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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46화 (46/251)

< 떠나요, 몽환의 섬(2) >

몽환의 섬.

새벽요정들의 터전인 이 섬은 해가 떠있는 시간이 그렇지 않은 시간보다 훨씬 적었다.

하늘의 절반을 가리고 있는 보라색 행성 ‘헬리아윈’이 태양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루 중 해를 볼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3시간.

남은 시간 중 18시간은 어스름한 황혼의 새벽이었다.

행성 헬리아윈은 신기하게도 태양을 가리고 있는 동안에도 빛의 절반 정도는 몽환의 섬으로 통과시켜주었는데, 그 탓에 새벽 시간 내내 세상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늘도 보라색, 구름도 보라색, 우리 모두 보라색.

온통 보랏빛의 세상은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몽환적이었다. 그래서 이 섬의 이름이 몽환의 섬이라 불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몽환의 섬은 기본적으로 하늘에 둥실 떠있었다. 그러나 이곳에 사는 새벽요정들은 섬 아래로 내려가 본 적이 없기에 저 아래에 또다른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었다. 그저 그들은 꿈을 꾸는 듯한 자신만의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갈 뿐이었으니까.

몽환의 숲의 저녁은 3시간 남짓이다.

그러나 그 시간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어둡지는 않았다. 저녁이 되면, 땅 아래에 숨어있던 ‘정령’들이 하나둘 올라와 세상을 밝게 비추기 때문이었다. 눈을 돌리면 마치 반딧불이처럼 반짝이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정령들을 볼 수 있었고 그 탓에 새벽요정들은 몽환의 섬에서 길을 잃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새벽요정은 꿈을 꾸지 않는다.

삶이 꿈과도 같은 그들은 꿈을 꿀 필요가 전혀 없었으니까.

“예쁘네.”

새벽 일족의 둘째 공주, 마릴렌은 해가 뜨는 시간이 되면 언제나 몽환의 섬의 동쪽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오르곤 했다. 그곳에서 세상을 내려보면 저 멀리, 섬 아래에 존재한다고 들려오는 전설 속의 ‘바다’라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세상 전체가 물로 뒤덮여 있다고? 정말 듣는 것만으로도 환상적이다.

다른 새벽요정들이 꿈꾸는 것처럼 매일매일 행복하게 살아갈 때, 그녀는 그런 일상으로는 전혀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오로지 바다.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이 마릴렌의 행복이었다.

멍하니 바다를 한참이나 구경하고 있자니, 어느덧 해가 떠올랐다.

세상이 온통 푸른빛으로 물드는 이 시간.

하늘도 푸른색이고, 저 멀리 펼쳐진 물빛 세상도 푸른색이다. 보라색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마릴렌은 푸른색을 사랑했다. 시야 한가득 들어오는 푸른색을 만끽하며 마릴렌이 사색에 잠기려는 순간.

“······!”

바람의 흐름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즉시 나무 아래로 몸을 숨기자 나무가 스스로 움직여 마릴렌의 몸을 가려주었다. 그녀의 주변을 맴돌며 뛰놀던 동물들 역시 땅속으로 숨어버렸고, 하늘을 활공하던 새와 정령들 역시 모습을 감추었다.

휘이이잉···!!

섬의 아래서부터 무언가가 날아오르더니.

이윽고는 몽환의 섬 상공을 활강하기 시작했다.

‘바람의 악마···!’

어느날부턴가, 바람을 타고서 등장한 악마들.

그들은 새벽요정들과 생김새가 거의 흡사했다. 밝은 살색의 피부에 다섯 손가락이 달린 손과 발. 그러나 그들은 귀가 뾰족하지 않고 뭉툭했으며, 보라색 눈동자에 보라색 머리칼을 가진 새벽요정과는 달리 갈색 머리칼에 갈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등에는 항상 나무와 종이를 얽어서 만든 날개 같은 것을 장착하고 있었는데, 저것이 바람의 악마들이 하늘을 날 수 있게 해주는 기계였다.

무려, 바람을 다스릴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장치.

자연 속에서 태어난 존재가 감히 자연을 다스리려 하다니. 새벽요정의 입장에서 저 기계의 존재는 끔찍하기 그지없었으나, 저들은 너무나도 강력했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잠깐, 저 방향은······!’

마릴렌은 바람의 악마들이 날아가는 방향을 보고서 숨을 들이켰다. 자신의 동족들이 머물고 있는 장소가 아니던가?

‘설마, 우연이겠지···?’

