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한루프의 딜레마(2) >
살짝 엿 된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회귀를 이 시점에서 한다고?’
분명 ‘줄거리’에서는 이미 회귀를 한 것으로 명시되어있어, 이대로 죽이면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간과했던 사실. 이 세상에는 ‘회귀’의 종류가 참으로 다양하다.
<주의하십시오.>
<주인공의 ‘회귀’가 무한 루프 타입으로 추정됩니다.>
‘······루프라고?’
<죽더라도 무한히 시간을 되돌려 살아난다는 뜻입니다.>
‘뭐?’
표정이 싸늘하게 굳는다.
아도넨은 검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쩐지. 왜 저 정도의 실력밖에 안 갖추고 있었으면서, 대놓고 거리를 틀어막고서 이 근방에 있는 사람들 전체에게 시비를 걸고 있나 했다. 그는 자신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강자를 찾아서 죽임을 당하고 ‘검로 강탈’을 이용해 서서히 능력을 빼앗으며 회귀를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상대방은 자신의 검로가 빼앗긴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그렇게 몇 회차가 지나가면 아예 모든 검을 잃어버릴 것이다.
검이 전부인 이 세계에서, 검을 완전히 상실한다는 것.
그것은 포식자에서 피식자가 된다는 의미였다.
‘무한 루프라니···.’
<무한 루프 또한 요새 자주 사용되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들어보신 적 없으십니까?>
‘있기야 있지. ······사랑의 블랙홀?’
<그건 반세기도 더 전에 나온 영화입니다···.>
최근, 내가 사냥하는 주인공들이 하나의 트렌드와 클리셰를 따른다는 사실을 알고서 꽤 열심히 공부를 하긴 했다. 회귀, 환생, 빙의를 비롯하여 여러 장르를 말이다.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때려 치고서 전장을 전전한 지도 16년.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체육관 혹은 던전에 틀어박혀서 살던 나였기에 영화나 소설을 볼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여, 모든 장르를 전부 공부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몽환의 섬을 비롯하여 몇몇 장르는 아예 모르던 세계이기도 했으니까. 그땐 문제가 전혀 되지 않았지만, 지금 여기서 ‘무지(無知)’는 너무 큰 실책으로 다가왔다.
···물론, 위의 말은 전부 변명일 뿐이다.
조금 더 신중했더라면.
나보다 약하다고 판단하여 곧바로 달려들지 말고, 하루나 이틀 정도의 시간을 두었더라도 금방 저 주인공이 무한 루프 타입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건 명백한 내 실수였다. 항상 궁지에 몰린 쥐새끼처럼 필사적으로 나를 잡아먹으려는 고양이와 싸우려다가 난생 처음 고양이의 힘을 가지게 되어 자만했다. 내가 싸우는 대상은 고양이만 있는 게 아니라 늑대도 있고 호랑이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영화 속, 소설 속 무한 루프와는 달리 현실의 무한 루프에는 반드시 약점이 있기 마련.>
<당신은 그 약점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그래. 고맙다. 너 근데 요새 좀 친절하다?’
<저는 원래 친절했습니다.>
내가 가만히 서있자, 아도넨이 말했다.
“뭐야, 안 덤벼?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너, 나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있냐? 날 다짜고짜 죽인 이유가 궁금한데.”
그러나 굳이 대답을 해서 회귀 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단 사실을 알려줄 필요는 없어 보였다.
“무슨 헛소리야?”
“흠···. 뭐, 됐다. 내가 길을 막고 있던 게 아니꼬왔나 보지.”
그러면서 아도넨이 달려들자, 나는 나도 모르게 에테르 블레이드를 치켜들 뻔했다.
‘검을 휘두르면, 그 궤적을 빼앗아간다 이건가······.’
검을 아예 안 쓸 수는 없다. 그러나, 검을 대신해서 쓸 무기가 내게는 너무 많았다.
주르륵!
“···뭐야?”
바닥의 마찰력을 아주 살짝 제거하여, 마치 스케이팅을 타듯 뒤로 미끄러졌다. 이윽고 인벤토리에서 수류탄 몇 개를 꺼낸 다음 허공에 손을 뻗어 콱! 움켜쥐자 수류탄들이 사방으로 비상하더니 빙글빙글 회전하였다.
