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원 유랑자 그녀, 아라셀리(1) >
이번 주인공은 여태 만나왔던 다른 주인공들과는 다른 특별한 점이 있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개연성을 ‘행운’으로 소모한다는 것.
어떤 주인공은 개연성으로 상황에 맞춰 스킬을 습득하기도 했으며, 어떤 주인공은 시간을 되돌리는 데에 모든 개연성을 소모하기도 했고, 어떤 주인공은 상황에 맞는 발명품을 떠올리는 데에 개연성을 소모하였고, 어떤 주인공은 세계를 창조하는 데에 개연성을 소모하기도 했다.
정말로 다양한 주인공과 다양한 개연성을 보아왔기에 이 행운이라는 게 별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회귀보다 이게 더 독특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용사 일행이 오지에서 길을 잃었다고 치자.
“오, 자네. 클리툰으로 가는가? 마침 마차에 자리가 6개가 남는데 태워주겠네!”
그럼 하필 딱 탈것을 끌고 다니는 친절한 조력자를 만난다.
그뿐이 아니다.
“우리 약초방 문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이 있지. 푸른 설산삼일세. 산삼이 극지방에서 999년 동안 생존하면 아주 희귀한 기운을 지닌 영약이 된다고 하는데······. 끌끌, 물론 그것을 발견할 확률은 극악! 우리 가문 또한 300년이 넘도록 찾았지만 구경도 못 해봤··· 아니?! 그건 푸른 설산삼이 아닌가? 어디서 났나?”
“실수로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졌는데, 마침 코앞에 있길래 뽑아왔습니다.”
누군가는 몇 세대에 걸쳐서 찾아 헤매던 것을 단 한순간에 발견한다던가.
물론, 위의 상황은 그렇다고 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발현되는 행운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용사! 위험해!”
페루티우스의 뒤를 어떤 괴수가 치려고 한다. 그 상황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이라 대처할 방법이 없다면?
그 순간, ‘세계’가 나서서 구해준다.
콰콰쾅!!
“아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다니!”
정말, 우연히도, 난데없이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져서 페루티우스의 뒤를 노리던 적이 쓰러지는 것이다!
날벼락뿐만이 아니다. 난데없이 바닥이 무너진다거나, 구름이 태양을 가려서 순간 적의 시야를 차단한다거나,
나는 단순히 ‘운빨’로 먹고 산다는 주인공이라길래 언제나 좋은 아이템을 뽑거나, 강화에 성공하는 등으로 개연성을 소모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운이 좋다는 건, 세계에게 사랑받는다는 것.
그리고 세계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려운 길을 모조리 패스하고서 가장 좋은 지름길만을 택할 수 있다는 것.
남들이 아무리 빠르게 달리고, 또 노력해도 지름길로 편안히 가는 자를 앞지를 수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개연성이 무한정하지는 않아요.>
운이라는 게 무적처럼 보일수도 있으나, 결국 세상에 개연성은 한정되어 있다.
이를테면, ‘아이템 강화’는 어떨까. 인근의 모든 개연성을 소모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0.001%라는 극악의 확률을 100%로 끌어올릴 수는 없다. 그래서 이 0.001%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건’과 ‘이야기’가 필요했다.
즉, 이야기로 치자면 기승전결에서 ‘전’에 해당하는 클라이맥스 에피소드가 준비되어야만 한다는 의미.
위기에 처한 용사!
도저히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갈 방법이 없어, 절망에 빠진 그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개연성을 100%로 끌어와 ‘아이템 강화’에 퍼붓는 바로 그 순간!
“바로 그때가 약점이다, 이거지.”
<방법이 있습니까?>
기대에 찬 의뢰인의 목소리를 듣자니 어쩐지 미안해졌다. 그래, 의뢰인은 나만을 믿고 의지하는데 여태 너무 안이하게 행동하기는 했다.
“일단은.”
이번에는 거짓말이 아니긴 했다. 정말로 어느 정도 감을 잡기는 했으니까.
나는 돌더미에서 걸어나와 슬슬 몸을 추슬렀다.
악마의 길을 선택한 마이엘은 죽었고, 페루티우스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11강의 성검 리아트를 치켜들었다.
이윽고, “와아아아!!”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폐허가 된 카메룬 성채에서 살아남은 모든 플레이어들이었다.
저들은 과연, 이번 재앙이 자신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을 과연 알까?
모르겠지.
