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의 마법사들(5) >
초능력 특수 지적재산권에 의거하여, 초능력과 관련된 시비가 붙을 경우 국가와 관계없이 국제적으로 심판을 받게 된다.
즉, 한국인이 마법을 보유했다고 한국 정부에서 당장 좋아할 수는 없다는 의미.
물론 그래도 한국인은 한국인이기에 어떻게든 마법을 지키기 위해 한국 정부에서는 유능한 변호사와 요원을 파견하여 유서담에게 붙였다.
다만, 별로 의미는 없는 듯하다.
애초에 초능력 지적재산권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결국 ‘그 초능력의 소유권을 얼마나 주장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법에 대해 아무리 잘 알고 토론을 조리 있게 잘하는 변호사가 붙는다고 해서 과연 그 역사의 증거 이길 수 있을까?
그럴 리가.
하지만 한국도 최대한 발악을 하고 싶은 것이었다.
모리안 길드에서 이미 기자회견 이후 와이튜브(YTUBE)나 뉴스 등을 통해 자신들이 수백 년 동안 마법이라는 학문에 대해 연구해 왔다는 사실을 공개한 마당에, 어나더 리그가 승리하여 마법에 대한 판권을 가져오는 것은 거의 희망이 없어 보였다.
“어나더 리그 길드의 유서담과 예카테리나는 자리에 앉으시오.”
초능력 특별 지적재산권에 대하여 시비가 붙을 경우, 국제 초능력자 협회에서 청문회가 열리며 국가의 간섭은 불가능하다.
참석자 총 500명에 의원의 수만 50명이 넘어가는 국제 초능력 청문특별위원회. 예카테리나가 잔뜩 긴장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담은 예카테리나에게 촌스러운 뿔테 안경 하나를 건네주며 자신도 안경을 썼다.
“이건···?”
“‘용기의 안경’이야. 쓰면 용감해져.”
“그, 그런 게 있나요?”
“물론이지. 나 못 믿어?”
“믿어요!”
굳게 마음을 먹으며, 예카테리나 또한 안경을 썼다.
당연하지만 용기의 안경 같은 게 세상에 있을 리는 없다. 단지 용기를 주기 위해서 한 말일 뿐이다.
용기.
그건 예카테리나뿐 아니라 유서담 자신에게도 필요한 문제였다.
일개 F랭크 헌터로서 살아온 16년, 그는 이런 큰 자리에 당당히 서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만, 1년 사이에 그의 인생은 통째로 뒤바뀌었다.
시간을 되돌리는 자를 죽였으며, 신에 필적하는 힘을 가진 마녀의 환생체를 죽였고, 성좌가 되어 세계를 창조한 자를 죽였으며, 천 년 동안이나 제국을 지배한 전설의 성검을 죽였고, 마왕에 대적할 용사를 죽였다.
···물론 과장이 굉장히 섞여 있긴 했지만, 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을 통해 유서담의 정신력 또한 한 단계 성장했다는 의미. 덕분에 이런 자리에서 먼저 겁을 지레 먹지 않을 수 있었다.
다만 용기가 세상을 바꾸지는 않는다. 하물며 초거대길드 모리안과 로스트 데이의 앞에서 다짜고짜 용기를 부려봐야 객기일 뿐. 용기는 싸움에 앞서 필요한 가장 최소한의 준비물일 뿐이다.
“모리안 길드의 에이번, 로스트 데이의 유하람은 자리에 앉으시오.”
서담은 정면을 바라보았다.
초능력의 저작권 및 표절 시비가 붙을 경우, 누구의 것인지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서로가 공평한 위치에서 토론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한다.
즉 유서담, 예카테리나와 마찬가지로 바로 맞은편에 모리안 길드의 에이번이 동등한 좌석에 착석해 있었다. 또한, 바로 그 옆에는 로스트 데이의 길드 마스터 유하람이 앉아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쩐지 여유로운 미소가 눈에 띄었다.
‘로스트 데이라······.’
