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81화 (81/251)

< 조금은 다르고 특별한 사람들의(2) >

달마지존을 사냥한 이후 온갖 스킬과 능력치가 대폭 상승했다지만, 백색 마녀의 도서관만큼은 그대로였다. 나 또한 아쉬웠지만 이해는 했다. 이 스킬은 정당한 시험을 치러서 랭크 상승을 수동으로 해야만 했으니까.

그런데, 그 시험조차 치르지 않고 프리패스로 올라갈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잠깐 잊고 있었다. 나처럼 마녀의 도서관을 소유하고만 있을 뿐 본질은 인간인지라 매번 마녀화가 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면서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되는 진짜배기 마녀가 바로 내 머릿속에 들어와 세를 내고 있지 않던가?

“진짜 그냥 문 여니까 들어와 졌다고?”

“네!”

“막 혹시 감정이 없어진 느낌이 든다거나. 혹은 막 내가 벌레처럼 보인다거나. 뭐 그렇진 않아?”

사람 크기만한 책부터 시작해서 손바닥만큼이나 작은 책들이 널려있는 D랭크의 서고의 한복판에서, 예카테리나는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서담님은 여전히 서담님이세요!”

“신기한데······.”

예카테리나는 현대에 잔존하는 마녀이다. 인간이 어느 세계를 가든 꼭 있는 것처럼, 마녀 또한 사실 옛 시대에는 여러 차원에 수없이 많이 존재하긴 했었다고 의뢰인에게 듣긴 했었다. 다만, 대부분의 차원에서는 마녀가 생존하지 못하고 박멸당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게도 그들은 뛰어난 마도기술력을 소유했으나 그 숫자가 매우 적었으며 또한 대부분의 생명체가 적대할 수밖에 없는 사회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애초에 이성을 가진 타종족과 교류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벌레 취급을 하는 그들이 살아남았던 세계가 더 이상한 거다.

어찌 되었든, 지구의 마녀는 거의 박멸당한 뒤 생존을 위해 인간 사이에 몰래 섞여들었고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마법을 억지로 부여잡은 채 살아남고 또 살아남아 이제는 인간과 피가 섞였다고 한다.

감정이 없는 마녀가 인간 사이에서 아이를 낳은 것도 신기한데, 그중에서도 핏줄을 길게 이어받아 수 세기가 지난 지금도 ‘예언’의 능력을 타고난 예카테리나같은 천재가 나온다는 게 더욱 신기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예카테리나는 마녀의 피를 짙게 타고났지만, 단점으로 감정을 가져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건 인간으로서, 그리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곧 장점이었고 덕분에 나 또한 그녀를 통제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감정이 연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예카테리나가 머릿속으로 들어온 이후부터 내가 원하고자 할 때 그녀의 감각과 감정을 일부 공유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냐······.”

슬쩍 주위를 둘러본다.

D랭크의 서고라니. 아직 E랭크조차 제대로 독파하지 못한 나였기에, 여기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조차 모르겠다.

그나저나, 그 와중에 저건 또 뭐야?

예카테리나의 근처에는 은색 정령의 꽃이 ‘두 발’로 돌아다니며 책을 읽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정신세계에서는 자율활동이 가능한 모양. 저 작은 몸으로 저 커다란 책을 들고 다니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아. 은빛이 말씀이세요? 은근 착하고 말동무도 되고, 귀엽지 않아요?”

“···귀엽다고?”

그럴 수 있다. 사람의 취향이란 천차만별이니까. 슬쩍 화분을 쳐다보던 나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서 D랭크의 책 한 권을 빼서 펼쳐보았다.

···그리고 10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덮었다.

“글자만 봐도 울렁거리는 건 오랜만인데······.”

책과 아예 담을 쌓고 지내던 예전과는 달리, 요새는 책과 가까이 지낼 일이 많아졌다. 헌터 업계에 대해 공부하는 건 물론이요 마법도 열심히 공부를 해야만 했으니까.

하지만, D랭크는 진짜 아니다. 저건 진짜 대학 수준은 되는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서 내 마법적 지식은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정도. 내가 이 처참한 지식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건 전부 화분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 고등학교의 수준이라서 잘 알겠다.

D랭크의 마법은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의 위력을 가진 것들이 천지였다. 이 정도라면 출력까지는 모르겠지만 응용면에서라면 A랭크의 초능력을 상회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뭐. 이건 그렇다 치고. 그나저나 밖에 저것들은 다 뭐야?”

슬쩍 고개를 돌려 E랭크 서고 쪽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온갖 인테리어로 치장되어 있었는데, 도서관에 언제 저런 걸 다 들여놨는지 모르겠다. 특히 음악 관련 재생 장치가 유난히 많았는데, 지금은 가까이에서 레코드가 돌아가며 클래식 노래가 재생되고 있었다.

“지금 나오는 곡은 모차르트의 레퀴엠 D단조 K.626의 ‘놀라운 금관 소리 울려 퍼지네’예요!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어? 모, 모차르트? 물론 잘 알지. 아주 명곡이야. 엄청 좋아해.”

