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균열(2) >
“너 이 새끼야, 제정신이야?!”
여의도에 위치한 벨벳 길드의 본사, 47층의 (S)헌터 대기실에는 난데없이 폭풍이 들이닥쳤다. 부길드마스터 오현정이 직접 찾아와서 고함을 쳤기 때문. 그 자리에 있던 몇몇 S랭크의 헌터들은 똥밟았단 표정을 지으면서 자리를 회피했다.
다만 이준석만이 그 자리에 남아서 시종일관 감자칩을 씹었다. 고추장불고기맛으로 출시된 감자칩, 매콤한 게 아주 맛있는 모양이다.
“미친 새끼···. 너, 내가 이번에 대균열의 팀장 자리 따내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오현정.
염동력이라는 아주 희귀한 초능력을 각성하였지만 재능의 한계에 부딪혀, C랭크에 멈춰버린 은퇴한 헌터. 그러나 정치와 사업수완으로 무려 벨벳 길드의 부길드마스터에 오른 여자였다. 그런 만큼 그녀의 입김은 길드 내에서도 상당했으나······.
“저는 그거, 별로 고생 안 하고도 따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헌터 협회 한국 지부에서도 이준석에게 따로 ‘대균열의 팀장을 맡아볼 생각이 있느냐’며 연락이 오기도 했었다. 그는 한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였으며, 헌터 커뮤니티에 업적과 힘을 따라 매겨놓은 순위에서도 100위권에 들어갈 정도의 ‘진짜배기’였으니까.
그러나 그는 팀장직을 거부했다.
이유는 간단하게도, 자신이 그 위치와 맞지 않기 때문.
이준석도 자신의 힘이 분명히 뛰어나고, 그와 걸맞는 일을 해야만 한다는 건 알고있다. 그러나 초능력이 S랭크라고 해서,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이 과연 S랭크일까?
그건 아니었다.
이준석의 초능력은 굉장한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바람에 혼자서 싸우는 것도 벅차다. 아니, 누군가의 명령을 듣는 일조차 굉장히 심적인 소모를 해야만 하는 마당에······.
지휘를 하라니.
가당치도 않는 소리이나, 세간에서 원하는 건 능력있고 유명하고 경력 높은 헌터가 지휘관을 맡아주기를 원하였고. 그래서 그 점을 이용해 오현정은 기어이 이준석의 이름을 팔아서 팀장직을 따내 가져온 것이다.
“그걸 말이라고 해? 널 그 위치로 올려준 게 누군데!”
“이 위치로 올라온 건 순전히 제 노력입니다. 당신들은 제 이름을 열심히 팔아먹었을 뿐이죠. 덕분에 유명해져서 좋긴 하네요. 제가 호의를 품고있는 상대에게 다가가는 게 쉬워졌거든요.”
“어이가 없다 진짜······. 너 대체 왜 그래?”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제가 팀장 하기 싫다고 하는데 대체 왜 그러셨습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너를 위해-”
“제가 아니라 당신들을 위해서겠죠.”
그는 오현정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요즘 시대에 헌터가 ‘상품화’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벨벳 길드는 그 정도가 도를 넘어섰다. 헌터는 괴수를 사냥할 뿐, 초능력으로 서커스를 하는 원숭이가 아니란 말이다.
오현정의 그 사업수완 덕분에 현재 벨벳 길드에는 이름값 좀 날리는 헌터들이 꽤 있었지만······, 고작 그뿐이다. 그들은 ‘진짜 전장’에 떨어지면 모두 며칠 안 가서 죽으리라.
즉. 현재 이 길드 내에 속한 S랭크의 헌터 중에서, 대균열 급의 ‘진짜 전장’에 나가서 제대로 활약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전부터 꾸준히 전장을 전전하며 살아남았던 이준석밖에 없던 것이고.
팀장직을 다른 헌터에게는 준다고?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으므로, 오현정 역시 길드 내에서 가장 반항이 심한 이준석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너 알아서 해라. 난 이제 모르겠다. 마스터께 보고드리겠어.”
