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가 알고보니 달마지존(3) >
한국 초능력 아카데미는 전 세계에서 그 규모가 TOP 3 안에 들어갈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이 비좁은 땅덩어리에 어떻게 그만한 크기가 나오냐, 하면 바로 서해안의 바다 위에 섬 하나를 아예 통째로 지어버렸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대답하겠다.
새하얀 대리석 같은 섬. 그 위에 세워진 웅장한 성처럼 보이는, 실상은 빌딩 여러 채가 합쳐진 이 초능력 아카데미의 도시 ‘세김’은 새로 만들어진 순우리말이랍시고 당시의 대통령이 밀고 나가던 단어였다.
사람들은 삼겹살과 김치를 합쳐서 만든 말이 아니냐며 비꼬아서 부르긴 했다만, 결론적으로 몇 년이 지난 지금 세김이라는 이름은 전 세계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되었다.
유능한 초능력자 교수진.
헌터가 되고자 하는 초능력자들.
혹은, 그저 세김 초능력 아카데미의 졸업증을 노리고 온 일반 학생들.
도합 인구 500만.
거대 규모의 이 신도시에서도 가장 큰 ‘세종 초능력 학교’에는 이동준의 딸, 신혜지가 재학 중이었다.
‘학부모 참관이라.’
자녀가 초능력을 얼마나 훌륭히 다루는지 보러 오라며, 혹은 우리가 이토록 뛰어난 초능력자를 양성했다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아카데미에서는 년에 한번씩 ‘학부모 참관’이라는 연례행사를 한다.
그냥 학부모 참관과는 달리, 실제로 재학중인 초능력자들이 결투를 벌인다는 방식을 채택했기에 이날은 각 대기업과 길드에서 유망한 인재를 찾기 위해 달려오는 날이기도 했다.
이동준은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핏줄 하나 이어져 있지 않았으나, 그녀는 ‘계약’상 자신의 딸이다. 그리고 이동준 또한 신혜지를 자신의 가족이라는 울타리 내에 집어넣은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었고.
그런 신혜지에게는 안타까운 꿈이 하나 있었다.
바로 초능력이 없으면서도 ‘헌터’ 지망생이라는 사실이었다.
몇 번 포기하라고 말은 던져보았지만, 신혜지는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마음이 흔들려버린 이동준은 ‘인연을 맺지 말라’는 금제를 어긴 데에 더해 ‘무공을 전파하지 말라’는 금제까지 어겨버리고 말았다.
-아야, 그러면 안 된다.
신혜지가 다른 강체 능력자와 결투를 하는 것을 보고있던 이동준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내 그토록 말했거늘. 어째서 금제를 어기느냐.
‘제가 걸어놓은 금제입니다.’
머릿속에서 말을 거는 이의 정체는 다름아닌 달마. 더 정확히는 ‘지구 출신’의 달마였다. 이동준이 우연찮게 달마의 유물을 손에 쥐는 것을 기점으로, 수많은 지구인들이 중원 무림으로 소환되었다. 모두가 혼란에 빠져있을 때, 이동준만큼은 이 머릿속의 달마 덕분에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적응하여 높은 성취도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런 이동준의 꿈은 바로 지구로의 귀환.
하지만, 지구 출신의 달마는 지구에 무공이 퍼지기를 두려워했다.
한때 지구에 무학을 전파하여 누구나 무공을 쓸 수 있도록 만들었던 달마는, 그들이 힘에 심취하여 결국 세상이 피로 물들게 되는 것을 보고서 그 힘을 모두 거둬들였던 것. 그 과오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 마음은 설령 몬스터가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해도, 변치 않았다.
‘저만 돌아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동준은 그리 말했지만 그럴 수는 없다며 달마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돌아간다면, 모든 지구 출신 무림인 또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지구 출신 무림인에게 금제를 거는 수밖에.
그리하여 이동준은 그들을 모조리 찾아다녔다. 별것도 아닌 금제였다. 실제로 내공을 폐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니, 그저 신체에다가 ‘무공을 사용하거나 인연을 만들면, 달마 지존이 찾아간다’라는 금제였다.
즉.
이 금제에는 빈 구멍이 하나 있다는 말.
바로 달마 지존, 이동준 본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금제였다.
-내, 너를 믿었거늘······.
‘······.’
이동준 또한 힘을 사용하거나 전파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평범히 살아가리라 다짐했는데.
