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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04화 (10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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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정령 화르륵은 유서담의 공중정원에서 일하는 정령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배추 농사. 그 외 부업으로는 적당한 농사(토마토, 옥수수, 감자, 딸기, 고추, 밀, 보리, 무 등등···)을 짓는다.

농사! 참으로 보람차고 즐거운 일 중 하나였다.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생명을 키워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업무란 말인가? 이것들이 자라날 때마다 공중정원의 생명력이 되살아나는데 말이다.

“이보게 화르륵. 일은 잘 되고 있는가?”

“쪼르륵 왔나!”

화르륵이 일하고 있는 밭으로 물의 정령 쪼르륵이 다가왔다. 그 역시 이곳에서 일하는 농부 중 한 명으로서, 부업으로는······ 길어질 테니 말을 줄이도록 하겠다.

“요즘 아주 풍년일세.”

그 ‘요즘’이라 함은, 유서담이 온 이후 모든 나날들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만큼 정령들은 행복에 겨워 있었다. 유서담은 정령을 그저 못돼먹게 굴리고 있을 뿐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죽어가던 정령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행동이 되었던 것.

“나는 평생 열매들과 함께해도 좋아.”

“나도 마찬가지일세.”

화르륵과 쪼르륵이 사계절의 모든 과일 및 채소 등의 농사를 자유자재로 지으며 수다를 떨고 있을 무렵, 비닐하우스와 논밭의 옆으로 갑작스레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두 명의 여인, 예사혜와 하선영을 선두로 하여 무려 50인의 장정들이 상체를 벗고서 조깅을 하고있던 것이다!

“헛! 헛!” 기합 소리와 함께 지나가는 그들을 보며 정령들은 혀를 쯧쯧 찼다.

“인간들은 이해를 할 수 없군.”

“아침부터 저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그들의 말대로, 하선영과 예사혜를 포함한 52인의 인간들은 온갖 기행을 펼치기 시작했다. 각도가 수직에 가까운 절벽을 맨몸으로 타고 오르질 않나, 수백 층은 넘을 것 같은 계단처럼 생긴 구조물을 이를 악물고 전력질주로 뛰어오르질 않나.

철인 삼종 경기를 강화한다면 저런 느낌일까. 저러다 누구 하나 죽겠다 싶을 정도였으나 안타깝게도 뒤처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왜냐, 저 50인 하나하나가 사실은 사회에서 활동하던 검의 달인이자 사범이었으니 말이다!

사나이로 태어나, 검에 뜻을 품고 검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그들이다. 하지만 평생을 수련해도 초능력이 없는 몸뚱이로는 E랭크의 초능력자초자 이기지 못할 운명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마침내 기회가 주어졌는데 어떻게 포기를 하는가?

‘유서담 헌터의 어나더 리그에 소속되세요!’

비록 사회적인 지휘나 운영하던 도장 등을 모두 포기해야만 했기에, 달인들 또한 쉽사리 이곳으로 오는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기간 내에 50인이나 되는 검술 사범들이 모였다는 건 그들이 그만큼이나 검술에 배가 고팠다는 뜻이다.

가장 검술에 절박한 이들!

선두에서 달리는 하선영은 신나는 표정으로 뒤에서 따라오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이 간단한 조깅조차 사실 초능력을 가지지 못한 신체로는 턱없이 힘들 터인데 단 한 명조차 낙오되지 않다니! 중원 무림에서 내공을 다루는 녀석들조차 힘들다며 징징대던 난이도인데 말이다.

‘역시! 달인들이야!’

하선영은 그들에게 검을 가르치는 입장이었지만, 그들을 존중하였다.

그들은 단지 검을 올바르게 배우지 못했을 뿐이고, 자신은 무공을 배울 기회가 주어졌을 뿐 결국 검을 추구한다는 목적 하나만큼은 모두 동일했으니까. 게다가 40년 이상을 수련해온 몇몇 달인들도 있었으니, 그 정도면 하선영과 거의 비슷한 경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달인들을 존중하였고, 달인들 또한 그녀를 존중하는 관계가 되었다.

“힘듭니까!”

“아닙니다!”

“좋습니다! 이대로 한 바퀴 더 돕니다!”

“오!”

선뜻 무식해 보이는 방법처럼 보이겠지만, 저 단순한 조깅조차도 ‘내공’을 쌓기 위한 초석을 단단히 다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수십 년 동안이나 신체를 극한까지 단련해왔던 이들. 선영의 검술을 흡수하며 내공을 부풀리는 속도가 하루마다 차원이 다르게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갑시다!”

