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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52화 (52/251)

< 대균열(3) >

철원, 대균열에서 300m 떨어진 위치에는 임시 주둔지가 설치되어 있다.

기형던전의 경우에는 던전으로 진입하는 순간 모든 연락이 차단되지만, 대균열 현상은 내부로 진입하더라도 연락을 할 방법이 있기에 주둔지에서는 영상을 전달받아 현황을 체크하며 또한 전략을 수정해나가기도 하였다.

현재 임시 주둔지에 구비된 모니터의 수만 해도 50개.

각각 12개의 팀이 향하고 있는 12개의 협곡을 표시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는 파견나온 군부대 및 각 길드의 관리인들이 앉아서 끊임없이 태블릿으로 무언가를 체크해나가고 있었는데 표정이 영 좋질 못했다.

“폭풍이 문제였군······.”

순간최대풍속 초속 45m의 폭풍으로서, 어지간한 나무뿌리는 가볍게 뽑혀버리는 무지막지한 괴물 폭풍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초능력자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지만······.

‘폭풍 속에는 또 뭔가 알 수 없는 기묘한 에너지까지 담겨있군.’

전 헌터 협회 한국지부의 부지부장이자, 현 ‘온리 썰’ 길드의 마스터 비서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성호는 표정을 찡그렸다. 초능력자들의 에테르 발산을 방해하는 그 에너지는 세밀한 컨트롤과 출력을 방해하는 정도가 고작이었지만, 안 그래도 폭풍 때문에 정신이 없는 마당에 그런 악조건까지 더해진다면 몬스터가 출현했을 때 골치가 아플 수 있었다.

‘대균열은 어찌 항상 이런 모양인지······.’

옛날부터 대균열은 단 한 번도 쉬운 적이 없었다. 그나마, 폭풍이라서 나을 수도 있었다. 18년 전 남아공에서 발생했던 대균열의 내부에는 시도 때도 없이 낙뢰가 내리치는 바람에 아예 공략 자체가 불가능했고, 당시 어마어마한 사상자를 내고야 말았으니까.

‘음?’

모니터를 가만히 주시하고 있자, 헌터들도 목각은 아니라는 듯 각각 폭풍에 대한 대응책을 펼치고 있었다.

어떤 길드에서는 무지막지한 자금력을 통해 만들었던 ‘에테르 배리어 디스펜서’를 사용했는데, 50m 정도의 크기를 가진 반구형 에너지 실드를 이동식 기계로 발산할 수 있는 최첨단 기계였다. 바퀴가 달려있어 자동차처럼 끌고 다닐 수 있다는 아주 큰 장점이 있지만······.

‘······에너지 효율이 최악이야. 돈은 돈대로 깨지고, 정작 전투 도중에 사용할 수나 있는 건가, 저거?’

다른 팀을 살펴본다.

3팀의 지휘관이자 S랭크의 염동력자, 레아 미셸.

그녀는 SS랭크의 염동력자 ‘청’의 제자로서 20대 초반부터 그 입지를 단단히 굳히고 있는 유망주이자 38번째로 SS랭크를 달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있는 초능력자이기도 했다.

‘염동력으로 폭풍을 막아내고 있군. 과연, 대단한 출력이야.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갈까?’

그녀가 진짜 ‘청’이라면 모를까, 청의 기술만을 배운 S랭크의 염력으로는 폭풍을 하루종일 막아낼 수 없다. 레아 덕분에 팀원들은 조금 편하게 진행을 할 수 있었고, 가장 빠른 속도로 협곡을 탐색하고는 있지만······. 조만간 지휘관의 체력에 한계가 올 것이고, S랭크의 염동력이라는 중요한 능력을 전투에 사용할 수 없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가 된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다른 길드의 관계자들 역시 영 표정이 좋지는 않았다.

모니터를 빠르게 훑으며 각 팀의 대응책을 살펴보던 박성호는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짚자, 고개를 돌려 확인하였다.

“양호준?”

박성호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잘 정돈된 군복, 베레모에 박혀있는 한 개의 별은 그가 준장의 계급을 가진 군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양호준 역시 박성호를 보며 미소를 흘린다.

“성호,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이 자리에 나왔다는 사실은 못 들었다만.”

“이래저래 사정이 있어서 그렇지.”

어렸을 적부터 몬스터와의 전장에서 함께 구르던 그 둘은 각각 헌터와 군인의 길로 들어섰다. 한 명은 F랭크의 헌터로서 활동하다가 헌터 협회에 자리를 잡았으며, 한 명은 준장이라는 계급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그나저나, 자네. 조만간 별 하나 더 붙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이야기가 돌던 것도 벌써 3년이 넘었다. 오랜만에 만났다지만, 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직도 그대로란 말인가?

