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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79화 (79/251)

< 아빠가 알고보니 무림공적(3) >

생각보다도 신혜지의 등장이 효과가 꽤 컸던 모양이라고, 이동준을 바라보며 유서담은 생각하였다.

“전부, 전부 비키란 말이다!”

꽤 치열한 싸움 속에서, 이동준은 제 힘을 발휘하지도 못한 채 분투를 하고 있었다. 그의 육신에 상처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으며 교룡복이라 불리는 전설의 무복 또한 여기저기 찢겨나가고 있었다.

푸욱!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무언가가 이동준의 등을 찌른다.

극독이 묻은 단검, 용을 닮은 창, 천년수를 베었다는 도끼가 차례대로 이동준의 몸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그의 신체 한 부위를 잘라내었다.

그건 천하제일의 달마지존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도, 꽤 추잡스럽고 비참한 싸움이었다.

레벨 다운의 효과가 확실히 크긴 큰 모양이었다.

사실은 이동준이 자신의 죄업을 인정하기만 해도, 신혜지가 나타나서 ‘주인공 보정’을 깨트릴 수는 있었겠지만 거기에 더해 아예 자신의 죄를 술술 불어놓으니 그녀의 충격이 얼마나 클까. 그런 그녀의 반응에 영향을 받아, 무려 레벨이 150단계나 낮아져버리는 기현상이 일어나버린 것.

그 과정에서 스킬 몇 개가 아예 사라지거나 무력화되었다지만, 너무 극명한 스펙변화가 아닐 수 없다.

아마 이 장소에 모인 무림인들 중 하선영을 비롯하여 몇몇은 거의 300레벨대의 전투력에 육박했을 터. 마지막으로 숨겨두었던 ‘주인공 보정’인 달마의 숨겨진 힘조차 이미 사용한 마당에, 이동준이 더 이상 버텨낼 수는 없었다.

푸욱, 하선영의 검이 달마지존의 가슴을 관통하는 것과 동시에 그 요란스럽던 히말라야 산맥에 침묵이 들어찼다.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최강자의 죽음 치고는 너무나도 고요한 죽음이었다.

그 누구도 그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그의 죽음에 기뻐하지 않았다.

그 어떤 이의 감정조차 받지 못한 채, 그저 차디찬 설산의 바람을 맞으며 외롭게 죽는 것이 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죽음임을 모든 무림인이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잘못된 사상으로 천하를 흔들어놓았던 이의 죽음에 모두가 묵념하였다.

그러한 정적 속에서, 신혜지는 조용히 울음을 터뜨렸다. 서담은 감히 그녀를 위로할 수 없었다. 그녀가 스스로 이 자리에 나오기를 선택했든 어쨌든, 이동준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다름아닌 자신이었으니까.

이윽고.

[500레벨의 주인공을 사냥하였습니다.]

그런 메시지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욱!”

갑작스레 몸을 경직시킨 유서담이 고통어린 신음을 터뜨렸다.

우드득, 우득! 우드드득!

뼈가 뒤틀리고, 피부가 갈라지며, 갑작스레 그의 신체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일이냐? 괜찮느냐?”

“······!”

설중연이 물어왔고, 신혜지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그를 부축하려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온몸을 태우는 듯한 뜨거운 고통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던 것이다.

“크윽, 으윽······!”

마치 누군가가 뼈를 강제로 잡아뜯고서 조각낸 다음 조립을 하는 느낌이었다. 혹은, 내장을 적출하여 새로운 부품으로 갈아끼우는 느낌이라고 봐도 좋았다.

그의 몸에서, 서서히 새하얀 빛이 터져나왔다. 순수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자연 에너지! 그에 무림인들이 하나둘 그가 있는 쪽을 바라보더니 입을 쩍 벌리고서 경악하였다.

“저건··· 환골탈태가 아닌가?”

“맙소사!”

환골탈태(換骨奪胎)가 무엇이던가. 임독양맥과 생사현관을 타통하여 나이가 몇 살이라도 최전성기의 아름다운 젊은 육체를 얻게 되며, 수명이 매우 길어지는 건 물론이요 그 자체의 내구도가 굉장히 높아져 모든 고수가 꿈꾸는 현상이 아니던가?

아주 높은 경지를 이룬 고수만이 환골탈태를 할 수 있었기에, 실제로 이 자리에 나와있는 고수 중에서도 환골탈태를 겪은 자는 스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믿을 수 없어······!”

이 자리의 무림인들은 유서담의 지략을 인정하였다. 그 덕분에 자신들이 이 자리에 모일 수 있었으며, 또한 복수를 완성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무력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환골탈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특별한 수행을 수십 년을 거쳐야만이 수만 명의 천재들 중의 단 한 명만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믿을 수 없다고 말해도···. 저건 틀림없는 환골탈태로군.”