“아자!”

하선영은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 하루하루 행복한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중원 무림에서 평생을 구르며 누더기처럼 기워낸 조잡한 검술.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그 허접한 검술이 이제 와서야 드디어 인정을 받았으니까.

‘하선영 씨. 당신의 검술은 그 누구의 무공보다도 현대에 최적화되어있습니다.’

‘내가 좀 신세대긴 하지?’

‘······.’

‘···그래서 그게 무슨 소린데?’

‘어느 방향으로든 무공을 비틀 수 있고, 만나는 상대에게 맞춰서 초식을 추가할 수도 뺄 수도 있는 무공은 당신의 검법이 유일합니다. ···그야말로,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탄생한 검법같지 않습니까?’

‘그, 그런가? 그렇지? 맞아!’

몰랐다. 자신의 검술은 그저 누더기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무공과 초능력 그리고 사냥 기술을 모조리 최고 수준에 가깝게 습득한 유서담에게서 인정을 받았다. 자신의 검법은 현대 괴수전에 가장 특화되어 있다고.

‘하선영 씨. 만약 달인들에게 검을 가르친다면······. 그럴 의향이 있습니까?’

가슴이 뛰는 매력적인 제안.

‘당연하지!’

그리하여 그녀는 최고의 제자들을 얻었고.

드디어, 자신의 검을 세상에 펼칠 수 있게 되었다.

*

서담은 지구로 도착한 이후 일주일 동안 꽤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다. 대부분은 마법을 연구하고 싶다는 세계적인 과학자들이나 기술적으로 협력하고 싶다는 대기업이었지만, 그보다도 먼저 ‘달인’들을 많이 만나야만 했다.

과연, 과학자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열기를 가진 달인들은 유서담조차 혀를 내두르게 만들 정도로 극한의 상황에서 신체를 단련하였는데 그 열정만큼은 정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검을 제대로 쥐기 시작한 건 고작해야 2주. 그런데 놀랍게도, 2주 사이에 모두가 E랭크 이상의 내공을 습득해버린 것이다!

무림 역사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하선영은 펄쩍 뛰었지만, 사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달인들 모두 수십 년이나 거칠고 험한길을 헤쳐나왔을 텐데 이제와서 지름길을 알려주었으니 그야말로 고속도로가 뻥 뚫린 느낌으로 성장하지 않겠는가?

달인들은 앞으로 자신들이 평생 노력해왔던 만큼,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을 터. 게다가 그들 모두 어나더 리그에 소속되었으니······. 당분간은 헌팅을 할 수 없어 정체되겠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길드가 뻥튀기처럼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마법.

무공은 기존에 검을 수련하던 달인들이 배운다. 그렇다면 마법 역시, 수학의 달인들이 배우는 게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마법과 수학은 아주 밀접된 연관성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아직까지 제대로 마법을 누구에게 가르치고 있지는 않았으나, 서담은 꽤 많은 수학자 및 학생들을 만나보았고 공개적으로 마법을 가르칠 의향이 있노라 공표를 하기도 했다. 현재 그의 마법은 러시아의 모리안 길드보다 앞선 상태라는 것이 증명된 상태!

지금도 꾸준히 모리안 길드는 어나더 리그를 견제하고 있었으니, 이제 슬슬 활동할 때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어나더 리그, 유서담의 가르침을 원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사실 가르치는 것도 예카테리나가 할 예정이기는 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음에도 예카테리나는 꿋꿋하게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자신만의 마법 체계, 즉 ‘마법사의 탑’을 현대에 세우고 싶다고 그녀가 스스로의 꿈을 말한 것이다.

예카테리나에게 있어서 ‘꿈’이란 곧 고통과도 같았거늘, 이제 그녀는 현실을 당당히 살면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하겠노라 말하면 들어줄 수 있는 자가 조력자로 있었으니 말이다. 조금 힘들더라도, 그녀는 뼈가 닳도록 일할 자신이 있었다.

마법사의 탑.

마법이 누구의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닌, 하나의 학문으로서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마법을 펼칠 수 있는 장소. 만약 그것이 현실화 된다면 누구도 눈치를 보지 않은 채 마법을 배우고 사용할 수 있으며, 초능력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유서담의 꿈이기도 했으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행정일하는 사람을 구하던가 해야겠는데······.’

