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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인공은 살인이다-44화 (44/251)

< 마검사처럼 싸우는 법(3) >

갑작스런 아렌의 대련 신청에 첼레스테는 고민에 빠졌다.

검술 토론회에서 강자가 약자에게 대련 지도를 해주는 일은 흔했다. 그것이 설령 다른 가문의 사범이나 검술가라고 할지라도.

물론, 거절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녀가 아무리 코스탄티니 가문의 장녀라 해도 상대 역시 검술명가 오카모토 가문 장녀의 사범이었고, 먼저 가르침을 주겠다고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데 거절을 하는 건 여러모로 예의가 아니었다

하지만 예의가 아닌 건 아닌 거고, 첼레스테는 진심으로 이 대련을 받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녀는 짧게 고민해보았다. 만약, 자신의 아버지가 D랭크였으며 S랭크의 헌터가 대놓고 화풀이를 하려는 게 뻔한 행동거지로 다가와서 한 수 가르쳐주겠다고 했으면.

‘······받아들였겠지.’

설령 거렁뱅이에게도 가르침 받을 게 있다면, 고개를 숙이고 배우거라.

그것이 살바토레 코스탄티니의 방식이었고, 그 탓에 다른 검술명가에서 배척을 당했던 전적도 있었으니까. 물론 살바로테가 SS랭크가 된 이후로 다른 검술명가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어쨌든, 그의 방식이 누구보다 옳았다는 게 증명되었으니까.

그러나.

그건 아버지였기에 가능한 일. 그녀는 자존심이 상당히 강한 편이었고, 이런 뻔한 싸움을 굳이 나서서 하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거절을 하려고 했으나.

“첼레스테.”

“네?”

그때 유서담이 코스탄티니 가의 관계자 석에서 내려와 다가왔다.

“대련 하자.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잠시 망설이던 첼레스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검을 배운 이후로, 그녀는 어지간해선 유서담의 말을 잘 듣는 편이었다. 서담은 아렌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가르치는 제자인 만큼, 대련 도중 조언을 하고 싶은데 상관은 없겠죠?”

“···마음대로 하십쇼.”

아렌은 서담의 얼굴을 보자마자 표정을 뻣뻣하게 굳혔지만 첼레스테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서담은 그녀를 뒤로 살짝 불러서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지시했다.

이윽고 지시사항을 모두 들은 첼레스테는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그러면 되나요···?”

“어. 그냥 나 믿고 내질러.”

서담의 지시는 너무나도 간단했기에, 오히려 의구심이 들었다.

단지 ‘때려!’라고 말하면 때리고, ‘피해!’라고 말하면 피하고, ‘막아!’라고 말하면 막으라니. 상대는 S랭크. 그게 마음대로 될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일단 첼레스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볼게요.”

“그리고 적당히 하다가 기권해.”

“그럴 생각이에요.”

첼레스테는 진검을 뽑아 들고서 아렌의 앞에 섰다. 어차피 모두 강체 능력자에다가 에테르로 약코팅된 호구를 입고 있어서 진검이라고 해봐야 큰 상처는 나지도 않고, 사실 날이 제대로 서 있지도 않은 대련용 검이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오, 뭐야. 아렌 헌터가 코스탄티니 가의 장녀에게 한 수 가르쳐주겠다는데?”

“흐음. 정말 가르쳐주려는 걸까?”

“글쎄.”

아무래도 화제가 되었던 첼레스테에다가 S랭크의 아렌이라서 꽤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아렌은 뒤늦게 후회를 했다.

‘젠장······.’

뭣 하자고 굳이 코스탄티니 가의 장녀에게 대련을 신청했단 말인가. 테일러에게 역겹단 소리를 듣고, 자신이 가르쳤던 사나기가 패배한 일까지 겹치다 보니 분노로 이성이 살짝 나갔었다. 욱해서 저지른 일. 아렌은 적당히 몇 합 나누다가 빠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가 욱해서 저지른 일은 곧 서담에게 어떤 기회가 되었다.

‘이 기회에 초능력 없는 달인들의 환심을 사두는 게 좋겠는데.’

큰 그림을 생각하며, 대련이 시작되었고.

즉시 ‘백색 마녀의 도서관’이 발동되었다.

[주문의 종류를 파악합니다.]

[근력 강화(B) / 속력 강화(C) / 조준 유도(B)]

[마찰 계수 감소(C) / 스몰 에어 밤(D)]

[화염 탄환(C) / 화염 폭발(B)]

마법의 종류는 총 일곱.

상당한 마법 수준을 가진 백색 마녀의 도서관이지만, 아무래도 랭크가 낮은 탓에 완전한 크래킹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크래킹 진행도······17%]

[현재 ‘간섭’이 가능합니다.]

퉁!!

아렌이 가볍게 자리를 박차고 진검을 내지르자, 첼레스테가 당황한 듯 검을 치켜들었다. S랭크의 검사와 대련을 해본 적은 있었겠지만, 경험이 있다고 해서 대응을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퉁!

“윽!”

