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의 마법사들(3) >
S랭크의 던전을 높은 확률로 공략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원.
S랭크의 헌터 셋, A랭크 헌터 스물.
그렇다면, ‘규격 외 등급’이라 불리는 SS랭크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최소 몇 명의 S랭크 초능력자가 필요할까?
최소한 SS랭크의 헌터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요, 없다면 S랭크의 헌터가 상당수 있어야만이 가능했다.
아주 다행스러운 점이 하나 있다.
이 자리는 S랭크의 초능력자 엘리트들이 모인 기사들의 연회장이라는 사실. 가문의 S랭크 초능력자를 죄다 합하면 40명가량에, 모리안 길드에서 섭외한 S랭크의 헌터 또한 10명 가까이 되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S랭크의 기사들 역시 A랭크의 괴수 정도는 상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주 다행스럽지 못한 점이 있었다.
괴수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초능력자 ‘헌터’가 필요했는데,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헌터가 아닌 기사들이었기 때문이다.
기사들의 힘은 화려했고, 너무 강력했으며, 광범위했다.
“젠장, 어떤 멍청한 새끼가 저거 대가리 불로 지졌어!”
“목이 분열한다! 뒤로 물러나!”
“이 망할 기사 양반! 모르면 좀 가만히 있으쇼!”
“아오, 댁 능력이 나한테까지 튀잖아!”
그 말은 즉 비효율적이었으며, 아군에게 피해를 입힐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거기에 괴물은 인간과는 다른 신체 구조를 지니고 있어, 일반적으로 ‘약점’이라 생각되는 상식을 그대로 접목시켜서는 안 된다.
그런데, 기사들이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그런 것밖에 없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기사들은 평생을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 저들끼리 대련을 하며 자랐다.
대련이란 결국 사람을 상대하는데, 심지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도 아니다. 화려한 초능력과 막강한 파워를 이용해, 관중들의 눈을 현혹시킬 뿐인 ‘쇼’라는 의미.
네가 이렇게 공격하면 내가 이렇게 막은 뒤 반격할 것이고, 너는 다시 이렇게 막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합이 맞춰진 게 바로 기사 대련의 실체였다.
물론, 그게 나쁜 것은 아니다. 이런 반복적인 연습으로 실전에서 그에 알맞은 상황이 나오면 지체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초능력을 반응할 수 있었으니까. 발동이 느린 초능력을 상황에 맞춰 즉시 발동시킬 수 있다는 건 참으로 좋았으나······. 어디 그런 ‘상황’이 실전에서 쉽게 주어지던가?
괴수와의 결투는 인간과의 대련과 결코 다르다. 약속된 뻔한 공격을 내지르지 않는단 말이다.
사람들은 ‘기사’들에게 열광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자부심으로 먹고산다. 왜냐, 기사들의 초능력은 강력하고 화려했으며 헌터들의 초능력은 그들에 비하면 조금 밋밋했으니까. 그런데, 과연 헌터들이 그런 초능력을 사용할 줄 몰라서 하지 않았을까?
그럴 리가. 그들은 최대한 쓸데없는 화려함과 기술을 배제하여 효율적인 능력 운용을 한다. 기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해야만 했으니, 화려할 뿐인 의미 없는 기술은 자연스레 사장되는 것이다.
기사들은 분명 훌륭한 초능력자들이었다. 그러나, 괴물을 상대함에 있어서는 초보자나 다름없는 이들. 처음에는 강력한 힘 덕분에 선전하던 그들이었으나······. S랭크의 괴수가 나오기 시작하자 서서히 밀리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알았다.
이것이 자신들이 무시하던 헌터들이 살아가던 세계.
지구를 침공한 괴수들의 실체.
진짜 괴물과의 전장.
언제나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살아왔던 자신들이기에, 마음만 먹으면 괴수 정도는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건 오만이었음을, 일곱 가문의 기사들은 오늘 이 자리에서 깨달았다.
쩌적, 쩌저적······!!