서담은 그런 고민을 했다. 오늘 오전만 봐도, 테일러 나인이 찾아와 ‘야! 한탕 뛰자!’라며 유혹했으나 업무에 붙잡혀 나가지 못했다. 길드 마스터가 일할 생각은 안 하고 헌팅이나 가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우스운 소리이긴 했지만, 어쨌든 일하는 사람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나마 지금 하루에도 수십 명씩 사람들을 만나가며 길드까지 유지할 수 있던 이유는 전적으로 예카테리나 덕분이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어나더 리그는 진작 수십 번도 더 넘게 무너졌으리라.

이른 오후.

하루의 업무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고, 휴식 시간이 되자 서담은 개인 휴게실의 쇼파에 몸을 뉘었다.

“피곤해 죽겠구만······.”

그렇게 미간을 어루만지며 몸을 늘어뜨리려는데, 문이 열리며 잔뜩 퀭한 표정의 예카테리나가 들어왔다.

“···저도 피곤해요.”

“어. 그래 보이네.”

서담이 손짓하자 예카테리나는 쪼르르 달려와 쇼파에 누워있는 그의 품으로 기어 들어갔다. 짜릿, 강렬한 자극이 흘렀지만 이제는 슬슬 적응이 되었다.

‘이, 이 정도는 버틸만 해······.’

일전에 예카테리나가 서담과의 간단한 접촉만으로 강렬한 느낌이 왔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녀의 체내에 남아있는 정기의 잔여량이 거의 1%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예 에너지가 바닥을 드러낸 와중에,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정기를 받아들이니 그 자극이 심하게 강한 것은 당연한 일.

그래서 그날 이후 예카테리나는 시도때도 없이 유서담과 자주 접촉을 하였고, 덕분에 체내의 정기를 항상 8~9%정도로 유지하면서 이전처럼 강렬한 자극을 받지는 않을 수 있었다.

즉, 체내의 정기가 항상 바닥을 드러내지 않도록 유지해야만 한다는 점이 중요했다.

하지만 고작 10% 정도의 정기는 하루만 지나도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10%의 상태와 1%의 상태에서의 능률은 차원이 다르다.

1%에서는 거의 죽을 둥 살 둥 움직여야 활동이 가능하며, 눈은 뜨고 있는데 세상이 어지러운 감각이 핑 돌고 있다면 10%부터는 정말로 온몸에 활력이 넘치고 팔팔한 수준이 되겠다.

여태껏 고작 1% 남짓한 에너지로 피곤에 찌든 채 바닥을 드러내는 능률로 꾸역꾸역 일을 해왔던 게 기적이었다.

“···그렇게 피곤해?”

“네···조금요.”

어쩐지 그녀를 너무 막 부려먹었다는 생각에 미안한 감정이 새록새록 솟아오른다. 제일 늦게 길드에 들어왔으면서, 자신보다 더 열심히 길드를 운영하고 또 사랑해주는데 말이다.

유서담은 시계를 확인하였다. 어차피 슬슬 저녁 시간이기도 했으나, 한 끼 정도 걸러도 문제는 없다.

“시간도 많은데, 오늘은 오랫동안 같이 있어 줄게.”

“······.”

예카테리나의 체구는 상당히 작은 편이었고, 서담의 품에 안겨있으면 그 가슴팍에 귀를 댈 수 있었다.

두근, 두근. 그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으면 세상 그 무엇보다도 편안해진다. 마치, 어머니의 뱃속으로 다시 돌아간 것처럼 따스하고 편안하고, 또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천상의 요람에 눕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정기를 전달받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았다.

-흐···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어······.

“그래? 죽지 말라고 이렇게 해주는 건데.”

-······으!

서담의 머릿속에 예카테리나의 속마음이 울렸다. 포옹이라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영혼 교감’ 행위로서, 충전량이 더욱 높아짐과 동시에 텔레파시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포옹을 하는 동안 일방적으로 서담이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게 전부였지만.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읽혔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혔으나, 그렇다고 해서 몸을 떼어내진 않았다.

-······저, 조금만 잘게요.

예카테리나는 그의 가슴에 귀를 기댄 채, 그렇게 박동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고 서담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어주었다.

해가 서서히 떨어져 간다.

그 어느 때보다도 고요하고 평화로운 저녁이었다.

< 배터리 충전!(2) [수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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