를 떠올렸다.
“쓰흡, 내가 어쩌자고 이런······.”
<당신이 다른 이들의 ‘운명’에 간섭을 했기 때문이죠. 자신의 운명에, 다른 이의 운명이 큰 비중으로 들어차게 되었으니······.>
보통의 일반인이었다면 운명과 운명이 조금 얽히기만 해도 곧바로 결혼까지 하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에 아예 운명을 간섭하였다? 인간관계가 이렇게 되는 것은 결국 필연적인 일이었다고 의뢰인이 설명하였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 운명이 개판되거나 그런 건 없지?”
<그런 건 딱히 없습니다. 아예 꼬여버린 운명은 다시 풀어내기 힘들겠지만 말이죠.>
“그건 다행이네······.”
나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시간을 흘러보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할 일은 많고, 가만히 있을 시간은 없었다. 가장 먼저 메신저의 프로필 메시지를 ‘파견 종료’로 바꾼 뒤 몇몇 사람들에게 연락을 보냈다. 그곳에서 머무른 시간은 대략 삼 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고, 시간 배율로 따지면 이곳에서는 고작 일주일 정도가 흘렀을 뿐이다.
어차피 일주일 정도로는 별로 큰 사건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 나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주인공을 사냥하며 레벨 7이 올라 152가 되었는데, 단순 능력치로 따지면 ‘S랭크’라는 의미이기도 했으니까 슬슬 신체 검사를 받을 때가 되었다.
‘이번에 얻은 스킬도 실험해보면서, 정신 좀 환기시켜야겠어.’
그런 대수롭지 않은 생각을 하며 츄리닝 바지에 양손을 꽂아넣은 나는 오피스텔 건물의 1층 정문 현관으로 들쑥, 빠져나갔고.
찰칵!
“······유서담 헌터다!!”
“유서담 헌터! 한 말씀만 해주시죠! 이번에 헌터 테일러 나인이 SS랭크로 승격하면서 발표한 ‘특별 초능력 커리큘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서담 마스터! 마법 병기의 개발에 착수하며 발표한 ‘V3-KK0’모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초능력자 또한 무공과 마법을 병합하여 더욱 효과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그 방법이 대체 뭡니까?”
“유서담! 대답해주세요!”
어마어마한 기자들의 공세에, 얼이 빠지고 말았다.
‘예카테리나, 나 없는 사이에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 초능력 없는 초능력 교수(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