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 왜곡(1) >
중원 출신의 무림인 삼천 명은 전 세계 각자의 고향에 흩어져 있는 상태였다. 아직 삼천 명이나 수용할 수 있는 빌딩을 사지 못했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했고, 지구로 돌아온 이후 삼 년 동안 각자의 고향에서 쌓아두었던 여러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비록 달마지존에 의해 인연을 맺는 것은 금지되어있지만, 결국 사람이라는 게 살다 보면 뭐든 고향이 남게 되어있었으니까.
그래서 ‘기울어진 도깨비의 도원’을 점령한 이후, 나는 그들을 위해 특별히 수명을 추가로 투자하여 ‘출입구’를 세 개나 만들어주었다.
하나는 베이징, 하나는 뉴욕, 하나는 런던.
단, 베이징에서 들어온 자는 베이징으로만 나갈 수 있고 뉴욕에서 들어온 자는 뉴욕으로만 나갈 수 있다. 베이징에서 도원에 진입하여 뉴욕으로 퇴장하는 것은 불가능. 그것을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수명을 무려 1만일 넘게 투자해야만 했는데 그건 좀 아깝잖아?
또한, 거기에 나는 추가로 자그마한 공간 하나를 열어두었다. 다름 아닌 나의 공중정원과 도깨비의 도원을 연결하는 출입구였다.
이 공간은 다른 그 누구도 이용할 수 없고 오로지 내 허락을 받은 극소수의 사람만이 이용할 수 있지만, 어찌 되었든 이제부터는 비행기를 타지 않고서도 ‘신 중원 무림’으로 찾아가는 것이 손쉬워졌다는 말이 되겠다.
이성을 잃고서 폭주하는 도깨비들의 잔당을 완전히 소탕한 뒤, 도원에는 현대풍의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애초에 도깨비들이 지어놓았던 건물은 현대 과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신비로운 구조가 많았는데, 구조물이 허공에 걸려있는 경우도 있었고 구름 위에 지어진 것들도 있었다.
과학자들을 섭외하여 그 원리를 밝혀내려고는 하겠지만, 아마도 도깨비들이 사용하는 신비로운 ‘도술’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니 쉽지는 않을 테다. 모든 현상을 수학적으로 규명하려는 마법과는 달리 도술은 신비 그 자체의 힘을 이용하기 때문에 화분이나 예카테리나의 도움을 받는 것도 힘들다.
아니지.
‘···차원 여행을 스스로 이뤄낸 아라셀리 정도라면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어찌 되었든 그녀는 스스로 공간의 한계를 무너뜨렸으니까 말이다.
신 무림에는 여태 신 무림맹이 모아두었던 자금이 모조리 쓸려 들어갔다. 건축물을 짓고, 인터넷과 전기 및 에테르를 연결한다. 거기에 중원 무림이라 함은, 결국 각자 거리를 두고 각자의 가문이 각자의 보금자리를 짓는 것이 원칙.
벌써부터 어디는 화산파가, 어디는 남궁세가가, 어디는 누구가 차지하겠다며 저들끼리 합의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새삼 그들이 진짜 무림인이라는 게 체감되었다.
당연하지만 무림맹의 건물과 설중연의 거처는 가장 정중앙에 위치한 ‘모든 도깨비들의 왕’이 거처했던 집이었는데, 솟아오른 산과 뒤집힌 절벽의 가운데에 위치하여 마치 우주 정거장이 옆으로 세워져있는 모습을 연상케하는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저것만 보자면 도깨비들도 과거에는 이성을 가지고서 문화를 구축했다는 말이 되는데······. 공중정원들의 정령들 또한 이성을 잃은 채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국 ‘멸망’이 생명의 영혼마저도 앗아가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대박, 완전 대박···.”
신혜지는 정신없이 인터넷과 전기가 연결되고 있는 설중연의 거처를 사진으로 찍어대었다. 저것들 모두 설중연의 SNS와 YTUBE에 올라가게 된다. “이건 무림의 위상을 완전히 드높일 거예요!”라고 외치며 신나게 돌아다니는 게, 아무래도 꽤 진심으로 무림맹을 위해 뛰어다니는 것처럼 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맹주님! 거기 서보실래요?”
“나는 할 일이······”
“한 번만요! 사진 찍어서 올려야 돼요!”
“······.”
