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93화 (93/251)

< 21세기의 마법사들(4) >

상황은 빠르게 종료되었다.

가장 첫 번째로, ‘기사’들은 명예를 잃지 않았다. 헌터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기사의 지휘하에 자신들만의 힘으로 SS랭크의 괴수를 물리쳤으니까. 하지만, 이제 기사들은 알게 되었다. 괴수와의 전장은 결코 만만치 않으며, 헌터들의 세계는 자신들의 세계보다 더욱 거칠다는 사실을.

또한 테일러 블레스타샤는 가주 알렉산드르의 허락 하에 성공적으로 출가(出家)를 하였다. 떠나가는 길, 그 어떤 형제도 그녀에게 인사를 하러 오지 않았다.

여태 무시하던 막내 여동생이 자신들의 자랑이었던 모든 초능력을 화려하게 펼친 것으로 모자라, 괴수가 등장하였을 때 선두에 나서서 싸우던 그녀와는 달리 뒤에 숨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자신들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속이 아주 시원했는지 테일러는 좋다며 깔깔 웃음을 터뜨렸지만.

떠나기 직전, 아버지가 말했다.

‘···언제든 집이 생각난다면, 꼭 돌아오거라.’

그러나 테일러는 답했다.

‘그래요? 근데 생각 안 날 거 같은데요.’

웃기는 일이다. 16년 전 집을 나갈 때도,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사내가 고작 사건 한 번으로 마음을 휙 돌려버리다니. 이런 사건도 없었으면, 결국 영영 마음을 내어줄 일이 없었던 게 아닌가?

그런 삭막하고 팍팍한 집에 머물 바에야, 차라리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이 오로지 마음만으로 교류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는 게 옳았다.

물론, 테일러 블레스타샤는 혼자 떠날 수 없었다.

“저도 데려가 주세요!”

“······옘병.”

두 번째로, 예카테리나 또한 성공적으로 출가를 하였다. 이 경우에는 출가라고 봐도 좋은지 과연 의문이었으나 어찌 되었든 ‘마녀의 법칙’에 따라 모리안 길드는 예카테리나를 놓아줄 수밖에 없던 것이다.

‘네가 사회에 나가서 뭘 할 수 있겠니? 생각을 고쳐먹거라.’

‘싫은데요!’

각성한 초능력을 보유한 테일러를 내보내야 했던 블레스타쉬 가문이나, 자신들의 것보다 월등히 좋은 마법을 보유한 예카테리나를 내보내야 했던 모리안 길드나 그녀들을 어떻게든 다시 붙잡으려고 했으나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예카테리나는 여권이고 돈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던 것. 그래서, 유서담과 예카테리나의 부탁을 받아 테일러는 그녀를 도와주기로 한 것이다.

“와아···.”

그리하여 현재, 두 여인은 비행기를 탑승한 채였다.

예카테리나는 투명한 눈동자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눈동자가 마치 유서담의 것과 닮은 새하얀 색으로 변하여 빛이 반짝이더니 일시적으로 시력을 얻을 수 있었다.

“뜨, 뜬다!”

“아오, 호들갑은. 비행기 처음 타봐?”

“네.”

“···어. 그래. 어쨌든 가만히 있어.”

“물론이죠. 저도 예의범절은 잘 지켜요.”

그러면서 테일러가 앉은 창가자리를 보더니 은근슬쩍 말한다.

“저, 창가에 앉으면 안 돼요?”

“싫어.”

“힝.”

시무룩해진 예카테리나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의자에 꽂혀있는 잡지에 눈독을 들였다. 대부분 가방이나 현대 패션에 관한 것들이었지만, 뭐가 그리도 좋은지 그녀는 그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관심이 많았다.

모리안 저택에 갇혀 살 때는 전혀 접할 수 없던 것들. 악몽에서 해방되었을 때조차도, 오로지 마법서와 붙어서 살던 그녀가 처음으로 현대 문물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그 모습을 보던 테일러는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비켜.”

“네?”

“비키라고. 그 자리가 더 편해 보이니까.”

“아, 넵! 그렇군요.”

결국 예카테리나를 창가에 앉힌 테일러는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옆에서 창문을 바라보며 예카테리나가 ‘와! 구름!’ 하며 어린애마냥 들썩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아예 신경을 놓고서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녀의 스마트폰에서는 한국 야구가 흘러나왔는데, 구름을 멍하니 감상하던 예카테리나 또한 관심을 보였다.

“앗. 그거 야구 맞죠? 저도 좋아해요.”

“그러냐. 룰은 알아?”

“야구공을 던져서 골키퍼의 머리를 맞추면 점수를 얻는 스포츠잖아요.”

“진심이냐?”

“에이, 당연히 농담이죠!”

“왜 농담이야. 맞는 말인데.”

