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97화 (97/251)

< SSS급 운빨로 먹고사는 플레이어(3) >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의적의 출현!]

“자네, 소문의 그 의적에 대해 아는가?”

“범죄를 저지르고 성향이 카오스가 된 플레이어들을 모조리 사냥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다네!”

[카오스 플레이어의 아이템을 모조리 빼앗고 다니는 그의 정체는 누구인가?]

“심지어는 빼앗은 아이템을 대부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고 하더군.”

“참으로 정의로운 인물이지.”

[이 시대의 진정한 의적! 그 이름은······.]

“그자의 이름? 당연히 ‘유길동’이 아니겠는가?”

······어떤 작품의 인트로를 장식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위의 내용은, 아무래도 나를 두고 하는 말인 듯싶다.

여태 어디를 가든 항상 주인공을 대적하는 위치에서 ‘사냥’을 해왔던 나였기에 이런 상황을 참으로 어색했다.

‘누가 의적이라는 거야······?’

그냥 도둑이다. 강도를 터는 이유는 어차피 털려서 주인없는 아이템을 가득 들고있는 데다가 괜히 경비의 추적을 받지 않아도 돼서 그런 거다.

아이템을 사회에 환원하는 이유?

강도들에게서 빼앗은 아이템을 시장에 내놓아봐야, 원 주인이 찾아와서 지랄염병을 한다. 게다가 이 세계의 화폐는 크게 쓸모도 없고. 심지어 인벤토리의 한계로 들고 다니기도 힘들다.

암시장을 이용하면 된다지만 이 세계에 온지 며칠 되지도 않은 내가 그런 걸 어찌 아는가? 괜히 뒤통수 맞으면 골치 아프다.

그리하여, 나는 얻은 아이템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의적 유길동을 도와, 우리도 카오스 플레이어를 토벌합시다!”

“오오!”

이미지가 저따구로 잡혀버린 것.

그래, 어찌되든 상관은 없다. 애초에 유길동이라는 가명도 장난삼아 지은 거고, 얼굴은 거의 드러나지 않게 활동했으니까.

지금까지 2주일 동안 의적으로 활동하며 많은 아이템을 구했지만, 장비류는 구경도 못해봤고 쓸만한 악세서리류 몇 개를 얻었을 뿐이다. 앞으로도 몇 주는 강도짓을 하며 지낼 생각이었다.

그럴 생각이었는데.

“당신이 소문의 의적 유길동이 맞습니까?”

『SSS급 운빨로 먹고사는 플레이어』

······주인공이 찾아왔다.

“제 동료가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주인공 페루티우스에게 신규 에피소드 ‘너, 내 동료가 돼라!(1)’가 발생합니다!]

*

<···큰일난 거 아닌가요?>

“걱정마. 전부 계획대로야.”

<그, 그렇군요!>

당연히 구라다.

곧이 곧대로 믿는 의뢰인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말이지만, 상황이 참으로 오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니, 뭐. 나쁘진 않다. 주인공의 동료가 됐으니 조금씩 정보를 파악해나가면서 사냥할 방법을 구상할 수도 있었으니까.

‘근데, 왜 하필이면 지금이냔 말이지······.’

아직 템파밍을 못끝낸다.

나도 히어로 등급 슈트 입고, 히어로 등급 명검 구하고 싶단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료가 되라는 제안을 거절하기에는 또, 나중에 제대로 ‘사냥’을 하기 위한 빌드 업에 이만한 게 없어 보여서 결국 수락하고 말았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어차피 사냥 끝내고도 시간 많잖아?

‘저 친구 아이템을 빼앗을 수는 없나?’

천천히 살펴본 결과, 불가능으로 단정지었다. 그가 가진 대부분의 아이템은 ‘레전더리’ 등급이었는데, 내가 지구로 가지고 돌아갈 수 있는 아이템은 최대 히어로 등급이었으니까.

그나저나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운’이 좋은 건 알겠다. 모든 아이템이 레전더리 등급이라니. 심지어 강화도 상당히 잘 돼있는 듯싶다. 특히, 무기. 무기류는 아이템 강화 등급이 올라갈수록 ‘오라’가 점점 더 빛을 발하는데, 페루티우스의 무기는 아주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뒤통수를 확 후려버릴까?’

앞장서서 걷는 페루티우스를 바라본다.

뒤통수, 정말 견고하다. 바다처럼 드넓고 든든하다.

저 등짝 위에서 조기축구 야유회 열어도 될 것 같다.

콰콰콰쾅!!

“오오, 역시 용사님! 강하시군요!”

“······.”

검격 한 번에 전방 부채꼴의 범위가 터져나가는 것까지 확인한 나는 페루티우스에게 대드는 것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애초에 용사와의 싸움에 성립되지 않는 데에는 전투력을 제외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그의 동료들.