진검으로 가볍게 머리를 맞은 첼레스테는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어차피 가벼운 에테르로 코팅이 된 호구를 착용하고 있어서 진검에 진짜로 베이더라도 문제는 없지만, 흔들리는 충격까지 막을 수는 없었으니까.

챙, 채앵! 퉁!

아렌의 검이 머리를 노리고 날아드는가 싶다가도, 어느 사이엔가 반대쪽 허리를 노리고 있었고, 정신을 차리면 가슴팍을 명중당했다. 숨이 턱, 막혀왔지만 첼레스테는 이를 악물고서 검을 치켜들었다.

‘분명, 막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그건 본능이었다.

검의 천재가 가진 본능.

압도적으로 강한 자의 검을 단 몇 수 본 것만으로도 패턴을 살짝이나마 읽어내어, 합을 나눌 생각까지 할 수 있는 천재의 본능이었다. 실전이었다면 일초지적(一招之敵)으로 당했겠지만 대련이었기에 첼레스테는 상대의 검을 ‘공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막으려고 할 때마다 아렌의 검이 자꾸만 비껴나갔다. 마치 신기루처럼 검의 궤적이 휘어지는 것. 단순히 빠른 것이 아니었다. 그건 첼레스테의 경지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떠한 ‘기교’가 숨겨져 있었다.

“오오···.”

“저게 아렌 씨의 진짜 검술이죠.”

“저건 어지간한 S랭크의 헌터도 못 따라한다고 들었습니다.”

사람들의 감탄사가 터져나오는 것과 동시에 서담은 저 기묘한 검술의 정체를 깨달았다.

‘저게 조준 유도인가?’

자신의 공격을 강제로 비틀어서 원하는 곳을 명중시키는 기술. 그래서 마치 신기루처럼 휘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언뜻 좋아 보이는 기술처럼 보였으나, 신체에 상당한 무리가 가는 마법으로서 자주 사용하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체력이 동날 것이다. S랭크인 아렌이었기에 무리 없이 사용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거기에 전적으로 유지하고 있던 아렌에게 갑작스레 조준 유도가 사라지면 어떨까?

[아티팩트 ‘조준 유도(B)’에 간섭을 시도합니다.]

[아티팩트 ‘속력 강화(C)’에 간섭을 시도합니다.]

단 1초. 간섭만으로 아티팩트의 효과를 없앨 수 있는 시간. 그러나 그 시간이면 충분했다.

“막아!”

서담은 그저 그렇게 외쳤고, 첼레스테는 본능적으로 검을 끌어올려서.

채앵!!

“······!”

아렌의 검을 막아냈다.

스스로도 놀랐는지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첼레스테는 뒤로 스텝을 밟아서 물러났다. 주변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으며, 아렌 역시도 당황한 눈치였다.

‘뭐지? 왜 조준 유도가?’

아렌. 그의 실제 실력은 B랭크로서, 검을 다루는 실력 또한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었다. 그래서 꼭 조준 유도가 아니었더라도, 속력 강화 아티팩트가 아니었더라도 첼레스테에게 유효한 공격을 먹일 수는 있었을 것이다.

지금 공격이 막힌 건 단순하게도, 지나치게 아티팩트에 의존을 한 탓이었다.

‘···느낌이 이상해. 갑자기 검이 느려진 감각이었어.’

첼레스테 역시 아렌에게서 발생한 이상한 변화를 눈치챘다. 하지만 그에 대해 고민을 할 틈도 없이 아렌이 재차 돌진해오자 그녀는 다시 검을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S랭크의 검을 D랭크가 성공적으로 막아낸 건 좋았다. 그러나, 한 번의 요행이었을 뿐이다. 아렌은 물론 구경하던 이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후로도 요행은 계속되었다.

“피해!”

정말 기적처럼 거리를 벌려서 검을 피하질 않나.

“막아!”

채애앵!!

또다시 검을 막아내질 않나.

보이지도 않는 그 공격을, 첼레스테가 서서히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뭐, 뭐야?”

“D랭크의 수준이 맞아?”

“봤어? 코스탄티니의 사범이 지시를 내릴 때마다 합을 성공적으로 나누고 있잖아.”

분명히 대련은 아렌이 압도적인 승리였다. 만약 아티팩트가 없었더라도, B랭크라는 본래의 실력이었다고 해도 첼레스테는 패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에게 아직 두 단계 위의 초능력자를 이길 정도의 검술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아렌 본인의 문제였다.

‘뭔가··· 뭔가 이상해!’

능력치가 S나 B, 둘 중 하나로 고정이 되었다면 모를까. 자꾸만 검이 빨라졌다가 느려졌다를 반복하질 않나, 근력이 약해졌다 강해졌다 하질 않나.

심지어는 ‘마찰 계수 감소’를 이용하여 미끄러지듯 이동하거나, 스몰 에어 밤을 이용해 반동을 줘서 몸을 튕기듯 밀쳐나가 검을 휘두르는 아렌 특유의 검술조차 제대로 발동이 되질 않았다.

‘대체 뭐야!’

아티팩트를 억지로 사용하려다 자꾸만 실패를 하다보니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었고, 결국에는.