“네, 네?”

예카테리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설마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야구의 룰이 바뀌었나 싶어서.

“내가 응원하는 팀이 딱 네가 말한 그 꼬락서니로 경기를 하거든.”

“아······. 그, 어디 팀 응원하세요?”

예카테리나는 질문 하나하나를 조심스레 던지는 편이었다. 마치, 세상을 대화를 통해 알아가려는 것처럼. 테일러는 그녀의 사정에 대해 잘은 알지 못했으나 고작 몇 번의 대화만으로도 그녀가 어딘가에 갇혀서 지냈다는 사실 정도는 깨닫고 말았다.

그런 이유로, 귀찮지만 대답을 해주기는 하는 편이었다.

“화데.”

“오, 음···. 어떤 선수 좋아하세요?”

“없어. 죄다 쓰레기야.”

대답을 해주기는··· 했다.

“그, 그렇군요.”

그녀들의 대화는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하지만 예카테리나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테일러에게 자꾸만 말을 걸었다. 마치 다른 누군가와 툭 터놓고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는 것처럼.

끊임없이 참새처럼 재잘거리던 예카테리나는 이윽고 곤히 잠에 빠져들었고, 테일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스마트폰으로 KBO를 시청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 한국에 도착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정말 금방이네요!”

“쳐잤으니까 금방이겠지···.”

테일러는 전방을 바라보았다.

인천 공항, 입국장 게이트.

자주 오던 곳이지만 오늘따라 더 새롭게만 느껴졌다.

그녀는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적거려 선글라스를 하나 꺼내 썼다. 그러다 문득 옆을 돌아보니, 모든 게 신기하다는 듯 두리번거리는 예카테리나가 눈에 띄어 그녀에게도 하나 건네주었다.

“이건 왜요?”

“플래쉬 터지는 게 눈 존나 아프거든.”

“으흐음?”

테일러는 워낙 설명을 대충하는 편이었고, 이해력 좋은 편인 예카테리나였지만 사전 정보가 아예 없다보니 무슨 소린지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눈치가 빠른 편이었기에 어쨌든 자신을 배려해주는 것이라 생각하여 그것을 눈에 썼다.

캐리어를 끌고서 당당히 문을 향해 걸어가며 테일러는 예카테리나에게 말했다.

“밖에 나가면 너 보려고 찾아온 사람들 존내 많을 거야.”

“그게 무슨······?”

문이 열리자, 멀다고만 생각했던 한국의 땅과 함께 수십 명의 기자 및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이 시야에 들어왔다.

‘왔다.’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폭발적으로.

“(예카테리나!)”

“(어째서 한국행을 결정했는지에 대해···!)”

“(어나더 리그의 유서담 헌터와는 무슨 관계······!)”

“(마법에 대해······!)”

번역장치와 사람의 목소리가 맞물리며, 온 사방을 소음으로 물들였다. 그제야 뭔가 상황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예카테리나는 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심장이 거칠게 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인 적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숨을 힘겹게 내뱉으며, 돌아가고 싶다며, 테일러에게 그리 말하려 했지만 그녀는 피식 웃으면저 자신의 등을 떠미는 게 아니던가?

“쯧쯧, 이 언니가 하는 거 잘 보고 따라해.”

“······?”

무슨 말이냐고 묻기도 전에, 테일러는 캐리어를 드르륵 끌고서 앞장서 걸어 나가더니 주먹을 하늘 높이 들었다.

그러고선 “Fuck you!”라는 외침과 함께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었다.

“······!”

그러자, 정말 놀랍게도.

그토록이나 두렵게만 느껴졌던 그 검은색의 사람들이 모두 당황을 하는 게 아니겠는가?

이후로도 테일러는 당당히 걸으며 한국어가 아닌 러시아어로 말했다.

“아, 나중에 공식 인터뷰에서 다 말해준다고. 다들 안 꺼져? 빨랑 퇴근하라고.”

앞을 가로막던 장벽이 서서히 무너진다.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좌우로 길이 갈라지며, 테일러의 길이 탁 트였다. 사실 이 현상은 헌터가 걷는 길을 막아봐야 좋을 게 없다는 기자들의 노하우였지만,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예카테리나의 눈에는 정말로 기적처럼 보였다.

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저 용기가 어쩐지 부럽게만 느껴졌다.

“야, 안 오냐?”

“······!”

이윽고, 길이 완전히 갈라지며 그 끝에 서있던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씨익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그 바보같지만 믿음직스러운 표정, 절대로 못알아볼 리가 없다.

꿈에서만 보았던 바로 그 남자였다. 그러나, 이제는 직접 보고 듣고 만질 수 있게 되었다.

그를 만남으로써, 그녀는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처음 보네, 예카테리나.”

