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74화 (74/251)

< 저는 매일 악몽을 꾸고는 해요(1) >

“······당신들이, ‘무림인’이라는 말씀이신가요?”

같은 시각.

신혜지는 콘서트장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선영과 다니엘 그리고 이두학을 만나고 있었다. 길드 마스터인 유서담이 콘서트장이 위험하다며 자리를 피하라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길드원 하선영을 따라왔건만, 이상한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그렇습니다. 혜지 양, 우리 무림인은 모두 금제가 걸려있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다니엘이 묻자 혜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아. 네. 그···. 무공을 쓰지 말자는 불문율 아닌가요?”

“그런 금제가 아닙니다.”

DR의 금제에 대해서는 일반인들은 제대로 모른다. 경력많은 헌터들이나, 무림인과 간혹 접촉하여 알고있을 뿐.

다니엘과 이두학은 와이셔츠의 단추 몇 개를 풀어서 자신의 가슴팍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붉은색의 문신이 새겨져있었다.

“우리 모든 무림인의 무공을 강제로 억제하는 ‘금제’요. 만약, 무공을 사용했다가는 달마지존에게 그 즉시 살해당하지.”

“···네? 다, 달마요? 설마 저희 아빠를 얘기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혜지 양. DR에게 금제를 걸고 관리하는 자의 정체는 바로 달마지존, 당신의 아버지입니다.”

잠시 고민하던 신혜지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 좋은거 아니에요? 무림인들이 만약 사고라도 쳤다가는······.”

“······무림인이, 반드시 사고를 치란 법이 있습니까? 혜지 양. 그들은 초능력자와 별 다를 것도 없습니다. 아니 애초에 무협의 기초는 정신을 가다듬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고있을 테지요. 오히려 어지간한 초능력자보다 자신을 절제하는 능력이 뛰어나단 말입니다.”

“그럼···어째서 아빠는 금제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 남자는······. 지구에는 무공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네?”

그렇다. 온통 이해할 수 없는 말 투성이었다.

“그럼 애초에 무공을 쓰지 않을 사람만 지구로 오면······?”

“그건 불가능합니다. 달마가 지구로의 통로를 여는 순간, 모든 지구인이 강제로 귀환되기 때문이지요.”

여전히 무공을 수련하고 싶은 자, 결투를 좋아하는 자, 무공이 삶의 전부인 자.

그리고 무협의 세계에 자신의 삶이 남아있는 자. 가족이 있는 자. 자식이 있고 스승이 있으며 자신의 전부가 그곳에 남아있는 모든 이들조차.

전부 강제로 금제에 걸린 채, 지구로 귀환되었다.

“······솔직히, 지구에서 일어났던 몇몇 무림인의 폭주 사건은 모두 ‘금제’ 때문이라 생각되오. 그게 아니었다면 얌전히 지냈을 이들이었지.”

신혜지가 혼란스러운 눈빛을 하자, 이두학이 이어서 말했다.

“그래. 사실 나는 지구로 돌아오고 싶었소. 그래서 금제든 뭐든 기꺼이 받아들였지.”

“그···러신가요? 그럼, 다행······.”

“다행이라고 생각했소. 나 또한 무림인으로서, 무공이 지구에 잘못 퍼졌다가는 혹시 무슨 일이라도 발생할까 두려웠기에. ···그런데, 정작 금제를 걸었던 달마지존이 금제를 어기고서 자신의 딸에게 무공을 전수하였군. 심지어 본인 또한 홍엽사라는 가명을 쓰고서 헌터로 활동하였고.”

금제를 건 자가 모범을 보였다면, 결국 무림인들은 평생을 침묵하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달마지존은 자신이 내걸었던 금제를 모두 어겼다.

인연을 맺지 말라.

무공을 전수하지 말라.

무공을 사용하지 말라.

“아······.”

신혜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 때문이다.

아버지가 무림인들에게 배척을 받기 시작한 건 모두 자신 때문이었다.

‘내가 찾아가지만 않았어도.’

아빠가 되어달라고 부탁하지만 않았더라면. 초능력이 없음에도 헌터가 되려고 억지로 애쓰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터였다.

신혜지가 자신을 자책하며 축 늘어지자, 하선영이 마침내 입술을 떼었다.

“그럼······. 어떻게 되나요?”

“지금부터 우리는 모든 무림인들이 모이는 곳으로 향할 거야.”

검희를 통하여 세상의 모든 무림인들에게 석 달간 꾸준히 전해지고 있던 단 하나의 소식.

무림공적(武林公敵)을 처단하고 싶은 자, 히말라야 산맥으로 향하라.

그간은 증거가 부족하여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으나······. 이제는 세상 모든 무림인이 이 소식을 듣고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너에게는 금제와 관련된 건이 아닌, 따로 해줄 이야기가 있어. 이건 ‘달마지존’이라는 개인에 대한 이야기야.”

“···네?”

이건 유서담의 부탁이었다. 신혜지는 달마지존의 단 한 명 뿐인 딸이었으며, 그의 아군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으니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건 썩 하선영의 마음에 들었다. ‘협’이 있는 행동이었으니까.

