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색 마녀의 도서관(3) >
“······방금 뭐였지?”
백색 마녀의 도서관은 내 심상 세계다. 즉, 나와 내 스킬의 일부인 마녀 관리인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있을 수 없다는 의미. 그런데 누군가의 인기척, 아니 정확히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나 고개를 돌렸을 땐 아무도 없었다.
기분탓? 그렇다고 하기엔 내 재능에 직감A와 기민A가 있으며, 스킬에도 [육감 (F)]가 있다. 이 정도쯤 되면 기분탓이란 게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곳은 현실과 일부 연결 된 공간.>
<시간과 공간을 간섭할 수 있는 자는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런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시선은 말끔히 거둬진 상태. 의뢰인도 문제는 없다고 덧붙여 말하니, 더 이상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도 당장 중요한 건 E랭크의 서고로 향하는 것이었으니까.
“가자.”
혼란스럽게 뒤죽박죽으로 변했던 세상은 마녀 관리인 시스템이 사라지고나자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내 눈앞에는 E랭크의 서고로 향하는 문이 대문짝만하게 서있었는데, 출입 자격을 얻었다지만 들어가서 무사할 수 있으리란 보장까지는 없어서 긴장이 되었다.
[스킬 ‘정신 집중(S)’을 사용합니다.]
심호흡을 한 뒤, 천천히 E랭크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다.
그러자.
[이곳은 진정한 마녀만이 출입할 수 있는 장소.]
[당신의 정신이 마녀화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집중력이 E랭크 서고의 마녀화를 버텨냈습니다.]
[당신의 육신이 마녀화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가장 우려했던 게 이거였다.
정신력은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였으나, 육체적으로 버티기가 힘들다는 것. 마녀의 육신은 아름답고 오래 살 수 있으며 마법의 사용이 최적화가 되어있지만 기본적으로 여체가 베이스라서 내게는 꽤 곤란한 일이 발생할 수 있으며, 가장 중요한 점으로는.
시력을 전부 잃게 된다.
[마녀는 세상을 두 눈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지간한 마녀는 ‘마녀 사냥’에 무력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저 시력이 없는 여자를 찾아내어 죄다 죽여버리기만 하면 간단하지 않겠는가?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오른 마녀라면 마음으로 세상을 내다볼 수 있다지만, 그래봐야 초음파 탐지 정도일 것이다. 다시는 세상의 빛과 색을 볼 수 없게 된다는 의미.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므로, 육체적으로 마녀화가 되지 않기 위해 온몸의 마력을 끌어내어 저항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파직, 파지직!
몸을 타고 전류같은 무언가가 흐르기 시작하였다. 백색 마녀의 도서관이라는 내 스킬자체가 내게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 몸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조금씩 깎아내어 더욱 마녀답게 만들려고 말이다.
‘하지만, 약해!’
아직까진 고작 E랭크인 덕분인지 몰라도 버틸 수 있었다. 다리 아래부터 서서히 백색 마녀의 도서관이 나를 마녀처럼 깎으려고 시도하고 있었지만, 전부 쳐낼 수 있었다. 부작용이 하나 있다면 피부쪽은 버텨낼 수 없다는 점. 체내의 변화를 막아내는 것도 벅찬데 외부까지 막는 건 힘들었다.
백색 마녀의 도서관이 사타구니를 타고, 복부를 올라, 심장을 거쳐서 마침내 머리까지 도착했을 때.
내 온몸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벼락에 맞은 것처럼 저릿저릿한 감각이 파고들었다.
그러나.
버텨냈다.
[육체의 마녀화를 일부 저항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스킬 ‘백색 마녀의 도서관(F)’의 랭크가 E로 상승하였습니다.]
그렇게, 눈을 떴을 땐.
-마녀야. 눈동자가···.
“어······?”
내 눈동자가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이었다.
머리카락이나 다른 부분도 괜찮았으며 신체 기능이나 시력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눈동자가 새하얗게 물들어버릴 줄이야.
“그래도 뭐···. 이 정도면 렌즈로 커버할 수 있는 정도겠네.”
다만 걱정되는 건, 격렬한 싸움 도중 발산되는 마력을 렌즈가 버텨낼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다는 것이지만 생명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문제는 없어 보인다.
가슴을 진정시킨 나는 E랭크의 서고를 둘러보았다.
“더럽게 넓네.”
F랭크의 서고도 10%쯤 읽었을까. 그 정도만 해도 솔직히 충분히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E랭크의 서고는 F랭크보다 10배쯤 더 책의 양이 많았다.
게다가 이곳에는 단순히 마법서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마녀의 유언]
“이건 또 뭐야?”
마녀의 역사나 마녀와 관련된 능력 등이 기록된 책이 꽤 많았다. 인간처럼 감성적인 책은 전혀 없이, 그저 무뚝뚝하게 기록만을 해뒀을 뿐이었지만.
-좋아···.
“그렇게 좋냐?”
-으응.
나는 몰라도, 아마 이 화분이 이곳의 책을 전부 읽어치울 것이다.
일단 E랭크의 서고에 들어왔는데 그냥 나가는 것도 섭섭해서 이곳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 이건······.”
