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78화 (78/251)

< 아빠가 알고보니 무림공적(2) >

반야심경을 익히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 금지하고 있는 죄악을 모두 버려야만 했다. 그리고, 이동준은 꽤 성공적으로 대부분의 죄악을 버린 채였다.

···하루 전, 헬로니의 콘서트에서 이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감히,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은 삼류 무사 수준도 되지 않는 잡배 유서담을 향해 분노했다. 자신의 여인을 품에 끌어안고 있는 유서담에게 질투하였다. 지구의 모든 무림인이 자신을 적대하기 시작한다고 해도 본인의 힘이라면 충분히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교만했다.

“···으아아아!!”

[주인공 이동준이 스킬 ‘사자후獅子吼(S)’를 사용합니다.]

분노어린 그의 고함에, 주변의 눈이 깔끔하게 터져나가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히말라야 산맥의 알몸이 드러났다.

지금 당장이라고 유서담의 머리통을 당장이라도 산산조각 박살내고 싶어서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다시는 간악한 꾀를 짤 수 없도록 혀를 잘라내고, 감히 설중연의 입을 마주쳤던 입술을 도려내고, 감히 그녀와 눈빛을 교환했던 눈을 모조리 뽑아버리고, 감히 그녀의 허리에 감았던 더러운 손을 뜯어내어 그 시체를 까마귀 무리에게 던져내리라!

하지만, 무림인들이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쿠르릉, 콰아앙!!

하늘에서 벼락과도 같은 창이 내리꽂힌다. 이 세상 무엇보다도 단단하다고 알려진 망치가 이동준의 머리를 터뜨리기 위해 휘둘러졌으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휘둘러지는 채찍이 이동준의 뼈를 부러뜨리기 위해 뱀처럼 똬리를 틀었다.

육황삼제, 그리고 삼백의 고수들.

그들의 내공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며, 히말라야 산맥을 재해로 물들였다.

산이 무너지고, 하늘에 구멍이 뚫리며, 구름이 내려앉았고, 대지가 솟아올랐다.

혹자는 이 광경을 보고서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동준의 눈에는 그런 광경이 눈에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유서담, 유서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바라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째서인지, 도저히 다가갈 수가 없었다.

“···전부 꺼지란 말이다-!!”

이동준이 고함을 내질러 공기를 터뜨렸지만, 그 어떤 무림인도 사자후에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원래 같았으면 손 한 번 내치는 것만으로도 벌레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갔을 잡배들이었을 터다. 자신은 무림에서 유일하게 신화경의 경지에 접어든 고수였으며, 그 수준의 차이는 명백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그들은 단단했으며 또 빨랐고 날카롭고 묵직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어?’

[죄악의 감정이 다섯 가지 피어올랐습니다.]

[스킬 ‘반야심경般若心經(SSS)’의 효과가 제거됩니다!]

[감정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스킬 ‘달마경達摩經(SSS+)’의 효과가 대폭 하락합니다!]

[스킬 ‘예감적중(SSS)’이 흐려진 눈에 가려집니다.]

[스킬 ‘강철의 심장(S)’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스킬 ‘비상의 날개(S)’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스킬······.]

[주인공 이동준의 레벨 변동 확인: 500(-127)]

착각이었다.

그들이 강해진 게 아니었다.

‘···내 몸이, 무거워진 건가?’

예전에는 느낄 수 있던 것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예전에는 할 수 있던 것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평정심을 잃었기에. 죄악의 감정이 피어올랐기에. 반야심경이 사라져, 더 이상 달마로서의 힘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 아아···!”

그러나.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한들, 바뀌는 건 없었다.

차오르는 질투심을, 분노를, 그 더럽고 질척한 악의를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

이동준의 눈에 실핏줄이 서서히 들어차기 시작했다. 악다문 입술에서는 피가 흘렀고, 흥분한 듯 콧김이 거칠게 새어 나왔다.

-평정심을 유지하거라.

‘···못하겠습니다.’

-어허, 죄악에 사로잡혀 스스로의 그릇을 어지럽히는구나······.

[주인공 이동준에게 위기가 발생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마지막으로 너에게 힘을 보태주겠노라.

‘···당신은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게 아니었습니까?’

-그랬었지. 하지만 여태 조금씩 모아온 티끌만한 힘으로나마, 네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정도는 가능하느니라!

이윽고.

[주인공 보정이 활성화됩니다.]

[주인공 이동준의 레벨 변동 확인: 500(-48)]

······콰아아앙!!

폭발적인 내공이, 이동준을 중심으로 하여 사방으로 비산하였다.

그 힘은 마치 구름을 닮았고, 푸른 산을 닮았으며, 흐르는 맑은 물을 닮은 듯 하였다.

“크윽···!”

“가, 갑자기 무슨 힘이···?”

“커헉!”