그에 양호준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옛날에는 정치를 잘하는 군인이 별을 단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았지.”

벌써 31년도 더 전의 시절이다.

“지금은 아니야. 이제는···. 진짜 무력이 없으면, 올라갈 수 없겠더라고.”

무능력자인 양호준이 원스타를 달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기적이었다. 기존에 자리를 잡고있던 무능력자 장군들은 모두 물러나는 추세였고, 초능력자들이 그 자리를 휘어잡고 있었으니까.

초능력을 가진 자들이 신분제의 최상위 자리를 차지한다. 이만큼이나 위험한 일이 더 있을까.

“···그렇지. 그러고 보면, 저번에 대령이 S랭크를 각성했다고 듣긴 했네만.”

“뭐, 그런 거지.”

양호준의 씁쓸한 표정을 보며 박성호는 표정을 굳혔다. 비단 그의 얘기만이 아니었다. 박성호 자신 또한, 초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헌터 협회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왔으니까. 초능력이 없으면, 이런 취급을 받는 세상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

그리 생각하며 박성호와 양호준은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뭔가 눈에 띄는 팀을 발견하였다.

“응?”

7팀이었다.

F랭크의 헌터가 지휘관이 되어서 여러모로 이야기가 많았던 팀.

신기하게도, 이 거친 폭풍 속에서도 지휘관 유서담은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듯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팀원들 또한 유서담 만큼은 아니더라도 폭풍의 영향을 아주 조금이지만 덜 받는 것처럼 보였는데, 간혹 괴수를 마주치더라도 초능력을 무난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저 폭풍의 특이한 에너지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뭐지? 저 팀.”

“무슨 디스펜서를 쓰는 건가?”

“그런 건 안 보이는데······.”

“저 빛은 뭐지?”

팀원들의 주변 바닥에는 새하얀 원 같은 것이 따라다니고 있었는데,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저 팀, 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7팀은 다른 팀과는 달리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는데, 그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모니터를 주시하던 늙은 헌터들이 혀를 쯧쯧 찼다.

“쯧. F랭크의 판단력은 나도 믿을만 하다고 생각하네만, 저 친구는 글러먹었군.”

“왜 저러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는데······. 10년 차 이상의 F랭크 헌터는 분명 냉정하고 현명한 판단력을 소유하고 있지 않았는가?”

이 자리에 있는 헌터들 또한 F랭크의 헌터가 10년 차 이상이나 살아남은 게 대단하다는 사실 정도는 안다. 그들의 생존본능과 그 짐승같은 판단력은 솔직히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유서담의 저 행동은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건 박성호와 양호준 또한 마찬가지였으나······.

‘···이유가 있겠지. 우선은 지켜봐야겠어.’

말을 아끼기로 했다.

*

-피곤해···.

“나중에 한잔 산다니까.”

-조아···.

몽환의 섬에 다녀온 이후, 나는 이 말 안 듣는 화분에게 명령하는 법을 깨달았다. 바로 알코올로 유혹하는 것. 일전에 약주를 하겠다고 땡깡부리는 걸 무시하다가 참다못해 한 잔 줘본 적이 있는데, 이게 알고 보니 은빛 정령의 꽃에게는 한 끼 식사와 비슷한 효과라는 것이다.

물론, 아무 알코올이나 써서는 안 되고 요정의 술처럼 깨끗하고 맑은 술을 줘야만 했지만, 마법을 간편하게 쓸 수 있다는데 그쯤이야 문제는 안 된다.

[스킬 ‘백색 마녀의 도서관(F)’이 발동됩니다.]

현재 나와 내 팀원들에게는 총 여섯 가지나 되는 마법이 둘러진 상태였다. 바람막이의 커튼, 중심잡이의 축복, 바람과 함께하는 시간, 바람의······. 어쩌고 등등.

당연하지만 나는 저 마법들을 공부한 적도 없다. 모조리 화분이 백색 마녀의 도서관을 통해 사용하고 있는 것. 마법의 검색 및 간섭은 도서관이 알아서 하고, 직접적인 마법의 시전은 화분이 알아서 해주니까 이렇게나 간편할 수가 없다.

이거, 따지고 따지면 결국 내가 마법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화분은 내 인벤토리에 여전히 박혀있는데, 내 눈으로 세상을 내다보며 마법으로 현실을 간섭할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고작 꽃의 상태에서도 이 정도인데 만약 완전히 개화하여 제대로 된 정령이 된다면 어떨까?