이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인천에서 이형던전이 나타났을 때도 로스트 데이는 어디에서 구해왔는지 모르는, 마법과 과학이 접목된 수상쩍은 기계를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당시에도 로스트 데이는 이형던전을 저들이 뚫겠다며 아주 자신에 차 있는 상태였다. 결국, 모리안과 로스트 데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붙어먹던 사이라는 의미. 로스트 데이에서 쫓겨난 지금에 와서 그런 걸 신경 쓸 필요는 없다지만 유하람이라는 인물 자체는 유서담이 넘어야만 하는 큰 벽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치 ‘오랜만이네?’라는 듯한 여유로운 표정의 유하람을 보며 서담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지금부터 에센스 에너지를 통한 이능력 발현, 이하 ‘마법’의 소유권에 대해 토론을 시작하겠소.”
평소보다도 유난히 많은 카메라가 사방에서 돌아가며 유서담과 에이번의 얼굴을 조명하였다.
“가장 먼저, 모리안 길드의 마스터 에이번께서 발언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에 에이번이 일어나 좌중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넨 뒤, 앞으로 나왔다.
초능력에 관련된 청문회이다 보니 원래는 초능력을 충분히 시연하기 위한 장소나 여러 에테르 디스펜서 및 에테르 감지 장비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현재 그것들을 모조리 치운 채 ‘에센스’ 감지 장비를 비치해 두었다.
에이번은 중앙으로 나와, 반투명한 스크린을 향해 리모컨을 눌렀다. 고대 문서와 자료 따위의 것들이 흘러나온다.
“네, 에이번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마법사이지요. 여러분. 마법이 공개된 지는 고작 사흘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거 아십니까? 사실 마법은 아주 오래전, 고대 이집트 이전부터 꾸준히 연구되어 왔다는 사실을. 에센스 에너지가 발견된 것은 지극히 최근이지만, 조상들은 꾸준히 자연과 우주가 조화를 이루는 에센스 에너지를 이용해 왔고, 마침내 그 결과가 제 대에서 나타난 것이지요.”
화면에는 아주 오래전의 자료부터 시작되었다.
전문가의 감정을 받아, 족히 천 년도 더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확인된 양피지에 새겨진 고대 마법의 문자들. 그것들은 서서히 시대를 앞서가며 조금씩 발전해 나갔고, 마침내 현대에 이르러서 ‘기계’와 접목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에이번이 손가락을 향하자, 두꺼운 천에 둘러싸여 있던 물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은 상당히 기괴한 생김새의 기계였다. 새하얀 수정구에 전선이 연결되어 있거나 동그란 판 같은 것들이 빙글빙글 돌아가기도 했으며, 전구 같은 것들이 반짝거리는 게 여태까지 보았던 그 어떤 디스펜서보다도 특이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건 마법을 발현하게끔 해주는 디스펜서입니다. 아직까지는 휴대용으로 만들 경우 B에서 C랭크에 불과한 마법밖에는 사용할 수 없지만, 규모를 조금만 키우면 A랭크에 육박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지요. 그리고 이것은 괴수에게도 아주 유용합니다.”
그와 함께, 모리안과 로스트 데이가 합심하여 여태껏 연구해 왔던 마법 기계 자료 또한 공개되었다.
벌써 10년도 더 이전부터 촬영되기 시작한 자료 영상에는 수많은 마법기계의 시행착오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는데, 이는 유서담 측이 절대로 반론할 수 없는 완벽한 증거였다.
“저희는 아주 오랜 역사를 거쳐오며 마법을 연구했습니다. 네, 예카테리나 양의 마법은 저희의 것보다 독특합니다. 저희의 마법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욱 진보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결국 그건 저희의 마법을 일부 빼돌려 그녀가 몰래 연구한 것에 지나지 않지요. 그에, 요구합니다. 그녀가 가진 마법을 모두 저희에게 돌려줄 것을.”
그렇다.
모리안 길드가 유서담에게 초능력 특수 지적재산권으로 당당히 시비를 건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지구상에서 마법을 모리안 길드가 유일하게 다루고 발전시켜 왔다는 점.
분명히 마법 실력 자체는 예카테리나가 더 뛰어나다. 하지만 마법이 발전하고 현재가 이르기까지의 역사는 모조리 모리안 길드에 남아 있다.
예카테리나가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마법의 지적재산권이 넘어가지는 않는다는 의미.