아직까지는 가벼운 수류탄만을 바람을 띄울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삐삐삑!
콰앙!!
핀을 시간차로 뽑아서, 하나씩 하나씩 아도넨에게 던진다. 수류탄만 하더라도 살상력은 대단한 수준이지만, 51레벨의 적에게는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그러니 그것을 최대한 전략적으로 사용한다.
펑, 퍼펑! 콰아앙!!
수류탄이 시간 차로 연달아 터지며 아도넨의 길을 가로막을 무렵. 여유롭게 메가 슈터를 꺼내서 장전까지 완료한 나는 가볍게 자리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화분에 의해 바닥에 생성된 ‘점핑 트램폴린’ 마법이 내 몸을 튕겨주어 꽤 높은 곳까지 도약할 수 있었던 나는 지붕에 그대로 안착하여 아도넨을 향해 총알을 갈겨댔다. 연발은 불가능하지만, 3발씩 점사를 하는 건 가능하다.
“이, 미친···!”
이 정도로는 놈을 죽일 수 없다. 애초에, 에테르 블레이드 몇 번 휘두르면 죽일 수 있는 놈에게 이런 짓거리를 해야 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검을 빼앗기는 것보다는 낫겠지.
이럴 때는 나한테 검술 말고도 마법과 과학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가 슈터에 ‘실드 브레이커’ 탄환을 장착하여 그대로 발사.
투슝!
······콰쾅!!
“큭!”
적의 방어력을 위주로 무력화시키는 탄환에 적중되니, 놈의 몸을 감싸고 있던 마력의 코팅이 잠깐이지만 사라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서 서둘러 아도넨에게 접근하자, 놈은 설마 내가 가까이 다가올 줄은 몰랐는지 두 눈동자를 크게 떴고.
착!
그런 아도넨의 이마에 ‘에테르 방사탄’을 부착.
발차기로 놈의 복부를 밀어서 아래로 떨어뜨린 뒤, 버튼을 누르자.
콰콰콰쾅!!
온 사방을 뒤덮을 폭음과 함께, 메세지가 떠올랐다.
지직!
[현재 시각: 제국력 712년 2월 18일 19시 13분]
[······세계선이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스킬 ‘주인공 사냥꾼 Lv. 3’이 발동되어, 세계선의 변화를 감지합니다.]
[주인공 아도넨이 스킬 ‘지정회귀(URS)’를 발동하여, 11시간 01분 전으로 회귀합니다.]
[현재 시각: 제국력 712년 2월 18일 8시 13분···]
지직!
[현재 시각: 제국력 712년 2월 18일 19시 14분]
[A74 세계선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일단은 죽였다.
그러나, 마땅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주인공 아도넨이 ‘검로 강탈(SS)’을 발동합니다.]
[검로 강탈(SS): 자신을 죽인 자의 검술을 분석 및 파악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진행도: 2.80%]
검을 꺼내지도 않았음에도 놈의 진행도가 살짝이지만 올랐다.
게다가.
[주인공 아도넨이 스킬 ‘패턴 분석(A)’를 발동합니다.]
[적의 공격에 신체가 서서히 적응을 합니다.]
놈은 검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공격에 대해 완벽히 대응을 할 수단이 있는 모양.
“후우···. 너, 사술을 쓸 줄이야. 하지만 이제는 알았으니 됐다. 네 검술은 필요 없다. 죽어라.”
주인공이 또다시 내게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이전에 사용했던 종류의 무기를 아주 똑같이 사용해서.
놈을 죽였다.
[A75 세계선으로 이동합니다.]
*
죽이고, 또 죽였다. 마땅한 수가 생각날 때까지.
의뢰인은 분명 무한 루프의 주인공 또한 죽일 방법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놈을 계속 회귀시켜서, 아기로 만들어 버리는 전략을 생각했다.
그러나.
[주인공 아도넨이 스킬 ‘지정회귀(URS)’를 발동하여, 11시간 01분 전으로 회귀합니다.]