자연의 보호를 받는 새벽요정들의 거주지는 바람의 악마들의 눈으로 쉽게 찾을 수 없다. 마치 평범한 나무처럼, 평범한 강처럼, 평범한 바위처럼 보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보라. 저 악마들은 마치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아는 것처럼 직행을 하고 있지 않던가?

‘어서 일족에게 알려야 해!’

마릴렌은 서둘러 나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몽환의 섬에 존재하는 모든 자연의 나무는  하나의 뿌리로 연결되어 있어 어디서든 소통이 가능하다. 그리고 새벽요정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멀리서도 서로 연락하는 것이 가능했다.

‘제발······. 늦지 않았기를.’

바람의 악마들이 몽환의 섬을 침공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5년째.

여전히, 요정들은 재앙에 대응할 수 없었다.

*

밤이 되었다.

하루에 3시간뿐인 밤은 아주 특별한 기운을 머금고 있는 시간이어서 ‘의식’을 치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솟아있는 ‘황혼의 나무’에 모인 새벽요정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황혼의 나무.

태초에, 새벽요정을 꽃에서부터 피워냈다고 전해지는 이 나무는 요정들에게 위험한 일이 생길 때마다 항상 해결책을 주고는 하였다.

그러나.

최근 300년 동안이나 황혼의 나무는 더 이상 자신들의 부름에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기력이 다한 것일까.

혹은 지친 것일까.

아니면, 자식들이 바라는 것만 너무 많아서 이제는 더 이상 들어주시지 않는 것일까.

모른다.

그러나 새벽요정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이것뿐이었다.

악마들은 너무나도 강력하였고, 도저히 상대하는 게 불가능했고 언제나 그랬듯 소원을 비는 수밖에는 없었다.

‘······너무 많은 요정들이 죽었어.’

둘째 공주, 마릴렌은 의식을 대표하는 제주(祭主)로서 나무의 근처를 맴돌며 하늘하늘 춤을 추고 있었다. 첫째 공주 ‘아릴린’이 칩거한 지도 벌써 3년째. 이제는 둘째 공주인 그녀가 새벽요정을 대표하는 역할을 모조리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으흐흑···.

흑···.

의식을 치르는 와중, 사방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악마가 침공을 한다고 서둘러 경고를 했건만 너무 늦은 나머지 채 숨지 못한 요정들이 너무나도 많이 죽어나간 것이다.

어떻게 악마들이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찾아왔는가.

그 의문만이 마릴렌의 머릿속을 강력하게 지배하였다.

‘제발. 어머니, 저희에게 답을 알려주세요.’

장장 3시간에 걸친 의식은 점점 더 고조되었고, 새벽요정들의 노랫소리가 황혼의 나무를 가득 채운 그때.

갑작스레, 황혼의 나무를 모시는 제단의 위쪽에 푸른빛이 터져나가더니 무언가가 나타났다.

“······!”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모든 새벽요정들이 그곳을 바라보며 놀란 탓이다. 마릴렌은 제단, 즉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검은색 머리칼에 검은색 눈동자를 가진 누군가를 보고서 뒷걸음질을 쳤다.

‘아, 악마···!’

뭉툭한 귀는 악마의 상징. 한껏 파리해진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치던 그녀는 순간, 그의 가슴팍에 들려있는 무언가를 보고 말았다.

“······은빛 정령의 꽃?”

그리고.

검은 눈동자를 가진 그 남자 또한,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 사이에 있는 허공 어딘가를.

[2···1···0···]

[이동이 완료되었습니다.]

[당신은 ‘몽환의 섬’의 지나가던 행인이 되었······.]

[···정정합니다.]

[당신은 ‘몽환의 섬’의 정령의 인도자가 되었습니다.]

*

동네 식당 가서도 못 받아본 대접을 딴 세상 와서 받는다.

“저희 새벽요정의 특제 요리 ‘바야흐만의 일곱 가지 꿀’이에요.”

뾰족한 귀. 보라색의 머리칼에 눈동자. 부담스러울 정도로 예쁘고 잘생긴 외모.

아무래도 이곳은 ‘요정’들의 세상인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은빛 정령의 꽃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정말 기가 막히는 타이밍에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운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네가 뭐라도 한 거냐?’

<그럴 리가요. 세계의 이야기에 간섭할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하긴, 그렇겠지. 애초에 간섭이 가능했다면 의뢰를 안 하고 자기가 주인공을 죽였을 거다.

<다만···. 어느 세계에 가면 더 좋은 타이밍으로 간섭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제 조금씩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냐.’

