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101화 (101/251)

< 차원 유랑자 그녀, 아라셀리(3) >

[WANTED]

[★★★★★★★]

[플레이어 유서담]

[Dead Or Alive]

[2,500,000 G]

연쇄 살인마 유서담이 활동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석 달이 되었다.

그간 그는 무려 7성급이라는 전례 없는 등급을 받으며 현상금이 빠른 속도로 치솟았는데, 거기에는 주요 인사 살인이라는 범죄뿐만이 아니라 ‘흑룡왕 계약’이라는 항목이 하나 더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흑룡왕, 모든 인류의 숙적이자 인류가 반드시 넘어야만 하는 과제. 오로지 흑룡왕을 물리치기 위하여 플레이어들이 이 세계로 건너와 ‘영웅’이라 불리는 마당에···. 영웅이 흑룡왕과 손을 잡는다?

그건 더 이상 영웅을 영웅이라 부를 수 없게 된다는 의미.

“이 친구, 단단히 해먹으려고 작정했군.”

“기회 될 때 한몫 제대로 잡을 생각이겠지!”

“흑룡왕이라. 저기랑 손잡으면 뭐 좋은 게 있나?”

“소문으로 듣자하니 흑룡왕 세력에게 덤비다가 쓸려나간 플레이어의 아이템을 독점한다던데······.”

왼쪽 문으로 들어가면 펍,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면 바, 위쪽 문으로 들어가면 클럽, 아래쪽 문으로 들어가면 나이트가 나오는 술집 건물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모든 가게가 ‘씨티 허슬’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씨티 허슬, 평범한 클럽 나이트나 용병 대기소처럼 들리기도 하는 저 집단의 정체는 뻔하게도 ‘카오스 플레이어’들의 모임이었다. 강력한 힘을 통제하지 못하여, 범죄를 저지른 플레이어들의 쉼터. 이러한 씨티 허슬은 대륙 곳곳에 상당히 퍼져있었고, 즉 사회에 암약해있는 카오스 플레이어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뚜벅, 뚜벅.

그런 씨티 허슬에 유유히 찾아온 카오스 플레이어 한 명.

이 자리에서 그를 모르는 이는 없었기에, 시끌벅적했던 씨티 허슬 내부가 순식간에 정적으로 휩싸였다.

플레이어 전문 킬러이자, 최초로 200레벨을 달성한 최강의 플레이어 파시오스. 제아무리 카오스 플레이어들이라 할지라도 플레이어를 전문으로 사냥하는 그 남자의 등장은 모두가 긴장할만한 일이기도 했다.

드르륵! 쿵!

의자에서 거칠게 일어난 몇몇 성격 급한 카오스 플레이어들이 파시오스의 앞을 가로막는다. 분명 파시오스보다 몇 배나 덩치가 큰 이들이었지만, 그는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그렇게 경계할 것 없다. 내 ‘동류’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러 온 것뿐이니까.”

동류. 그 단어를 말하면서 파시오스는 역겨움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가치를 이런 쓰레기들에게 섞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으나······ 지금 이 순간에도 스스로를 희생하고 있을 어떤 남자를 떠올리며 애써 참았다.

“좋은 소식?”

“그래. 플레이어 유서담에 대해서는 들어봤겠지? 그리고 그가 자신과 함께할 플레이어를 모집한다는 사실 또한.”

당연하다.

한 달 전, 유서담은 ‘요르문 성채’를 점령하였다. 그 과정에서 온갖 정치질과 암살, 폭행과 협박이 섞여 있었다고는 하지만······. 중요한 건 하나였다.

흑룡왕의 거성과 가장 가까이에 있어, ‘세계의 방벽’이라 불린 요르문 성채가 플레이어에게 함락당했으며 심지어 그가 흑룡왕과 손을 잡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유서담은 말했다.

[나와 함께 할 플레이어를 모집한다!]

내용은 간단하게도,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면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재화와 보물, 그리고 강력한 힘을 주겠다는 말이었다. 오로지 레벨과 아이템에 눈이 먼 플레이어들이라면 누구라도 혹할만한 상황.

그러나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당연하다. 아무리 힘에 취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들의 목표는 흑룡왕 사냥이었으니까.

하지만······. 레벨과 아이템을 위해 온갖 범죄조차 서슴지 않는 몇몇 플레이어들이라면? 그들에게는 유서담의 제안이 조금 다르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 얼마나 유혹적인 말이란 말인가?

흑룡왕의 성채에서 끊임없이 공급되는 경험치와 전 세계 플레이어들을 사냥하여 나온 모든 희귀한 아이템을 공유받을 수 있다는데!

거기에, 파시오스는 그들을 조금 더 부추길 뿐이었다!

“내가 레전더리 무기를 어떻게 얻었는지 궁금하나? 불가능할 것 같았던 7강을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나? ···그리고, ‘페루티우스’가 어떻게 11강에 성공했는지, 궁금하지 않나?”

“뭐, 뭐라고?”

“그게 흑룡왕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지?”