“역시! 음악에도 일가견이 있으시군요.”

“······.”

···사실 들어본 적 없다.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서 신나는 발걸음으로 E랭크 서고 쪽으로 향하더니 각종 악기와 음악 재생 장치 등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잠이 들 때면, 이곳으로 와지잖아요. 근데 저는 잠을 잘 때만 그런 줄 알았는데, 눈을 감고 제가 간절히 바라도 올 수 있더라구요?”

“뭐? 진짜?”

미친. 그건 그냥 나처럼 스킬을 쓰는 수준이다. 검색 기능은 못 쓰겠지만, 원할 때 도서관에 언제든 들어와서 열람이 가능하다니.

“저는 현실에서 하는 일이 공부밖에 없어서, 자주 도서관에 찾아오게 됐는데 이게 또 손으로 만지던 물건을 간절히 상상하면 이 도서관으로 가지고 올 수 있더라구요. 전자기계처럼 복잡한 건 들고 와도 작동이 안 되지만, 이런 악기들처럼 제가 구조를 알고 있으면 얼마든지 작동이 돼요.”

“어···. 그러냐.”

지금 보니, 도서관 곳곳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음악들은 서로 겹치지 않아서 어느 구역에 가면 어느 음악이 나오고, 어느 구역에 가면 어느 음악이 나오는 식으로 지겹지 않도록 배치가 잘 되어있었다.

이거 꼭, 내 머릿속의 인테리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 기분이라 뭔가 상당히 묘하다.

“책 읽을 때 심심해서 음악이라도 들으려고 그런 거냐?”

“네? 아뇨···. 그냥, 어······.”

별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눈에 띄게 당황하더니,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사실. 저···. 옛날에, 그러니까 10대 초중반 때까지는 피아노 신동 소리를 들었거든요. 아마도 그대로 자랐으면 지금쯤 적당한 피아니스트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근데······. 예언의 능력을 얻으면서 모든 음악적 능력을 상실했어요.”

“······?”

음악적 능력을 상실한다는 그 문장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어떤 음악을 들어도 전부 소름 끼치는 소음으로밖엔 안 들려요. 그런 거예요. ···저는 음악을 정말로 사랑했었는데. 음악은 제 전부였고, 곧 제 인생이었는데.”

아마도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거다. 자신의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또 인생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 어느 날 하룻밤을 기점으로 갑작스레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혐오스럽고 끔찍하게만 느껴진다는 게 대체 무슨 기분일까.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감정을 공유받을 수는 있었다.

그건, 심장을 옥죄이는 것보다도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

끝도 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기분.

더 이상 절망할 것도 없는 곳에서, 더더욱 절망할 수밖에 없는 현실. 저항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제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그 끝없는 나락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옛 기억의 잔재 속에서 사랑스러웠던 음악의 흔적을 억지로 부여잡아 이어나가는 것뿐.

그제야 나는 그녀가 어째서 도서관에 한가득 음악을 배치해놓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음악을 되찾은 지금, 이제는 인생에서 단 한 순간도 그것을 떼어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마녀. 한번 음악을 잃었던 경험이 있기에, 언제 또 음악을 잃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만약, 혹시라도 언젠가 미래에 음악을 잃게 된다면 기억으로라도 영원히 음악을 되새기며 추억하기 위해.

그녀는 지금 이 순간, 정말로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듣기도 좋고. 분위기도 괜찮네. 나도 클래식 음악 좋아하니까 자주 틀어놔.”

“네! 감사합니다. 헤헤.”

가만히 피아노를 쓰다듬던 나는 퍼뜩,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런 기계를 가지고 올 수 있으면 서류 작업을 여기서 해도 괜찮지 않을까? 아직 제대로 된 사무실이 없어서 오피스텔 하나 구해서 일처리를 하고 있다만, 그래도 도서관에서 음악까지 들어가며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즉시 현실로 돌아와 서류에 손을 얹은 채, 그것들을 그대로 정신세계로 복사해 가져왔다.

“헉···. 적응이 빠르시네요. 저는 이걸 알고도 한참 걸렸는데.”

“다, 당연하지.”

아무리 그래도 내 스킬이고 내 정신인데, 세들어 살고있는 사람보다 못하면 창피하다.

*

<서담. 일전의 ‘정산’이 조금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달마지존을 사냥한 뒤, 나는 아직 재능 및 스킬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었다. 의뢰인은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은 채 계속해서 뭔가를 끙끙대고 있었는데, 뭔가 내게 많이 미안한 모양이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좋은데 말이다.

<해당 주인공의 스킬에 워낙 ‘개연성’이 덕지덕지 뭍어있어서······. 서담에게 곧바로 지급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해결책을 찾아야할 것 같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 당장 받을 수는 없다니 나도 굳이 재촉을 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으니까. 그게 벌써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기는 했다만, 나도 상당히 바빴기에 별로 신경을 쓸 겨를이 없기도 했다.

‘천천히 해.’

<네···. 금방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그 뒤로 며칠.

