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의 마법사들(2) >
“지금부터, 세상에 ‘마법’을 공개하겠습니다.”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에이번의 목소리를 들으며, 테일러 나인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마법이라고?’
테일러는 이제 마법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유서담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마법은 유서담만이 사용할 수 있는 줄 알았다. 부적에 대해서는 그녀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그게 마법으로 작동되는 것일 줄이야.
‘······근데, 좀 그러네?’
유서담이 보여주었던 마법은 저런 방식으로 발동되지 않았다. 웬 휘황찬란한 마법진 서너개가 허공에서 겹쳐지며 현란하고 화려한 마법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었는데, 에이번의 마법은 기계를 기반으로 작동되어 마법진은 보이지도 않았고, 그래서 초능력과 별다를 것도 없어 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에이번의 마법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것인지 에이번을 비롯하여 마법사 세 명이 더 나와서 마법을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여러 속성의 초능력을 사용했던 것이다.
세상에 초능력을 다중으로 다룰 수 있는 자는 생각보다 많다. 결박의 초능력과 채찍의 초능력을 동시에 다룬다거나, 강체의 능력을 보유했으면서 에너지 실드를 펼칠 수 있다던가.
심지어 전 세계에서도 아주 소수의 초능력자들은 강체에 더불어 그 귀하디 귀하다는 ‘속성계’ 초능력을 추가로 보유하기도 하였는데, 거기에 둘 다 A랭크 이상의 수준에 올라선 경우는 더욱 극소수였다.
이렇듯 초능력을 두 개 이상 가질 수는 있다. 다만, 대부분이 비슷한 계열의 능력을 가졌으며 극소수의 듀얼 능력자도 그 두 개의 능력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고, 심지어 ‘속성계’의 초능력을 두 개 이상 보유한 경우는 전 세계를 통틀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그녀들은 보란 듯이 여러 속성의 이능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불을 피우다가도 바람을 일으켰고, 땅에서 흙의 벽을 솟구치게 했으며 얼음을 허공에 새기거나 스파크를 튀기기도 했으니까. 그 위력 자체는 B랭크 수준이었으나, 한 사람이 여러 능력을 ‘학습’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점은······ 아마 전 세계를 발칵 뒤집을 것이다.
테일러는 즉시 유서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테일러: 야]
[테일러: 지금 어디야?]
마침 서담도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있던 것인지 답장은 빠르게 왔다.
[서담: 미국]
[테일러: 모함?]
[서담: 쓸만한 이공간을 찾았거든]
[서담: 신 무림의 거점지로 쓰려고 세계 각지에다가 입구를 연결하는 작업 중이야]
[서담: 너는 러시아로 돌아갔다고 하지 않았어?]
[테일러: ㅇㅇ]
[테일러: 지금 생중계 보고있냐?]
[서담: 무슨 생중계?]
[테일러: 링크 보내줄게]
아직 방송이 시작된 지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이슈화가 되지 않았지만, 하루 정도가 더 지나면 난리가 날 터. 테일러는 그렇게 되기 전에 유서담이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법’이란 곧 유서담의 아이덴티티가 될 예정이었을 텐데, 이것을 다른 이들이 선독점하기 시작하면 그가 곤란해지리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유서담의 반응은 꽤 담백했다.
[서담: 오...과학에 마법을 저렇게도 접목하는구나]
그에 테일러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서담: 지팡이 만드는 법을 잃어버려서 기계로 구현한 건가?]
[서담: 그럼 저건 에센스 디스펜서라고 불러야 되나]
[서담: 되게 신기하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모리안 길드의 기술력인 것처럼 보였으니까.
[테일러: 야 넌 그런 소리가 나오냐? 위기의식도 없어?]
유서담은 몇 초 정도 침묵하더니, 말했다.
[서담: 저 정도면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보여]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인다.
[서담: 음...쟤들이 뻘짓만 안한다면]
하지만.
그의 그런 메시지가 전송됨과 동시에.
“마법의 가능성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것이 가진 수많은 장점 중 하나! 여태껏 해석이 불가능하여 처리할 수 없었던 대부분의 ‘이형던전’의 입구를 열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 말하며, 에이번은 뒤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마치 신기루처럼 아른거리는 기이한 원형의 ‘이형던전’이 있었다.