“헛소리 지껄일 생각이면 꺼져라!”

“멍청한 놈들. 그러니까 너희들이 뒤처지고, 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사냥당하는 거다.”

파시오스의 직설적인 말에도 카오스 플레이어들은 반박하지 못했다. 어찌 되었든, 앞서 나가는 이의 정보가 더 옳다고 판단하는 것은 당연했으니.

“간단해. 흑룡왕의 힘을 받으면······. 강화 확률이 대폭 올라가는 건 물론, 그에게서 ‘레전더리 퀘스트’를 받을 수 있다. 경험치, 레벨, 클래스, 강화. 이 모든 걸 그에게서 공급받을 수 있단 말이지.”

“······!”

“그런······.”

“설마, 페루티우스도 그렇게 힘을 얻은 거란 말이야?”

“그래.”

지금 이 상황, 이 분위기에서 똑같은 말을 벌써 두 달 동안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저 멍청한 카오스 플레이어들이 이번에도 똑같이 속아 넘어간다는 사실이 어쩐지 즐거워진 파시오스는 물 흘러가듯이 말했다.

“힘을 가진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건 당연하다. 너희, 아니 우리는 숨어있을 이유가 없다. 누구보다 빠르게 최고의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구석에서 곰팡이처럼 썩어갈 생각이지? 진짜로 그렇게 평생 살다 죽을 생각이라면···. 나와 동급이라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한심해질 정도로 실망스러울 따름이다.”

파시오스의 말에는 묘한 울림이 있었다.

플레이어의 자존심을 건드렸으며, 힘을 추구하는 자신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더 빠르게 강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욕구를 건드렸으며, 무엇보다도 최강의 플레이어가 ‘이래도 된다’라고 말하니 자신들의 행동에 어쩐지 정당성이 생기는 것만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날짜를 적어두도록 하지. 그날, ‘요르문 성채’에서 모이도록. 오로지 힘만을 추구하는 자들이, 그리고 플레이어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올 테니까.”

카오스 플레이어들이 요르문 성채로 모인다.

*

“플레이어들의 단합이라···.”

마로돈 제국의 제1 황녀 ‘류혜이안’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홍차 ‘레드골든’을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바로 맞은편에는 레두룬이 앉아있었는데, 그는 안절부절 못한 자세로 그 비싼 레드골든조차 마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둘의 관계는 상당히 불편하고 또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게, 마로돈 제국의 계승권 제1순위인 류혜이안이 레두룬에게 고백을 한 입장이었으며 또 레두룬은 그 고백을 뿌리치고서 도망친 상태였으니까.

‘나를 받아들여요. 그럼 내 모든 힘을 쏟아부어서라도 당신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겠어요.’

그래, 사실 레두룬도 류혜이안에게 마음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를 받아들이는 순간 제1황녀가 가지고 있는 모든 권력이 반감되리라는 사실 때문에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었다.

황제는 이미 플레이어들에게 호감을 잔뜩 가진 채였고, 심지어 레두룬 자신을 굉장히 미워하는 채였으니까. 그런 와중 황녀가 플레이어를 치우고 자신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레두룬을 다시 데리고 온다? 분명 그녀의 입지가 상당히 줄어드는 건 뻔할 터.

그녀는 붉은색 머리카락을 살살 꼬았다. 강렬한 인상을 가진 그 입술이 오늘따라 악동스럽게 웃고있었다.

“흥미로운 제안이네요. 확실히, 이 상황에서 플레이어들의 악질을 폭로하고 그들을 모조리 소탕하는 공로를 세운다면······. 황권 전쟁에서 제 입지를 단단히 굳힐 수 있는 계기가 되겠어요.”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인다.

“···그렇게 되면, 당신이 어떻게 해야되는지는 잘 알고 있겠지요?”

“네? 네, 그건 물론···입니다만. ······괜찮으십니까?”

레두룬은 눈치를 살살 살피며 말했다.

“저는 이미 황녀님을 한 번 거절한 몸인데······.”

“후우···.”

굳이 꺼내지 않아도 좋을 이야기를 꺼낸 저 눈치없는 남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황녀는, 이내 솔직히 말했다.

“맞아요. 기분도 많이 상했고, 마음도 많이 아팠어요. 자존심은 이미 산산조각 찢어졌구요. 그래서 당신이 다시 돌아왔을 땐 욕이나 들이퍼붓고 쫓아낼 생각이었어요.”

“그럼······.”

“근데, 얼굴을 보니 그게 안 되겠더라구요.”

류혜이안은 은근한 눈으로 레두룬을 바라보았다.

“자존심이 찢기고, 상처받았던 마음이 전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사라졌다는 말이에요. 당신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그깟 것들은 아무래도 좋아요.”

“······.”

레두룬은 어쩐지 죄책감이 밀물 밀려오듯 격렬하게 차올랐다. 그는 알지 못했지만, 그러한 그의 심정 또한 류혜이안이 노린 것이기도 했다. 만약 여기서 그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류혜이안은 한번 더 거절당한 셈이 될 것이며, 죄책감을 느낀다면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그녀는 레두룬이 자신에게 여전히 마음이 있다는 사실까지 확인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지금부터 플레이어를 사냥하러 가볼까요?”