제자가 청출어람을 하여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태 배웠던 기술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을 인정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예카테리나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그것은,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에이번이 저 당당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자신은 핍박받아야만 했으며 숨어야만 했고, 빼앗겨야만 했다. 반평생 살아오며 여태 받아왔던 그 수많은 고통과 비난들. 그것을 저도 모르게 떠올리며 예카테리나가 창백한 표정을 짓자, 청중들의 관심이 모두 의기양양한 에이번에게 쏠렸다.
증거는 완벽했다.
초능력 지적재산권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시조(始祖) 부분이 결정적으로 드러나 버린 것이다.
“좋습니다. 어나더 리그의 유서담, 발언해 주시지요.”
그런데.
모리안 길드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지구상에 그들의 마법을 제외한 또 다른 마법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죠.”
상황은 꽤 불리했지만, 그 동안 유서담은 ‘주인공’들을 사냥하며 보고 듣고 배운 게 많다. 아주아주 많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들을 이용해먹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안경을 치켜 쓰며 유서담은 천천히 화면으로 걸어나갔다.
“준비된 자료가 있습니까?”
“아뇨.”
자료는 없다.
“저 자료가 제겁니다.”
대신, 뻔뻔함은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미스터 서담?”
“제 거라구요. 제걸 저들이 훔쳐가서 자신들의 것이라고 유세를 떠는 겁니다.”
“허.”
모두가 어처구니없어하는 와중, 서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드문 일은 아니니까요. 직접 증명을 하겠습니다.”
“어떤 식으로 증명을 하겠다는 겁니까?”
“모리안 길드에서 준비한 자료를 하나하나 파헤치면서 지적해 보도록 하죠.”
그 말에 좌중이 웅성대기 시작하였다.
난데없이 지적이라니. 너무 뜬금없지 않은가?
서담은 에이번에게 다가가 물었다.
“실례지만, 리모컨 좀 주실 수 있는지?”
에이번이 의원을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인다. 초능력 특수 지적재산권에 대해서는 모든 상황을 민감하고 또 넓게 수용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
유서담은 리모컨을 받아들고서 자료화면을 휙휙 넘겨, 거의 휙휙 넘겨, ‘고대’로 넘어갔다.
마법의 발생, 마법의 시초가 시작된 때로.
이유는 간단했다.
‘과연 고대의 마녀들이 했던 발상을 현대의 마녀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마녀는 어느 세계에나 존재할 수 있으며, 어느 세계에서나 마법이라는 학문에 관해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준다. 하지만 대부분의 세계에서 마녀는 쇠락하기 마련이었고, 지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현대에 남은 마녀는 고작 마녀의 핏줄을 조금 이어받았을 뿐인, 반쪽짜리 마녀들이 전부. 가장 마녀의 핏줄을 진하게 이어받아 무려 예언의 힘을 보유하게 된 예카테리나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예언의 대가로 시력과 마법을 잃었고, 감정을 되찾는 바람에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다른 마녀들 또한 다를 건 없다. 그녀들은 감정이 희미해진 채였지만 인간의 감정이 희박하게나마 남아 있었고, 결국 인간의 핏줄이 섞이는 바람에 고대 마녀들의 마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증거로, 저런 엉터리 마법을 들고나왔으니까.’
확실히 과학을 마법에 접목한 것은 칭찬해 줄만 하나, 결코 순혈의 ‘마녀’가 할 만한 발상은 아니었다.
마녀의 마법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완벽했으니까. 대부분의 세상에서 마녀는 개인주의의 성향이 강했으며, 덕분에 곧잘 멸족당하고는 했다. 지구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마녀들의 마법이 발전할 기회가 적었다.
하지만.
마녀가 세상을 지배할 뻔한 세상이 있다면.
인간을 초월한 경지, ‘소드 엠페러’를 달성했던 사내와 일대일로 수십 일을 겨루었던 전설적인 마녀가 존재했던 세상의 마법이라면.
그 어떤 마녀라도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는 세상에서,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발전했던 마법이라면.
과연, 숨어 지내느라 급급했던 지구의 마법과 비교하는 것이 가능할까?