의뢰인의 추천에 따라서 세계관을 엄선하긴 했다만, 이렇게 좋은 출발일 줄이야. 아마 다른 세계관을 고르더라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매번 이래주면 얼마나 좋아.’

<······항상은 불가능합니다. 이번에는 강력한 ‘이야기의 연결점’이 느껴졌기에 가능했습니다.>

그 이야기의 연결점이란 아마도 내가 품에 껴안고 있던 은빛 정령의 꽃인 듯싶다.

증거로서 새벽요정인지 아침요정인지 뭔지 하는 이 친구들이 내 식탁 위에 얹혀있는 화분에게서 시선을 못 떼고 있었으니까.

“살만하냐?”

-응···.

“또 뭐 필요한 거 있어?”

-···나도 약주할래.

화분은 내 식탁 위에 놓인 요정들의 술을 탐내고 있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게.”

-머리에 피가 마르면 죽어···.

헛소리하는 걸 보니 한결 나아진 모양이다. 이곳의 환경에 딱 알맞다는 증거겠지. 또한 요정들에게 ‘정령에게 좋은 것 좀 가져와봐’라고 했더니 여기서 제일 좋은 흙을 퍼왔단다. 여러모로 이쪽 세상으로 온 건 옳은 선택이었다.

그나저나······.

“···이게 특제 요리야?”

내 식탁 위에는 커다란 대접같은 게 하나 놓여 있었는데, 웬 묽은 스프 같은 게 담겨있었다. 이게 특제 요리란다.

“그렇습니다! 아이쉴 바위에서 1년에 한 방울 나는 꿀에 산타트롬 나비의 초록꿀을 더해서 카마멜론에서 정제해낸 술꿀 한 숟갈을······.”

“아냐. 그냥 처먹을 테니까 제발 닥쳐.”

“넵!”

내 앞에서 떠드는 남자 요정의 입을 다문 뒤 꿀을 퍼먹자, 의외로 꽤 맛있었다. 특제 요리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넨 맨날 이런 거만 먹냐?”

“물론입니다! 저희는 살아있는 것을 절대로 먹지 않으니까요. 그에 비해 악마들은 정말이지 야만적입니다. 어떻게, 어떻게······. 동물을 칼로 썰어서 불로 태운 뒤 먹질 않나, 나무를 뜯어서 먹질 않나······. 으윽,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

“어라, 왜 그러십니까?”

“···아니. 그냥. 내가 지금 윤리적인 갈등에 시달리고 있거든.”

요정들은 자연을 절대 해치지 않는다고 했다. 즉, 샐러드도 못 먹는다. 오로지 꿀. 꿀. 꿀이 식단의 전부였다. 신기하게도 이 꿀 하나에 탄단지를 비롯한 필수 영양소가 모두 들어가 있는 모양이었지만. 비록 특제 요리라기엔 좀 그렇지만 전투 식량으로는 썩 괜찮을 듯싶다.

꿀을 적당히 떠먹기 시작하자 남자 요정이 나갔다. 꿀으로도 무난하게 배를 채울 수는 있었기에 깨끗하게 비운 뒤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갔다. 나무칸막이로 닫혀있는 창문을 밀자, 마치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스르륵 열렸다.

···이제 보니 나무를 깎아서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건축물들 전부, 깎은 게 아니라 그냥 모양이 이렇게 생겼을 뿐인 실제로 살아있는 나무였다.

“미친. 이런 게 되나.”

나무가 스스로 건축물의 모양으로 변하다니.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마을을 살펴보자, 나도 모르게 푹 빠져버릴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지구 따위는 정말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져 있는 보라색의 세상. 분홍색의 빛무리가 하늘하늘 흔들리며 세상을 촘촘히 수놓는 장면은 지구의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것이다. 보라색 머리칼을 가진 새벽요정들은 나무를 타고 공중을 자유로이 돌아다녔고, 지구의 것보다 몇 배 이상 거대한 나무들은 그저 그들의 고속도로에 불과했다.

난 저런 데 돌아다니려면 슈트와 스킬의 도움 좀 받아야 할 텐데. 몸이 유연한 건 참 부러웠다.

똑똑!

-들어가도 될까요?

“어.”

내 대답과 함께 문이 열리며 보라색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묶은 여인이 들어왔다. 일전에 나를 안내했던 ‘마릴렌’이라는 이름의 공주였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고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인도자님. 저희가 왜 당신을 불렀는지 알고 계시나요?”