자연의 기운이 한곳에 응집되어, 신체의 불순물을 모조리 증발시키고 그 자리를 새것으로 채우는 그 현상은 틀림없는 환골탈태.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레벨이 50+5단계 상승합니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차이를 극복하여 추가 레벨이 20단계 상승합니다.]

[개연성의 최대치를 찍은 주인공을 사냥하여 추가 레벨이 15단계 상승합니다.]

[흡수하지 못한 능력치가 재능 및 스킬로 분배됩니다.]

[재능 ‘검술 A+’이 ‘검술 S’로 상승합니다.]

[스킬 ‘육감 F’가 ‘육감 C’로 상승합니다.]

[스킬······.]

그저, 기존에 너무나도 허약했던 유서담의 신체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여 발생한 현상이었을 뿐 환골탈태와는 거리가 있던 것. 그러나 무림인들의 눈에는 영락없는 환골탈태였고, 이윽고 빛이 잦아들며 환골탈태가 완전히 끝나 새사람이 된 유서담을 가만히 지켜보던 하선영이 이때다 싶어 무림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모두 제 말을 들어주시겠습니까?”

그것은 평소와는 전혀 다른 말투였다. 반 세기 이상을 살아온 고수가 터뜨릴 수 있는 카리스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무림인이 주목하자, 곧장 본론을 꺼냈다.

“비록 이곳은 지구지만, 무림인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은 곧 무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여, 제안을 하나 하고 싶습니다.”

“무슨 제안이오?”

“우리는 제각각 인종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며 사는 곳도 다르지만, ‘무림맹’을 이곳 현대에 재현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음!”

“무림맹이라.”

무림인들이 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하선영은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우리 무림인은 현대의 초능력자에 비해 그 수가 월등히 적습니다. 심지어 여전히 사회 곳곳에 숨어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무림인이 상당히 있을 터. 만약 우리 무림인들이 개인으로서 활동한다면 현대의 헌터 협회에 휘둘릴 뿐이겠지만, 모든 무림인이 무림맹으로서 단단히 결속된다면! 결코 무림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이동준의 금제는 없다. 무림인들은 모두 자유롭게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나, 과연 현대의 헌터 협회와 수많은 길드가 그들을 가만히 둘까? 어떻게 해서든 이용해먹기 위해, 무공의 비밀을 빼내기 위해 불순한 접촉을 해올 터.

그러나, 현대에 적응하고 또 변화한 신 무림맹이 무림인을 보호한다면.

결코 그 누구도 무림인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빠졌소.”

누군가가 묻는다.

“무림맹주의 자리는 어떻게 결정되지요?”

그러자, 하선영은 자신이 굳이 대답할 필요가 있느냐며 씨익 웃으며 말했다.

“가장 강한 자에게 주어지지 않겠습니까?”

그에, 사방에서 호승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가장 강한 자!

이 얼마나 아름답게 떨리는 울림이란 말인가.

무림인들이 들뜨기 시작하자, 하선영은 적기 적소를 놓치지 않고서 말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무슨 문제 말이오?”

“무림인의 대부분은 숨어 살았으며, 이능력자로서 활동하기에는 가지고 있는 지식과 지혜가 터무니 없이 부족합니다. 해서, 저는 유서담 헌터를 무림맹의 군사로 제안하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군사(軍師).

무림맹에서 머리 쓰는 양반들이 맡는 직책으로서, 당연하지만 단순히 무력이 강하다고 해서 맡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림맹의 두뇌를 책임질 수 있는 자만이 받을 수 있는 자리. 그리고, 유서담은 그 자리에 썩 어울리는 사내였다.

달마지존의 비밀을 밝혀내 세상에 공개하였으며, 모든 무림인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도록 하였고, 약점을 공략하여 힘을 약화시켜 결국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천하제일인을 사냥할 수 있도록 했던 사내가 아니던가?

지략으로는 이미 무림의 누구도 반론의 여지가 없는데 심지어 방금 막 환골탈태까지 끝마쳐, 무력으로도 믿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비록 서담 헌터께서 무림 출신은 아니지만···. 현대의 신 무림맹에 그런 걸 따질 이유는 없겠죠. 저는 찬성입니다.”

애초부터 검희의 편이었던 다니엘을 시작으로, 한 명씩 무림인들이 동의를 시작하자 하선영이 환한 미소를 띠며 유서담과 눈을 마주하였다.

사실, 처음부터 신 무림맹을 만드는 건 유서담이 생각해두고 있던 부분이었다.

어찌 되었든 이동준을 사냥한 뒤 금제가 사라진 무림인들을 제어할 방법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 애초부터 거기에 숟가락을 살짝 얹을 생각을 하고는 있었지만, 설마하니 레벨 업의 효과로 환골탈태 비스무리한 것을 겪게 되어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줄이야.

‘그나저나 저 누님, 생각보다 말 잘하잖아?’

