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가 알고보니 무림공적(1) >
헬로니의 콘서트 이후로 만 하루가 흐른 뒤.
눈이 세상을 도화지 삼아 점점이 색칠한 것처럼 온통 새하얀 히말라야 산맥, 그곳에 이동준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인간이 버틸 수 없는 극한의 추위에 더불어 거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은 괴수가 득시글한 이 장소와 걸맞지 않게도 이동준은 검은색의 무복 하나만을 걸친 채였다.
물론, 지존의 무복인 만큼 결코 평범하지는 않다. 용의 비늘로 만들었다 하여 교룡복(蛟龍服)이라 불리는 이것은 극한의 추위는 물론이요 더위조차 잊게 만들어 주었는데, 무복이 없다고 하여도 신화경에 이른 고수가 고작 이 정도에 추위를 탈까.
“······.”
그는 히말라야 산맥의 초입을 무덤덤한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오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온갖 무림 출신 잡배들이 몰려든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무림인들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구인들이 관심을 두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구의 탐색 기술은 무림의 것보다도 월등히 뛰어났고, 그들이 마음먹고 누군가를 찾고자 하면 제아무리 무림인이라도 완전히 숨어들기란 상당히 힘들었다.
심지어 이동준은 한국에서 히말라야 산맥까지 이동해야 하지 않았는가?
별다른 전투 없이, 카메라에 노출되지 않은 채 이곳까지 올 수 있던 덕은 오로지 이동준이 신화경의 경지에 접어든 고수였던 덕분이었다.
자박, 눈보라 몰아치는 산을 밟으며 이동준은 회상에 잠겼다.
그건 꽤 과거의 이야기였다.
이동준이 처음 달마의 신물(神物)을 손에 넣고, 달마의 뜻을 이어받아 중원 무림에 정의를 설파하고 다녔을 적의 이야기.
‘썩어빠진 세상이로다. 의와 협을 잃은 이들이 전란 속에서 천하를 쟁패하여 의협을 논하고 있으니 오오, 이것이 정녕 강호의 도리인가! 휘몰아치는 피바람에 민초는 휩쓸리고 짓밟혀 설 자리를 잃으매 과연 그 누가 세상에 진정한 의협을 펼쳐보일 것인가!’
한때, 정의감에 사로잡혀 살던 시절이 있었다.
달마에게서 전수받은 그의 무공은 막강했으니 탐관오리의 부패로 인해 혼란스러운 중원을 깨끗히 정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고, 곧 이동준은 분연히 검 한 자루 들고 일어나 무림을 휩쓸며 정의를 행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과했던 게 문제였다.
처음에는 달마의 뜻을 따라 살생을 금하였던 이동준이었으나, 자신이 살려 보냈던 이들이 더욱 강한 무공과 원망으로 무장하여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때부터 분란의 씨앗이 되는 이들을 모조리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달마가 충고하였다.
-살생을 금하여라.
듣지 않았다.
-죽은 자는 피를 흘리지 않는데, 어찌 저들은 죽어서도 피눈물을 흘리느냐.
듣지 않았다.
-마음은 너를 얽어매는 굴레이며, 너 자신의 가장 큰 적이다. 살심을 버리거라.
듣지 않았다.
이동준은 끊임없이 살생에 살생을 거듭하였다. 악을 모조리 죽인다면, 곧 무림은 선해질 것이라는 믿음 하에 조금이라도 악한 일을 저지른 자를 죽였으며 악해질 기미가 보이는 자를 죽였다.
그렇게 만여 명의 목숨을 끊어냈을 때.
이동준의 마음 한구석에 공허함이 들어찼다.
-그래서, 세상은 선해졌느냐.
‘······선을 생각하면 선업(先業)이요, 악을 생각하면 악업(惡業)입니다.’
-어리석은 이는 번뇌를 끊고 열반을 얻으려 하지만, 번뇌를 끊으려는 집착 때문에 열반을 얻지 못하느니라. 아이야, 너는 정의에 집착하여, 더 이상 정의를 바라볼 수 없게 되었구나.
‘번뇌는 실체가 아닙니다. 저는 더 이상 정의의 실체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저 자신이 곧 정의이기에.’