기사들의 연회가 열린 이 빌딩은 모스크바에 위치 해있었는데, 10년 전 이형던전이 나타난 이후 오늘까지 쓰이지 않던 건물이었다. 어째서 러시아 정부가 이형던전이 있는 이 빌딩에서 연회를 열었는지 의문이었는데.
‘설마, 저 지랄하려고?’
모스크바에 나타난 저 이형던전은 진입이 불가능하여 방치가 된 지로 십 년이 지난 채였다. 다행스럽게도, ‘동기화’까지는 수십 년도 더 남았다는 과학자들의 말에 따라 천천히 해석이 진행되고는 있었지만, 과학의 힘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 전 세계에 퍼진 채 해석이 불가능한 이형던전의 진입조건을 마법으로 클리어할 수 있다고 방송을 통해 발표하는 것!
“지금부터 모스크바를 골치 아프게 만들었던 이형던전을 저희가 해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윽고, 생중계로 방송을 지켜보던 유서담의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서담: 엿됐네]
*
사실, 이형던전이 개방되더라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이형던전은 A~S랭크의 사이이며, 또한 던전의 입구를 연다고 해서 곧바로 뭔가 사고가 터지는 것은 아니다.
“현대에 나타난 대부분의 이형던전은 ‘미지의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현대 과학으로는 그 미지의 에너지를 알아낼 수 없었지만, 그것들은 사실 모두 ‘에센스 에너지’로서 마법의 원천입니다.”
위이이잉,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며 이형던전의 입구를 해석하기 시작하였다.
“이제부터 인류는 언제 터질지 몰라, 이형던전이 발생할 때마다 버려야만 했던 땅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증거로 오늘, 모스크바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있는 이형던전을 해석하여 문을 열고, ‘부적’을 장비한 헌터들이 그 던전을 공략하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에이번의 곁에는 헌터 27명이 위치 해있었다. 무려 S랭크의 헌터 일곱과 A랭크의 헌터 스무 명이었는데, 각자 ‘부적’까지 장비한 덕분에 어지간한 S랭크 던전조차 가볍게 클리어할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었다.
다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서담: 상당히 위험할 수도 있겠어]
[서담: 오랫동안 이형던전이 열리지 않은 채 방치되면, 에센스 에너지가 쌓여서 내부의 파워가 업그레이드 되거든]
실제로 서담은 최근 몇 달 동안, 평범한 던전이나 게이트가 아닌 ‘이형던전’을 위주로 공략하고 다녔다. 평범한 던전과 게이트는 대다수의 길드에서 선점을 하였기에 소규모 길드인 유서담이 갈만한 데가 거의 없던 것.
그렇게 이형던전을 공략하며 돌아다니던 유서담은 무언가를 알아낼 수 있었다.
방치된 지 오래된 이형던전일수록 에너지가 점점 더 고이고 고여서, 강력한 한 개체를 만들거나 소수의 정예 몬스터가 탄생하게 된다는 것!
[서담: 저번에 한번 5년이나 묵은 이형던전을 따버린 적 있었는데... 곧바로 ‘동기화’가 시작됐거든. S랭크의 괴수가 존나게 튀어나오더라고]
[서담: 그때 진짜 고생했지]
[서담: 그 정도로 이형던전의 내부는 단단히 고여있는 상태야]
그 누가 알았겠는가. 던전이 열리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강력해진다는 사실을. 16년 차의 헌터이자 심지어 백색 마녀의 마법까지 가지고 있는 유서담조차 몰랐는데, 21세기의 마법사들이 과연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서담은 테일러에게는 문자 메시지로, 예카테리나에게는 ‘백색 마녀의 도서관’을 통하여 텔레파시를 보냈다.
[서담: 자리를 피해]
-너도 거기에 있지 말고 자리를 뜨는 게 좋겠어. 위험한 게 나올 거야.
하지만, 그녀들은 그의 말을 거절하였다.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자신들의 삶을 옥죄고 있던 거대한 운명의 사슬을, 지금 이 자리에서 끊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테일러: ㄴㄴ좀 나중에]
-안돼요. 할 일이 있어요.