“팀장님···. 이게 대체 뭐죠?”

“초능력이랑 비슷한 거 있습니다. 나중에 설명해드릴게요.”

하급의 마법으로 제대로 된 보호막을 쳐줄 수는 없었으므로, 여전히 폭풍에 의해 숨이 막히고 시야가 차단되며 발이 천근처럼 무거운 건 똑같았다. 다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정도의 힘만을 부여했을 뿐.

그런 와중에 내가 폭풍 속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쭉쭉 앞서나가며 심지어 몬스터까지 모조리 처리하자 팀원들이 신기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초능력’이 아닌 힘이라고 몇 번 설명을 하긴 했으나, 충분한 설명은 아니었으므로 의문이 가득한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 폭풍은 오히려 내게 득이 되었다.

내가 가진 스킬의 능력은 ‘바람의 흐름을 타는 것’이었는데, 폭풍 또한 타고 이동할 수는 있다는 의미. 비록 몽환의 섬 특유의 잔잔한 바람을 타고 날아다닐 수 있는 행글라이더의 기술력을 빼올 수는 없었지만, 이 바람의 흐름을 타는 스킬을 얻은 것으로도 이미 천운이었다.

휘이잉!!

탁!

바닥을 박차고 힘껏 도약하자, 하늘 높이 몸이 부양한다. 키가 8m는 넘어갈 것 같은 눈알 여섯 개에 팔 네 개 달린 거인의 목을 가볍게 쳐낸 뒤, 놈의 목을 짓밟고서 바로 옆쪽으로 도약하여 팔이 열 개나 달린 박쥐의 등을 찌른다. 이윽고 절벽으로 몸을 날려 발을 질질 끌며 착지하자, 동시에 박쥐의 시체가 떨어졌다.

고작 D랭크의 능력으로는 이런 기행을 보일 수 있을 리 없다.

폭풍이 몰아친다는 아주 특이한 자연환경 덕분에 가능할 뿐. 물론······. 이곳의 폭풍이 굉장히 ‘안정적’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 대단하시네요.”

분명 F랭크라고 들었는데, 진짜 이능력인지 뭔지를 쓴다는 거야? 라며 뒤쪽에서 속닥이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귓가에 들려온다. 거친 폭풍 속에서도 거리가 있는 이들의 목소리까지 선명하게 들을 수 있다니. 이거, 보면 볼수록 진짜 굉장한 스킬이다.

“···근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그들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통상적으로, 협곡에 나 있는 길을 쭉 따라서 가는 게 당연할 것이다. 다른 팀들의 무전을 들어보면 그렇게 하는 모양이고. 하지만 그래서는 위험하고 또 오래 걸린다.

<‘붉은 폭풍’은 붉은 거인들에게 내리는 첫 번째 시련입니다. 그러나 이 시련은 ‘통찰력’과 ‘추리력’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현재는 수천 년이 지나 출력이 굉장히 약해진 폭풍이지만, 과거에는 붉은 거인들조차 버티기 힘들 정도로 강력했을 것이다. 그런 폭풍을 통해 힘과 근성도 아니고 지혜를 시험한다? 그럼 뻔하게도, 폭풍을 멈추는 게 시련의 통과 조건일 것이다.

‘더 자세한 건 없어?’

<제가 알 수 있는 건 ‘줄거리’뿐입니다.>

정확한 정보를 알아낼 수는 없었다. 단, 이 능력을 통해 사고의 방향성을 조금 더 넓힐 수는 있었다.

현재 이 원정에 참여한 모든 이들은 폭풍을 단순히 재해로 취급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게 시련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꽤 컸다.

재해는 극복할 수 없지만, 시련이란 극복할 방법이 존재한다는 뜻이니까.

붉은 거인들은 아마 이 폭풍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자신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어떠한 능력을 통해 알아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인간. 그러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과학의 힘을 사용했다.

삐! 삐!

에너지 익스플로어 디스펜서에서 미묘한 빛이 반짝인다. 과학은 생각보다도 대단해서 붉은 거인이 순전히 추리력 하나로 찾아내야만 했던 폭풍의 근원지를 단번에 알아낸 것.

“······진짜군요. 폭풍이 기술적으로 연출된 것일 줄이야. 저걸 찾아서 파괴하면 되는 겁니까?”

“그렇겠죠.”

이렇게까지 명확한 증거가 생겨버리니 이제는 아예 팀원들도 믿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럼, 갑시다.”

*

대균열 바깥, 임시 주둔지의 지휘 막사.

“···7팀이 협곡의 폭풍을 멈췄습니다.”