슬하에 수십의 식솔을 둔 가문의 가장을 죽였다.
악인의 가족따위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우는 어린아이를 죽였다. 늙은 아버지와 함께 도둑질을 했기 때문이다.
재야의 고수를 죽였다.
불의를 보고서도 외면하였기 때문이다.
아이를 밴 산모를 죽였다.
그의 남편이 살인귀였고, 그의 죄를 알면서도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명예롭게 죽었으며, 어떤 이는 비굴하게 죽었다.
죽음이란 이제 그에게 더 이상 새롭게 다가오지 못했다.
그저 죽이고, 또 죽이고. 모조리 죽인다.
그렇게, 세상의 악을 거의 멸절했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를 만났다.
‘······슬프구나. 내 꿈이 이리도 허망했다는 사실이.’
그녀는 설중연이었으며, 또한 천마였다.
천마신교라는 악의 집단을 이끄는 종교의 수장이었으며, 곧 무림을 뒤덮을지도 모를 악의 근원이었다.
설중연은 죽음 앞에서 초연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썩 명예롭게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던 모양이다.
‘이렇게 죽을 줄 알았다면, 차라리 그날 눈속에 파묻혀 죽는 것이 더 나을 뻔했구나.’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져내려 먼지가 되었음에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었던 까닭이다.
이제, 그녀를 죽이면 생업이 완료된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은 처단되었으며, 그 뜻은 곧 선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런데.
어째서인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설중연의 분홍색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도저히 검을 들 수가 없었다.
설중연은 지금껏 자신이 만났던 그 누구보다도 강했으며, 지혜로웠다. 또한, 마치 눈속에서 피어난 연꽃과도 같은 설중연의 눈동자는··· 달마의 반야심경조차 뒤흔들어놓을 정도로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첫눈에 반했다.
그런 말은 바로 이때 쓰는 말이리라.
-오오, 애석하도다.
달마지존은 망설였다.
모든 악을 멸절하기 위해 살아왔던 달마지존이 마지막 순간에 만난 악인에게 반해버리다니. 천하가 비웃고 개탄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한때 그는 그 무엇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달마로서 다시 태어난 그의 심장은 금강석보다도 단단하였고 더 이상 뛰지 않아 차갑게 식어버렸으니까.
그러나······.
두근!
설중연의 눈동자로 인해, 달마의 심장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여태 왜 몰랐을까.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죽어나갔던 그 무수한 이들의 마음을.
여태 왜 몰랐을까.
사랑이라는 것이 이토록이나 괴롭고 아픈 것이라는 사실을.
-그것이 네 정의더냐?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네가 그녀를 살리는 순간, 여태 네가 정의를 부르짖으며 죽여온 이들의 영혼을 더럽히게 된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죽일 수 없습니다.’
-정의를 위해 네 손에 죽어간 이들의 앞에서, 다시는 똑똑히 고개를 들 수 없을 것이야!
그러나, 이미 그는 결심을 끝마친 뒤였다.
‘죽은 자들은 피와 영혼이 없는데, 어찌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야 합니까.’
그래서 그는 설중연을 살리기로 결정하였다. 물론, 순탄치는 않았다.
악은 세상을 순환할 뿐 절대로 세상을 오염시키지 않는다. 중원 무림은 또다시 악으로 들어차게 되었으며, 그들은 천마와 달마가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원했다.
‘지구로 돌아가자.’
그런 이유로 달마는 지구인들에게 금제를 걸고서 귀환을 택하였으나, 설중연이 거부하였다.
‘무너진 꿈의 무덤에서 나를 억지로 파헤쳐, 이제는 나의 마지막 남은 명예마저도 모욕하려고 드는구나.’
‘아직 살아있으니, 그 목숨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와 함께 지구로 돌아가자.’
‘아직 내 숨은 붙어있지만, 영혼은 갈기갈기 찢겨나간지 오래인데 과연 이를 살아있다고 표현할 수 있겠느냐!’
설중연은 자꾸만 스스로의 목숨을 끊으려 하였고, 결국 그녀의 내공을 폐한 뒤 자결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하고서 히말라야 산맥에 가둬놓는 수밖에 없었다.