예카테리나는 예카테리나대로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나는 나대로 무림 연합 및 어나더 리그를 운영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틈틈이 돌아와 서류를 꼼꼼이 살펴보며 공부를 하였다.

현재 내 길드는 거의 2인 체제였는데, 하선영의 제자가 된 예사혜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을 하여 최근에는 어느 정도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고 덕분에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 조금 더 늘어났다. 하지만 회사에 일거리가 생긴다는데 싫어할 사장이 있겠는가?

그렇게 도서관에서 서류 작업을 하는 도중, 그녀가 내 서류를 본 것은 정말로 우연이었다.

“으음, 골치 아프네.”

“뭐가요?”

“아니 별건 아닌데. 무림 연합에서 연락이 왔는데, 무공을 자꾸만 훔쳐가려는 놈들이 있어서 말이야. 길드에서든 국가에서든.”

“아하······?”

그러자 예카테리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그건 ‘초능력 특수 지적재산권’을 인정받을 수 있을 텐데요.”

“초능력, 뭐?”

“예전에 모리안 길드에서 마법을 훔쳐가려는 길드와 시비가 붙은 적이 있거든요.”

그러고 보니, 모리안 길드의 핵심부가 ‘마녀’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던가. 꽤 흥미있는 이야기였다.

“이능력이나, 초능력을 사용하는 기술 등등 요새는 전부 기술로 인정받고 있어요. 그 왜, 같은 계열의 능력자라도 기술이 다르잖아요? 그게 이제는 하나의 아이덴티티, 즉 개성으로 취급받고 있거든요. 그래서 함부로 그 기술을 훔칠 수 없어요. 뭐···. 편법은 얼마든지 존재하지만 마법과 비슷하게 이능력 취급을 받는 무공이라면 건드리기 힘들걸요?”

“···진짜로?”

뻥, 뚫렸다.

며칠이나 골머리를 썩이게 했던 고민이 정말로 단 한 순간에 말이다.

그 이후로도 나는 계속해서 그녀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고, 생각보다도 예카테리나가 유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냥 평범하게 길드 업계에 대한 지식만 놓고 보아도 무림 연합에서 열심히 뛰고있는 박성호만큼이나 잘 알았는데, 심지어 ‘이능력’과 관련된 쪽으로는 아예 척척박사나 다름없던 것이다.

“너, 너 진짜, 넌······.”

“네?”

“넌 진짜 최고야······.”

“앗, 흠흠. 제가 좀 대단하긴 하죠.”

무공. 현대에 녹아들기 힘든 이 특이한 능력을 어떻게든 동화시키기 위해 내가 얼마나 고민했던가. 그런 고민을 정말 바보취급이라도 하려는 듯 예카테리나는 그것을 척척 해결해냈다. 이쪽 방면에서 그녀는 모르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해박했던 것.

그러고 보니 내 길드는 단순히 무공 뿐만이 아니라 마법 쪽으로도 가르칠 예정이었다.

지금은 하선영에게 내 검술을 아예 전수해주어 예사혜를 첫 어나더 리그의 제자로 만들어서 가르치고 있다지만 마법은 내가 가르치기 힘들지 않겠는가?

만약, 예카테리나가 어나더 리그로 들어온다면?

검술은 하선영, 마법은 예카테리나가 담당하여 두 방면 모두의 개성을 살려 어나더 리그를 키울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무림 연합의 운영이나 행정쪽으로도 그녀의 도움을 어마어마하게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가장 중요한 것.

만약 예카테리나가 길드에 들어와서 운영을 맡게 된다면? 내가 현실에서 자리를 비우고 이계로 넘어가더라도 그 공백 시간 동안 전혀 문제가 될 게 하나도 없다. 그녀는 나보다도 이쪽계열로 훨씬 능력이 훨씬 뛰어났으니까.

하지만······.

“쓰읍, 네가 모리안 길드라는 게 아쉽네.”

“네?”

“넌 진짜 우리 길드에 딱 필요한 인재거든. 근데 솔직히 우리 길드가 모리안 길드에 비할 바가 못 되잖아.”

정신적으로 그녀가 내게 묶여있다고는 하지만, 나는 이를 강제적으로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안 그래도 평생을 미술관에 구속되어 살아가던 그녀를 더 구속해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그래서 더 아쉬웠다.

모리안 길드는 세계에서도 손가락에 손꼽히는 길드. 게다가 최근에는 ‘로스트 데이’와 손을 잡고 무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하니, 그만한 규모를 가진 길드에서 빠져나와 이제 막 길드원이 세 명뿐인 신생 길드로 와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는-

“꼭 데려가주세요!”

“···엥?”

“뭐든지 시키는 일은 다 할 수 있어요! 그냥 평생 일만 하는 기계가 될게요!”

예카테리나는 후다닥 내게 다가와 양손을 부여잡더니 그 투명한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말한다.

“저를 모리안에서 꺼내만 주신다면, 개처럼 일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건 퍽, 애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 조금은 다르고 특별한 사람들의(2)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