‘세상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당신도 말끝마다 무량수불, 무량수불거리던 말버릇을 지우지 않았습니까.’
-예끼 이놈아! 몇백 년이나 살면서 어떻게 말끝마다 무량수불을 붙이는고! 내 말이 그뜻이 아니지 않는가!
‘상관없습니다. 저는 저를 위해서라면, 그리고 제 가족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생각이니까요.’
-···다른 무림인에게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 게냐?
만약.
이동준이 지구로 귀환해야만 한다면. 모든 지구인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달마는 그리 말했다.
‘제발, 내 딸과 남편이 중원에 남아있어.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 제발······.’
누군가는 자신의 자식을 끌어안으며 애원했다.
‘부탁이야. 그녀가 일주일 뒤에 돌아와. 한 번만 만나게 해줘. 제발, 고백이라도 해보고 싶다고······.’
누군가는 바닥에 머리를 찧었고.
‘난 지금 돌아갈 수 없어. 내 여자를 죽인 그놈에게 복수를 해야한다고!!’
누군가는 칼을 들이밀었다.
그러나, 이동준은 ‘신화경’의 경지에 도달한 무림 절대 고수. 결코 그 누구도 힘으로 꺾을 수 없었고.
결국 모두 강제로 귀환되었다.
한동안은 반발심을 이기지 못하고 무공을 남발하던 이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동준은 그들에게 찾아가 최대한 잔인한 방법으로 처리를 하였다. 내공을 폐하여 아예 폐인으로 만들거나 사지를 모두 잘라서 목숨만 붙여놓은 채 양아치들에게 던져놓기도 했다.
다시는 그 누구도 달마의 뜻을 거를 수 없도록.
-네 업보는 반드시 청산하게 되어있다. 모든 무림인이 네 실태를 알면, 얼마나 분노하겠느냐.
‘그럴 일은 없습니다. 얼굴을 바꾸고, 신분을 세탁했습니다. 무림인 그 누구도 저를 알지 못합니다.’
또한, 딸 신혜지에게 가르친 무공 또한 겉으로 보기에는 강체와 비슷할 정도의 수준이었으니까.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랬을 터다.
“······어라, 여기서 또 보네요?”
이동준은 표정을 굳혔다.
유서담.
DR이지만 무림인이 아닌 자. 그리고, 자신이 무림인이라는 사실을 유일하게 알고있는 자.
‘실수했다.’
당연히 그가 무림인이라 생각하여, 처분을 하기 위해 찾아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무림인이 아니었고, 괜히 정체만 들통난 꼴이 되어버렸다.
‘차라리 그때 죽였어야 됐나?’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살기를 쏘아붙이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만 같은 그 감각 때문에 검을 드는 것조차 불가능하지 않았던가. 상대방 또한, 자신의 그 ‘실력’을 믿고서 이렇게 찾아온 것일 테고.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확신.
그것이 못내 이동준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오, 따님의 실력이 아주 출중합니다. 초능력 아카데미의 학생 중에서도 단연코 탑을 유지하고 있다더니. 그냥 소문이 아니였군요.”
“······.”
“저 스텝 좀 보십쇼! 와우, 저는 저런 거 절대 못 합니다. 그 어떤 헌터가 저런 현란한 발재간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왜 찾아온 거지?”
이동준이 예민하게 쏘아붙이자 유서담이 진정하라며 손을 들었다.
“아니, 아빠들은 따님 칭찬하면 좋아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저는 그런 줄 알았는데요.”
“선을 넘지 마라, 유서담.”
“너무 그러지 마십쇼, 지존. 저는 당신의 고민을 풀어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
유서담은 싱글벙글 웃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신혜지가 몸을 가볍게 하여 상대방의 목검 위에 올라타 버리는 기행을 선보이고 있었다.
[조연 신혜지가 스킬 ‘일위도강一葦渡江(SS)’을 사용합니다.]
저런 건, 그 어떤 강체 능력자도 선보일 수 없다. 본래 초능력이 없던 신혜지는 그런 자신이 초능력자들을 짓누른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신난 것인지 이동준이 ‘화려한 기술은 절대로 선보이지 마라’고 했던 조언조차 잊은 채 마구잡이로 날뛰고 있었다.
물론, 어지간한 무림인이 본다고 하더라도 잘 알아보기 힘든 기술들이기는 했다. 일위도강이나, 달마여래검이나. 중원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전설 속의 무공이었으니까.