“차라리 잘 됐어.”
그간, 페루티우스를 사냥하기 위해 여러 계획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 계획, 일전에 사냥했던 용사와 마찬가지로 곧바로 최종보스와 대면시키는 것.
두 번째 계획, 플레이어와 원주민 사이에 트러블을 일으키는 것.
첫 번째는 기각이다. 오늘 사건을 보니 확실히 알겠다. 정석적인 방법은 소용이 없다.
저 페루티우스라는 놈은 흑룡왕을 만나더라도 난데없이 바닥에서 15강짜리 무기를 주워서 싸우면 싸웠지, 결코 호락호락하게 죽어줄 놈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건 두 번째 계획이었다.
플레이어와 원주민 간에 트러블을 일으켜서, 주인공을 자연스레 위기로 몰아넣는 것. 흑룡왕에 의한 위기 상황이 아니니 개연성은 더욱 더 팍팍하고 사냥 확률은 자연히 올라갈 것이다.
사실, 별로 내키지는 않았다.
나는 내 이익만을 위해 살인청부를 받는 입장이었고 이제와서 착한 척, 덜 쓰레기인 척을 할 생각은 없다. 떡만둣국집 사장님에게도 사장님 나름의 떡을 뽑는 신념이 있듯, 킬러에게도 킬러만의 신념이 있는 법.
내 경우에는 일반인 사상자를 최대한 내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신념이었다.
떡을 뽑는 신성한 신념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초라한 신념이지만, 나는 스스로 이 신념을 소중히 여기며 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플레이어 중에서는 착한 이도 있을 것이고, 죄가 없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플레이딘 대륙을 좀먹고 있었다. 두 달간 나는 플레이어들과 부대끼며 많은 것을 느꼈고, 쉽고, 빠르게 너무나도 강한 힘을 얻게 된 철없는 존재가 어떻게 되는지를 바로 오늘 경험하였다.
<······일반 플레이어를 죽일 생각입니까?>
“당연히 전부는 아니지. 악질적인 놈들을 본보기로 처리할 생각이야.”
그러면서 겸사겸사 이 대륙에서 플레이어라는 존재가 위축된다면 더욱 좋고.
결국 플레이어가 강해지는 데에도 한계는 있다. 다만, 그 한계가 이 세계의 원주민들보다 압도적으로 강력해서 문제일 뿐. 하지만 그들의 능력과 활동 반경에 제약을 걸어둔다면 의뢰인이 상정했던 끔찍한 미래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계획은, 어떻습니까?>
기존의 운명론적 사냥 확률은 29%이었으며, 약점을 파악한 현재 37%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여전히 50%조차 넘지 못하는 상태.
“······생각해둔 건 있긴 한데, 솔직히 막 엄청 자신은 없어. 나 하나의 힘으로 어디까지 갈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달마지존 때보다도 난이도 자체는 더욱 높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이 주인공을 향해 강한 원한을 품고 있었고, 나는 심지에 불을 붙이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이번 경우에는 그런 것도 불가능한 데다가, 심지어 단 한 명만을 공략하는 것이 아닌 집단 자체를 공략해야만 했다.
과연 내가 어디까지 이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하다못해, 나를 도와줄 누군가가 더 있으면 좋겠지만···.’
하지만 여태 나는 혼자 활동해왔고, 이제와서 그런 요행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할 뿐.
“가자.”
여전히 승리에 취해있는 용사의 뒷모습을 힐끗 쳐다본 뒤, 나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
*
플레이딘 대륙의 동부지역을 이야기하면, 누구라도 마로돈 제국을 이야기할 것이다. 누가 듣더라도 그다지 뜬금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동부 전체를 지배하는 국가가 바로 마로돈 제국이었으니까.
산 좋고, 공기 좋고, 제국을 관통하는 수십 줄기의 강물이 제국을 풍성하게 만드는 데에 일조했다지만 역시나 ‘마법’의 발전도가 바로 마로돈을 강대국의 위치로 올려놓는 데에 일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마로돈 제국의 구석진 시골의 어딘가.
지성체에게 버려져,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숲속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웬 검은색 머리칼의 소녀 한 명이 튀어나오더니 데굴데굴 굴러 나무에 머리를 쿵! 박았다.
“끄헥!”
상당한 고통이 온몸을 강타했는지 그녀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다가, 이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푸른색의 현명한 눈동자가 세상을 관조하였다.