“지금부터 무협의 세계에서 벌어진 일. 달마지존이, 우리에게 어떤 짓을 벌였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줄게. ···아마도 꽤 긴 이야기가 될 거고, 꽤 먼 길을 가야 할 거야.”

달마지존이 신혜지에게만은 들키고 싶지 않아서, 꽁꽁 감춰왔던 이야기.

무림을 피로 물들였던 한 사내의 이야기가 지금 하선영의 입에서 시작되었다.

*

이제, 세상 모든 사람들이 홍엽사가 이동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와중인데, ‘네가 과연 나를 공격할 수 있을까?’라며 여유로운 듯 웃고있는 저 얼굴이 가증스러웠다. 그저 손가락 하나만 까딱여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벌레같은 놈.

“······!”

일반인은 느낄 수 없는, 폭발적인 기운이 사방에서 피어올랐다. 거리는 몇십 키로미터로 굉장히 멀지만 이동준은 알 수 있었다.

지구의 무림인들이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리도 빨리?’

이동준은 몰랐다.

지난 석 달간, 유서담이 검희를 통해 서른한 명의 고수를 만나서 그들에게 ‘홍엽사’에 대한 정보를 흘렸다는 사실을. 무림인들은 반신반의할 뿐, 믿지 않았으나 이렇게 증거가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었다면? 결국 참아왔던 울분이 폭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아무리 달마지존이라도 모든 무림인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버겁다. 아니, 상대할 수는 있지만 자리가 좋지 않다.

‘···혜지를 데리고 잠깐 숨어야겠어.’

그리 생각한 이동준은 무대에서 신혜지의 기운을 찾기 위해 내공을 흘렸으나.

‘뭐지?’

없었다.

신혜지의 기운이 무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재빠르게 내공을 흩뿌려 이 근방 몇백 미터의 거리를 모두 감지하였지만.

‘설마······.’

이동준은 재차 유서담을 노려보았다.

그는 처음부터 이 상황을 계획하고 있었다. 신혜지를 자신의 길드에 넣어서, 자신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도록. 이동준 또한 바보는 아닌지라 그를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았다. 단지 이 정도로 배짱을 부릴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이를 으드득, 갈았으나 때는 상당히 늦은 채였다.

쿠르르르릉!!

먹구름이 몰려온다. 마치 천둥을 부르는 듯한 저것은 필히 뇌력부황(雷力斧皇)의 무공일 터. 심지어 거친 폭풍과 타오르는 태양과도 같은 기운이 거칠게 피어오르는 꼴을 보아하니, 육황삼제를 비롯한 고수들이 자신의 기운을 아낌없이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설마, 이곳으로 오는 건가?’

그것까진 알 수 없다. 하지만, 저정도로 분노했다면 반드시 한국으로 찾아오지 않겠는가? 이동준은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전부 상대하자면 상대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무림에서 막무가내로 행동하던 시절과는 달리 그는 이제 잃을 것이 생겼다.

신혜지.

여기서 무림인들과 혈투를 벌였다가는 사회적으로 딸에게 반드시 피해가 가게 된다.

‘참아야 한다.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한다.’

그러나.

‘······유서담만큼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주변 지형에 피해를 입히더라도 유서담만큼은 잡아야 했다. 다행인지 멍청한 건지 유서담은 이 자리를 피하지 않은 채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감히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죽일 수 있겠냐는 듯.

‘멍청한 놈!’

또다시 자신의 감각이 경고한다. 유서담은 죽일 수 없다며. 그러나 그 감각은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주인공 이동준에게 위기가 발생합니다.]

[감정이 심하게 흔들려, 스킬 ‘달마경達摩經(SSS+)’의 효과가 다운됩니다.]

[주인공 이동준의 스킬 ‘예감적중(SSS)’이 흐려진 눈에 가려집니다.]

[주인공 이동준의 레벨 변동 확인: 500(-18)]

정말 별 것도 아닌 변화였다.

500레벨의 이동준이 고작 18레벨 다운됐다고 유서담이 이동준을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예상대로였네.’

그것은 유서담에게 크나큰 힌트가 되었으며.

쐐액!

달마가 수도(手刀)를 휘둘러 날리는 순간.

[긴급 차원 탈출 시퀀스가 가동됩니다.]

[시간 배율이 5배가 넘는 가장 가까운 차원으로 긴급 대피하며, 이 과정에서 수명을 일부 소모합니다.]

유서담의 신형(身形)이 감쪽같이 사라지며, 이동준의 손목은 허공을 갈랐다.

찰나의 시간이 흐른 뒤.

상황을 깨달은 이동준의 입에서 사자후가 터져나왔다.

“으아아아아아아!!”

그것은 세청련의 무공보다도, 헬로니의 음파 능력보다도 막강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음공이었다.

-아야, 진정하거라!

“후우, 후우.”

-분노에 휩싸여서는 아니 된다.

이내, 정신을 가다듬는다.

침착하게 생각해보자. 지금도 시시각각 무림인들이 쳐들어오고 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모조리 처리해두는 게 좋겠어.’

