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은 다르고 특별한 사람들의(3) >
한때 예언가였으며, 지금은 마법사가 된 마녀 예카테리나.
지구의 유일한 예언가로서 마녀의 집단에서 살아가는 그녀의 삶은 꽤 고단한 편이었다. 감정을 가진 유일한 마녀이자, 유일한 예언가였던 그녀는 항상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감정을 모두 죽인 마녀 사이에서 참으로 이질적인 존재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예카테리나는 충분히 이용해먹을 수 있는 가치가 차고 넘쳤다. 그러니, 마녀들이 예카테리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감금.
그녀는 자유를 잃었다.
그녀는 시력을 잃었고, 마법을 잃었으며, 음악을 잃었다.
그러나, 예언을 포기한 대가로 마법과 음악을 되찾았으며 시력은 아직 되찾지 못했으나 손끝이 닿는 곳은 마법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모리안을 버리고, 우리 길드로 오겠다고?”
“네. 예언마저도 잃어버린 저는 이곳에서 사람취급조차 받지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제 존재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고, 예언가는 몇 개월 지나지 않아서 쥐도새도 모르게 조용히 죽었다는 명분으로 그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릴 거예요.”
예카테리나는 마법서를 사락 넘기며 서담의 말에 그리 답했다.
“우리 길드는 네가 지내는 곳처럼 귀족같은 저택을 지어줄 수도 없고, 그랜드 피아노를 갖다 줄 수도 없어. 식사도 엄청 맛없고. 한국은 적응하기도 힘들걸?”
“괜찮아요.”
그녀는 생긋 웃었다.
정말로, 괜찮았다.
매 식사마다 수십만 달러의 스테이크가 아닌 하루하루 끼니를 통조림으로 때워도 좋다.
수천만대를 호가하는 로얄 침대가 아닌 신문지를 덮고 잠을 청해도 좋다.
귀족같은 으리으리한 저택이 아닌 자그마한 단칸방에서 지내도 괜찮다.
그것이 자유라면.
통제받지 않는, 스스로의 의지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랜드 피아노가 없어도 콧노래로 자유롭게 즐거움을 흥얼거릴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자신을 이곳에서 꺼내줄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악마에게라도 영혼을 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미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잖아?’
눈앞에서 적잖게 당황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내를 보며 예카테리나는 기분 좋은 듯 웃었다.
“물질적인 건 정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저 제 스스로 잠잘 곳을 정하여 등을 기댈 수 있고, 스스로의 의지로 말하고, 노래하고, 또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자유를 원해요.”
그녀의 말에 결국 유서담도 납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곧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내 힘으로는 너를 모리안에서 빼 올 수가 없어. 무림 연합과 어나더 리그는 아주 작은 신설 길드이고, 모리안은 국제적 길드야.”
“괜찮아요.”
전 세계에서도 열 손가락에 꼽는다는 그 거대 규모의 길드, 모리안. 심지어 최근에는 똑같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길드인 로스트 데이와 동맹을 맺고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라고 들었는데······. 과연 서담이 괜히 나서서 ‘예언가를 내놓으시오’라고 했다가 그들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을까?
SSS랭크의 무림인 설중연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서 길드가 해체되지는 않겠다만 아무래도 그들의 강력한 견제를 받으며 활동은 당연히 힘들어질 터. 대기업의 견제에 성장 가능성이 아예 콱 막혀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다.
‘게다가, 모리안 또한 마법을 사용하는 마녀들이 모인 장소. 마녀들의 수가 최소 수백은 될 텐데······.’
끝없는 무력감.
“나는······. 네게 해줄 수 있는 게 정말 아무것도 없어.”
이렇게나 무력한 기분을 느낀 건 또 오랜만이라고 생각하며, 그리 말하자.
예카테리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이미 제게 해줄 수 있는 건 충분히 해주셨잖아요?”
“뭐? 내가 뭘?”
“제게서 예언의 저주를 끊어내주셨고, 끝없이 탐구할 수 있는 마법의 지식을 주셨고, 심지어 이제는 길을 잃은 제게 자유로이 머물 수 있는 장소를 주시겠다고 하셨어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못해 제게는 과분할 정도에요.”
“아니, 그건······.”
“이제부터는 제 스스로 해야만 하는 일이에요. 저는 스스로 일어나서 모리안 길드를 두 발로 당당히 걸어나갈 거니까요. 더 이상의 도움은 필요도 없고, 바라지도 않아요.”
그녀는 그 투명한 눈동자로 서담을 똑바로 쳐다보며 똑부러지듯 그리 말했고, 결국 그도 수긍하였다.
“···그래. 나야 어쨌든, 네가 우리 길드로 들어온다면 대환영이니까. 하지만 아까 말했듯, 너 진짜 우리 길드 오면 개처럼 굴린다? 자유? 그런 거 없을수도 있을걸?”
