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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65화 (65/251)

< 하렘의 대원칙(2) >

손을 씻으며 위혼은 생각을 정리하였다. 그러나, 자꾸만 뒤죽박죽 어린애가 크레파스로 칠해놓은 도화지마냥 모든 게 엉켜버렸다. 분노가 그의 이성을 잠식하고 있는 것.

“왜. 똥마렵냐?”

“···!”

뒤를 돌아보자, 어느덧 따라 들어온 유서담이 자신을 바라보며 방긋 웃고있었다.

“유서담······.”

“너 말이야. 나한테 길드에 들어오라고 제안하려고 했지?”

“···알고 있었으면서 자리를 이따위로 만들어?”

“왜?”

유서담은 진짜로 이해가 가지 않는단 표정을 지었다.

“네가 류진수보다 좋은 제안을 하면 되잖아? 나는 내 길드를 만들고 싶고, 류진수는 연합을 해서 자신의 길드에 이익을 취하기로 했어. 음······. 참, 넌 연합을 못하는구나? 길드가 근본이 없어서.”

말했다시피, ‘길드 연합’은 아무 마스터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로지 전통을 유지하는 극히 일부의 길드만이 가능할 뿐.

“말해봐.”

“뭘?”

“날 데려가기 위해 뭔가를 제안하려고 했을 거 아니야. ···흠. 설마 옛날처럼 막 대충 주먹 휘두르면서 협박할 생각은 아니었겠지?”

그 말에 위혼은 이를 뿌득 갈고서 말했다.

“궁금하지 않아?”

“뭘?”

“···8년 전, 레이나 주가 왜 죽었는지 말이야.”

“······!”

위혼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자 유서담의 표정이 싸하게 굳어졌다.

레이나 주. 16년 전 함께 헌터를 시작했으나, 8년 전 유일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비운의 소녀.

“너······.”

“그래. 궁금하지?”

레이나 주. 유서담의 유일한 약점.

“너랑 테일러랑 그 여자랑, 매일같이 붙어다녔잖아.”

동요해라. 이 이야기에 더욱 집착해라. 흔들려라.

위혼은 흥분한 듯이 말을 꺼냈으나.

“······역시 알고있었구나?”

“뭐?”

예상했던 반응이 돌아오지 않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뭔가가 이상하다.

유서담의 표정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잔잔한 호숫가의 물결처럼, 그의 눈빛은 전혀 흔들리지 않은 채 여전했다.

“그거 외에는?”

“······.”

유서담에게는 이만큼이나 중요한 이야기가 없을 텐데. 가볍게 넘겨버리자 뭔가가 이상했으나, 위혼은 이어서 자신이 알고있는 8년 전의 사건에 대해 말했다. 그날, 유서담이 잃은 것들에 대해.

위혼은 주절주절 자신이 아는 것들을 서둘러 내뱉었고, 그것들을 전부 들은 유서담은 웃음을 살짝 터뜨렸다.

“재미있네.”

“뭐···?”

“사실 궁금하긴 했어. 8년 전에 네가 헌터를 그만두던 그날. 레이나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우리들을 배신한 네가 얼마나 알고있는지 말이야.”

“그건······.”

“그래서 이 자리에 왔어. 떠보려고.”

그러나 떠볼 필요도 없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설마하니. 그걸 거래조건으로 들고 올 줄이야.”

그리 말하며 유서담은 아주 살짝, 들리지 않도록 한숨을 내쉬었으나 단 둘밖에 없는 이 자리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선명하게 위혼의 귓가에 내리꽂혔다.

“정말 안타깝다. 위혼.”

“뭐···?”

유서담은 그리 말한 뒤, 뒤돌아 화장실을 나갔다.

위혼은 그의 표정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건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표정이 아니었다. 비웃는 표정도 아니었으며 실망스러워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그 무엇도 아니다.

그저.

16년 전부터 줄곧 자신을 바라보던, 그 평온한 표정 그대로.

‘설마, 저 새끼는 16년 전부터 나를 저런 눈으로······.’

뭔가를 깨달았을 땐.

이미 지나간 뒤였다.

*

그날 위혼이 데려온 산업체 및 헌터 협회 본부의 대리인과 성공적으로 이야기를 마친 나는 홀가분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나에게 꼭 필요했던 이들이기도 했다. 길드를 창설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자금이 어마어마하게 깨지게 되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이 바로 헌터들이 사용할 장비였으니까.

