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ello, Hellony(2) >
[팝의 여신 ‘헬로니’의 내한공연 2051. Mind Killing을 라이브로!]
[온유닷, 헬로니 내한공연 티켓 판매]
[‘헬로니’ 내한공연··· “가슴이 뛰는 무대를 기대해주세요”]
헬로니와 관련된 온갖 뉴스가 한국의 인터넷을 도배하였다. 그만큼 팝의 여신의 내한공연이 얼마나 뜨거운 열기를 몰고 다니는지 알 수 있었다.
“성공했네.”
“아는 사람이었나봐?”
“···뭐. 그랬었죠.”
서담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하선영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Hello! Hellony!’라는 문구가 적힌 연보라색 티셔츠에다가 연보라색 야광봉, 헬로니 머리띠에 헬로니 가방까지 온갖 헬로니의 아이템으로 전신을 무장한 채였다.
사실 저 복장이 특별할 것도 없기는 했다. 콘서트장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대부분의 인파가 하선영과 비슷한 복장을 한 채였으니까. 오히려 와이셔츠에 정장바지를 입은 채 간단한 경무장을 한 서담이 더 특이했다.
“왜 따라오셨어요?”
“헬로니 공연 보러 간다는데 내가 빠질 수는 없지!”
“친구랑 보러 가시면 되잖아요. 저는 일하러 왔는데요.”
“나 친구 없는데.”
“······.”
뭔가 말실수를 한 걸까, 싶은 마음에 서담은 그녀의 옆모습을 슬쩍 쳐다보았으나 하선영은 여전히 해맑은 표정으로 야광봉을 흔들고 있었다. 완전히 분위기에 심취한 모습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직 공연 시작까지 6시간은 더 넘게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모인 팬들이 앞에서 현수막을 치고 뭔가를 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은 헬로니와 관련된 아이템을 나눠주는 것이었다. 하선영의 온몸을 치장하고 있는 헬로니 상품들 역시 이곳에서 즉석으로 산 것이다.
“너는 안 사? 야광봉이 4,900원밖에 안 해! 원래 6천원 짜리야.”
“사양합니다.”
“재미없긴. 너도 나처럼 헬로헬로니인 줄 알았는데.”
“헬로헬로니? 그건 또 뭡니까?”
그러자 하선영은 무슨 원시인을 보는 듯 경악한 표정으로 유서담을 쳐다보았다.
“그것도 몰라? 헬로니 공식 팬카페잖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팬덤이라고? 우리나라 가입자 수만 천만 명이 넘어간단 말이야.”
“와.”
그건 조금 놀라웠기에 유서담도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후로도 하선영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헬로니 관련 상품을 구입해댔고, 어느덧 양손이 쇼핑백으로 두툼해졌다. 그녀는 행복한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싱글벙글 웃다가 옆에서 멀뚱멀뚱 걷고있는 유서담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공연 보러 온 게 아니라면 무슨 일로 온 거야?”
“헬로니랑 개인적으로 만나서 처리할 게 있거든요.”
“아 맞나. 아는 사이랬나? 완전 부러워! 나 헬로니 완전 팬인데 왜 아는 사이라고 말 안 해줬어?”
“별로 좋은 사이는 아니라서요.”
16년 전의 동기 여덟 명, 사망한 한 명을 제외한 일곱명 중에서 그나마 서담과 좋은 사이를 유지하는 건 테일러 나인밖에 없다. 류진수는···. 여전히 떨떠름하긴 해도 이젠 비즈니스 관계가 되었으니 좋은 사이라고 해도 좋을까. 위혼은 애초부터 거의 원수지간이었고.
“왜? 고백했다 차였어?”
“아뇨. 저는 사실 별 생각 없는데 그쪽에서 저를 꺼려하더라고요.”
“허얼.”
뭔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쩝쩝 다시는 하선영을 뒤로 한채 서담은 스태프 출입구를 찾아갔다. 보안이 꽤 철저한 탓에 가드가 상당히 많았으나 테일러가 미리 보내준 출입증의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보여주자 어지간해서는 통과가 가능했다.
콘서트장 내부에는 스태프진이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이 모든 인원이 단 한 명의 공연을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뛰고 있다는 사실이 서담에게는 썩 어색하게 다가왔다.
‘그 소심했던 게 세계적인 스타가 될 줄이야······.’
잠시 뒤, 헬로니의 대기실이 나타나자 척봐도 고랭크의 초능력자로 보이는 사내 두 명이 서담의 앞을 가로막았다. 원래 연예인이 이렇게까지 호위를 받지는 않을 텐데, 아무래도 정말 헬로니에게 무슨 일이 있기는 한 모양이다.
