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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64화 (64/251)

< 하렘의 대원칙(1) >

헌터로 활동하다보면 신분이 대중에 노출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 편이다. 요즘에야 헌터가 거의 연예인 취급을 받아서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지만, 과거에는 초능력을 악용하는 빌런을 사냥하는 빌런 헌터들의 비중이 상당히 많아서 실명이 공개되는 것을 꺼려하는 헌터가 상당히 있었다.

헌터로서 데뷔한 지 올해로 16년이 된 위혼 역시도 가명을 쓰는 중국인이었다.

시링귄 길드의 마스터이자, A랭크의 초능력을 보유했으며, 8년 차에 헌터를 그만두고서 사업가로 전향한 사내. 길드 마스터는 반드시 현직 헌터여야만 한다는 게 암묵적인 룰로서 통하는 요즘 시대에 헌터를 그만둔 위혼은 상당히 불리한 조건이었으나, 그는 그것을 이겨내고서 운영과 전략으로 길드를 이끌리라 포부를 가슴에 당당히 새긴 사내였다.

폭삭 망했지만.

과거 100명이 넘는 헌터를 수용했던, 나름대로 잘 나가던 위혼의 길드는 현재 스무 명 남짓밖에 남지 않았고 그들마저도 길드 마스터를 믿지 못해 언제 이적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초능력자를 수용하고 있는 ‘길드’란, 그 자체로서 민간군사기업과도 비슷하다. 길드를 창설하기 위해 작성해야 하는 서류만 해도 성인 남자의 키만큼이나 컸으며 또한 인정을 받더라도 길드의 최대 수용 인원을 늘리기 위해 얼마나 뛰어다녀야 하던가.

여태 노력해왔던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게 생겼다. 최대 수용 인원 150명으로 나름 중견 길드의 수준이었으나, 헌터의 숫자가 부족해지자 규모를 줄이라고 국가에서 압박이 오기 시작한 것. 시링귄 길드를 여기까지 키우는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로비와 정치질을 했던가.

시링귄 길드의 투자자들도 슬슬 주주총회를 열어서 쓴소리를 퍼붓기 시작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진짜 길드가 아예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그럴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헌터증을 재발급 받을까 싶지만, 그러기엔 너무나도 늦은 데다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마침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

‘유서담······.’

초능력이 아닌, 이능력.

무능력자도 배울 수 있는 그 이능력은 전 세계적으로 뉴스를 타고서 퍼지고 있어, 유서담은 세계가 주목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래서 위혼은 당장 유서담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그의 성격은 위혼이 가장 잘 알고있다. 헌터를 그만두기 전, 8년 동안이나 그와 함께 했으니까.

8명의 헌터 중에서 위혼의 재능은 가장 밑바닥에 속했다.

어설프게 발현되는 초능력.

능력의 종류도 흔하디 흔하여, 관심조차 제대로 받기 힘든 신체 강화였으며 또한 전투 자체에도 소질이 없다시피 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단 한 명의 소년을 보며 위안을 삼았다.

유서담.

아무런 초능력도 발현하지 못했던 패배자.

신체를 강화할 수 있던 덕분일까, 위혼은 틈만 나면 서담을 괴롭히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서담은 저항하지도 않았고, 말대꾸를 하지도 않았다. 그의 기억 속에서 유서담이란 그저 그런 물러터진 성격을 가진 무능력자였다.

지금이야 이능력을 발현했다지만, 그래봐야 유서담은 자신을 무서워한다. 자신의 말 한 마디면 먹고있던 마지막 고기 한 점마저도 넘겨주던 놈이었으니까.

물론, 지금도 그런 바보로 남아있을 리는 없다. 아마도 지금쯤 유서담을 회유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손을 뻗고 있을 테니까. 어마어마한 조건을 내걸 것이다. 그들에 비해 자신이 가진 것은 턱도 없이 부족할 터.

그때 미안했다고 살살 구슬리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만이 줄 수 있는 것을 생각해냈다.

‘8년 전에 유서담이 잃어버린 것들.’

그동안 유서담이 몰랐던, 아니 애초에 자신을 제외하고서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제시할 생각이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곧 온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위혼은 현재 한국에 와 있는 상태였다. 그런 위혼의 옆에는 길드를 후원해주는 기업의 대리인 세 명과 헌터 협회의 대리인이 나란히 착석해 있었다.

헌터의 무기를 생산하는 이현상 방위 산업체, ‘케이지 인더스트리’.