*

당초의 계획은 이러했다.

‘카오스 플레이어를 모아, 그들을 흑룡왕에게 물들여 이미지를 격하시킨다.’

유서담의 계획은 꽤 그럴듯 했고, 실제로 많은 수의 카오스 플레이어들이 요르문 성채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는 이 계획의 끝을 보지 않을 예정이었다.

‘카오스 플레이어 집단을 저지하기 위해 찾아온 페루티우스를 제거한다.’

사실, 흑룡왕에 대한 이야기는 반만 진실이었고 반은 거짓이었다.

왜냐.

‘애초에 흑룡왕의 힘을 이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세계의 방벽이라 불리는 요르문 성채가 흑룡왕에 의해 물든 것은 사실이었다. 그것은 ‘에피소드’로 증명되었으며, 애초에 성주가 이미 흑룡왕과 손을 잡은 채였으니까. 거기에 유서담은 성주를 사냥하여 자리를 차지했을 뿐, 흑룡왕의 잔재를 이용할 생각은 없었다.

즉 성채에 남아있는 흑룡왕의 잔해를 미끼로 하여 카오스 플레이어들을 집결시킨 다음, 자신을 저지하기 위해 에피소드의 흐름에 따라 찾아온 페루티우스를 저지하는 것.

흑룡왕의 힘을 이용하지 않았기에 페루티우스가 사용할 수 있는 개연성은 극히 제한적이며, 또한 카오스 플레이어의 위험성을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될 테니 일석이조가 될 예정이었다.

‘고작 내 말 한 마디를 믿고 따라온 카오스 플레이어들은 극소수일 터. 그들만으로 페루티우스를 사냥할 수 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이 역시도 확률은 반반. 하지만,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기도 했으니 도전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유서담! 카오스 플레이어의 본보기라고!”

“흑룡왕의 아이템을 받으러 왔다!”

“너같은 쓰레기는 태어나서 처음 본다!”

“널 따라서 세계 최고의 쓰레기가 되어주지!”

유서담은 얼떨떨한 눈으로 요르문 성채에 모인 수천 명의 카오스 플레이어를 바라보았다.

“이, 이렇게 많이 모였다고······?”

일단은 그들을 성채 내부로 들이기는 했으나,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바보들만 있나?’

그럴 리 없다.

유서담이라는 이름값이 최근 범죄자로서 급상승하고는 있다지만, 그래봐야 석달 남짓 설치고 다녔을 뿐인 플레이어란 말이다.

‘대체 무슨 일이······.’

심지어 카오스 플레이어들은 유서담을 아주 존경하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는데, 뭔가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흑룡왕의 아이템을 우리 모두에게 뿌린다고 들었다!”

“페루티우스 그놈도 흑룡왕이랑 손 잡았던 주제에, 혼자 독식하면서 온갖 잘난 척은 다 했다지!”

“다 좋다 이거야! 그럼 우리도 흑룡왕이랑 해서 한몫 챙겨도 되는 거 아니냐고!”

분명 저들이 했던 말의 대부분은 자신이 지어낸 말들이기는 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저들 모두가 알고있단 말인가?

카오스 플레이어는 기본적으로 전 세계에 퍼져있기 마련이고, 그들 모두에게 소식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리는 만무. 유서담 또한 카오스 플레이어를 전부 찾아다닐 방법이 전무하였기에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거늘······.

‘···이건, 뒤에서 나 말고 누군가가 또 움직인 거야.’

그는 모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위해 어떤 여인이 발에 땀이 차도록 뛰어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이내, 유서담은 의문을 접어두었다.

이만큼이나 카오스 플레이어가 모였는데, 지금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있는가?

유서담은 3등급의 에테르 블레이드를 번쩍 치켜들었다. 실제의 등급 자체는 레어에 불과하지만, 번쩍이는 섬광 덕분에 생긴 것만 봐서는 거의 히어로 등급에 필적하는 현대 과학의 산물!

“그래! 이제껏 페루티우스는 저 혼자 착한 척 위선을 떨며 흑룡왕과 손을 잡아 은근슬쩍 힘과 세력을 부풀리고 있었지! 이제는 그놈 혼자 독식하게 내버려둘 수 없다! 우리 모두 세상에 떳떳히 나설 자격이 있다!”

이윽고, 에피소드의 흐름에 따라 페루티우스 일행은 흑룡왕에 의해 점거당한 ‘세계의 방벽’에 도달했으며.

“자, 놈이 왔다. 우리 모두 거짓 영웅의 가면을 벗겨내자!”

““오오오오오!!””

거진 2천 명에 달하는 카오스 플레이어가, 영웅에게 맞서 싸우기 위해 각자의 무기를 치켜들었다.

< 차원 유랑자 그녀, 아라셀리(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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