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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66화 (66/251)

< 하렘의 대원칙(3) >

하선영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둥이를 열었다.

“진정하세요, 하선영 씨.”

“어, 어. 그래. 응.”

“달마에 대한 마음이 바뀌어서 지금 굉장히 혼란스러우시죠?”

“···어떻게 알았어?”

그녀가 당황하여 묻자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하선영 씨. 만약 상대방을 자신에게 반하도록 만드는 능력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믿겠습니까?”

“······그런 능력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잖아.”

“글쎄요. 지구인 수만 명이 단체로 차원 이동해서 무공을 배워오질 않나, 초능력자들이 손에서 빔을 쏘질 않나. 현실적이지 않은 걸 더 찾기가 어려운 세상 아닌가요?”

“그건, 그래···.”

선영은 잠시 고민하더니 내 눈치를 슥 살폈다.

“그 말은, 설마······.”

“네. 달마의 능력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지울 수 있구요.”

“······!”

믿기 힘든 건지, 믿기 싫은 건지, 믿을 수 없는 건지.

하선영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흔들었다.

그럴 만 했다.

여태 그녀는 달마를 찾기 위해 몇 년이라는 세월을 썼을 터. 달마를 향한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눈 녹듯이 순식간에 사라진 뒤, 남아있는 감정이라고는 원한밖에 없으니 얼마나 혼란스럽겠는가.

자신의 마음에 대한 불신.

달마에 대한 배신감.

나는 거기에 한술 더 떴다.

“만약, 그가 이 능력을 악용하고자 했으면······ 여인의 마음에 더불어 그녀가 가진 모든 것, 재산과 권력 그리고 몸까지도 자신의 뜻대로 가져갈 수 있었겠지요.”

“아······.”

물론 이 부분은 살짝 거짓말이 가미되어있다.

[매력발산(SS): 자연스럽게 이성을 반하게 한다. 만약 이를 본인의 목적과 쾌락의 충족을 위해 악용하고자 하면 효과가 사라진다.]

이 또한 주인공의 클리셰 중 하나였다.

주인공은 주위의 여자들을 홀리고 다니는데,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거나 혹은 관심이 없어야만 한다. 즉, 여자의 마음만 빼앗아놓고 돌려주지는 않는다는 의미. 여러모로 이 부분도 상당히 지독하다고 볼 수 있겠다.

당연하지만 이 세상 모든 하렘이 다 억지는 아니다. 분명 사연도 있고, 이야기도 깊은 하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하렘은 이런 꼬라지다.

하선영은 입을 다물고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여기서부터는 스스로가 고민하고 결심해야하는 문제였으니까.

이내, 검희 하선영은 굳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너. 달마가 누군지 알고 있지?”

“대충은 그렇습니다.”

“달마를 찾고 싶어.”

“이전과 같은 이유입니까?”

“아니.”

하선영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검희라는 별호에 어울리지 않게도 그녀는 체구가 상당히 작고 반로환동 덕분에 꽤 어린 외모였는데, 그런 분위기와 맞지 않게 굉장히 흉흉한 기운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달마를 만나서 물어볼 거야. 정말로, 그런 능력이 있느냐고. 내 마음을 가지고 놀았느냐고.”

“오···.”

그건 곤란하다. 그랬다가는 무슨 헛소릴 하는 거냐면서 검희의 목이 떨어질 수도 있을 테니까.

“그건 안 됩니다. 대신···. 증거를 보여드릴 수는 있습니다.”

*

어젯밤, 서울 시내 한복판에 난데없이 게이트가 열렸다.

그곳에서 튀어나온 SS랭크의 괴수!

그러나 피해자는 제로. 소문의 은둔 헌터 ‘홍엽사’라는 사내가 와서 처리했다는 것이다. 온통 베일에 싸여진 홍엽사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수많은 길드 및 매스컴과 네티즌들이 현장에 나왔지만, 찾을 수 있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침 그 자리에 서있던 헌팅 서포트 지망생 ‘예사혜’를 제외한다면 홍엽사에 대한 목격담은 아예 없을 것이다.

“정말로 기억나는 게 없다구요?”

“네에···.”

예사혜는 어젯밤 자신을 구해준 그 남자에게 홀딱 빠진 상태였지만, 얼굴도 이름도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경찰들의 심문에도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경찰들은 답답해하는 듯 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의문의 헌터 홍엽사. 몇 년 전부터 활동하기 시작하여 처치하기 곤란한 이상 사태를 조용히 처리한 뒤 홀연히 사라져버리는 그 남자는 이제 경찰의 기술력으로 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슬슬 인정한 상태였으니까.

“어후. 저 여자도 완전히 홀딱 반했구먼.”