[현재 시각: 제국력 712년 2월 18일 8시 13분···]
지직!
[현재 시각······.]
아도넨이 회귀해서 돌아가는 시간은 반드시 정해져 있었다.
712년 2월 18일.
오전 8시 13분.
아도넨은 죽을 때마다 저 시간으로 되돌아갔으며, 놈과 내가 조우하는 시간은 점점 더 그 시간으로부터 멀어졌다.
‘차라리, 포획해서 늙어 죽도록 만들어야 하나?’
그리 생각하여 사지를 절단한 뒤 입을 틀어막아서 자결을 금지하는 데까지는 성공하였으나.
애초에 늙어 죽을 때까지 키운다는 건, 결국 뭔가를 먹여야 한다는 것. 뭔가를 먹이기 위해 입을 벌리는 순간 곧바로 혀를 깨물어버릴 것이라는 생각에 시도조차 못해봤다.
심지어 놈은 패턴을 파악하는 종류의 스킬을 통해 내가 사용하는 무기류를 더욱 더 완벽하게 읽어내고 있어, 상대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졌다. 물론 아도넨에게 선보인 장비가 아닌, 또다른 장비를 사용하면 상대하기 쉬워지겠으나.
[A98 세계선으로 이동합니다.]
그럼 놈을 반복해서 사냥하는 이유가 없다.
[A99 세계선으로 이동합니다.]
“씨···발 새끼. 정말 도움이 안 되는군···.”
그렇게 놈을 20번도 더 넘게 죽이고, 99번째 세계선으로 이동했을 때.
내가 놈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단 하나뿐이었다.
‘아도넨 또한 정신적으로 지친다.’
그것뿐.
그러나 그건 별로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도 점점 더 지쳐가고 있었으니까.
11시간이라는 텀을 두고서 쉬는 아도넨과는 달리, 나는 싸우고 또 싸우고 끊임없이 싸웠다. 결국 에테르 블레이드를 다시 꺼내들 수밖에 없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고. 검로가 강탈당하는 것조차도 감안 할 정도로 난 지쳐있던 것이다.
하지만 전장에서 10년이 넘도록 살아왔던 몸. 고작해야 이 정도로 나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A100 세계선으로 이동합니다.]
그렇게, 100번째 세계선으로 이동했을 때.
“······안 오나?”
아도넨이 더 이상 나를 찾아오지 않게 되었다.
*
다음날이 되었다.
이 세계에 맞는 화폐가 없던 나는 근처에서 노숙을 한 뒤, 인벤토리에서 빵을 꺼내서 우적우적 씹었다. 잠잘 곳은 없어도 먹을 건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현재 시각: 제국력 712년 2월 19일 7시 19분]
아직은 하늘이 어둑어둑했다. 이 세상의 일출은 지구보다 한 시간은 이른 모양이었다.
아도넨은 그 시간 동안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에테르 블레이드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을 한 듯싶었다. 물론 날 죽일 듯이 쳐다보던 그 눈빛만 보자면, 언제든지 다시 찾아와서 덤빌 것 같긴 했지만.
생각할 시간은 충분히 주어져서 좋았다만, 아직도 별다른 단서가 없었다.
죽을 때마다 무한히 회귀하는 회귀자를 대체 어떻게 죽이느냐.
애초에, 육체적으로 죽이는 게 가능은 한가?
‘아도넨이 정신력이 약한 건 알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도시 중심부로 나가자, 어느 결투장에서 키가 180cm는 될 것 같은 장신의 여검사에게 도전하는 아도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친놈. 정말 쉴 틈 없이 활동하는구만.”
챙! 채앵!!
51레벨의 아도넨.
장신의 여검사.
애초에 싸움이 되질 않았다.
여검사는 강했다. 너무 강했다.
그저 한 손으로 가볍게 검을 흔드는 것만으로도 아도넨은 이리 나가떨어지고, 저리 나가떨어졌으니까. 하지만 아도넨은 끊임없이 여검사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죽여달라는 것처럼.