헌터의 방어구 및 기타 장비를 생산하는 엽수업체, ‘레이거’.

헌터가 활동할 수 있는 게이트 및 던전을 물어오는 에이전시, ‘안테나 닷컴’.

길드의 적격을 심사하기 위해 찾아온 ‘헌터 협회 본부’.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세계적인 기업이었다.

헌터가 활동하기 위해서는 좋은 품질의 장비를 지원해주는 방위 산업체와 엽수업체, 그 누구보다도 빨리 게이트와 던전 사태를 파악하여 해당 길드가 활동하기에 가장 적절한 ‘일거리’를 주선해오는 훌륭한 에이전시가 반드시 필요했다.

거기에 길드의 규모를 축소할지, 늘릴지, 그것도 아니면 길드를 폐할지의 적격을 심사하는 헌터 협회 본부까지.

‘이번이 기회다.’

이들이 굳이 왜 자신을 따라서 한국에 왔겠는가. 그들도 ‘이능력’이라는 존재에 대해 관심이 지대한 것이다. 만약 여기서 유서담을 자신의 길드로 회유하는 데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오, 저기 오는군요.”

현재 그들의 위치는 어느 호텔의 레스토랑. 유서담은 일전에 첼레스테에게서 받았던 양복을 입고서 자리에 나왔다. 나름대로 고급이었지만 자주 입지 않은 탓에 영 어색한 것처럼 보였다.

“하하, 서담. 오랜만이다.”

“······그래.”

유서담은 위혼을 빤히 쳐다보았다. 뻔뻔한 낯짝으로 잘도 처웃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새끼, 지가 내 뒤통수치고 헌터 그만둔 건 기억도 안 나나?’

하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위혼과 함께 오기로 한 저 네 명이 더 중요했으니까.

‘횡재군.’

원래는 위혼을 만나서 적당히 골려줄 생각이었다. 척 봐도 자신을 회유하기 위해 연락을 취한 게 보였으니까. 하지만 계획이 바뀌었다.

위혼은 생각보다도 인맥이 썩 괜찮았고, 그건 써먹을만 했다.

유서담은 씨익 웃으며 뻔뻔스럽게도 웃고있는 위혼을 향해 말했다.

“맞다. 나도 손님 한 명 데려온다고 말씀들은 드렸지?”

“어? 어, 당연하지. 근데 누구···?”

“마침 저기 오네.”

서담이 뒤쪽을 바라보자, 키가 190cm에 가까운 훤칠한 덩치에 어지간한 연예인 저리가라 할 정도로 잘생긴 사내가 부드러운 미소를 띄운 채 다가왔다. 그는 위혼을 발견하더니 가볍게 손을 흔들고서는 다른 네 명에게 예의바르게 악수를 청했다. 그러고선 위혼에게 말한다.

“위혼. 정말 오랜만이다. 보고 싶었어.”

“······그래. 몇 년 만에 보는 거지? 류진수.”

류진수.

위혼과 마찬가지로 길드 마스터로의 길을 걷기 시작한 남자. 또한, 위혼과 마찬가지로 마스터이면서 헌터를 그만둔 은퇴 헌터이기도 했다.

하지만 둘은 걷는 노선이 달랐다.

위혼은 점점 나락을 향해 걷고 있었고.

류진수의 길드는 점점 더 그 이름값을 떨치고 있었으니까.

류진수의 길드, ‘레이튼 원’은 소수 정예로 이루어진 길드였으며 자질구레한 임무는 맡지 않고, 큼지막한 던전이나 레이드에만 참전한다는 게 특징이었다.

“오호. 레이튼 원의 마스터 아니십니까. 꼭 한 번 만나 보고 싶었습니다.”

“반갑습니다.”

류진수가 등장하자 위혼의 표정이 점점 더 굳어갔다.

그는 슬쩍 유서담을 바라보았다. 굳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저 새끼가, 나를 엿 먹이려고······?’

류진수와 위혼은 사이가 좋지 않다. ···사실, 위혼만 류진수를 싫어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게도, 류진수가 위혼의 완벽한 상위호환이었기 때문. 일개 헌터에서 길드 마스터가 되었다는 상황 자체는 비슷할지 모르나, 그의 길드 레이튼 원에 소속된 길드원 스무 명 전원이 S랭크로 이루어져 있으며 본인 또한 S랭크의 초능력자라는 점.

그리고, 일종의 기업화된 현대의 다른 길드와는 달리 ‘전통’을 유지하는 길드라는 점 때문에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는 점.