“그러십시오.”
오현정이 쾅, 문을 닫고 나가자 이준석은 감자칩을 내려놓았다.
어차피 이미 정나미가 툭 떨어진 길드였다.
부길마는 그렇다쳐도, 길드 마스터마저 전장에서 손을 뗀 지도 벌써 5년이다. 5년 전의 그날마저도 S랭크 헌터 수십 명을 대동해서 이벤트성으로 TV에 내보내려고 했던 헌팅이던가. 이 길드는 진짜 전장에서 살아왔던 이준석에게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저. 갈 곳이 없어서, 잠깐 머물고 있을 뿐.
그렇게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는데, 누군가가 노크를 했다.
“들어와.”
안희정이었다.
상당히 희귀하다는 화염계 A랭크의 각성 능력자이자, 아주 큰 야망을 품고있어 장차 크게 될 헌터라고 이준석은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그녀 역시도 길드를 잘못 만나도 아주 잘못 만났다. 분명, 이곳에 있으면 안희정 역시 그 명성이 어마어마하게 뻥튀기되는 건 시간문제겠지.
하지만, 그녀가 가진 천재적인 재능은 헌팅이 아닌 서커스의 소모품으로 전락되고 말 것이다.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이준석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선배.”
“응. 말해봐.”
이준석이 자상하게 웃으며 답하자 안희정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전에 검술 토론회에서 보여주었던 그 싸늘하고 냉랭했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정말 바보같아요.”
“글쎄. 너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안타까운-”
“아뇨. 부길마님이요.”
“응?”
무슨 소리냐는 듯 이준석이 희정을 바라보자, 그녀 역시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선배님의 판단을 항상 믿고 있어요.”
그건···. 그냥 단순히, 안희정이라는 인간 자체가 가진 감이었다.
‘아, 내가 이쪽 라인을 타면 성공할 수 있겠구나.’
성공을 바라는, 유명해지고 싶은, 장차 사람들의 위에 올라서고 싶은.
야망을 품은 자의 감.
상식대로 생각해보자.
정말로 성공하고 싶다면, 이미 대기업의 반열에 올라선 길드의 라인을 잡아야만 정상일 것이다. 실제로, 이 길드는 탄탄대로의 길을 걷고 있었으며 이미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어쩐지 안희정은 이준석, 즉 ‘유서담’이라는 그 F랭크의 헌터를 붙잡아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땐 여전히 말이 안 되는 라인이었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면서도 여전히 안희정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내가 왜 이러지? 정말 미쳤나? 그냥 안전하게 지금처럼만 하면······!’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입은 그런 말을 내뱉고 있었다.
“아마 선배의 의견에 반발하는 팀원들이 많을 거예요. 그때 저도 힘을 보태드릴게요. ···솔직히, 여전히 그 F랭크의 헌터 선배님은 믿지 못하겠어요. 하지만 그 헌터님을 믿는 선배를 믿을게요.”
“······그렇구나.”
이준석은 한참이나 안희정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희정아.”
“네?”
“고맙다.”
그 말에 안희정은 툴툴거리듯 말했다.
“선배 좋으라고 하는 일 아니거든요······?”
*
강원도 철원, ‘대균열’이 나타나기로 예정되어있던 이곳은 이미 일주일 전부터 군부대에서 그에 대한 대비를 완벽하게 해두었다.
초능력자가 나타난 이후로 군사 체계는 크게 뒤바뀌었고, 간부진은 대부분 초능력자로 교체되었다. 물론, 초능력의 랭크가 곧 계급을 나타내는 건 아니었으나 높은 계급으로 올라가기 위해 고랭크의 초능력이 필수불가결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번 대균열 진압에는 무려 2개의 팀에 초능력자 부대, 즉 ‘국가적 이상사태 진압부대’ 100인이 파견되었으며 헌터 협회에서도 50인의 1개팀을 파견하였고 나머지 아홉 팀은 개인 길드의 헌터들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국에서 발생한 대균열이라지만, 이곳에 진입할 권한을 따내기 위한 경쟁은 치열했고 덕분에 아홉 개의 팀은 각각 다른 길드 소속의 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팀 내에 다른 길드가 있다고 해서 내부분열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아주 옛날에 그런 전적이 몇 번 있었고, 모조리 전멸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으므로.