“여긴······.”
그저 숨을 한 번 들이쉬는 것만으로도 이곳의 환경을 파악할 수 있었으며,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찰나의 관찰만으로도 생태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나마, 사람이 살만한 곳이네.’
누군가가 본다면 괴수들이 득실대는 지옥의 한가운데라고 해도 좋을 깊은 숲속이었지만, 수많은 차원을 헤매이며 온갖 환경을 다 경험한 그녀에게는 그저 애교 수준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라셀리 라인칼.
비비안타 제국의 가장 위대한 9써클의 마법사이자, 대현자라고 불리는 그녀는 꽤 오랜 세월을 살아왔음에도 상당히 어린 외모를 한 상태였다.
물론,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신체 나이가 몇 살인 거지?’
아라셀리 라인칼은 마법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그 어떤 학문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은 채 평생을 ‘차원 이동’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그녀는 어떤 차원 여행자의 흔적을 쫓는 것 정도는 가능하게 되었는데, 이 불안정한 차원 이동에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여, 열넷? 너무 어리잖아!’
그것은 바로 차원을 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시간의 파편’과 자꾸만 부딪친다는 것.
해서, 아라셀리는 낯선 차원에 도착할 때마다 항상 랜덤으로 나이가 뒤바뀌고는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신체 나이가 급속도로 노화하는 경우는 없었으나, 자꾸만 어려진다는 게 문제였다.
시간의 파편에 대해 연구한 지가 몇 년째인데, 아직까지도 극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아라셀리는 새삼 울적해졌다.
‘나 같은건 이래서 안··· 아니야! 할 수 있어!’
너무나도 기나긴 세월이었다. 오랜 시간, 그녀는 세상을 유랑하였고 이제는 더 이상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조차 잃어버린 상태였다.
어쩌다 여기까지 와버린 걸까.
그녀는 문득 옛날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그저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자신감을 잃은 채, 마법마저도 포기하려고 했던 자신에게 유일하게 아군이 되어주었던 교수님.
그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고, 그 덕분에 그녀는 세상에서 단 한 명뿐인 9써클의 위대한 대마법사가 될 수 있었으며, 세상에 닥친 위협을 무사히 물리칠 수 있었다.
만약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마법을 계속 할 수 있었을까?
만약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세상을 구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비비안타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마무리한 아라셀리는 세상을 뜰 준비를 했다. 마지막으로 자신과 자신의 세상을 구해준 교수님을 찾기 위해.
그래.
처음에는 그저 마지막으로 자신의 인생에 다시 없을 처음이자 마지막 은인을 만나뵈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저 그런 마음에서 시작한 여정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낯선 세상을 방랑하게 되었고.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인물들과, 새로운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온통 보랏빛으로 뒤덮인 요정들의 세상, 온통 검으로 이루어진 세상, 나선형으로 이루어져 별자리가 내다보는 세상, 성검이 1000년 동안이나 지배했던 세상.
그 무수히 많은 차원을 다니며 아라셀리는 세상의 ‘근원’과도 비슷한 에너지를 소모하여 멸망으로 이끄는 존재에 대해 깨달았고, 그리고 ‘유서담’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그는 온갖 세상을 돌아다니며, 세상을 파멸로 이끌고 가는 존재들을 척살하여 그 수많은 세상을 모조리 구하고 있던 것이다.
간단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여정은, 더 이상 간단하지 않았다.
더욱 더 집착하게 되었다.
더 이상 찾아도 그만, 못찾아도 그만이라던 안이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반드시 찾고야 말겠다는 뚜렷한 목표의식만으로 가슴을 가득 채웠다.
“마력은······.”
체내의 잔여 마나량을 체크해 보니, 10%도 채 되지 않았다.
불안정한 틈새로 차원을 관통한 대가.
아마, 이대로 마력을 회복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터. 그렇게 되면 믿을 건 신체 능력밖에 없었는데 그녀가 맨몸을 단련하기 시작한 나이는 19세였으므로, 그보다 어린 나이로 돌아가게 되면 급속도로 연약해진다.
나름대로 매끈했던 복근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깨달은 그녀는 황급히 손끝에 소량의 마력을 집중하여 근처의 돌멩이를 썰어 단도의 형태로 만들었다.
그러고선 주위를 둘러보며 몸을 가릴만한 것을 찾아보았다. 목에 항상 걸고 다니는 ‘총알’ 목걸이를 제외하고서는 그 어떤 물건도 가져올 수 없었기에 이런 불편쯤은 감수해야만 했다.