둘 모두 서담의 경고를 거절하고서, 각자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테일러는 알렉산드르에게.
“이형던전이 터지면 위험할 겁니다. 사람들에게 경고해서 자리를 피해야 해요.”
예카테리나는 에이번에게.
“에이번. 이형던전을 열어서는 안 돼요.”
그러나.
“테일러 블레스타샤. 네 어리광을 받아주는 건 지난 16년의 일탈로 충분하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힘을 부여잡고, 더 나아갈 때다.”
알렉산드르 블레스타쉬. S랭크의 초능력자이자, 끝끝내 자신의 꿈이었던 SS랭크에 도달하지 못한 사내. SS랭크라는 꿈을 갈망하여 자식들의 초능력에게도 병적으로 집착하던 그가 ‘마법’이라는 미지의 힘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또한, 에이번 역시 마찬가지.
“세상에 우리의 마법을 공개하려는데, 방해할 셈이냐? 또다시 갇혀 지내고 싶지 않다면, 조용히 물러나 있거라.”
드디어 과학에 마법을 접목시킴으로써, 마법으로 세상에 자신의 영향력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였는데.
그 기회를 포기할 수 있을까?
결국.
이형던전의 문이 개방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으며.
“꺄아아악!”
“더, 던전이 폭주했어!”
“몬스터들이 튀어나온다!”
유서담이 경고한 대로, 던전이 터져나와 파워가 올라간 괴수들이 튀어나오는 것 역시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럴수가······.”
에이번은 던전에서 급히 물러난 채, 창백한 표정을 지었다.
‘A랭크 이상의 괴수들!’
설마 이형던전의 해석을 끝나자마자 폭주해버릴 줄이야!
A랭크의 괴수는 결국 이형던전 내부에서 ‘잡몹’ 취급을 받는다. 제대로 된 네임드는 최소 S랭크라는 의미. 그렇다면······.
‘······최소, SS랭크의 이형던전이다.’
이게 무슨 경우란 말인가. 이 세상에 마법의 존재를 당당히 드러냄으로써, 인정을 받아야만 하는 자리이거늘.
그제야 뒤늦게 에이번은 예카테리나의 경고를 떠올렸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여전히 똑같은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가 서있었다.
“···예카테리나.”
“에이번. 제가 경고드렸죠.”
“하지만, 이건 우리의 숙원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알아요.”
마녀라는 존재가 다시 한 번 세상에 드러나기를 원했던 에이번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잔혹했다. 이익을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여왔던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사장시켰던가. 얼마나 오랜 시간, 예카테리나를 괴롭혔던가.
그래서, 그녀는 에이번에게 마지막 배려이자 협상을 하기로 했다.
“에이번. 저희, 거래를 합시다.”
“···무슨?”
“이건 ‘마녀의 법칙’을 적용한 거래. 결코 어겨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거래입니다.”
“······!”
예카테리나가 마녀의 법칙을 언급하자 에이번의 동공이 흔들렸다. 자신이 마녀인 줄도 모르고 자라왔던 그녀가 어떻게 마녀의 법칙에 대해 알 수 있는가. 그러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는 던전에서 빠져나온 괴수들을 물리칠 힘은 없지만······. 최소한 이형던전의 문을 닫을 수는 있어요.”
“그건 불가능해. 아직 문을 닫는 기술은 개발단계 이전이다!”
“믿기 싫으신 게 아니구요?”
그 말에, 에이번은 눈을 차갑게 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상황파악이 늦긴 했어도, 에이번은 마녀. 언제나 감정없이 효율적인 거래만을 추구한다.
“원하는 게, 뭐지?”
“마녀의 법칙으로 약속하십시오. 제가 이형던전의 문을 닫으면 모리안 길드에서 저를 내보내겠다고.”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나 다른 도리는 없었다.
에이번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착잡하게 가라앉은 표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좋다. 만약 네가 문을 닫으면,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겠다.”
그것은 곧, 자신의 마법이 예카테리나의 마법보다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었으니까.
< 21세기의 마법사들(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