그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모든 폭풍이 멎은 건 아니다. 7팀이 향하고 있는 단 하나의 협곡만이 멈췄을 뿐. 하지만, 그 파급력은 상당히 뜻깊게 다가왔다.

“설마 폭풍이 기술적으로 의도된 것이었다니······.”

7팀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다른 팀이 가지 않은 장소를 탐색했다. 처음에는 대체 뭘 하나 싶었기에 여간 불안했던 게 아니었으므로 지휘 막사에 앉아있던 엉덩이 무거운 헌터 몇몇이 저쪽의 지휘관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었으나······. 실제로 결과가 나와버리니 그들 모두가 입을 다물고 말았다.

박성호는 저들이 자신과 같은 F랭크의 헌터에게 쓴소리를 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저렇게 꿀먹은 벙어리가 되니 내심 기분이 좋았다.

“간단한 문제였군요. 폭풍에 담긴 에너지를 키워드로 맞춰서, 발원지를 탐색한다······.”

쉬운 방법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기본적인 기기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방법.

그러나, 그 발상 자체는 아무나 하기 힘들지 않겠는가.

“지금 즉시 다른 팀에게 연락을 해서, 7팀이 사용한 방법을 전파해주십시오.”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균열은 에너지의 파장이 특이하여, 내부의 팀끼리는 무전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텔레파시’의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가 지휘 막사에서 12팀 전체에게 연락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두가 7팀이 협곡을 통과하는 영상을 보며 소리를 죽였다.

지휘관 유서담. 틀림없는 F랭크의 능력자일 터인 그는 어째서인지 폭풍에도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며, 일전에 첼레스테 코스탄티니가 선보였던 ‘아주 특이하고 이상한’ 검술을 사용하며 종횡무진 괴수를 휩쓰는 게 아닌가.

무능력자의 각성?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숱한 초능력자를 봐왔기에 알 수 있었다.

저건 초능력이 아닌······.

“······마치 DR이 사용하는 ‘무공’을 보는 듯하군.”

하지만 DR은 절대 공개적으로 무공을 사용할 수 없다. 그들의 모든 힘은 ‘누군가’에 의해 철저하게 사용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 또한, DR은 31년 전에 실종되었다가 다시 돌아온 자들을 일컫는데, 유서담은 실종자가 아니지 않는가?

폭풍이 멈춘 이후로, 7팀은 앞서 나갔던 다른 팀을 가볍게 추월하였다. 이제는 폭풍이 없으므로 거리낄 게 없는 데다가 다른 초능력자들이 제힘을 발휘하게 되면서 몬스터들이 속수무책으로 썰려 나가기 시작한 것.

만약 폭풍이 여전히 건재했더라면, 상당히 위험했을 수준의 몬스터가 사방에서 튀어나왔으나 폭풍이 없는 상황에서의 그들은 경험 많은 베테랑으로서의 저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게다가 단순히 앞으로 쭉쭉 나아가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어느 순간 갑작스레 협곡이 움직여서 헌터들을 가두려고 하질 않나, 사방에서 바위의 소나기가 떨어지질 않나, 붉은 안개가 끼질 않나. 또 한번은 바닥에서 거대한 골렘의 팔이 튀어나와 그들을 낚아채려고 하기도 했는데, 지켜보던 이들의 간담이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7팀의 지휘관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그에 알맞는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 그 방법은 알고 보면 쉽지만, 당장은 생각해내기 어려운 발상의 전환으로 가득했기에 솔직히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또한, 7팀이 방법을 알아내면 텔레파시 능력자가 그 방법을 다른 팀에게 전파하여 그들 역시 안전하게 함정을 통과하는 게 가능했다. 가장 앞서 나가는 7팀이 모든 함정을 겪고서 방법을 찾아내니 다른 11팀의 생존율 역시 어마어마하게 높아지고 있는 상태.

다른 팀이 7팀을 따라잡아 먼저 앞서나가려고 하면 지휘 막사에서 만류하여, 7팀을 기다리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할 정도였다.

물론. 자존심 높은 그들이 말을 들어 처먹을 리는 없겠지만.

-뭐? 7팀이 해결하는 걸 기다리라고?

대답을 한 이는 그나마 제일 앞서 나가고 있던 6팀의 지휘관이자 S랭크의 헌터 류동균. 그는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열이 받은 목소리였다.

“예. 7팀 지휘관의 판단력이······.”

-참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 정도는 우리도 해결할 수 있어!

뚝 무전이 끊어지며 6팀이 앞서나가자 자리에 있던 모두가 한숨을 내쉬었다.

< 대균열(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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