모른다.

“알지.”

하지만 아는 척을 했다.

“네···. 알고 계시는 것처럼, 저희들은 ‘바람의 악마’들에게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자주 거주지를 옮겨 다니고 있는데도. 그리고 자연의 도움을 받아서 꽁꽁 숨는데도 불구하고, 악마들은 자꾸만 저희를 찾아냅니다.”

설명에 따르면 그들은 무시무시한 마법을 부린다고 했다. 소름이 끼치도록 끔찍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 세상이 폭발하고 불에 타올랐으며 심지어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지팡이를 겨눈 것만으로도 몸이 관통당해 죽는 일도 허다하다고 했다.

“무서운 마법이네.”

저게 무슨 마법인지 나도 감도 안 잡힌다. 지팡이를 겨눴다고 몸이 꿰뚫려서 죽는다고? 그런 마법은 생전 처음 들어봤다. 게다가 하늘을 날아다닌다니······.

하지만 그건 사실 내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이야기’였고, 나는 그 흐름을 타서 주인공을 찾아내야만 했다. 당장 새벽요정들을 하나하나 모두 살펴보았는데 주인공 표시가 뜬 자가 없었으니, 주인공은 분명 ‘악마’ 중 한 명이 틀림없었다.

“그 친구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

“네, 네···. 몽환의 섬 북쪽으로 가면, ‘거대바위가 잠든 계곡’이 있는데 그곳에 진을 쳐놓았어요.”

“좋아. 가보자.”

그곳에 악마들이 있다면, 빠르게 확인을 해보는 게 상책이다.

*

새벽요정들은 ‘흰 갈기 독수리’라는 거대한 새를 탈것으로 사용했다. 독수리가 사자도 아니고 어째서 갈기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하여튼 요정들의 세계니까 그러려니 했다.

마릴렌이 앞에 탑승하고서 그 뒤에 내가 탑승하자, 독수리가 서서히 날아올랐다. 현재 시간은 18시 30분. 원래 해가 슬슬 질 시간이라지만, 이곳의 시간으로는 벌써 새벽이었다.

어스름 지는 몽환적인 밤하늘을 날아올라, 서서히 세상을 등지기 시작하자.

마치, 나는 꿈을 꾸는 것만 기분을 느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 가득한 세상이었다.

하늘에 둥실 떠있는 수십개의 거대한 바위절벽의 위쪽에서는 폭포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는 덩쿨이 뻗어있어 왕복할 수 있도록 연결되어 있었다. 저건 누군가가 만든 작품이 아니다. 그저, 새벽요정들을 위해 자연이 만들어준 놀이터였다.

허공을 가르며, 거대한 바위절벽의 사이를 한참이나 비행하자 어느덧 보라색 빛무리가 줄줄이 스쳐 지나가는 게 보였다.

“정령의 은하수예요. 오늘이 마지막 황혼의 계절이거든요.”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못했다고 말하는 게 더 옳을 수도 있겠다.

독수리는 정말로 조용히 비행했다. 악마에게 들키지 않도록. 하지만 마릴렌은 어지간히도 긴장했는지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럴만 했다.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자신들의 터전을 모조리 폭파시키는 날아다니는 악마의 본거지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니까.

악마들이 얼마나 강할진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도망칠 방법이야 있겠지.

그렇게 한 두어 시간쯤 비행하자 마침내 평지에 자리를 잡은 악마들의 흔적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 멀리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요정들은 불을 쓰지 않으니까.

‘······불이라.’

그때, 나는 살짝 어떤 감을 잡았고.

악마들의 본거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 직감이 적중했음을 깨달았다.

갈색의 머리칼, 갈색의 눈동자.

요정들과 흡사하지만 뭉툭한 귀.

악마들의 정체는 너무나도 뻔하게도.

“······인간?”

그렇다. 결국, 새벽요정들이 말하는 끔찍한 마법이란 과학에 불과했던 것이고.

누구라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 너무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 세상의 장르는 인간이 침공당하는 게 아닌, 침공하는 것을 뜻하는 ‘역침공’물인 것이다.

“음······.”

게다가 악마, 아니 인간들의 주둔지 곳곳에는 굉장히 독특한 생김새의 행글라이더와 화약을 쓰는 대포, 소총이나 장총 따위의 것들이 보였다. 그것들을 천천히 확인한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저들이 사용하는 총기류가 내 장비에 비해 월등히 구식이었던 것.

“이거,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겠는데?”

< 떠나요, 몽환의 섬(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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