‘아공간만 가져올 수 있었더라면······.’
길게 자란 풀잎을 엮어 급한 대로 중요 부위를 가린 아라셀리는 맨발로 숲을 헤매이기 시작하였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시간. 마력의 보충까지는 한참 남았으므로 서둘러 몸을 보호할만한 장소를 찾아야만 했다.
그런데, 아라셀리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새로운 조연이 스토리 라인에 합류합니다.]
그녀는 유서담과 너무나도 강력한 인연이 맺어진 존재인 탓에, ‘같은 세계’로 진입하는 순간 그가 탑승한 스토리에 강제로 합류하게 된 것이다!
부스럭!
“······!”
은은하게 퍼지는 마력 탐지장에 인기척이 감지되자, 아라셀리는 잽싸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서 두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런 곳에 어린애가 있다니.”
“오오! 정말이네. 역시 사람 좀 죽여본 놈이라 그런지 사람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찾는데!”
그녀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극소량의 마력을 흘려보내 그들을 파악하였다.
‘여차하면 적당히 상대해주다가 도망치면 되겠어.’
검은 머리칼의 사내 한 명과 푸른 머리칼의 사내 한 명.
한 명은 소드 프로페셔널에 가까운 수준이었고, 다른 한 명은 7써클의 마법사였다. 이 세계에서도 강한 축에 속하는 그들이었지만, 아라셀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제압할 수는 있는 수준. 그러나 마력량이 제한되어있기에 그러지 않는 편이 좋다.
“누구시죠?”
“파시오스. 플레이어다.”
“나는 레두룬. 한때 제국의 수석 마법사였는데, 뭐. 플레이어 놈들한테 자리 뺏기고 지금은 길거리 용병 나부랭이지. 꼬맹아, 너는 누구야?”
한 명은 플레이어, 한 명은 용병 마법사란다.
“저는 아라셀리. 마법사예요.”
그러자 두 사내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아라셀리를 재차 살펴보았다.
많이 쳐줘봐야 열넷쯤 되어보이는 소녀가 마법사라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자기 보호를 위한 거짓말이겠거니 생각한 파시오스는 한숨을 내쉬면서 몰래 뽑았던 검을 수납하였다. 저렇게까지 경계하는 게 퍽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레두룬이 낄낄거리며 말한다.
“잘못 걸렸는데. 오지에 고립된 꼬맹이라니.”
“···데리고 도시로 돌아가도록 하지.”
“PK(플레이어 전문 킬러) 주제에 마음씨만 고우셔?”
“자꾸 토달거면 꺼져라.”
“에이, 안 된다니까. 나 그럼 진짜 갈 데 없다고!”
파시오스는 아라셀리에게 다가가 검은색의 망토같은 것을 둘러주었다. 그녀의 복장이 너무 가벼웠기 때문이다. 그러고선 ‘아이템 창’을 열어 딱딱한 빵 하나를 꺼내 건네주었다.
“먹어라. 이상한 건 아니니까.”
“알아요. 방금 스캔해봤거든요. 근데 그 신기한 ‘아공간’ 안에 딸기잼도 있는 거 같은데, 같이 주시면 안 돼요?”
“······!”
그녀의 말에, 순간 파시오스가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걸, 어떻게 알지?”
“그냥 보였어요. 저 마법사라니까요? 엄청 대단한! ······아마도.”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파시오스는 딸기잼을 꺼내서 건네주었고, 내내 싱글벙글 웃으며 지켜보던 레두룬의 얼굴 또한 굳어들어갔다.
‘다른 사람의 아공간을 감지했다고? 어떻게?’
그건 7써클의 마법사인 자신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플레이어의 ‘아이템 창’은 최소한 9써클 이상의 ‘공간 간섭’ 계열 마법으로 추정되니까.
‘이 꼬맹이는······.’
‘···대체 뭐지?’
그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아라셀리의 신비로운 푸른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최근에 먹었던 것중에는 가장 맛있어요! 으, 하긴 뭘 먹든 언노운 드래곤의 지느러미보다는 낫겠지만요.”
순식간에 심각한 분위기로 빠져드는 두 사내와는 달리, 아라셀리는 딸기잼을 빵에 발라서 신나게 베어물었다.
< 차원 유랑자 그녀, 아라셀리(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