그리고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F랭크는 정말로 맛보기에 불과했다. 솔직히 F랭크의 서고에 보관된 마법조차도 비비안타 아카데미의 고등 마법의 수준이었는데 말이다.
“이런 마법이 있었다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마법서를 읽던 나는, 문득 이상한 책을 발견했다.
[마녀의 계승에 대하여]
“뭐야 이건?”
마녀란 드래곤과 함께 ‘마법’이라는 이능 과학을 창조한 존재. 그들의 계승이라는 단어에 혹하여 책을 펼쳤다.
[마녀는 아주 간혹, 정말로 아주 간혹 후손을 둔다.]
[그런 경우에는 보통 필요에 의해서이다.]
[사랑을 나눌 ‘필요’를 찾았기에.]
[자신의 후손에게 무언가 전달한 ‘필요’를 찾았기에.]
[그래서 마녀는······.]
쓸데없는 내용은 죄다 집어치웠다. 어차피 이 책을 전부 읽을 생각도 없었으니까. 책장을 촤르륵 넘기던 나는 문득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하고선 멈췄다.
[마녀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이에게는 ‘예언’의 힘을 물려주고는 하였다.]
[하지만 이 예언의 힘에는 부작용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마법을 전혀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것.]
[미래를 어설프게나마 내다볼 수 있게 된 대가로 마녀는 시력과 마법을 모두 잃은 채, 평생 남에게 의지해가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예언이라······.”
참으로 미묘한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면, 지구에도 예언가가 한 명 있다고 들었다. 물론 그 예언가의 성별조차 모르기에 무조건 마녀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예언과 관련된 신화는 차고 넘쳤으니까. 당장 눈알 하나를 후벼 파서 3초 뒤의 미래를 볼 수 있게 된 신화가 북유럽에도 존재했고.
하지만 썩 흥미가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그 뒤로도 나는 마녀의 계승에 대해 한참이나 책을 읽다가 다른 책도 집어서 꺼내 읽었고, 그것이 마법서든 마녀의 역사든간에 상관없이 죄다 줄줄이 읽기 시작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내 옆에서 어느덧 평범히 걸어다니며, 저 스스로 책을 꺼내 읽고있는 정령을 눈치 채지도 못한 채.
그렇게 한참이나 책 속의 세상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
“이제 돌아가려는 것이냐?”
“예.”
로스티슬라프 대륙의 세계관에 머문지도 벌써 세 달째.
이제는 미스클렌의 가르침도 충분히 전수받았다.
검과 마법.
모든 게 고루 발전할 수 있었던 아주 보람찬 세 달이었다.
“그렇구나. 그래, 고향으로 가는 건가?”
“그렇죠.”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다만, 네 고향은 어디에 있느냐?”
“글쎄요. 엄청 멀리 있을 겁니다.”
“그래. 알았다.”
미스클렌은 시원스레 웃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그녀는 굉장히 잘 웃는 성격이었다. 말붙임성이 없어서 그렇지 친해지면 아주 밑도 끝도 없이 친해지는 타입이었다.
“나도 여행을 떠나야겠구나.”
“어디로 가십니까?”
“내 수준이 높아졌으니, 나를 위협하던 놈들을 죄다 짓누르러 가야지.”
어지간히 수준이 높은 검사는 자신의 경지를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미스클렌은 주인공과 엮이는 바람에 그 ‘보정’이 어느 정도 스며들었고 또한 그것을 아주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실력자였다.
능력치의 재분배. 단순히 그 행위만으로 미스클렌은 경지가 무려 한 단계나 높아진 것이다.
그녀는 기다란 검을 등에 매더니 내 어깨를 툭, 쳤다.
“내가 가르친 검술로 어디 가서 처맞고 다니지만 말아라.”
“에이, 그럴 일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살짝 웃었고.
각자 등을 돌려 갈 길을 떠났다.
미스클렌은 세상 어디를 방랑하여 또다른 강자를 찾기 위해.
그리고 나는, 원래의 세계로
[원래의 세계로 귀환합니다.]
[세계의 시간배속이 정상회되었습니다.]
눈을 뜬다.
원룸이었다.
문득 누군가를 찾기 위해 옆을 둘러보았으나 여전히 없었다. 스마트폰을 꺼내어 소식을 확인해보니, 테일러 나인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월드 스타이자 팝의 여신 ‘헬로니’의 호위를 하고 있단다.
[테일러: 야 이새끼 내한 공연 한대!!ㅋㅋ]
[테일러: 곧 한국감 ㅅㄱ]
“헬로니라······.”
문득 그녀에 대한 생각이 잠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으나,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헌터를 그만두었고 나는 그것에 대해 전혀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자신의 미래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내 꿈이 헌터에 남아있는데 남들이 헌터의 길을 떠나갔다고 해서 나무라는 건 이기적인 일이다.
그렇게 메신저에 ‘파견 중’이라 떠있던 상태 메세지를 ‘파견 종료’로 바꾼 뒤 몇몇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자.
지이잉!