놈의 스킬을 알고있는 내게는 너무나도 속이 뻔히 보이는 행위였지만, 여검사에게는 당치도 않는 모양이었다.
“약하구나. 더 정진해서 돌아오도록.”
애초에 여검사는 아도넨같은 초보를 죽일 생각이 없던 것이다.
그녀는 검의 옆면을 세우더니 자신에게 달려드는 아도넨의 뺨을 후려쳤다.
쩌억!!
“···컥!”
그대로 날아가, 바닥을 나뒹구는 아도넨.
충격이 꽤 컸던 것인지 그는 바닥에 쓰러진 채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비틀거리며 일어나자 여검사의 표정이 굳었다.
[조연 미스클렌이 스킬 ‘철혈의 검로(SS)’를 발동합니다.]
“그래, 그 의지는 봐줄만 하구나.”
“허억, 헉······.”
어느덧 해가 떠올랐다.
[현재 시각: 제국력 712년 2월 19일 8시 49분]
일출이었다.
하늘에 떠오르는 햇빛을 만끽하며, 아도넨은 바보처럼.
소리 없이 웃더니.
예고 없이 여검사에게 달려들었고.
뎅겅!
······그대로 목이 베여, 죽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친구는 또 하루를 기다리겠군.’
[주인공 아도넨이 스킬 ‘지정회귀(URS)’를 발동하여, 0시간 01분 전으로 회귀합니다.]
또다시 놈이 회귀하였다.
[현재 시각: 제국력 712년 2월 19일 8시 49분···]
지직!
[현재 시각: 제국력 712년 2월 19일 8시 50분]
“······어?”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19일? 18일이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서 다시 결투장을 내려보니.
여전히 눈앞에, 똑같은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도넨이 미스클렌에게 달려들고 있는 그 장면이.
놈이 재차 달려든다.
목이 베인다.
[주인공 아도넨이 스킬 ‘지정회귀(URS)’를 발동하여, 0시간 01분 전으로 회귀합니다.]
[주인공 아도넨이 ‘검로 강탈(SS)’을 발동합니다.]
[진행도: 3.97%]
달려든다.
목이 베인다.
[주인공 아도넨이 스킬 ‘지정회귀(URS)’를 발동하여, 0시간 02분 전으로 회귀합니다.]
[진행도: 4.13%]
달려든다.
목이 베인다.
[주인공 아도넨이 스킬 ‘지정회귀(URS)’를 발동하여, 0시간 07분 전으로 회귀합니다.]
[진행도: 5.79%···]
아도넨이 돌진하고, 미스클렌이 목을 베어내는.
그 수십, 수백 번의 장면이 불과 몇 분 안에 내 눈동자에 담겼다.
끊임없이 시간을 반복하여 점점 더 강해져, 1분 1초씩 오래 버틸 수 있게 된 회귀자.
끊임없이 시간을 반복하며 점점 더 힘을 빼앗기는 조연.
갈수록 회귀자는 체력을 회복하였지만, 조연은 점차 지쳐갔다.
“무, 슨······.”
미스클렌이 검을 점점 더 무거워한다는 것을 여기서도 알 수 있었다. 깃털처럼 가볍게 휘두르던 검이 이제는 철근처럼 느껴질 것이다.
검을 휘두르려다가도, 주춤.
자신이 어떻게 검을 휘둘렀는지를, 하나씩. 하나씩.
잊어버렸다.
[A134 세계선으로 이동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째서인지 미스클렌의 키가 작아졌으며 근육마저도 빠지고 있었다. 반대로 아도넨의 근육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덩치도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이 상황은, 일종의 주인공 보정이었다. 조연 미스클렌은 아마도 이 세계관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였을 터. 그런 강자를 ‘아주 우연히 만나게 된 주인공은’ 조연의 힘을 빠른 속도로 흡수해나가며 무지막지한 성장력을 보이는 것이다.
아마 이대로 100회차가 지난다면 아도넨이 미스클렌을 압도할 것이며, 거기서 100회차가 더 지나간다면······. 승패가 결정날 것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는 메가 슈터를 장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한 회귀자의 약점 두 개를 모두 파악했다.
< 무한루프의 딜레마(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