물론 유서담이라고 그러한 마법들을 전부 다 알지는 못한다.
다만.
[해당 마법에 대해 검색을 시작합니다.]
[검색 중······.]
[검색 완료: 원시적 마법 사용 보고서]
[해당 마법의 기술력이 하위호환으로 판단됩니다.]
그에게는 ‘백색 마녀의 도서관’이 있었으며, 마법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마법의 발전부터 시행착오까지, 그 모든 것들이.
“우선 이 자료를 어떻게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들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겠습니다.”
“그건 고대의 자료입니다. 어떻게 증명할 거죠?”
에이번의 반박에 서담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고대의 자료가 잘못되었다는 게 아닙니다. 당신들이 제 자료를 훔쳐가서 잘못 연구했다는 걸 증명하려는 거죠.”
“······.”
그의 뻔뻔하고 능청스러운 말에 에이번은 표정을 꿈틀했으나 티를 내지는 않았다.
“우선, 당신들은 ‘나선의 제3 법칙’을 마력의 공회전으로 이해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하지만 틀렸습니다. 애초에 이 법칙은 앞에 ‘퍼디슨 변환’과 ‘영점마력 불변의 원리’가 적용되어야만 하니까요. 이 마법이 엉터리로 발전하고 발전해서, 결국 ‘마력의 입체화’를 하지 못하게 되었단 말입니다.”
그리 말하며 서담은 에이번이 가져온 디스펜서에 손을 대었다.
오로지 모리안 길드에서만 다룰 수 있는 디스펜서.
그러나, 서담의 간단한 동작 한 번에 빛이 새어 나오더니 불꽃 마법이 발현되었다.
“굳이 이런 방법을 쓰지 않아도.”
이번에는 허공에 손가락을 치켜든다.
동시에.
-귀찮아아아···.
은빛 정령의 꽃이 마법을 발동하자, 허공에 쓸데없이 화려하고 비효율적이지만 아무튼 화려하긴 또 더럽게 화려해서 현대인의 눈을 현혹시키기에는 충분한 마법진이 발생하더니 불꽃이 일어났다.
“처음부터 마법을 제대로 연구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는 말이지요.”
“······!”
모리안 길드는 ‘에센스 디스펜서’라는 장치 없이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서담은 디스펜서 없이 마법을 사용하며,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마법을 제대로 연구하기만 했더라면 디스펜서 없이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면, 똑똑히 이렇게 써 있습니다. ‘마력량은 공기에서 절대적으로 보존되며, 물질계에 간섭을 시작하면 마력량이 우주에 귀속된다’라고. 하지만 지금 당신들의 연구 결과를 보십시오. 그 주의사항조차 무시한 채 디스펜서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이거, 잠깐 쓰겠습니다.”
자료로 사용하기 위한 휴대용의 자그마한 에센스 디스펜서를 가리킨 서담은 대답조차 듣지 않고서 그것을 장착하고선 가동하였다.
“아까 말씀하시길, B에서 C랭크 정도의 출력밖에 못 낸다고 하셨지만. 애초부터 자료를 조금만 더 이해하셨으면······.”
화르르륵!
허공에 거대한 불덩이가 생성된다. 에이번이 자신들의 마법을 측정하기 위해 가져온 에센스 디스펜서가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작동하여, 그것의 출력이 에테르로 따졌을 때 A랭크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이런 것도 가능하다, 이거죠.”
이후로도 유서담은 하나하나, 에이번이 가져온 자료를 지적하였다.
정말로 그 자료의 주인인 것처럼.
정말로 고대 시절부터 그 자료를 토대로 연구해 온 것처럼.
“아, 이건 제대로 읽기는 하셨나요? 훔쳐가신 건 좋았는데, 좀 제대로 읽지 그러셨습니까.”
솔직히 서담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스킬 ‘백색 마녀의 도서관’ 또한, 어찌 되었든 훔쳐온 스킬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사람을 음해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훔쳐온 스킬이고 뭐고 얼마든지 이용하여 상대방을 짓밟을 의향이 있었다.
상황이 점점 더 기울어져만 간다.
그래, 분명 자료를 가져온 건 모리안 길드가 틀림없다. 하지만 ‘이해도’ 면에서 너무나도 차이가 나지 않는가?