‘뻘쭘하네.’
서담은 자신을 바라보는 49쌍의 눈동자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의 손에 들린 태블릿에는 어느 길드 소속의 어느 초능력자가 어느 정도의 랭크와 경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표기가 되어있었다.
차라리 서담이 어떤 길드에 소속되어있고, 아는 사람이 몇 명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아예 그런 사전정보가 없다 보니 여간 골치가 아픈 게 아니었다.
사방에서 적대적인 시선이 쏘아진다. 비단 팀 내의 시선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팀에서도 서담을 적대적으로 바라보고 있던 것.
“저쪽 7팀 지휘관이 F랭크라던데?”
“말이 돼?”
“여긴 대균열이라고.”
“쯧쯧. 옛날에 F랭크 헌터들이 대균열에 들어가서 모조리 전멸했던 걸 모르는 건 아닐 텐데 왜 저런 판단을 했지?”
서담은 쓴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F랭크의 헌터들은 대균열의 진압을 몇 번 시도해본 적이 있었으나, 대부분은 실패로 끝났었다.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지만 변명은 소용없다. 결국 실패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으니.
그리고.
아마 이러한 상황은 이준석 또한 예상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F랭크의 헌터가 지휘관을 하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F랭크 헌터가 가진 전략과 판단력을 세간에 드러낸다? 비록 초능력이 없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라는 사실을 이준석은 세상에 알리고 싶었으리라.
지금 이준석과 안희정이 7팀을 설득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고.
“그는 지휘관으로서 걸맞는 판단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정신없이 싸움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저와는 달리······”
“저는 직접 앞에서 싸우며 지휘하는 지휘관을 원합니다!”
“물론, 그런 지휘관도 좋지만 후방에서 아군을 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두 남녀가 필사적으로 설득하는 모습을 보며 서담은 어쩐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실, 서담은 이준석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생각이 없었다.
무능력자의 판단력과 전략전술, 그리고 노하우가 아직 이 세상에 쓸모가 있다?
그런 걸 증명해서 무얼 하는가.
기껏해야 어디 선생님으로 취직해서, 교과서나 쓰는 게 고작일 것이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긴 하지.’
다만, 그뿐이다. 쓸모가 있다고 한들 F랭크는 여전히 F랭크.
그래서 서담은 이번 대균열에서 ‘초능력’이 아닌, ‘이능력’으로 무능력자 또한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생각이었다.
초능력과 이능력. 어찌 보면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세상에는 그 두 가지의 구분이 명백했다.
에테르 주입을 통해서 수학적으로 인간을 초인으로 만드는 기술로서, 과학적으로 모두 증명이 끝난 ‘초능력’.
자연적으로 발생하며, 아직까지도 그 원인과 능력의 정체에 대해 파악할 수 없는 ‘이능력’.
세상의 헌터들은 99.99%가 초능력자로 구성되어 있었으므로, 사실상 이능력에 대해선 밝혀진 바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서담은 자신이 가진 검술과 마법을 ‘이능력’으로 칭하고서 초능력에 재능이 없는 자들을 위한 것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열심히 노력을 해야겠지.’
아직까진 고작해야 D랭크의 능력치에 마법도 정령의 도움이 아니면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 또한, 이번 전투에서는 마법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을 생각이기도 했고. 이런 형편없는 실력으로 최소 A에서 S랭크의 초능력자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두각을 드러내려면, 필사적으로 싸워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서담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49인의 팀원들에게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
“······!”
49쌍의 눈동자가 주목을 한다.