무림인들은 이동준의 막강한 내공을 버티지 못하고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예전의 힘을 복구하지는 못했으나, 어느 정도 질투심을 거둬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림인들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방금까지 격노에 휩쓸렸던 눈빛은 어디로 갔는지, 이동준은 착 가라앉은 눈동자로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보았다.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그 차디찬 시선에 무림인들이 몸을 움찔 떨었다.

태산처럼만 느껴지는 압도적인 벽!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거친 내공의 태풍을 보고서도 앞으로 나설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야말로 천하제일(天下第一)! 세상 그 누가 과연 달마지존에 견줄 수 있을까.

결코 포기하지 않고 죽을 각오로 찾아온 무림인들조차 물러서게 만드는 압도적인 무력. 모두의 눈빛에 절망이 맴도는 이 순간.

검희, 하선영은 지금이 ‘그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마 지금이···?’

일전에 콘서트장에서 유서담과 나누었던 떠올린다.

‘하선영 씨. 제 예상대로라면 달마의 힘이 예전만하지 못하고, 상당히 취약해질 겁니다. 아마도 무림인들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겠죠.’

‘무슨 방법을 쓰는진 모르겠지만······. 희소식이네.’

‘하지만.’

유서담은 경고하듯이 말했다.

‘어느 순간, 갑작스레 달마가 힘을 되찾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갑자기 머리가 똑똑해질 수도 있고, 그냥 없던 힘이 생길수도 있어요.’

‘그게 말이 돼? 전투 도중에 깨달음이라도 얻는단 말이야? 그런 건 소설에서만 가능해.’

‘그렇죠. 근데 그게 소설에서는 흔히 쓰이는 클리셰라서 문제란 말이죠.’

‘······?’

그녀는 유서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가 제시해주는 해결책은 귀담아 들었다.

‘가장 먼저, 달마지존이 힘을 되찾으면 그에게 말을 걸어서 제가 지금 하는 말을 똑같이 읊어주세요.’

‘으응? 분노에 눈이 먼 달마에게 과연 대화가 통할까?’

‘최종결투에서 보스랑 한창 싸우다 말고 대화로 분량 떼먹는 것도 무협지 클리셰거든요.’

‘그, 그래······?’

무슨 소린지, 당시에도 지금에도 당췌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다만 중요한 건 하나였다.

유서담의 말대로 달마지존이 갑작스레 원래의 힘을 되찾았으며, 지금이 바로 타이밍이라는 사실.

“달마지존은 들으라!”

산맥 전체를 울리는 듯한 하선영의 고음에 모든 무림인의 시선이 돌아갔다. 달마지존 역시, 내공을 거둬들이더니 하선영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띄웠다.

“지존은 아직도 네 정의가 옳다고 생각하는가! 네 정의로 인해 상처입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무림인들을 보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느냔 말이다!”

그것은 썩, 하선영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대사였으나 검희에게는 굉장히 어울리는 대사였다. 비록 사자후를 배우지는 않았으나 내력을 실어서 보내 쩌렁쩌렁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아무 매력적인 카리스마가 담겨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카리스마따위.

결국 주인공의 존재감에 비하면 단역의 대사 한 줄이었을 뿐이다.

‘아마도, 달마지존은 대화를 통해 자신의 정의를 입증하려고 할 겁니다.’

그것이 바로 주인공이었으니까.

단지, 인정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유서담이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 하나 있었으니, 이동준이 그의 생각보다 훨씬 더 투 머치 토커였다는 사실이었다.

흥분을 천천히 가라앉히며, 이동준이 입을 열었다.

“너희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달마지존은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내 정의로 인해 세상은 틀림없이 선해졌다! 그래, 그 과정에서 너희가 조금 상처입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던 것에 대해는 사과하지. 하지만 나는 내 정의를 거둘 생각이 없으며, 또한 후회하지 않는다. 내 정의는 결국 옳았고, 너희는 그 덕분에 선해진 세상을 살 수 있었지 않느냐?”

“······대체 어디에 선해진 세상이 있단 말인가?”

“모든 범죄자를 처벌하였다.”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정의집행’에 피해를 입은 무림인들을 둘러보며 그는 그렇게 말했다.

“도둑질을 저지른 아이의 눈과 팔을 뽑았다! 다시는 죄를 짓지 못하도록.”

그 말에 어떤 무림인이 눈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살인귀를 낳은 어미를 죽였다! 같은 배에서 두 번째로 나올 아이 또한,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말에 어떤 무림인이 오열하였으며.

“백성을 굶주리게 만드는 탐관오리를 죽였다! 전쟁을 일으킨 장수와 왕을 죽이고, 죄를 저지르고서도 꾸역꾸역 살아가는 죄 많은 자들을 찾아서 모조리 처형하였다! 나는 사람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단지 죄를 지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분할 뿐.”

이동준의 표정이 점점 더 평온해졌다.

“죄는 사람으로부터 비롯되기에, 죄를 저지른 사람이 없다면 곧 죄가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나는 중원 전역을 돌아다니며 ‘죄’를 제거하였고,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깨끗하고 맑은 기운이 흐르게 되었지. 이제 알겠느냐! 이것이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다. 한없이 넓고, 한없이 깨끗한, 그런 세상.”