근육질 도끼 전사(남, 31세)

빛의 성직자(여, 20세)

안경잡이 마도사(남, 29세)

정령 궁수(엘프녀, 23세)

거기에 페루티우스가 성검과 방패를 착용한 탱커이니, 전투가 시작되면 최소 5대1을 해야되는데 어쩌다보니 이 파티의 ‘도적’ 클래스가 된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죽도록 얻어터지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과연! 용사의 ‘에테리얼 스톰 블레이드’는 초당 1890번의 입자 충돌에 의해 마력이 분산되어 부채꼴로 적을 가격하는군! 게다가 순간적으로 방향을 비틀어서 바로 옆에서 활을 쏘던 엘프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절했어! 대단해! 저 위력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자는 용사밖에 없을 거야!”

“하하, 별 거 아니야.”

“······.”

게다가 안경잡이 마도사는 전투중에 쉴새없이 입을 놀렸는데, 저게 설명충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보다. 하여튼 더럽게 시끄럽다.

“도적님. 함정을 해제해주시죠!”

“아, 예···.”

도적 클래스인 척을 하느라 에테르 슈트를 해제한 후 가장 뒤에서 단검이나 들고 깨작거리던 나는 던전의 함정을 해제하기 위해 앞서 나갔다. 물론, 나한테 함정 해제 능력이 있을 리는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역시 현대 과학.

[홍채를 스캔합니다.]

[확인되었습니다.]

인벤토리에서 안경을 하나 꺼내서 쓰자, ‘에센스’ 에너지 감지 기능이 활성화되었다.

이 안경은 ‘백색 마녀의 도서관’이 알지 못하는 마력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특수 제작한 것으로 다기능 디스플레이(MFD: Multi Function Display)가 달려있어, 에센스 레이더나 부가적으로 초음파, 열탐지, 능동 적외선을 사용할 수 있다.

즉, 대부분 마력으로 만들어진 이 세계의 함정은 간단하게 간파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원시적인 독화살이나 바위가 떨어지는 등의 함정 또한 물리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는 의미.

[전방을 스캔합니다.]

아마 이 안경을 아이템으로 시중에 팔아치우면 최소한 히어로 등급은 받지 않을까? 모든 도적 클래스가 원할 테니까.

“이럴수가! 플레어 블링커가 내장된 함정을 단숨에 파악하고 그 회로와 연결된 이중함정을 그대로 간파하여 철저하게 계산된 손놀림으로 뇌관만을 파괴하여 함정을 해제하다니···! 역시 소문의 의적!”

······저 친구 진짜 줘패고 싶다.

*

결론적으로, 용사의 동료가 되기를 택한 건 그다지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첫 번째로, 용사와 그 동료들의 수준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들은 그리 잘 싸우는 편이 아니었다. 합격기도 엉성하고, 스킬의 조합도 잘 맞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단순히 주인공 보정이 함께하기 때문.

용사와 그 일행의 평균 레벨은 100대 초중반이었는데, 항상 상대하기에 안성맞춤인 적들만 등장하니 어디 패배할 수 있겠는가?

두 번째로, 용사에게 숨겨진 특별한 비밀을 알아내었다.

“리아트! 오늘도 우리가 해냈어!”

-네, 역시 용사님은 대단하세요!

그것은 바로 용사의 레전더리급 10강 무기, 성검이 바로 ‘에고 소드’였다는 사실. 무려 말을 하는 검이란다.

세 번째로, 용사의 목적.

“여행을 왜 하냐고? 당연히 흑룡왕을 쓰러뜨리기 위해서지!”

“왜요?”

“당연한 거 아니야? 흑룡왕은 악의 파멸자라고. 우리 플레이어들을 이 세계로 보낸 ‘시스템’이 그리 말했어.”

“······.”

내가 미심쩍은 표정을 짓자, 의뢰인이 말했다.

<시스템이라 함은, 아마도 ‘성좌’와 비슷한 존재로 추정됩니다. 그들은 가히 그럴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요.>

‘흐음······.’

뭐, 그건 됐다. 성좌들이 자신의 재미를 위해 이상한 짓 하는 건 일전에 겪어봐서 알았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이유. 이게 가장 중요하다.

“오오, 용사님! 또 히어로 등급의 아이템을 뽑으셨군요!”

2주일 동안 강도짓 해가며 벌어들였던 아이템의 대부분은 내가 쓸 수 없거나 등급이 낮아서 버릴 수밖에 없었는데, 나와는 달리 용사는 던전을 돌며 아이템을 뽑는 족족 반드시 상등품에다가 쓸모가 있는 것들로 드랍되는 것이다!

“하하. 운이 좋았네. 아, 근데 이건 내가 쓸 수 없는 거네. 네가 가질래?”

“고마워!”

게다가 용사는 자신이 사용할 수 없는, 그러나 동료가 사용할 수는 있는 아이템들을 분배해주기까지 했다. 도중에 내게도 몇 번 콩고물이 떨어지기도 했으니, 이 얼마나 이득인가?

‘이거 주인공한테 빌붙는 것도 꽤 괜찮은데?’

<서담···.>

‘아 걱정 말래도. 의뢰에 개인 감정은 싣지 않으니까.’

어차피 죽이긴 죽일 거다. 빌런 사냥에 감정을 담지 않는 것처럼, 주인공 사냥에 감정을 담지는 않으니까.