“(멈춰주십시오.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헬로니에게서 연락받고 왔습니다.)”
영어로 질문이 들어오자, 똑같이 영어로 답한다. 서담이 스마트폰으로 테일러와 헬로니의 도장이 찍힌 의뢰서를 보여주자 가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문이 열리며 초췌한 얼굴로 구석에 앉아있는 헬로니와 기분이 굉장히 좋지 않아보이는 테일러 나인 및 스타일리스트와 여자 가드 몇 명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 야! 왜 이렇게 늦게 와!”
테일러는 서담을 발견하자마자 냉큼 달려오더니 그의 목을 와락 껴안았다. 그러더니 뒤쪽의 하선영을 보고선 억지로 어깨동무를 하여 서담의 고개를 자신과 맞췄다. 그녀의 키는 서담의 가슴팍에 오는 수준인지라, 서담이 상당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뒤에 저분은?”
“···내 길드원.”
“미인이네?”
“계약 관계야.”
“그래?”
이윽고 서담을 놓아준 테일러는 하선영을 향해 눈인사를 건넸다. 그러든 말든 하선영은 헬로니를 보자마자 이미 혼이 쏙 빼앗긴 상태였다. 헬로니는 서담을 보고선 자리에서 일어나 어정쩡한 자세로 악수를 청하려 했는데, 그가 거절하였다.
“됐어. 우리 사이에 무슨 악수야.”
“그, 응···. 그래.”
“여전하네.”
“어···너도.”
테일러는 예상대로의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지자 한숨을 내쉬었다. 헬로니는 여전히 유서담에게 뭔가를 미안해하고 있었고, 유서담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그냥 툭 털어내면 좋으련만.
서담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화장하고 있던 거야? 나 들어와도 되는 거 맞아?”
“아직 공연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서······.”
“그런가.”
그는 냉큼 걸어서 테이블 앞에 놓인 의자를 차지하였다. 하선영 역시 그를 뒤따라 옆자리를 차지하자, 맞은편에 테일러와 헬로니가 착석하였다.
가장 먼저 계약 서류를 꺼낸 서담은 헬로니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스토커 처리 의뢰라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탐지 계열인 네 능력으로도 찾을 수 없는 일이다보니 나는 이 건을 ‘특수 빌런 처리’ 건으로 넘길 생각이야.”
“응? 귀찮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거, 돈 떼어가잖아 씹새들이.”
테일러가 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어. 나 길드 창설했잖아. 길드 업적을 조금이라도 늘려야지.”
“아하······?”
헬로니는 알겠다며 펜을 들어서 서류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그러는 와중 하선영은 헬로니에게 싸인을 받고 싶은지 자신도 펜을 들고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는데, 어쩐지 잔뜩 수척해지고 다크서클까지 짙게 내려앉은 상태가 꽤 심상치 않다는 점을 알게 해주었다.
게다가 서류를 읽는 내내 자꾸만 주위를 둘러보는 꼴이, 무언가 겁에 질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유서담 역시 그런 헬로니를 빤히 바라보다가 노트를 꺼내서 테일러에게 물었다.
“그래서. 여태 네가 조사한 결과를 좀 듣고 싶은데. 특정지어지는 범인이나, 아니면 뭐 특징같은 거 있어?”
“후우······.”
예상했던 질문이 나오자 테일러는 굉장히 쪽팔린단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없어. 아무것도. 도대체 누구인지, 주변 사람인지 어쩐지도 모르겠고 애초에 필적 확인은 되지도 않아. 차라리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면 아예 대갈통을 터트려버리는 건데,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데 심지어 난 아무것도 느끼질 못하겠어.”
“···아무것도?”
“어. 존나 빡쳐.”
진심으로 화가 난다는 듯 테일러는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었다.
“쟤는 자꾸만 뭘 느낀단 말이야. 게다가 실제로 협박 메시지나 스토킹 메시지도 오고. 근데, 난 아무것도 못느끼겠단 말이지?”
“이상한데······.”
테일러는 비록 탐지에 약한 능력이지만, 자연계 S랭크의 순수한 감각 자체도 무시할만한 수준이 못된다. 그런 그녀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헬로니만이 시선을 자꾸만 느낀다는 건······.
“장비가 조금 필요하겠는데. 일단 오늘은 무리겠고, 시간 좀 걸릴 것 같은데 괜찮아?”