이형던전의 틈새가 찢어져 나가며 무언가가 비집고 기어나왔다. 그것은, 어떤 괴물의 거대한 머리통이었다. 푸른색의 피막, 붉은색의 눈동자를 가진 그것이 입을 쩌억 벌리고서 비명을 내지르자······.
파지지지직!!
온 사방에 에테르 스파크가 튀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웅!! 괴물의 울음소리일까, 찢어지는 공간의 비명소리일까. 알 수 없는 소음이 이 자리를 잠식하며, 마침내 ‘최종 보스’가 이형던전에서 빠져나오자 모두가 전의를 상실하였다.
천장이 찢어지고, 달밤이 그들을 향해 쏟아졌지만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져 그들은 하늘을 볼 수 없었다.
저것이 진짜 괴물.
여태, 헌터들은 저런 것들과 맞서 싸워왔던 것이다.
“아······.”
S라는 랭크에도 무색하게, 기사들이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는 그때.
SS랭크의 대괴수의 앞에 맞서는 이들은 오로지 헌터들 뿐이었다.
저 거대한 괴물을 바라보며, 테일러는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동료들과 나눠왔던 수많은 이야기와 경험들, 그리고 지식을 떠올린다.
‘야, 날아다니는 놈은 날개를 치면 되지 않을까?’
‘미쳤어? 저번에 날개 건드렸다가 맹독포자 퍼져서 뒈질뻔했거든?’
‘서담의 말이 맞다. 날개에 칼날이 달려있는 비행체도 있더군.’
‘괴물들은 기본적으로 진화에 빠삭한 놈들이야. 우리가 생각하는 약점은 진화로 커버하거든.’
숱하게 괴물을 상대하며, 이제 그녀는 괴물들을 상대할 수 있는 진짜 ‘올바른 공략법’을 숙지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무식하게 초능력만 난사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할 수 있다.’
이 자리에는 무려 50명의 S랭크 초능력자가 있다. 제대로 된 방법만 있다면, 얼마든지 SS랭크의 대괴수쯤이야 물려낼 수 있다는 말.
그녀는 야구 방망이를 질질 끌고서 자신의 아버지, 알렉산드르 블레스타쉬를 향해 다가갔다. 그 방망이는 아버지를 비롯하여 형제자매들이 경멸해 마지않는 초능력 보조 장치였다. 스스로의 능력을 제어할 수도 없어, 무언가에 의지해야만 한다는, 그런 나약함의 상징.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테일러 나인은 그것을 보란 듯이 꺼내 들고서 아버지의 앞에 당당히 마주섰다.
“아버지. 걱정할 거 없어요. 수도 방위 헌터들이 출동했을 거고, 피해가 커지기 전에 도착할 테니까요.”
맞는 말이었다. 러시아는 초능력 강대국이었는데, 모스크바 한가운데서 벌어진 재앙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을 터.
하지만, 만약 그들이 도착하여 괴수를 물리치게 된다면.
“···7대 기사 가문, 스스로 괴수를 물리칠 힘이 없어 헌터의 도움을 받다! 뭐 이런 기사가 실리겠네요?”
그녀의 말은 낭랑하게 울려퍼져, 블레스타쉬의 형제들이 모두 들을 수 있었으나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래서, 테일러 나인은 거기에 못을 박았다.
“하지만, 저 또한 헌터예요.”
그녀는 스스로가 기사임을 부정했다.
“저 괴물을 가볍게 묵살낼 방법을 알고있죠. 테일러 ‘나인’으로서, 한 명의 헌터로서.”
그러나.
“···만약, 제가 테일러 ‘블레스타샤’로서, 블레스타쉬 가문의 기사로서 저 괴물을 쓰러뜨린다면?”