다만, 여태 내가 만났던 주인공들 중에서는 가장 인성도 괜찮고 꽤 써먹을 만한 주인공이라서 그랬을 뿐.

그 이후로도 나는 주인공의 동료로서 일주일을 더 활동하였고.

그날, 위화감을 느꼈다.

“근데 도적님은 왜 스킬을 안 쓰세요?”

“그러게. 도적님이 스킬 쓰는 걸 한 번도 못봤어.”

그렇다. 나에게는 게임 시스템이 없었고, 즉 ‘게임 스킬’ 또한 없다는 의미. 그와 대조되게 플레이어들은 ‘스킬’을 통해 얼마든지 말도 안 되는 동작을 구현해낼 수 있었다.

“플레임 소드!”

“아크 버스터!”

“레인보우 스텝!”

시전어 한 번으로 스무 번 연속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칼질을 해대질 않나, 고급 기술을 시전어 한 번으로 발동하질 않나, 물리 법칙을 거의 무시할 법한 스텝을 보여주질 않나.

여태 내가 보유하고 있던 스킬과는 궤가 다른 효능을 보여주었다.

“어, 음···. 그게···.”

“아. 혹시 도적님 그거세요? 순정 플레이어.”

“예?”

“순정 플레이어가 뭐야?”

마도사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와중, 성직자가 질문을 던졌다.

“그거잖아. 스킬 숙련도나 레벨을 올리지 않고, ‘수행’만으로 강해지겠다는 사람들.”

“아! 맞아. 그러고 보니 그런 사람들이 아주 가끔 보이긴 했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레벨 올리면 쉬운데. 스킬 숙련도가 올라가면 자연히 수행도 함께 된다구.”

“던전 돌면서 아이템도 얻고.”

그에, 나는 내가 느꼈던 위화감을 눈치 챌 수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이 세계에 건너온지는 이제 고작 2년. 그런데 가장 선두주자인 플레이어가 벌써 S랭크, 즉 ‘소드 엑스퍼트(상)’의 수준을 달성한 채란다.

‘···생각해 보니, 참으로 묘한데.’

물론, 나도 1년 사이에 A랭크의 수준을 달성하긴 했으나 그 배경에는 15년이라는 고된 수행과 경험이 쌓여있었으며 세계의 축복을 받는 주인공이라는 존재를 목숨을 걸고 사냥하여 힘을 흡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어떤가? 수행은 전혀 하지 않은 채, 하루 몇 시간 던전 돌고 나오는 행위만으로 고작 2년 사이에 S랭크의 수준을 달성했다.

상식적으로, 재능있는 검객이 소드 엑스퍼트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최소 10년에서 길게는 20년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들은 그 수련을 모조리 스킵한 채, 힘을 너무나도 쉽게 쌓고있지 않은가?

‘잠깐, 이거······.’

플레이딘 월드에는 플레이어만 살고 있는 게 아니다. 애초에, 플레이어에 비해 원주민들의 비율이 훨씬 더 높다.

그래, 흑룡왕인지 뭔지 흑막을 처리하는 건 좋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과연 이들이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갈까? 만약 그렇지 않고서 플레이어들이 계속 이 세계에 남아있는다면?

‘···제국의 제일검이 소드 마스터라고 했던가.’

플레이딘 월드에서 플레이어가 아닌 최강자들은 총 서른 명 정도 되며, 그들 모두 소드 마스터의 수준에 그쳤다.

원주민들의 수련은 철저히 무시당한다. 그들이 아무리 피땀흘려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러도 결국 플레이어들이 몬스터 몇 마리 잡아서 경험치 올리는 효율만도 못하니까.

만약 이 흐름대로 간다면···, 세계 최강자들이 수십 년을 수련하여 달성한 그 경지를 빠르면 3년 이내에 플레이어들이 가뿐히 앞지를 것이다.

<······게임 시스템이 접목된 세계의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게임 시스템을 사용하는 퓨전 판타지. 플레이어들은 그 힘을 이어받고서 악을 멸하고, 해피 엔딩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파워 밸런스가 철저히 붕괴된 세계는 어떻게 되는가?

언제까지고 플레이어들이 이 세계의 영웅으로 남아있기만 할까?

그럴 리가.

머지 않은 미래, 철저히 플레이어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찾아올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개연성에 의해 세계가 멸망하기 전에, 전쟁으로 멸망할 가능성이 더 높겠군요···.>

의뢰인은 결연하게 말했다.

<주인공을 사냥해야만 하는 이유가 늘었습니다. 어서 서둘러···서······.>

“역시 용사님! 대단하시군요! 근데 저도 장갑 하나만 주시면 안 될까요?”

“앗, 하하! 제가 깜빡할 뻔했군요. 자, 의적님의 몫입니다.”

<사냥을 해야······.>

“오오. 감사합니다! 근데 제가 막타쳤는데 하나 더 주시죠.”

“으음? 그렇군요. 이것도 가지세요.”

<서담님······?>

그녀의 공허한 듯한 목소리가 던전 내부를 울려퍼졌으나, 아이템을 정산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나는 그 말을 한 귀로 흘려들었다.

< SSS급 운빨로 먹고사는 플레이어(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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