그런 이유로, 유서담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린 달마지존은 그에게 검을 겨누고서 말을 마무리지으려 했다.

“유서담, 너 또한 처형 대···상······이.”

그러나.

달마지존은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유서담과 설중연이 걸어나온 오두막, 그 낡아빠진 문의 틈 사이로.

익숙하디 익숙한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신혜지?”

“아···빠······.”

그녀는 덜덜 떨리는 눈동자로 이동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으나, 살갗을 에는 추위가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니라 현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때, 그 말의 의미가 이거였구나.’

하루 전, 유서담은 신혜지를 하선영과 함께 보내며 말했다.

‘이제부터 네 아버지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될 거야. 만약, 네가 원치 않으면 우리는 네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아.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그래서 모든 걸 다 알게 된다면. 너는 상처를 많이 입을지도 몰라.’

그는 신혜지에게 똑똑히 경고를 하였다. 그리고 만약 그녀가 원하지 않는다면, 유서담은 다른 방법을 사용해서 달마지존의 주인공 보정을 무너뜨릴 생각이었다. 이 싸움에 전혀 무관한 그녀를 상처입힐 이유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선택했다.

‘아뇨. 저는 제 두 눈으로 모든 걸 봐야겠어요.’

그래서 그녀는 지금 이 자리에 나와있었고.

이동준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나마 물음을 던질 수 있었다.

“방금 한 말이, 정말인가요···?”

그녀는 하선영과 다니엘을 통해 이미 ‘달마지존의 옛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가 저지른 수많은 악행과 정의집행이라는 명분으로 죽어나간 피해자들의 이야기. 그러나, 그녀는 이동준의 딸이었으며 결국 팔은 안쪽으로 굽어지기 마련이었고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자가, 절대로 자신의 아버지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감정표현이 서툴지만 그 누구보다도 다정했으며, 또 자상한 아버지였으니까.

한때, 헌터라는 쫓을 수 없는 이상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에테르 적합률 1%. 최악의 재능을 가진 신혜지는 결코 헌터를 할 수 없었고 꿈을 포기하라는 소리를 일평생 들어왔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친부모가 산 채로 괴수에게 뜯어먹히는 광경을 목도하였으나 주저앉지 않았다. 괴수를 증오하며, 동시에 약한 자를 구하겠다는 신념으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하였다.

그때, 이동준을 만났다.

피는 이어지지 않았으나 자신의 무리한 요구에도 결국 아버지가 되어준 남자.

그는 신혜지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초능력이 아닌 신비로운 이능력, 무공.

‘이 힘이 있으면, 더 이상 눈앞에서 약한 자들이 쓰러져가는 것을 무력하게 손 놓고 지켜보지 않아도 돼.’

피땀 흘리는 수련을 하였다. 어설픈 정의감 따위에 사로잡혀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녀도 알고있다. 이 세상 모두를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래도, 눈앞의 어린 아이와 노인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그런데.

이 힘이 사실은.

약자를 구하기 위해서 쓰였던 것이 아니라, 약자를 죽이가 위해 사용되었던 것이라면.

“아빠, 난 그래도 마지막까지 아빠를 믿었어요. 그런데······.”

“진정하거라! 전부 설명할 테니.”

“싫어요. 저, 저는 이제······.”

신혜지가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나자 이동준이 크게 당황하여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손짓에게조차 겁을 지레 먹은 신혜지는 저도 모르게 유서담의 뒤로 가서 몸을 숨기고 말았다.

그에.

이동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째서?’

왜일까.

주변을 둘러본다.

모든 세상 사람들, 모든 무림인들, 육황삼제와 검희.

거기에, 가장 소중해 마지않는 사랑스러운 설중연과 하나뿐인 딸 신혜지마저도.

‘어째서, 모두 유서담의 곁에 서있는 거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반평생을 정의를 위해 살았다. 그런데도, 눈앞의 이익 하나만을 보고서 행동하는 잡배 따위에게 어째서 모이느냔 말이다.

“아니야.”

하다못해, 세상 모두가 부정하더라도.

“신혜지, 나를, 날 믿거라. 너는 내 정의를 이해하지? 너만큼은, 너는 나를 가장 잘··· 알고있으니까. 그렇···지···?”

“아빠······.”

신혜지의 입술이 벌어지자, 이동준은 마지막 희망이라도 부여잡기 위해 그녀를 바라보았으나.

“그런 건 정의가 아니에요···. 신념을 가졌을 뿐인, 괴물과 다를게 뭐란 말이에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존재에게, 삶의 이유를 부정당했다.

[스킬 ‘반야심경般若心經(SSS)’이 부정不淨하여 완전히 사라집니다.]

[주인공 이동준의 레벨 변동 확인: 500(-150)]

그의 힘이 약해진 것을 눈치 챈 고수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으나 이동준은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저항을 할 수 없었다.

< 아빠가 알고보니 무림공적(2)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