설중연은 착잡한 눈으로 혜지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선 그녀의 말대로 위치에 가서 섰다. 그러자, 바람에 살짝 백금발의 머리칼이 휘날리며··· 노을지는 태양빛이 반사되었다. 이 주홍빛 세상에서, 오로지 그녀만이 빛을 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귀찮다는 기색이 분명한 그 연분홍색의 눈동자마저도 어쩐지 신비로운 비밀을 품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 눈이 부시는 광경은 비단 나와 신혜지뿐만이 아니라, 모두의 시선을 이끌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그 증거로 일을 하기 위해 도원으로의 출입을 허락받은 지구의 기술자들의 움직임이 모조리 멎어버렸으니까.
“어······.”
신혜지가 카메리의 셔터를 누르는 것조차 깜빡 잊은 채 멍하니 서있자, 설중연이 물었다.
“다 되었느냐?”
“아, 안 돼요! 아직이예요! 우, 움직이면 큰일나요!”
“···무어가 큰일이 난단 말이냐?”
“아무튼 큰일나요!”
그렇게 그녀가 찍은 사진은, 보정 하나 없이 곧바로 별스타그램에 업로드되었다.
“맹주님 보실래요? 여기, 이게 댓글 확인하는 거예요.”
“음······. 상형문자가 너무 많구나.”
“이모티콘이요! 이모티콘!”
“아, 그랬지.”
다른 무림인들은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현대에 적응한 데에 비해, 설중연은 갇혀 지내느라 전혀 그러질 못했고 현대 문물에 완전히 무지한 상태였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신혜지가 그녀의 곁에 착 달라붙어 다니며 기계 다루는 법과 현대의 문화에 대해 귀가 닳고 닳도록 설명해주었는데, 덕분에 설중연도 어느 정도는 문명에 적응을 끝마친 듯했다.
“보셨죠? 올린지 고작 몇 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맹주님을 좋아하고 있어요.”
“······.”
많은 이들이 자신을 좋아해준다, 그 말에 어쩐지 설중연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구나.”
“자, 그럴게 아니라 이번엔 제가 쓰는 법 가르쳐드릴게요. 나중에 제가 혹시 시간 안 날때 맹주님이 직접 하실 수도 있잖아요.”
신혜지는 설중연에게 이것저것 잡다한 것들을 가르쳤는데, 그중 유독 그녀가 관심을 보이는 기능이 하나 있었다.
바로 ‘팔로우’였다.
“이걸 하면, 상대가 올리는 게시글을 볼 수 있다고 하였느냐?”
“네.”
현재 설중연의 별스타그램 계정은 팔로우 0명에 팔로워만 2천만 명이었는데 지금도 초 단위로 수십 명씩 그것이 불어나고 있었다. 관심에 고픈 사람이나 연예인이라면 그 폭발적인 관심에 행복한 비명을 내질러도 좋을 것이나, 설중연은 그런 것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팔로우······.”
그녀는 표정을 찡그린 채 이것저것 눌러보았고, 마침내 뭔가를 성공했는지 환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스마트폰에 진동이 울린다. 그것을 꺼내서 확인하자, 팔로우 요청이 와 있었다.
설중연으로부터.
‘······잠깐.’
내가 창백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받거라.”
“아니, 그게. 그···.”
설중연은 지금 이 순간에도 팔로워가 수천 단위로 늘어나고 있는 SNS스타이다. 그녀가 올리는 게시글 하나하나가 인터넷 전체에 퍼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설중연의 팔로우는 0명. 여태 그 누구도 팔로우 추가를 하지 않았던 그녀가 유일하게 누군가를 추가한다면?
“······.”
내가 잠깐 망설이자, 그녀가 살짝 우울해진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러느냐?”
아주 약간의 표정변화다. 정말로, 나만이 눈치챌 수 있는 정도의 미세한 표정변화. 그러나 그걸 눈치채고서,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아뇨, 당연히 받아야죠!”
결국 나는 눈을 질끈 감고서 팔로우 요청을 수락하였고.
[알람 해제]
당분간, 계정을 봉인해두기로 했다.
*
기울어진 도깨비의 도원을 신 무림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내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나는 자리를 꿋꿋히 지키며 현대와 무림 도원 사이에서 부작용이 있지는 않나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별 문제는 없군요. 하지만 멸망을 멈추기 위해서는 역시나 생명을 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 이유로, 중원 무림에는 미화원을 대거 고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령들처럼 무식하게 농사를 짓는 것보다는 미화원을 고용하는게 미적으로도, 심적으로도 훨씬 더 좋았으니까.
하지만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건 불가능해졌다. 예카테리나를 통해 전해받은 한 통의 메일 때문이었다.