류진수는 승승장구하는 길드의 마스터였으며, 위혼은 연전연패하는 길드의 마스터였다.

그래서.

위혼은 류진수를 끊임없이 질투하였다.

‘저 새끼는 도대체 왜 유서담에게 붙은 거냐고······!’

위혼은 이를 뿌득, 갈며 류진수를 쳐다보았다.

언뜻 류진수는 부드러운 인상에 말투를 가지고 있어 누구에게나 호의적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 누구보다도 냉철한 사냥꾼이자 사업가였다. 자신에게 단돈 1원이라도 이득이 없다면, 만약 손해를 보는 일이라면.

절대로 손을 대지 않는다.

그러나 예전부터 류진수는 유서담을 줄곧 챙겨주고는 하였는데, 거기에는 어떠한 ‘이득’도 존재하지 않아서 모두의 의문을 사고는 했다. 유서담 본인은 뭔가를 알고있는지 그의 호의를 굉장히 꺼려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중요한 건 지금 이 자리에 류진수가 와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어떤 기업의 후원도 받지 않던 레이튼 원의 길드 마스터의 등장으로 사업체 대리인들의 관심이 온통 그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는 점이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아니. 상관없어. 어떻게든 유서담을 데리고 오기만 하면······.’

그때. 유서담이 입을 열었다.

“하하, 네. 사실 지금 ‘임시 길드’를 만든 상태입니다. 저도 길드를 창설할 생각이라서요.”

그 말에 모두가 침묵하였다.

길드 창설은 그 무엇보다도 예민한 문제였기에. 위혼조차 당황하여 입을 뻥끗거렸으나 헌터 협회의 본부에서 파견나온 대리인은 냉정한 눈으로 그에게 말했다.

“유서담 헌터께서도 아시다시피 길드를 창설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개의 팀, 즉 15인의 길드원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중 한 팀은 C랭크 이상의 상황에 투입될 수 있어야만 하며······.”

협회 대리인의 입에서 줄줄이 조건이 흘러나온다. 길드는 곧 초인이라는 무력을 보유하는 집단이었고,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에 위혼 또한 상황이 좋게 흘러가나 싶었지만.

류진수가 입을 열었다.

“예. 그래서 저희 길드와 ‘연합’을 할 생각입니다.”

“······연합 말씀이십니까?”

어쩌면 조금 생소할 수도 있는 단어였다. 과거, 길드가 기업화되기 이전. 정말로 헌터들이 순수하게 팀을 이루기 위한 목적만으로 존재했을 시절에는 ‘연합’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두 개의 길드가 하나가 되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장치.

그에 위혼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렇다. 류진수가 여태 유서담에게 호의를 보였든 어쨌든, 그건 단순히 유서담이라는 사내에게 보인 호의였을 뿐 ‘사업’과 관련된다면 굉장히 냉철하게 나왔을 것이다. 그런 남자가 이런 자리에 괜히 나왔을까? 그럴 리가. 전부 다 자신에게 돌아올 이득이 있으니 나온 것이다.

‘설마,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위혼은 유서담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자신을 신경쓰고 있지도 않았다. 이 자리에 나온 다섯 명의 인원과 정신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뿐.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길드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할 것이라고.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이용해먹으려고.

‘이 개새끼가······!’

평생을 무능력자로 살아왔던 주제에, 언제나 자신의 밑에서 빌빌 기던 주제에. 이제 막 이능력을 얻었다고 기고만장해있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위혼이 이를 드러내어 뿌득 갈자, 류진수가 그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 있어? 위혼. 안색이 많이 안 좋아.”

“······!”

그건, 순수한 호의에서 나오는 물음이었다. 언제나 냉철하고, 언제나 칼같은 저 남자도 ‘자신의 테두리’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위혼 역시도 저 류진수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 있었다.

왜냐하면.

‘나나, 유서담이나. 네 눈에는 보호해야 될 존재라 이거지?’

류진수는 S랭크의 초능력자였고, 유서담은 무능력자였으며, 자신은 A랭크조차 최근에 달성하였으니까 그의 그런 마인드는 당연하였다. 그래서 그가 더욱 더 역겹게만 느껴졌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표정을 드러내선 안 된다. 상황이 최악이지만, 어떻게든 방법은 있을 것이다.

위혼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서담 또한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따라서 일어났다.

“저도 화장실 좀 다녀오죠.”

< 하렘의 대원칙(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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