“머리!”

유서담의 외침과 함께.

쐐액!

첼레스테의 진검이 아렌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윽······!’

아주, 살짝이다. 자신감으로 가득 차 호구를 쓰지 않은 아렌의 뺨을 그저 살짝 스쳤을 뿐이다.

D랭크가, S랭크의 능력자의 뺨을.

“미, 믿을 수가 없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첼레스테는 거친 숨을 고르며 뒤로 천천히 물러섰다. 정말 한 끗 차이로 빗나가고 말았다. 조금만 더 집중을 했더라면 명중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아렌은 눈동자를 크게 뜬 채로 자신의 뺨을 문질렀다.

‘이게 뭔······.’

어찌나 깜짝 놀랐는지, 표정 관리가 되질 않고 있던 것.

또한.

유서담 역시 놀라고 있었다.

첼레스테의 검술이 뛰어나서?

아니, 아렌의 ‘활용성’이 뛰어나서였다.

‘저거······. 꽤 쓸만하잖아?’

단 1초였지만 아티팩트를 해제한 직후 보여지는 능력치를 파악하여, 서담은 아렌의 실력이 B랭크에서 A랭크 정도의 수준이 아닐까 하고 짐작했다.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아렌이 아티팩트를 다루는 능력이 생각보다도 훨씬 뛰어났기 때문.

스몰 에어 밤, 마찰 계수 감소 등의 마법은 사실 정말 별 볼 것도 없는 마법이었다. 공기를 조금 사출하는 D랭크의 에어 밤은 공격 마법으로 쓰기엔 사거리가 상당히 짧은 원거리 마법이었고 마찰 계수 감소는 적의 움직임을 방해하기 위한 기술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렌은 그 마법을 역으로 자신에게 사용하고 있었다.

공기를 자신의 몸에서 역으로 사출하여, 마치 로켓처럼 추진력을 얻었고 자신의 발밑의 마찰력을 일정 수치 감소시켜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신묘한 스텝을 완성한 것이다.

비록 아티팩트를 사용했다고 쳐도, 그걸 저렇게 쓰는 건 순전히 아렌의 진짜 실력이었다.

서담은 자신이 마법에 대해 꽤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마법이란 그저 멀리 불덩이를 던지고, 벼락을 불러오는 기술이 아니었다. 하급의 마법일지라도 활용도에 따라 가능성이 무궁무진했던 것이다.

단순히 검에 불을 붙여서 휘두르고, 왼손으로는 매직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오른손으로는 검을 휘두르는. 그런 게 마검사일까?

아니다.

서담이 보기에, 진정한 마검사의 영역은 바로 저런 것이었다.

자신의 신체 한계를 마법으로 극한까지 끌어올려서 활용하는 것. 비록 신체 강화 종류의 마법이나 조준 유도는 육체를 망가뜨리기에 사용할 수 없다지만, 그 외의 활용도는 진짜배기였다.

게다가 대련 도중이라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화염 탄환(C)’은 강체 능력자의 약점인 원거리를 보충하기 위한 것이었고 ‘화염 폭발(B)’ 역시 강체 능력자가 할 수 없는 ‘광역 공격’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즉. 아렌은 자신이 가진 한계와 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정확히 꿰뚫고 있던 것이었다.

아렌은 마법을 사용할 줄 모르면서도, ‘마검사처럼 싸우는 법’을 정확히 실천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서담은 상당히 흥분되었다. 굉장히 좋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와 별개로. 신체 강화 계열 아티팩트는 전부 회수해야겠군.’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렌의 상태는 굉장히 심각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미 돌이키기도 어려운 수준. 만약 저기서 더 억지로 아티팩트를 쓰려고 했다가는 불구가 되는 수준이 아니라 평생을 식물인간으로 불행하게 살아야할지도 모른다.

‘저건 대체 누구의 아티팩트지?’

아렌이 사용하는 아티팩트는 죄다 같은 종류의 마법이었다. 즉, 모두 한 사람에 의해 제작된 아티팩트라는 이야기. 정말 우연의 일치가 아니고서야 아렌의 몸에 딱 맞는 아티팩트가 무려 7개나 동시에 발견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런 결론이 내려진다.

‘현대에, 나 이외의 다른 마법사가 존재할 수도 있겠는데······.’

유서담이 고민에 차 있는 사이, 단단히 열이 오른 아렌은 이를 악물었다.

‘망할! 갑자기 왜 부적이 말썽이냐고!’

하지만 이깟 부적 없어도 첼레스테 정도는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다. 아예 부적의 사용을 포기한 아렌은 온몸을 거칠게 강화하였다. 부적?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아예 순수 실력으로 첼레스테에게 유효타를 먹이기 위해 달려들었고.

“기권이요.”

“······어?”

우뚝. 첼레스테의 머리까지 닿았던 검이 멈춘다.

그녀는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얼굴 한가득 미소를 띠운 채, 그리 말했다.

“좋은 가르침 잘 받았어요, 선배님.”

< 마검사처럼 싸우는 법(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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