-좋지 못한 판단이다.

‘아니. 이제는 이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아이야······.

그러나 장소가 좋지 않다. 다수가 덤벼도 문제는 없다지만, 그들을 모두 제거한 뒤 이동준은 다시 사회로 복귀해야만 했으니까.

지구상에 무림인이 없다면 자신의 앞에 걸림돌이 될만한 장애물은 없다.

유서담 또한, 어떻게 자리를 피했는지는 몰라도 감히 자신의 눈을 피해서 평생을 도망쳐 다닐 수는 없을 터이다.

우선은 이 자리를 피한 뒤, 한 명씩 무림인들을 찾아 돌아다니며 모조리 목을 벤다.

그것이 이동준의 계획.

그는 그리 생각하며 잠시 몸을 숨길 곳을 생각했다.

‘설중연······.’

떠오르는 장소는 단 한 군데밖에 없었다.

*

“···허억!”

그림에서 손을 떼어내며, 예카테리나는 미술관의 바닥에 주저앉았다.

“같은 미래가, 두번이나 보이다니······.”

그림 속에는 팝의 여신 헬로니의 콘서트장이 그려져 있었다. 며칠 전, 그녀가 꿨던 꿈속에서 헬로니의 콘서트는 어떠한 재앙으로 인해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예언을 하여 그 사실을 세상에 공표한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을 터.

“에이번······!”

예언이 재차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뿐.

이 예언이 세상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이번. 그녀가 어떤 이유에선지 예언을 공개하지 않은 것.

‘하지만··· 재앙은 멈췄어.’

정말 다행스럽게도, 예카테리나가 본 미래에서 재앙은 시작되지 않았다.

‘유서담.’

그 남자가 또다시 나타나서 재앙을 바꿔놓았던 것.

어떻게? 라는 의문은 중요치 않다. 다만 에이번의 판단에 의해 또다시 재앙이 세상을 들이닥칠 뻔했다는 게 중요할 뿐.

예전부터 이랬다. 끔찍한 재앙이 발생할 거라며, 몇 번이나 경고를 해도 에이번은 그중에서 몇몇개의 예언만을 가려서 세상에 공개한다. 언젠가 한번은 이유를 묻자, 이런 대답이 들려왔다.

‘내게 이득이 되거든.’

그곳에 경쟁사의 본사가 있다느니, 요즘들어 반발을 하는 국가가 있다느나, 마음에 들지 않는 길드가 있다느니.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가며 에이번은 예언을 제한하고 있던 것이다.

‘···이젠 싫어.’

예언을 보면 뭘 하는가. 그것을 막을 힘이 자신에게는 없는 것을.

차라리, 미래를 보지 못해도 좋으니까 자신에게 힘이 주어진다면.

모리안 길드의 다른 마법사들처럼 마법을 사용할 수만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통, 통···!

어딘가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규칙적이거나, 불규칙적인 소리.

흠칫, 손끝을 떨며 고개를 들어올린 예카테리나는 그제야 자신이 예언을 너무 오래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안 돼. 그 괴물이 다가오고 있어···!’

미술관.

이곳은 예카테리나가 꿈이었으며, 오롯이 자신만의 세계였다.

그러나 이곳에는 자신을 제외한 무언가가 살고있었다.

천천히 복도의 끝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시선이 마주친다.

3m는 넘을 것 같은 덩치에 불에 탄 듯 머리카락은 없었으며, 피부는 새카맸다. 물에 빠졌다가 막 나온 것처럼 뚝뚝 덜어지는 물방울, 거기에 투명한 눈동자까지.

쩌억, 그것이 입술을 벌리자 피부가 갈라지는 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웠다.

“아, 아···!”

가깝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저 괴물이 가까이 다가온 채였다.

킥, 키릭! 괴물은 마치 웃는 것처럼 눈을 반달 모양으로 휘더니, 갑작스레 이곳을 향해 단 하나뿐인 거대한 발바닥을 이용하여 전력질주하기 시작하였다.

통통통!

통통통통!!

‘꿈에서 깨야 돼!’

양팔을 들어올려 머리를 감싸쥐었으나, 어디 꿈에서 깨어난다는 게 쉽게 되는 일인가. 심장이 거칠게 요동쳤고, 손과 발이 벌벌 떨린다.

통통통통!!

통통통통!!

‘싫어! 안돼! 꿈에서 깨! 제발!’

그러나.

그녀는 꿈에서 깰 수 없었고.

괴물이 마침내 지척까지 다다른 순간.

끼이익, ···쾅!

갑작스레 복도의 저편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와, 예카테리나의 바로 앞에 있던 문을 닫으며 주저앉았다.

“와, 씨. 존나 놀랐네. 뭐야 저건?”

“······어?”

예카테리나는 그 누군가를 알고 있었다.

검은색 머리칼에, 흰색의 눈동자를 가진 사내.

“유···서담······?”

“응?”

방금 전 예언 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남자가, 지금 자신의 꿈속에 들어와있었다.

< 저는 매일 악몽을 꾸고는 해요(1)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