능청스러운 그 인사에 예카테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쩐지 감격에 차, 어설픈 한국어로 말을 꺼냈다.

“저도, 보고 싶었어요.”

*

[세계 최초 “마법”이 모리안 길드에 의해 공개되다!]

[경악! 모스크바에 열린 SS랭크의 이형던전]

[테일러 블레스타샤가 펼친 초능력에 헌터들 ‘경악’]

[마법사 예카테리나, 그녀가 한국의 길드에 소속된 이유는?]

[무공과 마법 모두를 소유한 ‘어나더 리그’······.]

마법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무능력자도 학습을 통해 이능력을 얻을 수 있는 학문.

또한, 무능력자만이 학습이 가능한 학문!

온 세상이 발칵 뒤집히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무능력자가 이능력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원한다면, 누구라도 이능력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비록 그 거대한 모리안 길드에서조차 마법사를 양산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에센스 디스펜서’의 제작비가 상상을 초월하며, 학문의 접근성 또한 극악의 난이도였지만···. 그러한 부분이 해결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모리안 길드의 마스터, 에이번은 SS랭크 이형던전 폭주사태 이후 곧장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인류의 탄생 이래, 수많은 발견이 있었고 수많은 발명이 있었습니다.”

어쩐지 열정이 담긴 뜨거운 목소리였다.

“인류는 100만년 전 불이 최초로 발견하고 다루기 시작하였으며, 기원전 600년경 전기를 발견하였고, 7세기 무렵 화약을 발명해 다루었으며, 13세기 자기장을 발견하였고, 18세기 산업혁명 이후에는 석탄과 석유를, 그리고 19세기에 마침내 전자기학을 발전시키더니 마침내 21세기에 들어서서는 핵분열을 다루기 시작하였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카메라가 주목하는 와중, 에이번은 천천히 연설을 하듯 기자회견을 풀어나갔다.

“이윽고, 31년 전 인류는 에테르 에너지를 발견하여 마침내 과학의 정점을 찍은 것으로 보였죠.”

어쩐지 감격에 찬 목소리로.

“하지만, 바로 오늘!”

무언가 목이 메이는 듯.

인류의 위대한 발견을 진심으로 축복하듯이.

“인류는 또다시 신 에너지, ‘에센스’를 발견하여 무궁무진한 발전의 가능성을 제기하였습니다! 에센스, 이 환상적인 힘은 자연과 우주 그 자체가 순환하여 발생하는 에너지이며, 결코 영원히 마를 일이 없는 무한하고 또 광대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에너지를 이용하여 ‘마법’이라는 신비하고 위대한 과학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에이번이 연설을 끝마치자, 사람들이 기립 박수를 치기 시작하였으며 기자들이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질문이 있습니다!”

“이전번 SS랭크 이형던전을 닫지 못한 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다른 마법사 예카테리나의 경우에는 한국의 어나더 리그 소속이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

수많은 질문이 들어오지만, 필요없는 질문은 쳐내고 최대한 자극적인 질문만을 답한다.

“예카테리나, 그녀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저희는 수백 년 동안 에센스 에너지에 대해 연구하였고, 예카테리나 역시 그런 저희의 연구원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어제, 공식적인 자리에서 저희 모리안 길드를 배신하고 떠나갔지요.”

“그 말씀은 설마······?”

에이번은 진심으로 마음이 아프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의 마법적 지식은 오롯이 모리안 길드의 것. 그 증거로 수백년 간의 방대한 양의 정보가 저희에게 있습니다.”

초능력 및 이능력은 이제 하나의 재산으로 인정받는다. 사회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아주 예민하고 민감한 문제였으니까. 하물며, 그것이 요즘 핫이슈가 되고있는 ‘마법’이라면?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으리라.

“이에, 저는 예카테리나와 그녀가 소속된 길드 어나더 리그에게 ‘초능력 특수 지적재산권’에 의거하여 대응을 할 수밖에 없겠군요.”

직후, 카메라 셔터가 사방에서 마구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그에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예카테리나. 네가 어떻게 마법을 다룰 수 있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확실히 에이번 자신보다 조금 더 발전한 마법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의미는 없다.

어찌 되었든, 이 세상 모든 마법의 기원은 결국 모리안 길드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까!

제아무리 뛰어난 마법 테크닉을 구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예카테리나는 모리안이라는 거대한 성을 떠나 아주 자그마한 조각배로 향했고 그 조각배는 자신들과 맞서 싸울 능력이 되지 못했다.

마녀의 법칙에 의거하여, 마녀는 반드시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다. 만약 그 약속을 어긴다면 모든 마력과 시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약속을 어기고서, 돌아오게끔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다시 돌아오렴, 예카테리나. 마법은 우리들만의 것이란다.’

< 21세기의 마법사들(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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