그렇다면, 헌터의 도움을 받아 괴수를 물리쳤다는 치욕적인 오명은 벗을 수 있을 터. 알렉산드르는 테일러의 말에 담긴 의미를 깨닫고서 동공을 크게 흔들었다. 결국, 평생을 추구해왔던 사고방식을 부정해야만 하는 건 같았다. 그러나 그는 블레스타쉬의 가주로서 자존심을 버리고 ‘거래’를 해야만 했다.
“원하는 게, 뭐지?”
“제가 블레스타쉬의 이름을 내걸고 저 괴물 잡으면, 저를 가문에서 영원히 제해주시죠.”
고민의 여지는 없었다.
헌터로서 활동하며 가문에 골칫덩이가 되던 그녀가 처음으로 헌터로서 도움이 되고서 사라지겠다는데 말이다.
“······좋다. 그렇게 하마.”
이윽고 알렉산드르의 허락이 떨어지자, 테일러는 신난 표정으로 가문의 기사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좋아요. 지금부터 ‘올바른 공략법’을 알려드릴 테니, 우리 명예로운 기사 여러분들이 잘 따라와 주시면 정말정말 감사하겠네요!”
그녀는 리더쉽과는 거리가 멀었고, 효율적인 명령체계나 쉽게 설명하는 쪽으로는 영 젬병이었다. 그래서 아주 단순무식하게, 필요한 사항만을 쏙쏙 전달하였다.
“저 새끼 목 건들면 분열하거든? 건드는 놈 있으면 나한테 뒈진다!”
“야 이 멍청한 띨빡아! 내가 말하기 전에 터치하지 말랬지!”
“날개는 최대한 치지 말라고! 모르겠어? 모르겠으면 네가 건드려 봐! 네가 어떻게 죽는지 보고서 다른 기사들이 학습도 하고, 쓸데없이 자존심만 가득 찬 너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서 좋고. 일석이조네!”
명확하게 ‘하지 말아야 할 것’과 ‘반드시 해야 할 것’을 구분짓는다.
“닥치고 꼬리만 노려! 아, 토달지 말고 노리라고! 이거 설명하다가 날밤까니까!”
“어떤 빡통새끼가 저거 대가리에 눈뽕 지졌어? 아까 말한 거 까먹었냐? 빛으로 눈 자극하지 말라고!”
“야, 방금 내가 생각해봤는데 손톱에 닿으면 터질 거 같거든? 어, 뭔 뜻인지 알지? 알아서 사려.”
그녀의 방식은 헌터들이 수십 년 동안 연구해오고, 부딪치며 담아낸 지식과 노하우들이었고 굳이 설명으로 풀어내기에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또한 테일러는 말로만 설명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몸으로 보여주었다. 그 SS랭크의 대괴수를 상대로 전혀 겁먹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결국 괴수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알렉산드르 역시 한 명의 S랭크 기사로서 테일러 나인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는데, 그는 일전에 테일러 나인을 가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다는 말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빛이구나.’
테일러 나인이 선보이는 그 능력이, 알렉산드르가 평생을 추구해왔던 이상향을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블레스타쉬에는 총 아홉 명의 자식들이 있었고, 그들은 모두 빛을 다루지만 각각 하나의 ‘형태’만을 다룰 수 있었다.
어떤 이는 빛으로 막대를 만들었고, 어떤 이는 빛으로 탄환을 쏘았으며, 어떤 이는 빛으로 광선을 만들어 휘둘렀고, 어떤 이는 빛으로 방패를 만들었다.
결국 형이라는 틀에 가로막혀, 형제의 누구도 SS랭크라는 꿈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거늘.
가문에서 가장 모자라다고 생각했던 막내딸이 지금 이 순간, 그 모든 형태를 초월해버린 게 아니겠는가?
테일러 나인은 빛을 자유자재로 다루었다.
어떨 때는 빛의 막대를, 어떤 때는 빛의 탄환을, 어떤 때는 빛의 광선을, 어떤 때는 빛의 방패를. 형제자매들이 가진 여덟 개의 형태에 더불어, 심지어 아버지가 가진 ‘빛의 검’ 또한 완벽하게 따라하고 있던 것이다!