누군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위혼: 서담. 정말 오랜만이다. 요새 연락이 왜 이렇게 뜸해? 하하. 요새 가끔 네 생각이 나더라고. 나 지금 한국이야. 만나서 커피나 한잔 할까?]
위혼. 그 이름에 나는 표정을 찌푸렸다. 나와 함께 헌터를 시작한 8인의 멤버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끝을 맺었던 놈이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위혼.
저 자식이 나를 버렸다.
‘헌터 그만두고 어디 가서 사업한다고 듣긴 했는데······.’
그것도 아마 헌터와 관련된 길드였던가 아무튼 그랬을 거다. 내가 요새 이름값이 높아지고 있자 관심이 간 모양.
사람의 심리는 디지털 화면 너머로도 사실인 것일까. 척 봐도 위혼은 뭔가가 급해보였다. 최근, 사업이 잘 안 되고 있는 모양. 나한테 연락을 할 정도로 절박해진 것이다.
그러나 가볍게 읽고 씹는다.
그리고 다른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류진수’에게서 연락이 와있었다. 류진수 역시 8인의 멤버 중 한 명이다.
류진수는 테일러와 함께 내가 병상에 드러누웠을 때도 자주 한국으로 병문안을 와주었던 고마운 친구 중 한 명이다. 류진수는 옛날부터 초능력이 없는 나를 무슨 보물단지라도 되는 마냥 끔찍하게도 챙겼고, 나는 내심 그 점이 불편했기에 지금까지도 살짝 거리감이 있는 편이었다.
[류진수: 서담. 이번에 만나서 커피나 한 잔 마실까?]
[류진수: 시간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류진수는 소규모 길드지만, 꽤 유명한 헌터들을 부리는 마스터로서 꽤 잘나가는 것으로 알고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중요한 점이 있다면, 류진수와 위혼의 사이가 더럽게 안 좋다는 점.
나는 그 사실을 생각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둘 다 길드를 운영하고 있으니, 어쩌면 내 길드에 도움이 될만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유서담->위혼: ㅇ]
[유서담->류진수: 안바쁘지. 언제 볼까?]
그래서, 둘 모두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
“왜 못나가는 건데요!”
예카테리나가 소리치자, SS랭크의 초능력자 알파가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정작 예카테리나를 가로막는 여인은 눈을 감은 채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테리나. 우리는, 지구인은 네 힘이 필요해. 너는 세상의 재앙을 유일하게 미리 내다볼 수 있잖니. 네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미래의 재앙을 볼 수 없으면, 어떻게 되겠니?”
예카테리나는 그 말에 주먹을 움켜쥐고선 부르르 떨었다.
거짓말이다.
저들은 자신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세상에 예언을 공표하여, 자신들의 입지를 굳건하게 굳히고 돈과 명예를 쓸어담으며 자신들 없이는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억지 협박을 하고있을 뿐이었다.
사실은.
예언따위 없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
100개의 예언 중 99개는 인간들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으니까.
예카테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사방에 깔려있는 ‘부적’들. 저건 과학이나 초능력의 산물이 아니었다. 세상에는 전혀 공개되지 않은 ‘마법’의 부산물들. 그리고 눈앞의 저 여인 또한 부적, 즉 마법을 다룰 수 있는 특이능력자 중 한명이었다.
저것 때문에.
고작 저따위의 부적 때문에, 나갈 수 없었다.
‘나는, 내 힘이라면. 저런 것쯤은······!’
분명히 머릿속으로는 저 얄팍하고 조잡스러운 부적을 가볍게 찢어버릴 수 있는 힘이, 지식이, 원동력이 솟구치는데 몸은 그걸 할 수가 없었다. 예카테리나는 그것을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자신은 ‘저들’과 같은데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가. 어째서 저들은 미래를 볼 수 없고, 자신만 볼 수 있는가.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예카테리나. 그러니 돌아가렴. 너는 세상을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이 너무 많단다.”
완벽한 통제였다. TV도, 라디오도, 신문도, 휴대폰도. 외부와 연결되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나는 모스크바의 차디찬 구석에 처박혀서 예언이나 생산하는 기계란 말이야?’
알파가 그녀의 어깨를 살짝 부여잡았지만, 예카테리나는 그 손길을 뿌리치고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이 100평 정도의 공간 정도는 이제 30년 남짓이나 살았으므로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의자에 털썩, 앉은 예카테리나는 손을 천천히 뻗었다.
예언의 힘을 얻고, 모든 시력을 잃은 그날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칠 수 없었던, 아버지가 물려주신 피아노가 그녀의 손끝에 선명하게 자리하였다.
건반을 눌러보았지만, 그곳에서는 더 이상 아릅답지 않은 소음이 흘러나왔다. 예언의 힘을 얻은 대가로 그녀는 더 이상 음악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예언의 힘을 얻은 대가로.
예언의 힘을 얻은 대가로.
그 대가로. 예카테리나는 잃어버린 게 너무나도 많았다.
침대로 돌아와 푹 눌러앉은 그녀는 무릎을 끌어안고서 머리를 콕 박았다.
그대로 스르륵 잠들며, 그녀는 꿈을 꾸었다.
오늘도 악몽이었다.
< 백색 마녀의 도서관(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