“아하핫. 괜찮아요.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남은 인생을 허송세월 낭비하는 것보다는 더 가치있겠죠.”
구슬이 흘러가는 듯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는 말한다.
“약속해요. 반년 안에, 반드시 이곳에서 나가서 서담님의 길드로 찾아갈게요.”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묻는다.
“그러고 보니, 길드명이 어나더 리그였나요?”
“응. 길드명 멋있지?”
진심인 것처럼 보이는 그의 눈빛에 그녀는 적잖게 당황했다.
“···네? 아···. 넵. 머, 멋진 단어 두 개가 모이니 멋있을 수밖에 없죠. 네. 멋···있어요.”
“역시. 너라면 알아봐줄 줄 알았지.”
예카테리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화제를 돌렸다.
“그럼, 그 길드명의 뜻은 뭔데요?”
“별건 없고······.”
서담은 마법서를 슬쩍 훑어보며 말했다.
“초능력과 과학이 만연한 지구에서, 무공과 마법을 다루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잖아. 그래서 조금은 다르고 특별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의 어나더 리그.”
“아······.”
그렇게 생각하니 또 그럴싸하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상당히 애매한 기분이 되어버린 예카테리나는 문득, 누군가가 자신의 뺨을 톡톡 두드리는 감각에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아. 제 가드가 저를 깨우고 있어요.”
“뭐?”
“슬슬 ‘마녀 회의’ 시간인가 보네요.”
그녀의 정신은 비록 도서관에 있을지라도, 현실의 감각은 여전히 링크되어있다. 예카테리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생긋 웃은 뒤 눈을 꼭 감으며.
“그럼 다음에 봬요.”
그리 인사를 건넨 뒤, 다시 눈을 뜨자.
새카만 세상이 나타났다.
흐릿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상.
그것이 그녀의 현실이었다.
“아가씨. 회의 시간이 슬슬 다 돼서 깨워드렸습니다. ···하지만 뺨을 톡톡 쳐달라니, 제게는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괜찮아요. 제가 편하니까요.”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확히 반년 안에, 예카테리나는 ‘마녀의 법칙’을 토대로 모리안의 길드장에게 정정당당히 마녀의 결투를 신청할 것이고, 승리를 쟁취하여 당당히 모리안에서 빠져나올 것이다.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던 예전이라면 불가능한 일.
또한, 수십 년이나 마법을 수련한 노괴에게 어린 자신이 결투를 신청하는 현실 자체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색 마녀의 도서관과 함께라면.
‘나는 이곳에서 내 두 발로 나갈 수 있어!’
예카테리나는 오늘을 버텨낼 것이다.
이제는 내일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
무림 연합은 중국을 비롯하여 세계 각지에 퍼져있다. 그리고, 설중연이 활동하는 주무대는 신기하게도 중국이 아닌 미국땅이었다. 그것도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 왜 굳이 그곳에서 활동하냐고 물으니,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설중연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이전번에 함께 밤을 지새우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일방적으로 설중연이 질문을 던져댔기에 알아낼 수 있는 게 없던 것. 대부분의 질문에 죄다 답을 해주었기에, 아마 그녀는 우리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까지 알고있을지도 모른다.
“네. 우선은 제가 이메일로 보내드린 서류를 박성호 비서관님에게 보내주세요.”
예카테리나의 도움을 받아 이능력에 대해 알아낸 것들을 이메일로 전송하며 스마트폰을 통해 그리 말하자 설중연의 침착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으음, 이메일은 어렵구나.
“원래 현대인 아니셨어요? DR을 하기 전에도 이메일은 왕성했을텐데요.”
-그땐 내가 무척이나 어렸거든.
“아···음. 알겠습니다.”
-아무튼 고맙다. 덕분에 무림인을 질타하는 언론도 잦아들었어.
그녀는 무림인답지 않게 꽤 이성적이었다. 현대의 언론에 대해 전혀 배우지 못했음에도, 알고있는 것이다. 지금 무림인들이 잠자코 사회를 받아들여야, 훗날 무림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림맹주이자 한때 천마였던 설중연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그들이 설립한 신 무림맹이 세계의 간섭을 받지 않은 채, 오로지 무림으로서 독립하는 것. 중원 무림에서 국가가 무림에 간섭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솔직히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너무 허황된 꿈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국가가 초인 연합을 자유로이 활동하도록 가만히 두겠는가? 설중연 또한 이 꿈이 너무나도 먼 목표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들이 살던 세상을 꼭 현대에 재현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을 들은 이상 나 또한 허황된 꿈에 얼마든지 어울려줄 생각은 있었다.
-···대충 이곳에서의 일도 마무리 되었구나.