모든 형태를 초월한, 빛이라는 그 자체를 다루는 초능력자.
알렉산드르 블레스타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의 가문에서 가장 SS랭크라는 경지에 가까운 이가 바로 막내딸 테일러 블레스타샤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고작 명예를 위해 자신의 오랜 숙원이자 평생의 목표였던 SS랭크의 꿈을 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가문의 명예? 돈? 권력? 정치?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자식들을 초능력 위주로 엄격하게 키운 이유도 전부, 자신이 도달하지 못했던 경지인 SS랭크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금 전도가 역전되지 않았는가?
“저게, 무슨······.”
“초능력을 저렇게 쓸 수도 있다고···?”
테일러 나인이 펼치는 초능력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없던 종류의 것이었다. 아주 가끔, 신의 축복을 타고나서 정해진 ‘형(形)’이 없어 자유자재로 속성계 능력을 펼치는 초능력자는 분명 존재했었지만, 테일러처럼 자유자재로 형을 바꾸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윽고.
쿠웅!!
SS랭크의 대괴수가 쓰러지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짧게 내질렀다.
테일러 나인의 그 위용에 모두가 감탄을 하고 말았던 것. 당장의 위기는 틀림없이 벗어났지만, 아직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이형던전은 여전히 열려있었고, 저 안쪽에서 대기중인 수천 마리의 괴수가 여전히 쏟아져 나올 예정일 터.
그때, 하늘에서 알록달록한 빛깔의 무지개같은 것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멍하니 그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새하얀 백발을 휘날리며 허공에서 내려오는 ‘마법사’를 보았다.
마법, 그것은 학문이며 에센스 에너지를 사용하고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라고, 모리안 길드의 마스터 에이번이 바로 방금 선보이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건 마법이라기엔, 유사 초능력과도 비슷했다. 설명을 하지 않았다면 그저 불길을 일으키다가 얼음을 생성해내고, 조금 더 다양한 형태의 속성계 초능력을 구사할 뿐인.
그저 그런 것이 ‘마법’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에이번 또한 이것이 마법으로 펼칠 수 있는 최대의 한도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들은 아직 지구상 최고의 마법사를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마법을 가르친 유서담보다도, 마법을 좋아하는 은빛 정령의 꽃보다도 더욱 압도적인 재능으로 인해 펼쳐지는, 진짜 ‘마녀’의 마법.
“저···건······!”
“마, 마법···?”
그건 누군가가 굳이 마법이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마법이었다.
사색(四色)의 마법진 네 개가 빙글빙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그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그 환상적인 이능력을 마법이 아니면 대체 무어라고 설명을 해야 한단 말인가.
때로는 반투명한 얼음의 사슬이 쏟아져 나와 괴수들을 꿰뚫었고, 때로는 허공에 거대한 큐브가 생성되어 괴수들을 가두었으며, 때로는 이공간이 뻥 뚫리더니 그곳에서 선명한 용암의 창이 나타나 모든 적을 꿰뚫기도 하였다.
마법사는 이윽고 이형던전의 앞에 착지하더니, 거대한 마법진을 힘껏 움켜쥐었다.
그러자.
콰드드득!!
기적처럼, 이형던전에서 주둥이를 들이밀던 또다른 S랭크 이상의 괴수들의 머리통이 갈려나가며 ‘문’이 완전히 닫혀버렸다.
“······.”
“······.”
침묵.
모두가 압도적인 존재감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백색 머리칼의 마법사 앞에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천천히 몸을 돌려, 투명한 눈동자로 세상을 바라보자 황급히 카메라가 마법사를 향해 돌아갔다.
“다, 당신은 대체 누굽니까?”
그러자, 예카테리나는 다크서클이 살짝 내려앉은 피곤한 얼굴을 감추며 힘차게 미소를 띠었다.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날이었으니까.
“어나더 리그 길드의 전속 마법사, 예카테리나입니다.”
< 21세기의 마법사들(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