원망으로 가득찬 그녀의 눈빛을 볼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파왔던가. 그녀를 위해서라면 이 세상 전부를 쥐어줄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뿐이다. 내 눈앞에서 네가 스스로 숨통을 끊는 것.’
절망의 파도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지구로 돌아온 이후 4년이라는 시간 내내 천마는 점점 더 피폐해져만 갔다.
그 기간 동안 아무런 요구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죽여달라고 요구했으며, 때로는 꺼내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그것들 역시 모두 들어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죽이는 건 절대로 안 될 뿐더러,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천마가 반드시 자신에게 맹세를 해야만 했다.
‘네가 내 여자가 된다면, 꺼내주겠다.’
쉽지 않은 길이었다.
냉랭하기만 할 뿐인 설중연의 태도는 변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석 달 전부터 조금씩 그녀가 변화하였다.
‘오늘은 새빨간 체리가 먹고 싶구나.’
‘말굽새가 지구에도 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구나. 다시 한번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칠각수의 뿔을 원한다.’
‘예쁜 무복을 갖고 싶구나. 누가 입어도 어울릴만한, 남성용 무복 말이다.’
무엇이 그녀를 변하게 한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점차 설중연에게서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살아생전 처음 보는 미소였고, 또한 세상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다.
행복했다.
그녀가 미소를 짓는다는 사실이.
그래서 이동준은 그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위해 뛰고 또 뛰었다. 정체를 들통날 수도 있다는 리스크까지 감수해가며, 그는 어둠 속에서 홍엽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덕분에 세간에 그의 능력이 공개되고 말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정체는 들통나지 않았다.
‘······유서담, 그놈만 아니었다면.’
행복한 나날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활짝 열린 설중연의 마음으로 파고들어, 입양딸 신혜지와 함께 평범하지만 행복한 미래를 그려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것이 망가지고 말았다.
‘그래도 괜찮다.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면.’
세상 모두가 자신을 외면해도,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돌아봐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한 게 아닐까.
그리 생각하며 천마의 오두막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쿠궁!!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소음에 이동준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직후.
사방에서 ‘금제’가 진동하더니.
···눈이 그쳤다.
“뭐···?”
히말라야 산맥에는 365일 내내 눈이 내린다. 몇십 년 전, 던전 동화 사태로 인해 현실로 넘어온 SSS랭크의 대괴수 ‘빙백설조(氷白雪鳥)’ 때문이었다. 이동준의 힘이라면 충분히 죽여서 산맥의 기후를 원래대로 돌릴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빙백설조의 존재는 곧 천마의 감옥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쿠릉, 쿠르릉······.
천둥번개를 머금은 먹구름이 몰려온다. 그런데도, 눈은 내리지 않았다.
‘설마, 빙백설조가 죽었다는 말인가?’
그런 의문을 품은 순간, 사방에서 느껴지는 내공의 압력에 이동준이 표정을 찌푸렸다.
수십, 아니 수백 명의 무림인이 이곳에 모여있던 것이다!
‘······어떻게?’
결코 그 어떤 무림인도 이동준을 추격할 수는 없다. 현대의 과학으로도 그를 잡을 수는 없단 말이다.
‘대체, 무슨······!’
황급히 검을 꺼내들자, 사방에서 수백 명의 인영(人影)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나하나 전부 아는 얼굴들이었다. 그들에게 금제를 걸었던 것이 자신이었으므로.
여전히 금제가 진동한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이동준은 이를 악물었다.
“달마지존. 무림맹의 만장일치로 그대를 무림공적으로 공표하였으니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시오.”
정면에서 모습을 드러내어 그 말을 꺼낸 자는 검희, 하선영이었다. 그녀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이동준을 노려보았다. 이어, 무림인들이 하나하나 일갈하였다.
“달마! 도둑질을 하였다고 일곱의 어린 내 아들의 양팔을 잘라 쓰레기더미에 던져 죽인 것을 기억하느냐! 나 사천당문의 당백수가 원수를 갚기 위해 이 자리에 찾아왔다!”
“지존이여, 나의 가문을 멸문한 뒤 내 식솔의 머리를 잘라 중원 한복판에 걸어두어 두고두고 모욕한 일을 기억하는가. 그들이 저지른 죄가 그토록이나 잔인한 형벌을 받을 정도였는가? 그대에게 꼭 묻고 싶도다.”