“그렇게 잘생겼나?”

“말도 마. 어지간한 연예인은 싸대기를 다섯 번쯤 후린다는데?”

짜악!

“컥!”

“켁!”

형사들이 뒤에서 수근거리고 있자 김반장이 그들의 머리를 다섯 번 후렸다.

“멍청한 새끼들아. 얼굴을 모른다는데 잘생기고 뭐고를 어떻게 알아? 빨랑 안 돌아가?”

“넵!”

“갑니다!”

그들이 후다닥 사라지는 것을 보며 김반장은 예사혜에게 다가갔다.

“예사혜 양. 정말로 기억이 안 나시는 거요?”

“저도 기억하고 싶어서 미치겠어요. 찾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아휴. 알겠수.”

결국 예사혜를 더 붙잡아놓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김반장은 지침대로 그녀에게 의례적인 질문만을 몇 번 던진 뒤 절차를 거쳐서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경찰서에서 나온 예사혜는 아직도 꿈만 같았던 어젯밤의 일을 계속해서 되뇌였다.

달빛에 은은하게 비추던 그의 옆모습은, 그야말로 백마를 타고 온 훈남······.

“저기요.”

······다시 생각하니 흔남 같기도 하고?

예사혜는 갑작스레 두근거리던 가슴이 진정되고, 머릿속을 가득 메운 꽃밭이 사라지자 본인이 더 당황하고 말았다.

“저기요?”

“네, 네?”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옆을 돌아보니, 웬 귀염상의 젊은 여자 한 명과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남자 한 명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젯밤에 ‘홍엽사’를 만나신 예사혜 양 맞으신가요?”

“아, 네······.”

또 그 질문인가 싶어서 사혜의 표정이 가라앉자, 유서담은 오해하지 말라는 듯 손을 저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는 예사혜에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과장된 동작으로 말했다.

“제가 홍엽사를 만나게 해드릴 수 있어서요. 어때요. 지금 당장 가실래요?”

“네에? 정말인가요?”

“네. 그런데 지금이 아니면 안 돼요. 기회는 없을 겁니다.”

홍엽사에게 반해버린 예사혜라면 당연히 이 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예사혜의 가슴은 차분해진 상태. 그녀는 꽤 현실적인 고민을 해버렸다.

“어, 근데. 그게 저···. 학교에 급하게 제출해야될 게 있는데···. 조금 나중에 가면 안 될까요?”

그에 유서담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경찰서 내부에서부터 예사혜를 지켜본 하선영과 유서담이다. 그녀가 홍엽사에게 반했다는 사실 정도는 쉽사리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반응을 보라. 완전 딴판이지 않는가?

누군가가 구해줘서 반했다 자체는 흔하디 흔한 클리셰라지만, 그래. 실제로 반하는 경우가 없는 것도 아니다. 흔들다리 효과라고, 사람이 불안한 상황 등에서 나타난 신체적인 변화를 자신의 감정으로 쉽게 착각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으니까.

하지만 홍엽사, 아니 이동준은 그게 조금 과했다.

최근 몇 년 너무나도 많은 위기 상황이 발생했고, 그 자리에는 모두 여자가 있었으며, 모든 여자가 반해버린다. 그건 확률적으로 조금 힘든 일이다. 이동준이 어마어마하게 잘생겼다면 그럴 수도 있겠으나 그런 것도 아니었으니까.

즉 위기라는 상황 자체가 매력발산, 아니 주인공 보정으로 만들어진 상황이기에 여인들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자체부터가 전부 인위적이고 강제적이라는 의미.

‘아마 이동준에게 꼬인 대부분의 여자는 매력발산의 효과로 묶여있을 확률이 높아.’

그의 딸 신혜지는 매력발산이 아니라 정말로 끈끈한 유대감이 이어져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어지간해선 유서담의 추측이 맞을 터. 슬쩍 고개를 돌려 하선영을 바라보자 그녀의 동공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눈앞에서 자신을 제외한 또다른 여자가 감정을 깨끗히 지워버리는 광경을 목도한 데에 충격을 받은 것.

“말도 안 돼······.”

하선영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의문은 곧 확신이 되었고,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은 고스란히 원한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진정하세요. 당신 혼자서는 힘들다는 사실 알지 않습니까.”

“···알아. 그래도 어쩌겠어. 무림인은 받은 원한을 반드시 갚아야 해.”

“하선영 씨.”

유서담은 그녀의 양어깨를 붙잡고서 눈을 마주하였다.

“당신 말고도 달마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은 많습니다.”

“원한은 혼자서 갚는······.”

“천마를 죽일 때도, 혼자서 나섰습니까? 아니면 무림맹 전원이 나섰습니까.”