그러나 이곳에는 자신의 정체를 명백히 아는 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금제’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
“······원하는 게 뭐지?”
이동준이 뻣뻣하게 굳은 표정으로 묻자 유서담이 말했다.
“신혜지 양. 아마도 그 우월한 스펙 덕분에 여러 길드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겠죠?”
“······.”
“전부 거절하세요. 그리고, 제 길드에 따님을 맡기십쇼.”
“너의 뭘 믿고? 너는 이제 막 자그마한 길드를 창설했을 뿐이지 않느냐.”
“네. 맞아요. 하지만 따님이 졸업하는 몇 년 뒤에도 작으리란 보장은 없겠죠. 금제가 걸린 무림인들과는 달리, 저는 제 기술을 아낌없이 나눌 생각이거든요.”
그제야 이동준은 유서담이 자신에게 왜 접근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동준 씨. 저는 당신과 정말로 친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당신이 지존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무림 최강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당신에게 해가 될 일을 왜 하겠습니까? 제 진심을 믿어달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서 유서담은 손가락으로 신혜지를 척, 가리켰다.
“따님이 사용하고 있는 저 ‘초능력’······. 분명, 무림인들에게 들키면 골치가 아프겠지요?”
이동준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의 제자라고 한다면?”
“······!”
“저는 금제 없이 누구에게나 ‘이능력’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따님 또한, 지금처럼 힘을 숨기기에 급급하지 않아도 좋구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죠. 이동준 씨. 따님을 제 길드에 보내십시오. 제 길드는 비록 그 어떤 길드보다도 작다고 할 수 있겠지만······. 따님이 활동하기에는 최적의 길드가 아니겠습니까?”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만약, 유서담의 제자라면. 무공과 비슷한 기술을 세상에 선보였던 이 남자라면.
‘···정말 믿어도 되는가?’
중원 무림에서 숱하게 노려졌던 뒤통수였다. 이동준은 최대한 합리적으로 생각해보았다.
‘이 남자는 DR에 대해 잘 안다. 아마도, 이 사실을 세상에 밝히면 내 위치가 곤란해진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을 다물고서 내게 먼저 찾아와 이런 제안을 했다는 건······. 정말로 지존으로서의 내게 뭔가 원하는 게 있는가?’
짧은 생각을 마친 뒤. 이동준은 그에게 물었다.
“내게 원하는 게 뭐지?”
그러자 유서담은 눈 하나 깜짝 않고서 말했다.
“앞으로, 저를 노리고 찾아오는 놈들이 많습니다. 저는 저 스스로를 보호하기엔 힘이 턱없이 부족하던 차. 당신의 보호를 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모든 무림인이 원했던 가르침.
모든 헌터가 원했던 가르침.
그러나, 아무나 배울 수 없었던 그 ‘가르침’을 원하고 있었다.
“······지존의 가르침이 얼마나 무거운지는, 네놈도 잘 알고 있겠지?”
“예. 그래서, 당신의 곤란한 상황을 해결해드리러 오지 않았습니까. 그뿐만이 아니라, 저는 사회적으로 꽤 활동하기 편한 위치에 있습니다. 곤란한 일이 또 생긴다면 얼마든지 제게 말씀해주시지요.”
이동준은 생각했다.
유서담. 그는 지금의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조력자’가 아니던가? 초능력이 없어 한탄하던 딸에게 기껏 무공을 가르쳤음에도 제대로 그 힘을 펼칠 수도 없고, 들킬까 조마조마하던 이때. 기적처럼 나타난 유서담은 그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대신, 단지 ‘가르침’을 원하고 있다.
달마 지존의 가르침이란, 애초에 그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있는 너무나도 완벽한 ‘주인공 보정’이었다. 단지 이 가르침 한 번을 받고자 현 헌터 협회가 모두 그에게 살살 기어다니고 있지 않는가?
결국, 이동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하지만 내 딸에게, 그리고 내게 허튼짓이라고 했다가는······. 그대로 네 목을 베어버리겠다.”
“아휴, 물론이죠.”
결국 이동준은 자신의 딸 신혜지를 그에게 맡기기로 결정하였고.
뒤돌아 나오며, 유서담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것으로 그는 신혜지를 데리고 있음으로서 달마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달마의 가르침을 보장받았고.
그의 결정적인 약점을 손에 쥐게 되었다.
< 아빠가 알고보니 달마지존(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