“어, 으응. 괜찮을 거 같아···. 아마도.”
“계약서는 사실 별거 없긴 해. 우리 사이에 내가 돈 받고 일하자고 온 건 아니니까.”
“야. 난 돈 받고 일하는데?”
“그건 너고.”
‘우리 사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어색했는지 헬로니는 손끝을 움찔 떨었다. 이 자리에 있는 셋 모두가 그것을 느꼈으나 아무도 내색을 하진 않았다.
“아마 적은 은신 계열의 능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거기에 음파로도 탐지를 못하는데 시선만 느껴지고, 테일러나 주변의 다른 탐지계열 능력자도 아무것도 못느낀다고 했지?”
“맞아.”
“그럼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음파 능력으로 탐지에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어······.”
헬로니의 음파 탐지는 굉장히 또렷하고 정확한 편이다. 보이지 않는 곳, 벽 너머의 장소까지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으니까. 그래서 여태 ‘의문의 검은 시선’이 느껴질 때면 탐지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위치를 특정지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S랭크의 초능력자를 비롯하여 그 어떤 능력자도 느낄 수 없는 시선을 오로지 혼자서만 느끼고 있는 것이라면.
“어쩌면 네 능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시선이 느껴지기라도 할 수 있어. 이건 꽤 긍정적이야. 시선이 느껴질 때면 어쨌든 네가 반응은 할 수 있다는······.”
그러나.
헬로니는 서담의 말을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
‘또······!’
꾸깃, 들고있던 서류를 저도 움켜쥔다.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치 알몸을 샅샅이 훑는 것처럼, 선명하고 질척하고 노골적인 시선이. ‘너는 내꺼야’, ‘내 시선에서 벗어나지마’라며 광기에 차있는 그 시선이 또다시 헬로니를 끈적하게 잠식해가기 시작했다.
‘싫어.’
두근, 두근. 심장이 거칠게 요동친다. 덜덜 떨리는 두 팔로 몸을 힘겹게 감싸고선 지르지도 못할 비명을 내기 위해 혀끝을 억지로 움직이려는 순간.
······쐐액!
갑작스레.
그녀를 괴롭히던 ‘시선’이 사라졌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 사이엔가 자신의 옆까지 다가온 하선영이라는 이름의 여인이 야광봉을 든 채로 마치 무엇인가를 베어낸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무, 무슨······?”
“소리를 베었다.”
“네···?”
그녀는 자신이 들고있던 연보랏빛의 야광봉을 보더니 표정을 찡그렸다.
“할인마켓에서 4,900원 주고 산 큐티 헬로니 야광봉에 더러운 게 묻었는걸······.”
그러더니 난폭한 걸음걸이로 창문에 다가가, 그것을 거칠에 열어젖힌 뒤 주변을 스윽 둘러보더니, 난데없이 야광봉을 투척하였다.
···투슝!!
“읏!”
도저히 야광봉에서 난 것 같지 않은 그 경쾌한 소음이 대기실 내부를 타고 흐르더니, 이내 침묵이 흘렀다. 하선영은 혀를 차며 말했다.
“도망쳤어.”
모두가 어이없이 그녀를 바라보는 와중, 유서담은 침착하게 창문 너머를 망원경을 쓰고서 살폈다. 최근 하선영과 함께 실전 검술을 연습하며 마력을 감지하는 실력이 꽤 올랐다고 생각했건만, 전혀 느끼지 못했다.
‘거리는 3km정도 되려나.’
이 정도의 거리를 순수하게 감각만으로 파악하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망원경으로 저 멀리 빌딩에 초점을 맞추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멀리도 날아간 야광봉은 정확히 벽에 꽂혀있는 것이 보였다.
“상당히 멀리까지 던지셨군요.”
“애초에 너무 멀어서 맞추긴 힘들었겠다만, 도착하기도 전에 소음을 내서 궤도를 비껴냈어.”
“소음말입니까?”
“맞아. 놈은 음공(音功)을 익혔어.”
그녀의 말에 서담은 꽤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대충 이동준의 메인 스토리와 관련이 있을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도 일이 더 복잡해졌다.
“음···공······?”
“그게 대체 뭐야···?”
말을 이해하지 못한 헬로니와 테일러가 의문을 표하자, 유서담이 대신 답해주었다.
“소리를 사용하는 무공이라고 생각하면 편해.”
무공.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스토커는 무림인이야. 그것도 헬로니처럼, 소리를 다룰 줄 알지.”
< Hello, Hellony(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