“네. 반년 정도만 더 고생하시면, 아마 무림도 어느 정도는 인정을 받을 거에요. 그때쯤이면 무림맹주로서 묶여있을 필요도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겠구나. 무공을 괴물 사냥에 써먹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무림 연합이 탄생한 이후, 무림인들은 어마어마한 떼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그들은 주로 국가에서 개입을 하지 않는 버려진 땅에 찾아가 괴수를 사냥하고는 했는데, 워낙 싸움에는 도가 튼 이들이라 별도의 장비 없이 칼 한 자루만으로도 충분히 이익을 뽑아낼 수 있었다. 거기에 심지어 에테르 장비를 착용한다면?
설중연 또한 특별한 장인에게 의뢰를 해서 제작한 한국풍의 개량 에테르 디스펜서 무복을 입고는 했는데, 그게 또 설중연의 팬들이 광적으로 환호하여 최근 개량한복 붐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녀에게 왜 한국풍이냐고 물으니,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렇단다.
-아무튼, 조만간 한국에 찾아가도록 하겠다. 그 전에 네가 찾아온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다만······.
“그, 그러도록 하죠.”
설중연과의 통화를 끊은 뒤 나는 의자에 기대어 숨을 크게 내쉬었다. 당장에 할 일은 모두 끝났으니, 당분간은 헌팅이나 하면서 보내도 좋을 것이다. 예사혜는 하선영이 무공을 아주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그들끼리 사냥하는 것보단 나도 합류하는 편이 더 효율적일 테니까.
‘이제 슬슬 나도 방어구를 제작해야겠는데.’
현재도 1등급의 상당히 좋은 에테르 슈트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휴대성이 용이하다는 장점을 살리느라 방어력과 기능성이 조금 뒤떨어지는 편이었다. 하지만 ‘네임드’급으로 가서 억 단위를 투자하여 맞춤 슈트를 제작하면 테일러나 설중연처럼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의 에테르 슈트를다기능성으로 입는 것도 가능하리라.
“그나저나, 얘는 요새 뭘 하느라 코빼기도 안 보이지?”
테일러 나인은 일전에 내 도움으로 헬로니의 호위 임무를 성공적으로 성공시킨 사례가 있었다. 무려 SS랭크의 무림인 출신 스토커를 체포하여 지금은 무림 연합에 넘긴 상태.
무려 무림인을 체포한 초능력자라는 명성 덕분일까, 세계 각지의 높으신 분들이 그녀에게 가드를 맡아볼 생각 없느냐고 러브 콜을 상당히 보냈다고는 들었다.
예쁘고, 강하고, 유능한 테일러 나인을 고용한다면 호위 임무 자체는 둘째치고,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될 테니까 그 이미지를 써먹으려는 것이다.
물론 테일러는 죄다 거절하고서 러시아로 돌아갔다는 모양이지만.
[유서담: 뭐 해?]
[유서담: 일 없으면 나중에 한 탕 뛰자고]
예전에는 테일러가 먼저 제안하기 전까지 절대로 먼저 같이 헌팅하자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내 방식과 그녀의 방식이 꽤 많이 어긋났기 때문. 최대한 조심스럽게 활동하기에 전략적으로 돌파가 가능한 던전을 찾는 나와는 달리 테일러의 스타일은 최대한 과격하게 활동하여 힘으로 돌파가 가능한 던전을 선호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나 또한 전략을 최소한으로 배제하고서 힘만으로도 어느 정도 던전을 돌파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문득 뭔가가 떠오른 나는 의뢰인에게 물었다.
“야. 의뢰인. 일전에 달마 사냥하고 얻은 스킬 보상 정산은 아직 멀었어?”
재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슬슬 사냥에 들어갈 시기가 되었다보니 궁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의뢰인은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답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
<본래, 유서담 헌터께서는 주인공을 사냥하고 그들이 가진 일부의 개연성을 흡수합니다.>
“알지. 그 에너지로 차원 복귀를 할 수 있는 거고.”
<그런데······. 이번 주인공을 사냥한 이후로는 차원 복귀를 안하셨잖습니까?>
“···어? 생각해보니 그러네?”
<유서담 헌터에게 과도한 개연성의 에너지가 모이고 있습니다.>
“뭐? 개연성? 그거 위험한 거 아니야?”
<개연성이 무작정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아주 극소량의,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개연성이 존재하니까요. 유서담 헌터는 그게 아예 없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들으니 갑자기 슬프네.
<하지만 서담 헌터께서도 이제는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조금씩 개연성이 쌓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성공’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정도의 양이었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아주 조금씩 쌓여나가던 개연성이, 이번에 지나치게 폭발적으로 쌓여버린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데?”
<만약 이대로 무작정 스킬을 흡수했다가는······.>
의뢰인은 마치 심호흡을 하는 것처럼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과도한 개연성으로 인해 ‘주인공 화’가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
그건 나조차도 당황하게 만들어버리는, 꽤 충격적인 말이었다.
< 조금은 다르고 특별한 사람들의(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