“저는 최전선에서 싸울 생각입니다.”
“······예?”
헌터 지휘관은 앞에서 싸울 의무가 있다.
“저는 F랭크라고 해서, 그 의무를 저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건 기회였다. 남들보다 더욱 앞에서 더 많은 공적을 세울 수 있는 기회. 그걸 미쳤다고 걷어차겠는가?
“구구절절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의 앞에서 행동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말을 끝마친 뒤, 그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전방에는 땅에서부터 하늘까지 대략 15층 아파트 정도의 높이로 쩌적, 찢어진 붉은색의 거대한 균열은 그 내부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한 팀, 두 팀씩 대균열 내부로 진입하는 것을 보며 서담도 성큼성큼 발을 옮겼다. 7팀이 서로를 쳐다보고 있을 때, 이준석과 안희정 역시 그 뒤를 따라가자 하는 수 없이 나머지 팀원들도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는 지휘관이었고, 가장 앞에서 싸우겠다는데 어쩌겠는가.
팀원들이 전부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 것을 보며 서담은 균열 내부로 진입했고.
휘이이잉!!
“···!”
몰아치는 거친 폭풍에 살짝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온통 붉은 세상이었다.
붉은색의 절벽이, 세상을 가득 뒤엎고 있었다. 아주 거대한 무언가가 땅에 장난이라도 쳐놓은 듯, 울퉁불퉁 솟아있는 붉은색의 대지.
[스킬 ‘바람처럼 달리는 법(A)’이 발동됩니다.]
비록 폭풍은 거칠었지만, 몸을 마구 뒤흔들어서 날려보낼 정도는 아니었다. 그럭저럭 움직이는 데에는 지장이 없는 정도.
‘그래도 버틸 만은 해서 다행인데.’
천천히 대균열의 내부를 둘러보고 있자니, 의뢰인이 말을 걸었다.
<해당 세계는 ‘멸망한 붉은 거인의 명예로운 왕도’의 일부로군요.>
‘멸망한, 뭐?’
<이미 멸망한 세계라는 의미입니다.>
‘이전처럼?’
<그렇습니다.>
한눈에 봐도 뭔가 멸망한 것처럼 보이긴 했다.
<이 장소는 ‘붉은 폭풍의 절벽’으로, 멸망 전에는 거인들이 시련을 받기 위해 찾아오던 장소로군요.>
‘오. 넌 그걸 어떻게 아냐?’
<스킬 ‘주인공 사냥꾼’의 레벨이 3이 되었기 때문에 멸망한 세계라 할지라도 ‘줄거리’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 야, 그럼······.’
서담은 12개나 되는 거대한 붉은 협곡을 바라보았다. 그랜드 캐니언을 동네 뒷산 정도로 만들어 버리는 그 거대한 협곡 하나하나에는 각 한 개의 팀이 들어가기로 되어있었다.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알 수 있겠네?’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단편적으로는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서담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다가올 재앙에 미리 알고서 대비한다는 것. 그게 생존율을 얼마나 높여주는지, 서담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환희에 찬 얼굴로 뒤를 돌아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여러분, 지금부터······. 응?”
그제야 서담은 팀원들의 몰골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각자 몸을 웅크린 채 무언가를 버티고 있었는데, 그 꼴이 상당히 우스꽝스러웠다.
“···뭡니까?”
그가 묻자.
그나마 상태가 멀쩡한 이준석이 황당하다는 듯 고글을 쓰며 되물었다.
“유서담 헌터님은······. 이 폭풍이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그제야 서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보니, 7팀뿐만이 아니라 12개의 팀 전부가 폭풍에 휩쓸려 제대로 움직이질 못하고 있던 게 아니겠는가?
‘허, 미친.’
스킬로 인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폭풍 속에 녹아드는 바람에 하마터면 포인트를 놓칠 뻔했지만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이 폭풍이 바로, 대균열의 공략을 가로막는 진짜 관문이었다.
< 대균열(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