평상시에는 너무 푼수 같은 모습만 보여서 검을 좀 잘 다루는 것 빼고는 그냥 동네 누나 정도의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보게 되었다.

“우선 군사는 정해졌군. 그렇다면, 다음으로 신 무림맹의 맹주 자리를 걸고서 ‘결투’를 치러야겠지.”

이야기를 꺼낸 자는 권황이라 불리는 사내였다. 그는 양주먹을 탕탕, 부딪치며 말했다.

“정확히 사흘 뒤, 히말라야 산맥에서 다시 한 번 모이도록 하지!”

그렇게.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무림맹이, 21세기 현대에 다시 한번 재현되었다.

*

구름이 갈라지고, 그 사이로 노을진 햇살이 들어온다. 무림인들이 모두 하산한 뒤, 늦은 저녁. 설중연은 여전히 이곳에 남아서 오두막을 쓰다듬고 있었다. 무슨 미련이라도 남은 것일까. 아니면 따로 할 일이 더 있는 것일까. 설중연이 남아달라고 부탁했기에, 나 또한 오두막에 남아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중연이 손가락을 들어서 후, 입김을 불자 마치 연꽃을 닮은 기운이 흩날렸다.

그것은 천마신교의 모든 것이 담긴 정수이자, 천마 설중연의 모든 것이기도 했다.

마치 우는 것처럼, 그러나 기쁜 듯이 내공을 펼쳐보이는 설중연을 향해 물었다.

“원래 천마신공은 붉은색을 띄는 게 아니었습니까?”

“그랬었지. 그런데 내가 사용하니 분홍색이 되더구나. 나도 이유는 모른다.”

“예쁘네요.”

“누가 사용하는 건데, 당연히 예쁠 수밖에.”

그 자신감 넘치는 말에 나는 헛웃음을 쳤다.

“······여태,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 말하자 설중연은 연꽃을 거둬들이고서 내 눈을 똑똑히 쳐다보았다. 무언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분홍색의 눈동자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고생은 네가 다 하지 않았느냐?”

“아뇨, 뭐···. 연기 잘 하시던데요. 설마 그 제안을 들어주실 줄 몰랐습니다.”

달마, 이동준의 평정심이 흔들리면 레벨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 나는 곧바로 이 방법을 준비했다. 최대한 천마 설중연과 연인인 척을 해서 분노를 유발하는 것. 하지만, 이건 꽤 민감한 문제였다. 많은 이들 앞에서 연인 행세를 하는 게 과연 한때 지존이라 불리웠던 자에게 쉬운 일일까?

‘그러니까 내가 네게 애정을 표현하면 된다, 이 말인가?’

‘맞습니다.’

‘그거라면 내가 알아서 하도록 하지.’

그러나 그런 불안을 비웃기라도 하듯, 설중연은 내 기대보다도 훨씬 더 잘해주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어색하게 그녀의 허리에 손을 두른 것밖에는 없는데, 설중연은 마치 진짜 연인을 대하듯 양뺨을 붙잡고서 입맞춤까지 하지 않았던가? 솔직히 그때는 내가 더 당황해서 태연함을 가장하느라 애썼다.

그런데.

“무슨 소릴 하느냐?”

설중연이 나를 바라보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연기를 한 적이 없다.”

“···네?”

그녀의 입가에는 여전히 장난스러움이 잔뜩 묻어있었으나, 눈동자는 똑바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때, 나는 천마였다. 가히 하늘 아래 지존이라 불려 마땅한 자리에서 군림하였지. 그런 내가 수많은 무림인들이 보는 가운데서, 아무리 원수를 갚겠거니 거짓으로 남의 여인이 되기를 자처하겠느냐?”

“저···.”

“한때, 나는 천마였다.”

설중연은 빙그레 웃으며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내 가슴팍까지밖에 닿지 않는 작은 키였으나, 어째서인지 그녀가 거인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나는 천마임을 포기하고, 한 사람의 여인으로 돌아가기를 택했지. 네 책임이다, 유서담.”

“그··· 말씀은 잘 알겠는데···.”

“내가 아직 어색하느냐?”

툭, 오두막의 벽이 등에 닿았다. 설중연은 내 가슴에 손을 얹더니, 다른 손으로 자신의 옷매무새를 더듬더니 끈 하나를 내게 건네주었다.

“이건······.”

“나는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벽이 사라졌으면 좋겠구나.”

내 손에 들린 이 끈은 다름아닌, 설중연의 옷을 전체적으로 단단히 매듭짓는 허리띠의 리본이었다.

“그걸 당겨라. 그럼, 우리 사이는 더욱 가까워질 테니까.”

그녀는 그리 말한 뒤 눈을 감았고, 나는 망설임 없이 끈을 당겼다.

< 아빠가 알고보니 무림공적(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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