“······!”

“그건 아니었지 않습니까. 작금의 실태는 당시의 무림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금은 분노를 삭히세요.”

“그럼······.”

하선영은 분노를 최대한 죽이고서 유서담을 그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대체 뭘 어떡해야 한다는 거야?”

“힘을 모아야 합니다. 당신을 비롯하여, 달마에게 원한을 가진 자를 전 세계를 뒤져서 찾아내야 합니다. ···아마 추정컨대, 당신이 말하는 그 육황삼제와 천마 역시 달마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강제로 금제를 걸고서 데려왔으니까. 심지어, 육황삼제는 대부분 무림에 식솔을 두었다고 알고있어.”

그건 몰랐는데. 유서담은 좋은 정보를 얻었다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네. 무림에서 벌어지는 일은 국가에서 관여하지 않듯, 저도 중립을 유지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혹시나 발생할 수도 있는 불똥을 사전에 차단하며.

“하지만 하선영 씨 당신은 제가 ‘비즈니스’적으로 도와드리고 싶군요.”

“비즈니스?”

“제가 길드를 창설한다는 건 알고 계십니까?”

“어, 그렇, 지?”

“제 길드에 들어오십시오. 당신을 고용하고 싶습니다.”

“···왜에? 난 금제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데.”

서담도 그 ‘금제’라는 부분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하지만, 그는 차원을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었기에 금제와 관련된 지식도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이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검희라는 소중한 인재를 붙잡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고생은 얼마든지 감안할 수 있다.

“제가 금제를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해드리겠습니다.”

“금제를···?”

“네. 저는 하선영 씨의 금제를 지울 수 있도록 돕고, 복수를 위한 무대를 마련해드리겠습니다. 대신 당신은 제게 힘과 지식을 빌려주시면 됩니다.”

이게 바로 비즈니스. 사실 서담이 얻는 이익이 더 많긴 하지만, 어쨌든 ‘금제’에 묶여있는 하선영으로서는 거절하기는 상당히 아까운 제안일 것이다.

잠깐 고민하던 하선영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고, 서담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예사혜와 눈을 마주하였다. 뒤늦게 유서담의 얼굴을 스마트폰으로 서둘러 찾아보고선 누군지 알아봤는지 그녀는 “아, 아아! 그때 그!” 하면서 검지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예사혜 씨. 당신은 아마 헌터 지망생이었을 겁니다. 맞죠?”

“헉, 그건 저희 엄마만 아는 건데?”

“추측입니다. 그리고 초능력을 가질 수 없다는 현실에 절망하여 헌팅 서포터를 하려고 공부중이겠죠.”

“허억. 어떻게 알았어요?”

어떻게 알았긴.

너무 뻔해서 알았다.

헌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 20대의 창창한 젊은이, 예사혜. 어느날 갑작스레 목숨의 위기에 처했으나, 자신을 구해준 홍엽사에게 홀딱 반하게 된다. 그러나 다시 만날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어느날, 우연찮게 이동준을 만나게 되고 그가 홍엽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사랑하는 낭군의 도움으로 무공을 배우게 되어 자신의 진정한 꿈을 펼친다!

······아마도 예사혜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대충 이런 클리셰일 것이다.

‘어제오늘 틈틈이 무협지를 읽어두길 잘했지.’

이건 초반부만 읽어도 다 안다. 절벽에 떨어져서 비급과 영약을 얻는다거나, 어디 동굴에 갇혀서 내공 담긴 이끼 긁어먹다가 힘을 얻는다는 식상한 클리셰만큼이나 흔하니까.

그러니까.

“당신, 헌팅 서포터 할 필요 없습니다. 여전히 헌터가 하고 싶으시죠?”

“그, 어···. 네, 맞아요···.”

“그럼 고민할 필요 없이, 헌터 합시다.”

“네에? 저는 초능력이 없는데······.”

그 말이 나올 줄 알았다며, 유서담은 씨익 웃었다.

“TV 보셨죠? 무능력자도 펄펄 뛰게 만든다는 그 사람이 바로 접니다.”

“앗······!”

아마도 예사혜는 무공과 관련된 주인공 이동준과 엮이는 만큼, 검과 관련된 재능이 상당히 있을 터. 또한 검희 역시 훗날 이동준과 엮일 예정이었을 것이다.

즉, 이 여인들은 아직 펼쳐지지 않은 클리셰의 씨앗 덩어리들이라는 이야기.

“자, 느긋하게 카페 가서 이야기나 조금 나눠보실까요?”

그리고 이제부터 서담은 주인공이 뿌리고 다니는 클리셰의 씨앗을 거둘 생각이었다.

< 하렘의 대원칙(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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