[마법사 유서담에게]라는 서두로 시작하는 메일에는 [원하시는 장소와 시간이 있으시다면, 저희가 찾아가겠습니다.]라는 열정이 담겨있었다. 솔직히 마법이나 무공과 관련하여 접근하는 사람은 많았기에 나를 ‘마법사’라고 부르는 이들에게는 별로 호감이 가지는 않았으나, 이번 경우에는 조금 독특했다.
첫 번째로, 연락을 보낸 이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국제 이상현상 협회’의 사무국장이었고.
두 번째로, ‘초자연현상’과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초자연현상이라.
말만 들으면 ‘어? 그거 그냥 던전 게이트 현상 아니야?’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전혀 다르다.
던전과 이형던전, 그리고 게이트와 대균열 현상은 통틀어 ‘이상현상’이라 부르며 그것들의 대부분은 과학적으로 원리가 밝혀진 채였다.
그러나, 아주 간혹.
도저히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이상현상이 발생할 때가 있었다. 던전과 게이트, 대균열따위가 아닌, 그야말로 비과학적인 미스테릭한 현상들. 그것을 겪어본 자들은 거의 없었으나, 한 번이라도 겪어본 이들은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다.
‘그것은 이상현상이 아니다. 그저, 초자연현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그것은 거의 미신이나 다름없었고, 직접적으로 증명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무려 이상현상 협회의 사무국장이 초자연현상과 관련된 일로 연락을 줬다? 이건 한 길드의 길드장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마법사로서 굉장히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미국에 온김에, 그들과 만나기로 결정.
설중연과 신혜지에게 돌아간다고 말한 뒤, 다음으로 나는 박성호에게 찾아갔다.
“박성호 비서실장님. 오랜만입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허허, 자네만 할까.”
“무림맹에 사람이 꽤 늘었네요?”
“무림인들이 컴퓨터쪽으로는 영 젬병이라서 말이지. 가끔 변호사도 하고, 의사도 하는 독특한 사람들은 있다만······. 뭐, 그래도 나처럼 헌터 업계에서 종사하던 사람이나 컴퓨터 두드리는 사람이 더 편하지 않겠어?”
무림맹은 이제 더 이상 무림인들로만 구성되어있지 않았다. 큼지막한 틀을 다루는 ‘군사’의 입장인 나부터도 이미 무림인이 아닌 데다가, 한국 헌터 협회 부지부장 출신의 박성호 또한 무림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나저나, 설중연 누님이 무공 전수해준다고 했는데 미루셨다고 들었습니다.”
“어쩔 수 있나. 나 또한 이능력을 얻는 건 평생의 염원이긴 한데······. 그러기엔 시간이 촉박하거든. 운동도 안 한지 오래라서 근육도 죄다 빠졌어. 차라리 나는 이대로 은퇴하고, 후대를 양성하는 게 더 도움이 될 테지.”
“허···.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평생의 꿈을 미래를 위해 미뤄둔다는 그 자체가,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러면서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저런 분이 초능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부지부장에서 쫓겨나, 일개 길드의 비서따위나 하면서 허송세월해야만 했다니.
“아무튼, 맹주님을 잘 챙겨주게나. 자네를 자주 보고 싶어하는 거 같은데, 자네에게 폐가 될까봐 그러질 않고 있어.”
“그렇군요······.”
그렇게 생각하니 또 미안해진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나는 지구에만 있을 수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본업은 헌터인데 사냥을 못하고 있으니, 이게 대체 무슨 부조화인지 모르겠다.
오로지 예카테리나 1인 체제로 돌아가는 어나더 리그와는 달리, 신 무림은 능숙한 박성호의 도움 덕분에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게다가 신혜지가 시작한 SNS로 인한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효과에 더해, 무림인들을 심적으로도 물리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신 무림 도원’까지 생겼으니 앞으로 그들의 발전속도는 더더욱 빨라질 것이다.
안면이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 무림 도원에서 빠져나온 나는 곧바로 메일에 적혀있는 연락처로 전화를 하였다.
그러자, 첫 번째 신호가 채 끝나기도 전에 상대방이 연락을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헌터 유서담입니다.”
-마법사 유서담이시군요. 정말 반갑습니다.
마법사 아니고 헌터인데.
-연락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 초자연현상과 관련해서 연락을 주셨던데.”
-···그게, 통화로 하기에는 상당히 극비스러운 일인지라.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원하시는 장소와 시간대가 있으십니까? 제가 직접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온 김에 아무데나 괜찮습니다만······.”
그렇다고, 느긋하게 카페에서 커피나 쪽쪽 빨면서 이야기하는 건 지겹다.
“‘초자연현상’이 발생했다는 그 장소를 가르쳐주시면, 제가 거기로 찾아가도록 하죠.”
< 현실 왜곡(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