대부분의 길드는 헌터를 가입시킬 때 장비를 제공해주는 조건을 내걸고는 했는데, 나는 굳이 그러진 않았다. 이미 내 길드에는 검술과 마법이라는 아주 달콤한 조건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거기에 장비까지 받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지금 당장은 그들과 좋은 이야기가 오고가고 있을 뿐 완전히 계약이 성사된 것은 아니었으나, 서서히 내가 만들 길드가 궤도에 오르고 있었다.

지이잉!

집으로 가는 길.

스마트폰이 울리자 폰을 꺼내어 확인한다.

[길마씹새: 유서담.]

[길마씹새: 우리 잠깐 시간내서 이야기 좀 나눠볼 수 있겠는가?]

“허, 이 새끼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무려 로스트 데이의 길드 마스터님께서 직접 연락을 취하셨다.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무능력자 시절에는 다 쓴 나무젓가락마냥 팽하더니 이능력을 얻었다고 곧바로 연락을 하는 꼴이라니. 결국에는 기연과 능력이란 게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세상이다.

[차단]

버튼을 대충 꾹 누른 뒤 택시 뒷좌석에 등을 기대었다.

이대로 집에 가서 드러눕기만 하면 잠이 솔솔 올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때.

삐용삐용삐용!!

밖에서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긴급 재난 상황을 알립니다!

-현재 청담동 인근에 SS랭크의 게이트가 출몰하였으니, 시민 여러분은 모두 대피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현재 청담동 인근에 SS랭크의 게이트가······.

끼이익!

택시가 비틀거리며 갓길에 들어서더니 급히 정차하였다.

“미, 미안한데 청년. 내려주시오. 게이트가 발생한 모양이우.”

“아. 네.”

어쩔 수 없다. 택시 기사는 일반 시민이었고 게이트 사태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차를 끌고 가족을 대피시켜야 할 테니까. 차에서 내린 뒤 게이트가 열린 곳을 바라보았다.

‘SS급이라고?’

너무 뜬금없어서 할말도 없었다.

물론, SS랭크의 게이트가 발생한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는 대부분 전조도 있고 뭔가 예고도 있어서 충분히 대응을 했을 터. 모든 헌터에게 해당 게이트에 대한 경고문이 떨어지는 게 정상이거늘 아무런 이야기조차 없다는 게 이상했다.

뭔가가 이상하다 싶어서 에테르 블레이드를 인벤토리에서 꺼내 그곳으로 달려가려는데 저 멀리 거대한 괴물의 형체가 보였다.

미친. 정말 더럽게 커다란데.

과연 저걸 상대할 수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을때.

썩둑!

···쿵!

괴물의 머리가 잘려나가며.

바닥에 떨어졌다.

“어······?”

짧은 의문 직후, 멀찍이서 헬기 소리가 울렸다.

투두두두두!!

방송국 및 군용 헬기가 급히 다가오고 있었지만 이미 늦었다. 저들은 가장 중요한 장면을 놓치고 말았다.

“미, 미친. 뭐야······?”

SS랭크에서 출몰한 단 한 마리의 괴수.

최소한 S랭크의 헌터가 10인 10개 이상의 팀을 꾸려야 레이드가 가능할 정도의 수준이다. 대체 누가 저걸 단칼에······.

‘······설마?’

<근처에서 주인공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지구에서 주인공은 단 한 명밖에 없다.

이동준.

서둘러 빌딩의 벽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 현장을 살펴보았지만, 괴물을 사살한 자는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게다가 괴수 또한 시야가 가려지는 다리의 뒤에서 출몰하는 바람에 그것을 누가 베어냈는지 목격자도 없었다.

‘힘을 숨겨야 된다면서? 왜 저러는 건데?’

자신이 봤을 정도면 근처에 있는 무림인 중 누군가는 보지 않았겠는가?

나는 그런 생각을 현장을 지긋이 주시하였다. 그곳에는 웬 직장인으로 보이는 여인이 자리에 쓰러진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게이트 사태의 피해자일 터. 혹시 목격을 했을까 싶어 접근하려고 했지만 이미 경찰과 군인들이 그녀에게 들이닥친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그대로 등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고.

다음날.

“너, 달마 지존과는 무슨 사이로 지내고 있어?”

우리집으로 ‘검희’라 불리는 여자가 찾아왔다.

*

“삼황오제와 천마는 달마가 모두 죽였어.”

서담의 앞에 놓인 찻잔은 그녀의 거침없는 말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검희는 차를 홀짝이더니 ‘으, 맛없어’라며 표정을 찌푸리고선 다시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새로운 천마와 육황삼제의 자리를 지구인이 대신하였지. 모두 압도적인 힘을 가진 달마에 대항하기 위함이었어.”