저건 하루아침에 나올 수 있는 이해도가 아니었다. 심지어 모리안 길드에서조차 이해할 수 없어, 대답하지 못한 부분조차 서담은 척척 대답한 뒤 마법을 직접 시연하여 증명하기까지 했으니까.
“모리안 길드의 에이번. 발언해 주시지요.”
그리하여, 다시 차례가 돌아왔음에도 그녀는 뻣뻣하게 굳은 입술을 깨문 채 제대로 발언하지 못했다.
박박 우길까? 이 자료는 틀림없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저자의 말은 모두 거짓이라고.
하지만 그러기엔.
저 남자의 말이 모두 맞지 않는가?
여태 자신들이 몰랐던 마법의 비밀들이 속속 풀리고 있지 않은가?
저자가 보여주는 마법이 자신들의 것보다 ‘조금’ 진보됐다고 말하기엔, 너무나도 압도적인 기술력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여기까지 와서, 이 정도의 지식량의 차이가 나는데도, 아직도 자료가 무조건 자신들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다고 사람들이 믿어줄까?
“···이건. 그래요. 헌터 유서담, 당신의 마법은 확실히 저희보다 훨씬 진보되었군요.”
결국 에이번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서담의 마법을.
“하지만 그것과 이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무슨 별개의 문제죠?”
“당신은 저희보다 확실히 더 대단해요. 하지만 예카테리나의 마법은 어찌 됐든 저희의 것입니다.”
“왜요?”
“당연히, 그 아이는······.”
거기까지 말하려던 에이번은 입을 다물었다.
답지 않게 흥분했다. 여기까지는 말하면 안 되는 부분인데 말이다.
그러나, 유서담은 결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당연히, 감금된 채로 외부와의 연락수단조차 없어서··· 제 마법을 배울 수가 없다. 이거 아닙니까?”
“······!”
원래는 이 타이밍에 쏘아붙여야 한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대답을 기다릴 뿐. 에이번이 자신이 내뱉은 말의 모순점에 대해 대답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는 그 공백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청중이 의문을 품기에 충분한 시간.
모두가 충분히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유서담은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에이번. 당신 길드의 그 유명한 ‘예언가’는 어디로 갔습니까?”
“그, 건······.”
이번에는 질문을 바꾼다. 정확히는 질문을 던지는 대상을.
“여러분. 모리안 길드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예언가’가 함께 활동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상 그 누구도 예언가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상태였죠. 저희는 그저 예언가의 안위를 위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모리안 길드에서 예언가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해 그녀를 가둬놓았다면? 외부와의 연결을 아예 차단했었다면?”
“그게 무슨···! 모함은 그만두십시오!”
“그 증인이 지금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에이번, 언제까지 뻔뻔하게 굴 생각입니까?”
유서담은 그리 말하며 예카테리나를 쳐다보았다.
사실, 당장 모리안 길드와 차별화된 마법 하나를 백색 마녀의 서고에서 꺼내와 선보이기만 해도 표절 의혹은 금방 사그라들 것이며, 개별적인 또 다른 마법으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서담은 그러지 않았다.
바로, 예카테리나가 자신의 마법과 연관이 되어 있으며, 모리안 길드에서 그 사실을 부정하는 이 순간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아······.’
유서담의 시선을 받은 예카테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에이번을 바라보았다.
여태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자신의 계획이 완전히 뒤틀린 채, 당혹으로 물들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
더 이상 그녀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결국, 에이번 또한 넘을 수 있는 벽이었던 것이다.
‘저 여자도 똑같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만약 다짜고짜 예카테리나가 ‘저는 모리안 길드에서 10년이 넘도록 감금되어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면 세상은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모리안 길드에서 그 사실을 잠정적으로 시인한 상태라면.
표절 시비의 공격권마저 박탈당해, 오히려 해명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된 상태라면.
“저는······ 한때, 모리안 길드에서 ‘예언가’로 활동했던 예카테리나라고 합니다. 발언해도 괜찮겠습니까?”
세상은 그녀의 말을 반드시 귀담아들을 것이다.
< 21세기의 마법사들(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