“달마 이 개같은 자식! 나는 무공 봉인하고 힘들게 공사판에서 일하고 있는데, 누군 아주 영웅놀이를 하고 있더구나! 하늘이 보고 땅이 보는데, 부끄럽지도 않더냐!”
“달마지존!”
“달마!”
“달마여!”
“지존은 들으라!”
하나씩, 하나씩.
달마를 향한 원한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끝이 없을 정도였고, 수백 명에 달하는 무림인의 원망을 정면에서 받을 수밖에 없는 달마의 표정 또한 점차 굳어갔다.
‘결국 이렇게 되는가.’
모두가 자신을 증오하는 원망의 파도 속에서, 이동준은 어떠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쓸쓸함이었다.
정의를 행함에 평생을 바쳤건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질타 뿐이라니.
‘허망하도다.’
무엇을 위해 정의를 지켜왔는가. 무엇을 위해 싸워왔는가.
어찌하여 저들은 나의 정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눈앞의 화를 이기지 못해 분노를 터뜨리는가! 눈을 조금 더 크게 뜨고, 넓은 곳으로 초점을 둔다면 더욱 선하고 깨끗해진 세상을 두 눈에 담을 수 있을 터인데!
그래도.
괜찮다.
‘나는 나를 이해해주는 여인 하나면 충분하다.’
이동준은, 그렇게.
오두막을 향해 시선을 두었고.
···끼이익!
문이 열리며, 설중연이 찬란한 백금발을 휘날리며 나타났다.
천마, 설중연. 하나뿐인 자신의 여인.
그녀는 사박, 사박 우아한 걸음걸이로 눈을 밟으며 중턱으로 걸어나왔다. 특이하게도 그녀는 여태 단 한 번도 그 누구에게 보여준 적 없던 깔끔하고 단정한 사복을 입은 채였는데, 은색빛깔에 분홍빛이 더해져 천마지존보다는 설중연이라는 이름과 더욱 어울리는 복장이었다.
중턱까지 걸어나온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동준과 눈을 마주하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설중연?”
그녀의 눈빛이 한없이 싸늘했던 것이다.
마치 주변의 다름 무림인들과 똑같은 그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중연은 자신을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희미하게 미소를 띠며 뒤돌아 오두막을 향해 손짓하였다.
그러자, 그 안에서.
약간은 풀어진 복장의 유서담이 중국풍의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무복을 입은 채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에 이동준은 충격을 받은 듯 눈을 부르르 떨었다.
유서담이 입은 저 무복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선물했던 게 아니던가?
하지만 더 충격적인 건 이후에 벌어진 그들의 행동이었다.
사박, 눈을 밟으며 설중연의 곁에 도달한 유서담이 조심스러운 손동작으로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는 게 아니던가?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익숙한 듯이.
“무···슨······?”
두근.
심장이 뛴다.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두근, 두근.
-아야, 진정하거라!
[평정심이 과하게 흐트러졌습니다.]
[스킬 ‘반야심경般若心經(SSS)’의 효과가 하락합니다!]
[감정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스킬 ‘달마경達摩經(SSS+)’의 효과가 하락합니다!]
-평정심을 유지하란 말이다!
두근두근두근두근.
-그렇지 않으면, 달마경은······!
어떻게든 머릿속의 달마가 이동준을 진정시키려 하였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천마의 연분홍빛 입술이 열렸다.
“미안하구나, 달마야.”
“···뭐가, 미안하단 말이지?”
설중연은 대답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듯, 양손을 조심스레 뻗어 유서담의 양뺨을 살포시 붙잡고서는.
여태 단 한 번도.
자신에게는 보여준 적 없는.
행복에 가득찬 표정으로.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하아··· 정말 좋구나.”
그러고선 입술을 떼어내 뜨거운 한숨을 내쉬고선, 유서담의 목에 양팔을 휘감은 채 서서히 고개만을 돌려.
마치 연꽃을 닮은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하였다.
“나는 이 사내를 사랑하여,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조하였다.”
뚝.
무언가가 끊어졌다.
< 아빠가 알고보니 무림공적(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