그러나 천마와 육황삼제라 불린 열 명의 고수는 서로에게 협력을 하지 않았다.

······라며, 검희는 뜬금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저기. 근데 갑자기 절 왜 찾아오셨는지······?”

검희, 하선영.

한국 나이로 치면 스물중후반이나 무림의 세계에서 살아온 시간을 합치면 거기서 몇십 년은 더 먹었을 것이다. 반로환동인지 뭔지 하여튼 젊어지는 무슨 기술을 써서 외모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말끔한 형태였지만.

“나는 ‘달마’를 찾고 있어. 우리 모두에게 강제로 ‘금제’를 걸어서 지구로 돌아오게 한 장본인을 말이야. 얼굴까지 뜯어고치고 내공을 모두 철저하게 숨겨서 도저히 찾을 방법은 없다만······. 최근에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고, 특히 너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냈지”

검희는 그리 말한 뒤 말끝을 흐렸다.

사실, 그녀는 달마에게 큰 원한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첫눈에 반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왜 찾는 겁니까?”

“그야 당연한 거 아니야? 나는 그를 좋···아···음? 뭐지?”

그를 좋아했을 터다.

아마도 그런 감정이, 가슴 어딘가에 남아있어서.

달마를 찾기 위해 세계 전역을 뒤지고 다녔다.

달마지존을 사모하는 마음 때문에.

분명히, 그랬을 터인데.

‘어, 라···?’

검희는 자신의 가슴팍을 어루만졌다.

바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달마 지존을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거려서 진정하는 것조차 어려웠는데, 지금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마치, 불쾌한 감각을 말끔히 거둬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 남자에게 반했을···텐데?’

그런데, 왜 반했더라?

압도적인 강함에 반해서?

카리스마 넘치는 뒷모습에 반해서?

얼굴이 기가 막히게 잘생겨서?

아니다. 그냥 눈을 마주치는 순간 반했다. 이유는 그 이후로 따라붙은 것이고.

‘왜지?’

검희 정도나 되는 수준의 강자는 스스로의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다. 누군가를 보자마자 반해버린다는 일은 거의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마치.

누군가에게 강제로 마음을 끌어당겨진 것처럼.

문득, 하선영은 고개를 들어 유서담과 눈을 마주하였고.

되려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그 남자를 왜 찾았더라?”

“예? 그게 뭔···.”

그때 갑작스레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주인공 이동준의 ‘주인공 보정’을 ‘주인공 사냥꾼 Lv. 3’가 방해하였습니다.]

[조연 하선영이 ‘매력발산(SS)’의 영향에서 벗어납니다.]

하선영은 가슴에서 손을 떼었다.

유서담을 가만히 쳐다본다. 그에게 딱히 반했다거나, 호감이 생긴 건 아니다.

그저.

어째서인지 유서담과 함께 있으니 가슴 속을 잠식하고 있던 ‘불쾌한 무언가’가 말끔히 거둬내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서담의 눈앞에 발생하는 메시지.

띵!

[주인공 이동준에게 고구마가 발생합니다.]

“엥? 가, 갑자기?”

놀라기도 잠시.

더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주인공 이동준이 고구마를 무시합니다.]

“허······.”

그제야 서담은 대충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여태는 싸우느라 바빠서 무시하고 지나쳤지만, ‘#하렘’이라는 태그가 달린 남자 주인공들은 대부분 여자를 여럿 데리고 다녔다. 그런데, 그들이 과연 그 여자들을 한명씩 꼬셔서 데리고 다녔을까?

물론 그런 주인공도 있기야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가장 많이 쓰이고, 가장 트렌드적인 하렘은 역시 ‘일단 주인공에게 첫눈에 반하는’ 하렘이 되겠다.

그리고 눈앞의 하선영은 그런 이동준이 흩뿌리고 다니는 하렘의 피해자 중 한 명이었고.

그런데, 유서담이 개입하는 순간 그런 말도 안 되는 개연성이 무마된 것. 물론 아무에게나 통하는 건 아닐 것이다. 검희 하선영은 상당한 실력자였고, 스스로도 어느정도 매력발산이라는 스킬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을 테니 유서담의 도움을 받았을 터.

‘잠깐, 이거 혹시?’

이동준의 주변 인물은 대부분이 여자로 구성되어있다. 아마도 주인공 보정, 즉 ‘#하렘’이 지대하게 개입하고 있을 터. 이동준 본인은 정작 그런 여인들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하였지만······.

‘이거 써먹을 수도 있겠는데?’

< 하렘의 대원칙(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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